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언홀리>의 한 장면

영화 <더 언홀리>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성모 마리아' 관련 기적은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1858년 프랑스 소녀 베르나데트 수비로스(Bernadette soubiros),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의 양치기 소년 세 명, 1981년 보스니아의 메주고리에선 6명이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목격하였다고 알려졌습니다. 1993년 3월 필리핀 북부 아구아시에서도 성모 마리아 발현 소동이 있었고, 1995년 이탈리아 중부 시비터베치아 성당 성모 마리아상이 양볼에 피눈물을 흘렸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1998년 7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웨서스터시의 '식물인간 기적 소녀 오드리 산토'를 기사로 다루기도 하였습니다. 소녀 오드리는 세 살 때 수영장에서 머리를 다친 뒤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사고 1년 뒤 오드리의 엄마는 마리아 현현의 유명 순례지인 유고슬라비아의  메주고리예로 오드리를 데려간 적 있다고 합니다. 린다는 그때 오드리는 마리아 발현을 보았고 '희생자 영혼'이 되기로 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오드리는 열네 살 때부터 침실 주위 십자가와 마리아상에서 기름 성분의 눈물이 흘러나오는 이적을 보였습니다. 그 뒤 수많은 사람이 오드리를 찾아와 기도하였고 그중에 여러 불치병 환자가 치유되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영화 <더 언홀리>(2021)는 이처럼 실재하는 '성모 마리아' 현현 이적을 소재로 만든 호러물입니다. 원작은 제임스 허버트의 소설 <성지 Shrine>(2011)입니다. 왜 제목이 바뀌었을까요? 원작 소설을 읽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감독이 소설과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영화를 만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게리 펜(제프리 딘 모건 분)은 거짓 기사들이 들통나 명성이 추락함으로써 가십거리나 쫓는 기자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는 우연히 맞닥 뜨린 시골 마을 성당에서 일어난 마리아 발현 기적의 실체를 추적해 그 흑막을 드러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그곳에 순례 온 신도들에게 펜은 '불경스러운 자'(the unholy)가 틀림없습니다. 
 
 영화 <더 언홀리> 포스터

영화 <더 언홀리> 포스터 ⓒ 넷플릭스


이 영화에도 매사추세츠주의 오드리 산토 같은 기적 소녀 앨리스(크리켓 브라운 분)가 등장합니다. 앨리스는 선천성 청각장애인이자 몽유병 환자입니다. 밴틀리 마을 성당의 헤이든 신부(윌리엄 새들러 분)는 고아이자 장애인인 앨리스를 맡아 기릅니다. 어느 날 앨리스는 성당 부근 오랜 떡갈나무에서 성모 마리아 발현을 체험한 뒤 기적적인 치유를 받았습니다. 듣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몽유병에 시달리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이상한 음성을 계속 듣습니다. 앨리스는 그것을 성모 마리아의 음성이라 확신하고 그 지시에 따라 충실히 행동합니다. 신심 깊은 앨리스가 그 음성을 성모 마리아의 소리로 이해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적어도 앨리스에게 나타난 그 미지의 존재는 눈부신 빛 가운데서 성모 마리아의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그 지시에 따라 행동하였을 때 불치병 환자가 치유되는 이적들이 거듭 일어났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습니다.
 
바로 이게 함정이었습니다. 눈부신 빛 가운데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나타난 존재, 잇단 기적 치유가 생겨나면 그건 과연 신에게서 온 게 틀림 없는 건지, 이 영화는 문제 제기합니다. 당장은 표면상 선한 결과를 보인다 해도 실상 뭇 영혼을 파괴하기 위한 악마의 '미끼'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사탄도 빛의 천사의 탈을 쓰고 나타난다"(고후 11:14)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천사 같은 행동을 하는 자라 할지라도 그중에 얼마든지 악마의 하수인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소녀 앨리스는 자신의 장애와 질병을 고쳐준 존재가 너무 고마웠고, 거짓과 속임수를 잘 모르는 순수한 영혼이라 더욱 악마의 꼭두각시가 되기 쉬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더 언홀리>는 맹목적 믿음은 사람을 구원하는 게 아니라 외려 악마의 힘을 강화한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줍니다. 맹신자들이 많아질수록 악마의 힘도 덩달아 커진다는 겁니다. 가톨릭 교회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과 이적이 발생한 장소를 이른바 '성지'로 만들어 신자들의 믿음을 키우는 데 활용합니다. 하지만 거짓과 조작이 드러나 기대와 달리 역효과만 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자신의 약함과 믿음 없음을 알고서 의심하고 고뇌하는 자들이야말로 신의 도움 아래 더 단단하고 건전한 신앙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려는 거 같습니다. 사실 신이 '기적'으로 신자들의 믿음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면 날마다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게 하였을 테지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호러 영화치고 <더 언홀리>는 그리 잘 만든 걸로 보이진 않습니다. 탄탄한 구성으로 짜릿한 공포를 맛보기 바란다면 다른 영화를 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원작 소설을 압축해 다루다 보니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넷플릭스의 번역 자막이 화면 속도와 어긋나는 대목들이 적지 않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지구촌 곳곳에 널리 퍼진 성모 마리아 발현 이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고, 맹목적 믿음의 위험성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볼만한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뉴스>에도 싣습니다.
더언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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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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