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체이탈자>의 한 장면

<유체이탈자>의 한 장면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몸과 영혼이 뒤바뀐다는 설정은 그간 할리우드나 국내 영화에서도 활용해오곤 했다. 장르별로 이런 설정이 갖는 장단점이 있을 텐데 유독 액션, 스릴러 영화에선 꽤 활용이 어려워 보인다. 빠른 움직임, 이야기 속도에 비추어 배우들의 감정선이 일관되게 유지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개봉한 영화 <유체이탈자>는 액션 스릴러라는 장르적 쾌감을 살리면서 영혼의 뒤바뀜을 꽤 안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영화 시작부터 몰입도가 높은 편이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겨우 깨어난 강이안(윤계상)은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차장이나 거울 너머로 언뜻 보이는 낯선 얼굴은 처음 보는 사람 같다. 12시간마다 찾아오는 몸의 이상현상을 견디며 그는 우연히 한 노숙자(박지환)에게 상황설명을 하다가 실마리를 얻는다. 유체이탈 현상임을 인지한 뒤 자신이 경험하는 육체들이 어떤 사건과 연관된 사람들임을 알게되고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속도감을 높인다.

이야기는 몇 가지 층위로 구성돼 있다. 우선 자신의 정체, 존재를 확인하려는 주인공 캐릭터의 고군분투이고, 그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사건이 무엇인지 파헤치는 추적 서사가 바탕에 깔려있다. 그리고 강이안 주변 사람들의 정체, 정확히는 선의 편인지 악의 편인지가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구분이 명확해지기 시작한다.
 
 영화 <유체이탈자> 장면

영화 <유체이탈자>의 한 장면.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영화 <유체이탈자>의 한 장면.

영화 <유체이탈자>의 한 장면. ⓒ 메가박스중엉(주)플러스엠

 
이런 다층적 구조는 자칫 관객의 몰입도를 떨어뜨리거나 복잡하거나 산만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인상을 주기 쉽다. 강이안이 대체 왜 유체이탈을 하게 됐고, 그 대상과 연관성은 무엇인지,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를 2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에 제대로 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영화들은 종종 친절함을 가장해 곳곳에 과한 떡밥을 뿌리기 일쑤다. 그렇게 되면 영화가 싱거워지고 관객 입장에선 김이 샐 수도 있다. 

<유체이탈자>는 그 사이에서 제법 줄타기를 잘했다. 거울과 반사 이미지, 주변 인물을 통해 강이안의 정체에 대해 관객들에게 최소한의 실마리를 던지며 흥미를 잃지 않게 한다. 적절히 생각할 틈을 주는 식인데 이 지점에서 몰입도가 깨지지 않는다면 제법 끝까지 영화를 즐길 수 있게 된다.

또한 캐릭터 간 역할 배분도 효율적이다. 강이안을 연기한 윤계상의 분량이 설정상 많을 수밖에 없지만, 주변 캐릭터의 존재 이유가 분명해서 소모적으로 쓰이고 사라지거나 엉뚱하게 등장하고 말았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이를테면 노숙자는 의도치 않게 강이안에게 결정적 힌트를 주다가 급기야 함께 사건에 개입되며 일종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강이안의 연인 문진아(임지연)는 강이안의 정체가 밝혀질 때까지 범죄의 타킷이 된다. 강이안은 문진아를 알아보지만 뒤바뀐 육체만 보고 강이안을 알아채지 못하는 문진아는 이야기에서 긴장감을 유발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또한 선인지 악인지 판단하기 어렵게 등장하는 박 실장(박용우)이라는 인물은 후반부로 갈수록 본색을 드러내며 일종의 작은 반전을 선사한다. 

강이안이 경험하는 육체는 총 7명이다. 윤계상을 포함한 여러 배우가 하나의 강이안 영혼을 표현하기 위해 감정선을 미세하게 맞추고 연기 호흡을 다듬었다고 한다. 촬영 직전까지 연습실을 빌려 주 4회 이상 합을 맞춘 결과물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징상 한 장면을 두 번 이상씩 반복해서 찍어야 했는데 각종 거울과 주변 사물을 통해 캐릭터의 특성을 담아내는 감독의 섬세함도 빛난다. 

설정 자체에 함몰되거나 그걸 강조하려는 나머지 영화적 재미를 일부 포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비교적 <유체이탈자>는 뚝심 있게 이야기를 끝맺는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장르물이 등장했다.
유체이탈자 윤계상 박용우 임지연 박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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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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