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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아파트 단지와 주택들.
 서울 도심 아파트 단지와 주택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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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수도권 주택 가격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내집마련이 꿈인 평범한 국민들, 또 내집마련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냥 전셋집에서 월세 걱정이라도 덜며 살고 싶은 청년층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 합니다. 다가올 대통령 선거의 주요 쟁점도 역시나 부동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 차분히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부동산 정책이 어디서부터 얼마만큼 잘못됐길래 현 상황까지 왔는지 말입니다. 그걸 직시해야만, 어렵더라도 부동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걸 명확히 해야만 후보들이 저마다 내놓는 부동산 공약의 실효성을 판단해볼 수 있습니다.

부동산 문제,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문재인 정부가 맞닥뜨린 부동산 문제가 누가 와도 풀기 힘들었던 '고차방정식'이었던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재인 정부가 대체불가능할 만큼 유능하게 대처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열심히 노력을 했지만, 오판과 착각으로 여러 정책적 실패를 만들어냈고 그게 누적되어 결국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단순히 '정부가 못해서 이모양이 되었다'고 선언하긴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건전하고 뼈아픈 비판을 하기 힘듭니다. 대안을 같이 모색하기도 힘듭니다. 문재인 정부가 과연 어떤 점에서 실책을 했으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진보정권이 계속해서 맞닥뜨린 '집값 상승'의 과제

주식시장도 마찬가지지만 부동산가격은 특히 그러합니다. 천천히 우상향해서 안정적으로 가격이 오르지는 않습니다. 특정 시기에 급격하게 오르고 또 정체하다가 오르기를 반복합니다. 그걸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천천히 안정적으로 오른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당장 하루, 일주, 한달을 살아내는 우리에게는 그런 거시적 시야를 가질 여유가 없지요.

최근 20년을 돌이켜보면 한국 부동산 가격은 공교롭게도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시기에 크게 올랐습니다. 두 정권 사이에 10년 간의 공백이 있으니 10년 주기설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네요.

부동산 가격 상승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그 중 대외적인 여건이나 거시적인 상황이 작용하는 힘도 큽니다. 그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노무현정부입니다. 미국 부동산을 중심으로 전세계의 투자자금이 부동산으로 쏠렸습니다. 2008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라고 요약되는 금융위기가 터진 것도 바로 이 부동산에 과도하게 쏠린 투자금 때문이었죠.

부동산은 불패한다는 확신이 전세계적으로 공유되었고 사람들은 미친듯이 자금을 쏟아부었습니다. 투자금은 윤리의 마지노선을 넘어서까지도 흘러갔습니다. 신용이 불안한 사람에게 집값의 100%가 넘는 돈을 빌려줬습니다. 어차피 집값은 오른다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천문학적인 자금이 '건전한 투자'라는 이름으로 둔갑했고 그대로 미국 부동산에 쏟아졌습니다. 연료는 영원히 주입될 것만 같았습니다. 이 무한동력을 가지고, 미국 부동산은 지칠 줄 모르고 상승했습니다.

상승세는 미국에만 국한된 일도 아니었습니다. 부동산 붐은 미국을 넘어 전세계로 이어졌습니다. 당시에는 '그 어느 나라도' 상승 국면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지금과 비슷한 분위기의 질책이 국민들로부터 쏟아졌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각종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종부세' 논란이 있었던 것도 이 시기였죠. 하지만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부동산 가격은 쉽게 잡히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정책으로 끄기엔 불이 너무 활활 타올랐죠. '투기 위험 지구'로 지정하면 그게 일종의 상승 신호처럼 더 오르기도 했던 게 그 때의 부동산 시장이었습니다.

물론 노력이 '전혀 소용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글로벌 흐름과 비교해보면 비교적 한국 부동산의 상승률은 양호했습니다. 다른 나라는 두배, 세배까지 오르기도 했으니까요.

영화 <빅쇼트>를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무한동력인줄 알았던 그 가격 상승은 알고보니 버블이었습니다. 비우량 채무자들로부터 채무불이행이 시작됩니다. 이들에게 투자했던 전세계 투자자들과 금융권들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월가는 마비됩니다. 네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입니다.

불이 꺼지면, 비로소 참혹하게 널브러진 잔해들이 보이죠. 부동산 시장은 처참히 박살납니다. 급격히 냉각되기 시작합니다. 그 즈음, 한국은 정권이 바뀝니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는 전혀 다른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는 이제 부동산 가격이 너무 떨어지지 않게 잡아두어야 했습니다.

누군가는 왜 부동산 가격 떨어지게 놔두지 않느냐. 가진 자를 위한 것 아니냐고 의문을 표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두면 나라 전체에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A라는 사람이 5억짜리 집을 대출을 70%를 껴서 샀습니다. 그런데 집이 1억 떨어져 4억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은행은 대출 원금에 이런저런 비용을 합치면 사실상 근저당 한도까지 꽉 차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집주인에게 압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담보 여유를 만들기 위해 돈을 갚으라고요. 

그러면 이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여유가 있으면 돈을 빌릴 수도 있거나 있는 돈으로 갚으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집을 팔아야 합니다. 안그래도 팔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렇게 물건이 나오게 되면 집값이 더 떨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보는 현상의 정반대 현상이 나오게 되는 거죠. 부동산 가격은 연쇄적으로 폭락하고 사람들은 담보금을 갚지 못해 거리로 내앉게 될 겁니다. 부동산 상승보다 침체기에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놓고 보면, 보수 정권이라서 부동산 규제를 풀고 진보 정권이라서 부동산을 규제를 강화 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그때 경제상황이 그런 정책을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무튼 '집값 하락의 추세'는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집니다. 부동산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박근혜 카드는 부양책을 내놓습니다. '빚 내서 집 사라'는 기조가 이때쯤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기조 안에 들어가 있는 정책 중 하나는, 나중에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흔들 뇌관이었습니다.

2. 부동산 문제를 고차방정식으로 만들어버린 변수, 전세
 

부동산은 정책적으로 다루기 꽤나 힘든 재화입니다. 그 이유는 부동산이라는 이름에 들어 있습니다. 부동산은 '움직이지 않는 자산'입니다. 모든 부동산이 그 위치나 용도 및 주변상황에 따라서 서로 다른 재화가 됩니다. 다른 재화처럼 수요가 많다고 '찍어낼 수도' 없습니다. 강남에 살고 싶은 사람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강남에 땅을 늘릴 수는 없습니다. 이게 부동산이라는 재화의 특수성입니다.

그래서 부동산은 일반 재화에서 쓰일 수 있는 정책들을 쉽게 사용할 수 없습니다. 수요가 많아지면 공급을 늘려야 하지만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용적률을 높이거나 주거지를 재개발하는 등 제한적인 방식으로 가능합니다. 이런 공급은 그 수량에 한계가 있을뿐더러 공급 결정과 실제 공급까지도 시간도 깁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부동산 정책은 '단기적인 처방'을 내리기 힘듭니다.

때로는 그때 처방했던 정책이 당시에는 최선이었는데 상황이 바뀌어 오히려 최악의 정책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설명 드릴 박근혜 정부의 '빚 내서 집 사라' 정책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집값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 레버리지 정책을 꺼내들었습니다. 은행 문턱을 낮추고 한도도 늘려주었습니다. 부담 없이 집을 사라는 메시지입니다.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이 오릅니다. 간단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입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한 가지 카드를 더 꺼내듭니다. 바로 전세제도 활성화입니다.
 
2015년 2월 17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당시 박근혜 대통령. 그는 며칠뒤인 23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지난해 연말 국회를 통과한 '부동산 3법'을 '불어터진 국수'에 비유했다.
 2015년 2월 17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당시 박근혜 대통령. 그는 며칠뒤인 23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지난해 연말 국회를 통과한 "부동산 3법"을 "불어터진 국수"에 비유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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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이전까지 전세는 현금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었습니다.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세대출을 받으려면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돌려받을 전세채권에 질권을 설정해야 했는데, 집주인이 자신의 채무에 질권을 설정하길 꺼렸습니다. 굳이 자기 채무의 권리자를 은행으로 정하면서까지 전세입자를 들이고 싶지는 않았겠죠.

박근혜 정부는 질권 설정을 사실상 없애는 방식의 전세 대출을 고안했습니다. 정부가 만든 '보증보험 회사'가 채무의 지급을 보증하는 방식으로요. 이렇게 집주인의 허락 없이 전세를 대출금으로 납입하는 제도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 새로운 전세 대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로는 주거복지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저금리였습니다. 전세금을 대출받아서 대출 이자를 내는 게 월세보다 쌌습니다. 이렇게 되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월세보다 전세가 더 이득입니다. '은행에서 돈도 저리로 빌려주겠다, 매달 월세 낼 걱정 안 하겠다, 이자도 월세보다 훨씬 싸겠다'... 그렇게 셋방 살이를 하던 임대차 수요자들은 전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전세 대출의 의미는 또 있습니다. 바로 부동산 레버리지 투자가 활성화되는 부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세를 '한국에만 있는 이상한 제도'라고 폄훼하지만 바라보기에 따라서는 '공매도' 제도만큼 시장에 균형을 잡아주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전세란 '가격의 향방에 대한 서로 다른 기대감이 만들어 낸 시장의 절충점'입니다.

어려운 말인데요. 쉽게 정리하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매수인은 집값이 오를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되면 최대한 자기 자본을 덜 들여서 집을 사는게 이득입니다. 집값이 오르면 기대수익이 커질테니까요. 전세로 들어가는 사람의 기대는 정반대입니다. 집값은 오르지 않거나 떨어질테니 지금 자기 돈을 들여가며 집을 살 필요가 없습니다. 당장 살 곳은 필요하니 목돈을 집주인에게 거치하고 그 대가로 집을 활용합니다.

원래 전세제도는 집주인과 임차인의 상반된 기대가 만들어낸 절묘한 균형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전세 대출을 활성화시킨 뒤로부터는 이 균형이 깨지며 새로운 양상이 나타납니다.

집값에 대한 기대와 상관없이, 주거비용을 아끼기 위해 전세를 구하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전세를 구하는 사람이 늘어나니 전세금이 올랐습니다. 전세금이 오르니 집을 사는 사람은 좀 더 적은 돈을 가지고 집을 살 수 있었습니다. 대출과 전세금을 합치면 자기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집을 살 수 있는 상황까지 연출됐습니다. 소위 '갭투자'가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 즈음 부동산 가격은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발빠른 사람들은 갭을 이용해 부동산을 매수한 뒤 가격이 오르면 팔고 양도차익을 챙겼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성과를 과시하기라도 하듯, '돈 한푼 없이 집 100채 사는 비결' 같은 책을 써서 서점 매대에 올려놨습니다. 실수요자들도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집값이 더는 하락하지 않겠다는 확신이 있었고 또 전세나 대출 등으로 집을 손쉽게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수요가 맞물려 집값은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목표는 성공했습니다.

3. '부동산 하나만큼은 자신있었다'던 문재인 정부

한국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가 원래 미국에 종속되어 움직이는 흐름을 보입니다. 지난 몇년 간 미국의 경기는 다시 전성기가 찾아온 것처럼 좋았습니다. 돈이 돌기 시작한 거죠.

여유 있는 미국인들은 물건을 사고 소비를 늘립니다. 미국이 소비를 늘리면 한국 같이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 돈이 돌기 시작하죠. 그러면 한국도 소비를 늘리죠. 이런 순환이 이어지면서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원래 잘 크던 삼성전자도 최근 5년간 더욱 큰 성장을 했습니다.

돈이 돌기 시작하니 부동산 시장에도 훈풍이 붑니다. 지난 10년간의 보합을 보상하기라도 하듯 가격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 또한 한국만의 움직임은 아니었습니다. 2008년의 고점을 갱신하는 도시들이 속속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공교롭게도, 10년 만에 정권을 잡은 민주당 정부는 또다시 '부동산 가격 상승'이라는 과제를 맞닥뜨렸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문재인 대통령, 2019년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고 말할 정도로 말이죠. 허황된 자신감은 아니었을 겁니다. 문재인 정부에는 참여정부의 유산이 있었습니다. 글로벌 주택 버블의 국면에서 온갖 정책을 써서 최대한 가격 상승을 막으려 했던 참여 정부의 도전과 실패, 그리고 소기의 성과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을 테니까요.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가격이 상승 흐름을 보이자마자 바로 '대출규제'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LTV(주택담보인정비율)를 대폭 낮춰버린 겁니다. 이 정책은 참여정부에서 효과적으로 먹혔던 카드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보유세를 매기고 양도세를 제한해도 잡히지 않던 노무현 정부 시절의 집값은 대출을 규제하고 돈줄을 막자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실제로도 대출 규제는 매우 유효한 정책이긴 합니다. 부동산은 볼륨이 엄청나게 큰 재화이기 때문에 대출 없이는 쉽게 구매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대출을 옥죄면 수요에 큰 장벽이 생기게 됩니다. 문재인 정부는 대출을 막으면 수요자들이 구매를 포기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부동산 수급이 맞춰지면서 가격 정상화가 되는, 아마 그런 그림을 그렸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크나큰 오판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국 부동산은 은행대출 말고도 또다른 사금융이 있었습니다. 바로 박근혜 정부가 넘긴 뇌관, '전세대출'입니다.
  
4. 투기꾼과 실수요자가 모호해진 시대

문재인 정부는 자신 있게 대출규제를 꺼내들었지만 먹히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사이에는 '박근혜 정부'의 전세대출이라는 변곡점이 있었습니다. 대출 규제는 주택에 공급되는 유동성을 줄이는 게 핵심입니다. 그런데, 무차별적으로 공급되는 전세자금 때문에 유동성 공급이 끊이질 않게 된 겁니다.

주택담보대출의 총량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동시에 전세자금대출의 총량도 계속 늘어만 갔습니다. 주택을 사고 싶은 사람들은 받을 수 있으면 은행에서, 모자라면 세입자에게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갭투자는 투기꾼들만의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실수요자와 투기꾼을 분간하기 힘들었습니다.

당장 주거할 집을 찾는 것은 아니지만, 집값이 너무 오르기 전에 장만하자는 실수요형 갭투자자들이 늘었습니다. 어차피 전세를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많았습니다. 전세를 놓고 집을 산 사람도 다시 전세를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전세 자금은 은행에서 나왔습니다. 그렇게 노무현 정부에는 없었던 새로운 전세대출이 문재인 정부의 '대출 규제'를 파훼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2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2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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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거래 장벽을 더 높여버리는 방식으로 정책 방향을 가져갔습니다. 부동산을 구입하는 매매자금을 어디서 얻었는지 설명하라고 했습니다. 부동산 거래를 하려면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지역을 설정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정부의 규제를 보란듯이 비웃었습니다. 한 지역에 규제를 강화하면 규제가 느슨한 지역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오른 지역에 규제를 다시 시작하면 또다른 지역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풍선효과'입니다.

집값이 오르니 전세금도 같이 오릅니다. 전세를 살던 사람은 이럴 바에는 집을 사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규제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이 추가됩니다. 점점 더 조건이 안좋아질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언젠가는 집을 사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던 '대기수요자'들이 '실수요자'로 전환됩니다. 여기서 더 오르면 살 기회는 요원해지니까요.

그런데 정부가 장벽을 높이자 수요자들이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공급자들이 줄어들게 됩니다. 양도차익을 규제하고 다주택자를 규제하니 매물을 내놓지 않습니다. 호가는 더욱 올라갑니다. 실수요자들은 충분히 오른 지역을 포기하고 다른 지역에 눈을 돌립니다. 강남3구부터 시작해, 마용성(마포·용산·성동)과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을 거쳐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로 갑니다.

김포와 고양이 들썩이고 하남과 용인이 들썩입니다. 매물은 없는데 발빠른 대기수요자들은 속속들이 실수요자로 전환하고 매물을 찾고 방법을 찾습니다. 앞서 말했듯 대출규제는 이미 전세 등으로 파훼법이 마련되었습니다. 정부는 DSR 규제 등 다른 규제들을 내놓습니다. 대기수요자들은 또 실수요자로 전환됩니다. 신고가가 또 갱신됩니다.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임대차 3법'이 통과됩니다. 임차인을 보호하겠다는 이 법은 오히려 임차인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법안이 통과되자 임대인은 전세매물을 거둬들입니다. 한번 임대를 내주면 4년을 기다려야하기 때문이죠. 그나마 물건을 내놓는 사람들은 전세금을 엄청 높여 받습니다. 앞으로 재계약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도 같은 선택을 할 겁니다. 4년 동안은 전세금을 올릴 수가 없으니까요.

전세금이 오르자 세입자는 또 고민을 합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집을 사자. 눈을 드니 이미 집값은 너무 많이 올랐습니다. 안오른 지역을 찾아봅니다. 그 지역이 핫해집니다. 가격이 또 오릅니다. 그렇게 서울 수도권 전역의 부동산은 순식간에 올라버렸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다른 지역이 너무 오른 것 같으니 강남3구의 가격이 싸 보이는 착시효과가 생깁니다. 어쩌면 착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강남3구의 집값이 다시 들썩입니다. 강남3구가 오르면 다음은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일 겁니다. 그렇게 집값은 또 한번 키맞추기를 할 태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5. 문재인 정부의 실책, 그리고 억울함


어쩌면 문재인 정부는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있을 겁니다. 글로벌 경기가 좋아져서 부동산 가격이 오른 것도 문재인 정부의 책임은 아닙니다. 금융규제를 무용지물로 만든 전세대출제도 또한 문재인 정부의 책임은 아닙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자산시장이 오르는 것을 보고도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유동성을 공급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또한 문재인 정부의 잘못은 아닙니다.

전세가 문제라며 무작정 제도를 없앨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전세 대출 활성화는 일종의 주거복지 역할을 했습니다. 목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전세는 선택할 수 없었던 옵션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세대출이 생기고 난 뒤에 이들은 돈을 빌려 전세집을 구할 수 있었고, 그렇게 매달 내야 하는 전세대출 이자는 월세보다 훨씬 쌌습니다. 집이 없는 세입자들에게 전세대출은 매우 고마운 제도였을 겁니다.

문재인 정부의 딜레마는 여기 있었습니다. 돈을 죄어야 그나마 수요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세 대출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전세 대출을 받아 주거비용을 아끼며 살아갔던 사람들이 전부 월세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주거비용이 갑자기 배로 올라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집값을 잡겠다고, 서민들의 복지 하나를 송두리째 빼앗겠다는 이야깁니다.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옵션입니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에 억울함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실책도 있습니다. 그 실책을 딱 한줄로 정리하자면 '예비수요자들에게 위기의 시그널을 주어 실수요자로 전환시켰다'고 줄여볼 수 있겠네요.

풀어서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수요 허들을 높여서 수요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역효과가 났습니다. 실제로 수요자를 줄이지도 못했으며 오히려 대기수요자들에게 '다음번에는 더 큰 정책이 생길 지도 모른다'는 신호를 주었습니다. 불안한 대기수요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주택을 사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공급자를 향한 대책도 옳지 않은 시그널이었습니다. '집을 사도 이익을 못 갖게 하겠다'는 정책 방향은 오히려 집을 파려는 사람들을 머뭇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집을 사도 이익을 못갖게 하겠다는 것은 집을 '팔 때'나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사는 사람들의 수요를 막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집을 팔려는 사람들은 배짱을 부리고 튕겼습니다. 매도인들은 아마 '정권은 유한하지만 부동산은 영원하다' 같은 격언을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매물은 줄고 수요는 여전합니다. 부동산 시장은 식을 줄 모릅니다. 정부는 이제 본격적으로 전세대출에 손을 대겠다고 나섭니다. 전세입자로 살고 있던 사람들은 계속 오르는 전세금에, 대출 받기도 힘들어지는 상황에 차라리 나도 집을 사고 말겠다고 생각을 바꿉니다. 늘어선 매수인들 앞에서 매도인들은 팔짱을 끼고 호가를 높입니다. 신고가는 또 갱신됩니다.

앞선 내용이 지금까지 집값이 올랐던 과정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억울한 부분은 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했던 결정적인 실수도 있습니다. 집을 갖고 싶어 하는, 안정된 주거환경에서 살고 싶어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을 '쉽게 억누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대출을 죄이면, 양도세를 잔뜩 매기겠다고 겁을 주면, 종부세를 강화하겠다고 하면 집값이 잡힐 줄 알았을 겁니다.

오히려 시장에서 필요한 신호는 반대였을지도 모릅니다. 당신들이 집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잘 알겠고 우리도 최대한 공급을 할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신호를 보였다면, 그리고 충분히 사람들에게 설득했다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조급하게 매수행렬에 동참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집 가진 사람들을 무작정 죄악시 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설득하고 정책적으로 유인을 해서 매도를 유도했다면 조금 더 공급물량이 많아졌을지도 모릅니다.

정치인들은 선지자가 아닙니다. 바른 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인 간의 욕망의 충돌을 중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마 문재인 정부는 미리 선과 악을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에서 출발한 정책이 실책을 낳았을 지도 모릅니다.

아마 앞으로도 부동산은 더 오를 겁니다. 마찬가지도 앞으로의 상승도 문재인 정부만의 탓은 아닙니다. 스페인독감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종식되었을 때, 세계는 엄청난 호황을 맞았습니다. 코로나19가 종식되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엄청난 소비 붐이 일 것이며 전세계 산업들은 일제히 폭발하듯 성장할 것입니다.

지금 부동산 가격은 2008년 상승기와는 다릅니다. 유동성이 부동산에만 쏠리고 있는 상황도 아니며 부동산 대출이 그 당시처럼 불이행 가능성이 높은 '서브 프라임'으로 구성되어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부동산은 코로나 이후에도 이어질 경제성장과 맞물려 같이 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이 상승 국면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이야깁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정책을 다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르는 것 자체는 상수로 두고 그 오름폭을 줄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집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억제하는 방향이 아닌 충족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할 것입니다.

태그:#부동산, #정책,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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