전문가가 본
일터 거주지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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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21.12.27 14:02최종 업데이트 21.12.27 14:02

해가 지면 집이 되고, 해가 뜨면 일터가 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017년 주택이 아닌 곳에 사는 36만여 가구를 조사했는데 이 중 18만여 가구는 일터를 거주지로 활용하고 있었다. 주거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일터에 사는 사람들’의 주거 환경은 어떤 모습일까? <오마이뉴스>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대안을 모색해 봤다. — 편집자의 말

"일터 거주민은 노숙 예비 계층... 정책의 사각지대다"

“일터에 사는 사람들은 홈리스(노숙)가 되기 직전인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이 사람들은 주거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어요.”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이 ‘일터에 사는 사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17년 국토교통부의 주택 외 거처 실태조사 결과를 접한 뒤였다. 일터를 집으로 삼아 거주하고 있는 가구 수가 18만이 넘고, 고시원 가구 수보다 많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연구소 차원에서 <오마이뉴스>와 함께 실태조사를 한 것도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의 발로였다.

최 소장은 이번 일터 거주민 실태조사의 의미를 “그동안 파편적으로만 알려졌던 일터 일부 공간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규명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터에 사는 사람들은 ‘홈리스 위험 계층’이라고 짚었다.

최 소장은 설문조사에서 ‘거주지(직장)를 잃었을 때 대비책’을 묻는 질문 결과에 주목했다. 일터 거주민에 대한 <오마이뉴스> 설문 결과, 거주 공간을 상실했을 경우 대체 거주지가 있느냐고 묻자 응답자의 65.2%(30명)는 ‘특별히 생각해본 적 없다’고 했다. 그는 “절반 이상 응답자가 특별히 생각해본 적 없다고 대답 했는데, 사실상 대안이 없는 상황으로 해석된다”며 “거주민 대부분은 막연히 주거가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대안이 없다면 현재 거주지 상실 시 홈리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쪽방 거주민도 그렇지만 일터에 사는 사람들도 홈리스 예비 단계이고, 실제로 직장(거주지)을 잃으면 노숙인이 되는 사람도 확인되고 있다”며 “그런데도 이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복지, 주거정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현재 주거상향 지원사업의 지원 대상에 일터 거주민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소장은 “현재 일터 거주민들은 이 사업 대상자가 아니다”라며 “홈리스 예방적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대상으로 추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최은영 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최은영 소장

“홈리스 위험군, 정부·지자체 차원
실태조사 이뤄져야”

이번에 <오마이뉴스>와 공동으로 일터 거주민 실태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를 총평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 살고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지난 2017년 국토부 주택 외 거처 실태조사를 보면 전국적으로 15만 가구가 넘는 사람들이 일터 거주민으로 추청되는데, 그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구체적인 주거 양태가 이 조사를 보면 드러난다. 식당 쪽방에 살고 있거나, 주유소 지하방에 거주하는 등 15만 가구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난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본다.”

일터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설문조사도 했는데 어떤 부분이 인상 깊었나?

“이 사람들이 정말 홈리스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대목이 있었다. 설문조사에서 주거를 잃었을 경우 대안을 물어본 문항이 있었는데 대다수가 ‘생각해본 적 없다’고 답했다. 그냥 지금 살고 있으니까, 지금의 주거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낙관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주거를 잃게 되면 홈리스로 이어질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일터에 거주하다가 직장을 잃으면서 홈리스가 된 경우도 확인되지 않았나. 이 내용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홈리스 예비 계층으로 관리가 필요하다는 건가?

“그렇다. 홈리스는 사실 예방 정책이 굉장히 중요하다. 쪽방 같은 경우야 예방 정책이 나오지만, 일터 일부 공간도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다. 홈리스 예비 계층에 대해서 좀 더 넓게 정의해서 봐야 하고,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실태 조사도 이어져야 한다. 사실 과거에는 일터 일부 공간에 거주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주거 형태가 시간이 지나면서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많은 게 현실이다. 그리고 외국인노동자 뿐 아니라 한국 사람들도 이런 형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어쨌든 직장이 있고, 일정 소득이 있다는 점에서 당장 대책이 필요하느냐는 지적도 있는데?

“그래서 이들에 대한 소득 등 정확한 실태 파악이 이뤄져야 한다. 주거 취약계층 지원도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50% 이하인 사람들에게만 이뤄진다. 일터에 거주하는 사람들 가운데, 소득이 낮은 저소득층은 주거 취약계층이자 홈리스 위험군으로 보고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최은영 소장

실제로 취재를 하면서 일터에 살다가 직장을 잃고 홈리스가 되는 사람들도 만나봤다. 홈리스가 되는 사람의 과거 경로를 추적해 보면 상당수가 이런 형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구체적으로 일터에 거주하다가 홈리스가 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통계적으로는 확인되진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거주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은 것 같더라. 일터와 주거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사생활 침해를 호소하는 응답자도 많고, 화장실 등 기본적인 위생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도 상당수였다.

“일터를 주거지로 활용하면서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상황이다. 궁극적으로는 그런 곳에 살도록 하면 안된다. 결국 해결 방법은 주거와 복지 차원에서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 일터 주거지의 문제는 이제 단순히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로만 국한하면 안될 것 같다. 캄보디아 이주여성 사망사고 이후 외국인노동자들은 컨테이너 등에서 거주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개선 움직임이 있는데, 정작 한국 사람들은 이런 대책에서 소외되고 있다.”

당장 대책을 마련한다면 어떤 게 필요할까?

“이 사람들이 직장을 잃을 경우 대책이 사실상 전무하다. 정부가 시행하는 주거 취약계층 지원사업 대상으로 일터에 사는 사람들을 포함시켜야 한다. 현재 고시원, 쪽방, 만화방 등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대상이고 일터 거주민들은 빠져 있다. 그런데 일터에서 거주하는 주거 취약계층의 수는 만화방 거주자들보다 많다. 오히려 시설 등의 측면에선 만화방보다 열악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사람들을 아예 지원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전향적인 변화가 절실하다. 지금 일터에 사는 사람들은 완전히 주거 정책 사각지대에 있다. 이 문제에 관심이 필요하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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