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와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대전동구청은 2일 오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학살지에서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 발굴 유해 안치식'을 거행했다. 산내 골령골에서는 2007년 34구, 2015년 18구, 2020년 234구 등 총 1248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사진은 유족인사를 하고 있는 전미경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장.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와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대전동구청은 2일 오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학살지에서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 발굴 유해 안치식"을 거행했다. 산내 골령골에서는 2007년 34구, 2015년 18구, 2020년 234구 등 총 1248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사진은 유족인사를 하고 있는 전미경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장.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와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대전동구청은 2일 오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학살지에서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 발굴 유해 안치식'을 거행했다. 산내 골령골에서는 2007년 34구, 2015년 18구, 2020년 234구 등 총 1248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와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대전동구청은 2일 오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학살지에서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 발굴 유해 안치식"을 거행했다. 산내 골령골에서는 2007년 34구, 2015년 18구, 2020년 234구 등 총 1248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와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대전동구청은 2일 오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학살지에서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 발굴 유해 안치식'을 거행했다. 산내 골령골에서는 2007년 34구, 2015년 18구, 2020년 234구 등 총 1248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사진은 진혼무 장면.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와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대전동구청은 2일 오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학살지에서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 발굴 유해 안치식"을 거행했다. 산내 골령골에서는 2007년 34구, 2015년 18구, 2020년 234구 등 총 1248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사진은 진혼무 장면.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우리 유족들은 발굴 기간 동안 매일 현장에 나와 962구의 유해가 수습되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쪼개지고 부서지고 총알구멍이 뚫린 유해가 나올 때마다 가슴을 치며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감사한 마음입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으로 억울하게 죽은 영령들이 오늘 평안한 안식처에서 쉬게 됐습니다."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전미경 회장의 눈물 어린 감사의 인사가 골령골에 모인 이들의 가슴을 적셨다. 쌓아 올린 장작더미처럼 뒤엉켜 71년 동안 땅 속에 묻혀 있던 900여구의 유해들이 이제는 허리를 펴고 다리를 쭉 뻗고 쉴 수 있게 된 것.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와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대전동구청은 2일 오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학살지에서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 발굴 유해 안치식'을 엄숙하게 거행했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 불리는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는 올해에만 962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지난 2007년 2개 지점에서 34구의 유해가 발굴된 이후, 2015년 18구, 2020년 234구 등 총 1248구의 유해가 발굴된 것.

산내 골령골 학살사건은 한국전쟁 당시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20여 일간 3차례에 걸쳐 법적 절차 없이 충남지구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에 의해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이 처형된 사건이다. 그 희생자 수는 최소 4000여 명에서 최대 7000여 명으로 단일사건으로는 국내 최대 민간인 학살사건이다.

정부는 이곳 골령골에 전국 민간인희생자를 추모하는 국가단위 위령시설이자 평화역사공원인 '진실과 화해의 숲'을 오는 2024년까지 조성 예정이다. 이를 위해 대전 동구청과 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이 유해발굴을 진행해 왔다.

그 결과 올해에만 A·B·C 세 개의 구역에서 962구를 발굴했고, 그동안 발굴된 유해를 세종시 추모의집으로 옮기는 안치식이 이날 열린 것. 내년에도 유해발굴이 계속될 예정이며, 이렇게 발굴된 유해들은 평화역사공원이 조성되면 국립 위령시설을 만들어 다시 이곳으로 모셔오게 된다.

이날 진혼제례에 앞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한 전미경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장은 유족인사를 통해 "우리 유족들은 거의 매일 발굴현장을 지켰고, 유해가 나올 때 마다 울며불며 탄식했다"며 "세상에 어느 민족 어느 국민에게 이토록 억울하고 슬픈 죽음이 또 있을 수 있을까하는 비통한 마음에 밤잠을 설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오늘은 감사한 마음이다. 늘 관심을 가지고 애써 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1200여 분의 유해가 평안한 안식을 얻게 됐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유족들도 큰 위로와 힘을 받을 수 있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골령골 유해발굴은 골령골 희생자뿐만 아니라 전국 희생자 평화공원 조성으로, 평화와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세상을 만드는 큰 걸음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끝까지 힘을 보태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와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대전동구청은 2일 오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학살지에서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 발굴 유해 안치식'을 거행했다. 산내 골령골에서는 2007년 34구, 2015년 18구, 2020년 234구 등 총 1248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사진은 추도사를 하고 있는 황인호 대전 동구청장.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와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대전동구청은 2일 오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학살지에서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 발굴 유해 안치식"을 거행했다. 산내 골령골에서는 2007년 34구, 2015년 18구, 2020년 234구 등 총 1248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사진은 추도사를 하고 있는 황인호 대전 동구청장.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와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대전동구청은 2일 오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학살지에서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 발굴 유해 안치식'을 거행했다. 산내 골령골에서는 2007년 34구, 2015년 18구, 2020년 234구 등 총 1248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와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대전동구청은 2일 오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학살지에서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 발굴 유해 안치식"을 거행했다. 산내 골령골에서는 2007년 34구, 2015년 18구, 2020년 234구 등 총 1248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와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대전동구청은 2일 오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학살지에서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 발굴 유해 안치식'을 거행했다. 산내 골령골에서는 2007년 34구, 2015년 18구, 2020년 234구 등 총 1248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사진은 유해가 담긴 상자를 운구차량에 옮기는 장면.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와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대전동구청은 2일 오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학살지에서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 발굴 유해 안치식"을 거행했다. 산내 골령골에서는 2007년 34구, 2015년 18구, 2020년 234구 등 총 1248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사진은 유해가 담긴 상자를 운구차량에 옮기는 장면.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추도사에 나선 황인호 동구청장은 "이곳 골령골에는 최대 7000명의 희생자가 묻혀있다. 그런데 이제 겨우 1250여구가 수습됐다. 내년까지 나머지 유해를 발굴한 뒤, 이곳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게 될 것"이라며 "동구에서는 산내전담부서를 만들어 최선을 다해 지원하고 있다. 나머지 유해발굴과 공원조성이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말했다.

박규용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상임대표도 "골령골에서 희생된 7천 명 중 그동안 진실규명 활동을 통해 신원이 밝혀진 인원은 500여 명에 불과하다"며 "올해 유해발굴을 통해서 그동안 신원이 밝혀진 인원보다 2배 이상의 지금까지 유해가 발굴됐다. 이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사건의 진실규명과 더불어 누가 이곳에서 희생되었는지를 밝혀내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정근식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은 "국가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일은 한편으로는 진실규명의 차원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위로와 치유의 차원에서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업"이라며 "이 유해들을 발굴하는 것은 71년 만에 우리가 이들을 불러내 가족과 상봉할 수 있도록 하는 작은 위로이자, 평화를 위한 화해의 출발지점에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추도식을 마친 이후에는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하는 살풀이 공연과 진혼제례, 천도무 공연 등이 이어졌고, 참석자들이 제단에 헌화하는 순서로 모든 안치식 행사가 끝났다.

이후 유족과 참석자들이 유해가 담긴 200여 개의 상자를 리무진 영구차와 무진동 트럭에 옮겨 실은 뒤, 세종시 추모의 집으로 향했다.
 
2일 산내 골령골 현장에서 발굴된 유해를 세종추모의집(세종시 전동면) 으로 옮겨 안치하고 있다.
 2일 산내 골령골 현장에서 발굴된 유해를 세종추모의집(세종시 전동면) 으로 옮겨 안치하고 있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2일 산내 골령골 현장에서 발굴된 유해를 세종추모의집(세종시 전동면) 으로 옮겨 안치하고 있다.
 2일 산내 골령골 현장에서 발굴된 유해를 세종추모의집(세종시 전동면) 으로 옮겨 안치하고 있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대전 골령골에서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례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을 대상으로 최소 4000여 명, 최대 7000여 명의 대량 학살이 벌어졌다.
▲ 14일 대전 골령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발굴 현장 대전 골령골에서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례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을 대상으로 최소 4000여 명, 최대 7000여 명의 대량 학살이 벌어졌다.
ⓒ 대전 동구청

관련사진보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 향을 묻혀 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