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 포스터

▲ 신의 손 포스터 ⓒ 넷플릭스

 
상실을 이겨내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에서 500원을 주고 산 병아리를 잃었을 때 나는 괴로웠다. 특히 두 번째 병아리를, 그러니까 그 작은 것이 곧 닭이 되겠다 싶게끔 흰 깃털을 절반쯤 갖추었을 때 실수로 밟아 죽였을 때는 절망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맛볼 수 있었다.

고작 몇 주 키운 병아리도 그러한데 사람은 어떠할까.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 소중한 이를 잃는다. 모든 것은 변하고 늙고 병들며 마침내는 소멸하고 말기 때문이다. 무엇도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영원할 수 없다.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애인도, 때로는 자식도 우리 곁을 떠난다. 삶이란 그 비극을 어떻게든 감당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인간이 신을 찾는 건 그러한 괴로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란 나보다 남을 우선하는 것이라 하였던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누구를 잃는다는 건 나의 소멸보다도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 고통 가운데 인간을 구할 것은 오로지 신의 손길뿐이라고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믿는다. 그저 온화하고 초월적인 존재가 우리네 고통을 쓰다듬어주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위로를 받기도 하는 것이다.
 
신의 손 스틸컷

▲ 신의 손 스틸컷 ⓒ 넷플릭스

 
디에고 마라도나,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는 신작 <신의 손>에서 한 인간이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이야기를 다뤘다. <그레이트 뷰티> <유스> <그때 그들>로 이어지는 욕망 3부작을 마무리 지은 이 이탈리아의 유망한 감독은 이제 제 관심이 구원과 극복의 문제에 있다는 듯 시종 진지한 태도로 카메라를 들이민다.

배경은 1980년대 이탈리아의 낙후된 도시 나폴리다. 시민들조차 제가 사는 고장을 빈민소굴이라 칭하길 꺼려하지 않던 이 도시가 몇 주째 은근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다. 리오넬 메시 이전 축구계의 가장 빛나는 별 디에고 마라도나가 도시도 팀도 별 볼일 없다고 여겨져 온 SSC나폴리로 이적한다는 풍문 때문이었다. 자본력도 부족하고 전력도 겨우 승점 1점 차이로 강등을 면할 만큼 초라했던 이 팀에 마라도나가 올지도 모른다는 얘기는 팬들조차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나폴리의 축구팬, 거의 모든 시민이 축구팬인 열정의 나라이므로 나폴리의 시민들은 은근한 기대에 들떠 있었다. 1984년 바로 그 계절로부터 이 슬프고 매력적인 영화가 출발한다.

마라도나의 이적이 이뤄지길 목을 빼고 기다리는 파비에토(필리포 스코티 분)는 말수가 적은 10대 소년이다. 그의 가족은 여느 다른 가정이 그렇듯 서로를 아끼면서도 저마다의 문제로 한창 삐걱거린다. 은행원인 아버지는 바람을 피우고, 그를 사랑하는 엄마는 배신감에 몸부림친다. 아이를 갖지 못해 정신이 반쯤 나간 이모는 매일 같이 이모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심한 비만인 고모는 그녀보다 수십 살은 많은 요상한 남자를 가족들에게 애인이라고 소개하는데 누구도 그를 존중하려 하지 않는다. 어떠한 관심도 다른 가족의 내밀한 사연에 도달하진 못하는 법, 미처 소개할 수 없는 수많은 이해와 몰이해가 뒤섞인 가운데 가족들의 일상이 흘러간다.
 
신의 손 스틸컷

▲ 신의 손 스틸컷 ⓒ 넷플릭스

 
생애 처음 마주한 상실의 고통

파비에토의 평범한 삶은 어느 한 순간 박살이 나고 만다. 어느 겨울 부모님이 급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황망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은 파비에토는 시신을 보여줄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그만 폭발하고 만다. 참혹한 모습 탓에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지만 부모의 마지막 모습조차 보지 못한다는 무력감과 절망감이 그를 감싸고 만 것이다.

영화는 파비에토가 부모의 죽음 뒤 겪는 일련의 사건을 담담하게 잡아낸다. 친구를 사귀고, 마음이 가는 여자를 만나고, 그녀가 제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건 따위가 실제 우리네 일상에서처럼 아무렇지 않게 펼쳐진다. 감정은 호수에 뜬 나뭇조각처럼 요동치고 상처 입은 마음은 바다 밑에 가라앉은 청동쟁반처럼 다시는 떠오르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의 작은 만남 하나가 그를 마침내 지나간 슬픔과 마주하게 한다.

영화는 파비에토가 생애 처음 만난 상실의 고통을 마주하고 이겨내기까지의 과정이다. 부모의 죽음 앞에서 슬픔 대신 분노를 드러냈던 그가 때늦은 울음을 터뜨리는 이야기다. 때로 하나의 슬픔은 하나의 이야기로 만 명의 마음에 가닿기도 한다는 걸 이 영화가 몸소 증명한다.
 
신의 손 스틸컷

▲ 신의 손 스틸컷 ⓒ 넷플릭스

 
때로 신의 손길이 인간의 고통을 쓰다듬기를

소렌티노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축구와 파비에토 가족의 이야기를 병렬로 펼쳐 놓는다. 마라도나의 승리와 그 기적적인 성공이 작은 도시 나폴리에 던진 행복이 어떠했는지를 영화 전반에서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이건 소렌티노가 얼마나 감각 있는 영화감독인지를 보여주는 요소다. 때로는 영화보다 더 극적인 현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극적인 현실이 빚어낸 감동이 실제 삶을 바꿔내기도 한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이탈리아를 살았던 남자 축구팬이 모두 그렇듯 말이다.

또한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은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에게도 은총을 기대하게 한다는 점이다. 파비에토의 불행이 여느 인간의 고통과 다르지 않기에, 그 절망이 곪게 한 상처를 신의 손이 부디 어루만져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게끔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마음들이 모여 세상을 조금쯤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주리라 나는 그렇게 믿는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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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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