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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계엄포고령 위반죄'로 기소되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던 김규복(69) 목사(대전빈들장로교회)가 40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1980년 "계엄포고령 위반죄"로 기소되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던 김규복(69) 목사(대전빈들장로교회)가 40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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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질서 파괴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는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행위로서 범죄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선고합니다. 피고인은 무죄."
 

1980년 12월 15일 군검찰에 의해 계엄포고령 위반죄로 기소되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던 김규복(69) 목사(대전빈들장로교회)가 40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9일 오후 대전지법 317호 법정에서 열린 김 목사에 대한 계엄법·포고령 위반죄 재심 선고공판에서 차주희(형사8단독) 판사는 무죄를 선고하며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차 판사는 이날 판결문을 통해 "전두환 등이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군의 지휘권을 장악한 후에 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 선포를 시작으로 81년 1월 24일 비상계엄 해제에 이르기까지 행한 일련의 행위는 헌법상 내란죄 등 헌정질서 파괴 범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에 5.18민주화운동특별법 제4조 1항에 따라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행위 또는 1979년 12월12일과 80년 5월18일을 전후해서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는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행위로서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차 판사는 또 "피고인의 이 사건 공소사실에 기재된 행위는 그 시기와 당시 상황, 행위의 동기나 경위, 내용, 수단과 방법 등을 종합해볼 때, 헌법의 수호자인 국민으로서 전두환 등의 헌정질서파괴 범죄에 저항해서 민주주의 기본 질서 및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한 반대행위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따라서 이 사건 공소사실은 형법 제20조에서 정한 정당행위에 해당해서 위법성이 조각되고 범죄로 되지 않는다"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1971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이후,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1973년에는 김대중 납치사건에 관한 유인물을 뿌리다가 경찰에 연행되어 2주 동안 가혹한 고문을 당해 학업을 포기한 채 6개월 동안 자가치료를 받아야 했다.

1975년에는 대정부투쟁 주동자로 체포되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강제 입영에 의해 군대를 다녀온 1979년에는 복학하여 1980년 서울의 봄 시위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이로 인해 수배생활을 하던 그는 1980년 12월 15일 군검찰에 의해 계엄포고령 위반죄로 기소되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서대문구치소에서 60일 만에 출소했다.

옥중에서 히틀러와 나치에 저항했던 독일 신학자인 본회퍼의 저서들과 신구약 성경을 읽고 신학을 결심한 그는 대전신학대학교와 장로교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 빈들장로교회를 개척해 노동자·빈민·민중들을 위한 목회를 해왔다. 지난 3월 대전지검은 김 목사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 달 열린 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한 바 있다.
 
1980년 '계엄포고령 위반죄'로 기소되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던 김규복(69) 목사(대전빈들장로교회)가 40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진은 대전빈들장로교회 교우와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김 목사 무죄 선고를 축하하고 있는 장면.
 1980년 "계엄포고령 위반죄"로 기소되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던 김규복(69) 목사(대전빈들장로교회)가 40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진은 대전빈들장로교회 교우와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김 목사 무죄 선고를 축하하고 있는 장면.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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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 목사가 무죄를 선고 받자 빈들장로교회 교인 및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법원으로 몰려와 꽃다발을 선사하며 축하했다.

김 목사는 이 자리에서 "제 모교 학생탑에는 '우리는 피 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 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라고 하는 글귀가 써 있다. 또 제가 다니던 대학에는 윤동주의 서시 시비가 서 있다"며 "저는 학교를 다닐 때 그 글귀를 보면서 저도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저는 그동안 5.18을 잊지 않고, 5.18정신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며 "이제 남은 생애도 참된 민주주의와 민주의 해방을 위해서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동안 고생했던 동지와 교우, 민중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 그분들이 계셨기에 제 존재의 의미가 있었고,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여기까지 왔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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