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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뭐라고 번역하시나요? 우린 '성평등주의'로 읽습니다.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자는 얘기죠(오바마도 페미니스트라네요!). 페미니즘이 오해받는 한국, 그 안에서 페미니스트로 사는 두 여성의 이야기. 2주마다 한번씩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대와 성장을 꾀해봅니다.[편집자말]
정치인들이 한심한 당신에게, 성애가 드립니다.

(* 아래 오디오 버튼을 누르시면 편지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지낭독 서비스는 오마이뉴스 페이지에서만 가능합니다. 이번 편에는 히든트랙이 숨어 있습니다.)

당신 곁의 페미니즘 · 열두번째 편지: 정치인이 한심한 당신께

혜미씨, 몸 상태는 좋아지셨나요. 난지 5개월된 아깽이, 반려묘 쨔삐를 안고(임시보호하던 유기묘를 입양했어요!) 혜미씨 편지를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봄이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단순하겠구나, 아침마다 고양이 눈곱을 떼주고 똥을 치우며 쌓이는 애정과 비슷하겠구나, 하고요. 혜미씨도 서점고양이 허시먼을 자주 볼 테니 아시겠죠?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오래 들여다보는 데서 오는 위로를요.

그런데 저는 요새 대선 뉴스만 보면 좀 화가 납니다. 후보들 공약 중 도무지 눈에 띄는 성평등 공약이 없어서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너무 게으르게 만든 공약들만 눈에 띄어서요.

윤석열식 공정

혜미씨, 전두환 옹호 발언 탓에 묻혔지만, 윤석열 후보가 21일 '여성가족부 폐지'와 함께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를 공약했다는 걸 아시나요? 강력범죄의 경우 무고죄 선고형을 3년 이상 유기징역으로 강화하고, 성폭력처벌법(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에 무고 조항을 신설한다는 겁니다.

성폭력이 없었다고 인정되는 비율은 6.4%에 불과하지만, 피해자들의 입을 막는 데엔 효과가 큰 그 무고 말이에요. 지난해 '성폭력무고죄 검찰 통계 분석'에 따르면, 실제 성폭력 무고가 일어난 사례는 극소수였고, 오히려 이걸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협박하는 양상이었다고 합니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0.5 발표) . 

결국 윤 후보의 '무고죄 처벌 강화'는, 성폭력 피해 신고를 막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죠.

그는 청년을 향한 '윤석열식 공정'을 얘기합니다. 그렇다면 청년인 여성들이 교제살인으로 죽어가는 현실부터 바꾸는 게 공정한 것 아닐까요? 얼마 전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에서 제 또래 여성이 남자친구에 맞아 죽었다는 뉴스를 봤어요.

이 사건이 특이한 걸까요. <오마이뉴스>가 3년(2016~2018년) 동안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108명 여성이 사귀던 남성에 의해 죽었습니다. 칼에 24번 찔린 사례, 구타로 장이 찢어진 여성도 있었어요. 이를 다룬 책 <헤어지자고 했을 뿐입니다>(오마이북)에서 한 현직 판사는 말합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살인은 똑같이 비난받아야 한다. (그러나) 가해자에 감정이입한 판결들, 피해자 탓을 하는 남성 중심적·가부장적 판결이 무수히 많다." (179쪽)

그런데도 윤석열 후보는 여성들 죽음보다 무고가 더 화나는 모양입니다. 남성인 그가 성별에 따라 '선택적 감정이입'을 하는 건 아닌지, 찾아가 묻고 싶을 정도예요.
 
서울 마포구 교제살인(데이트폭력) 피해자의 가족이 올린 국민청원입니다.
 서울 마포구 교제살인(데이트폭력) 피해자의 가족이 올린 국민청원입니다.
ⓒ 청와대 국민청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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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여자로 태어나서 

휴, 쨔삐를 쓰다듬으며 마음을 가라앉혀 봅니다. 저는 여자로 태어난 게 좋은 걸까. 오래 생각해본 적 있는데 혜미씨는 어떤가요.  

"불편해도 괜찮았다. (...) 여자라서 불편한 게 많다 보니 피곤하긴 해도 '생각'하며 살 수 있었던 것처럼, 고졸이란 신분도 그랬다. 덕분에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지 늘 되묻고 깨어있어야 했으니까." (은유,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116쪽)

자주 불편하고 항상 되물어야 하는 삶. 여자로 사는 건 참 빡센 일이지만, 덕분에 늘 뭔가를 배운다는 점만은 분명하네요. 이쯤에서 제게 커다란 울림을 준, 여자로 산다는 게 어떤건지 알려준 동갑내기 친구를 소개하려 합니다.

자서전 <배움의 발견>(원제 educated, 열린책들)을 쓴 타라 웨스트오버가 그 주인공이에요. 타라는 한 여성이 배움을 통해 어디까지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지를 삶으로 보여줍니다. 종교에 대한 맹신이 한 인간을 어떻게 망치는지도요.

누가 역사를 쓰는가

타라는 성경 속 '심판의 날'을 준비하며 사는 모르몬교 극단주의자 부모에게서 태어나, 출생등록조차 안 된 채 17년 가까이 집에서만 자랍니다. 예방 접종은 고사하고 피가 철철 흘러도 집에서 약초를 발랐고요. 그런 타라가 학교에 갈 결심을 한 건 "세상은 넓어, 타라. 아버지가 네 귀에 속삭이는 걸 듣지 않기 시작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일 거야"란 친오빠의 말 덕분이지요.
  
1986년생 타라 웨스트오버(왼쪽)가 쓴 <배움의 발견>은 종교와 교육, 가족이 얽힌 가운데 한 여성의 변화와 성장이 담긴 자서전입니다.
 1986년생 타라 웨스트오버(왼쪽)가 쓴 <배움의 발견>은 종교와 교육, 가족이 얽힌 가운데 한 여성의 변화와 성장이 담긴 자서전입니다.
ⓒ tarawesto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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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멘토' 오은영 박사는 "부모는 아이의 동아줄이다. 아이는 그게 썩은 줄이라도 잡는다"더라고요. 부모에게 배운 얘기들, 옳다고 믿어왔던 모든 게 눈앞에서 뒤집힐 때의 혼란이 상상되나요? 공황발작과 몽유병에 시달리면서도 타라는 끝까지 자신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습니다. 턱걸이로 자격시험(ACT)을 통과해 대학에 입학하고, 결국 학위를 받아요.

1986년생 타라의 이야기는 2018년 미국을 뒤집어놨고 한국에 사는 제 인생도 흔들어놨습니다.

현재진행형인 갈등을 담담히 쓴 타라를 보며 어쩌면 여성이라는 게, 약점같아만 보이는 이 정체성이 나의 강점이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피곤하겠지만 그만큼 더 많이 겪고 배우게 될 테니까요.  

"집으로 향하던 나는 강의 하나를 떠올렸다. 교수는 칠판에 '누가 역사를 쓰는가?'라는 문장을 쓰며 강의를 시작했다. 당시 내게 그 질문이 얼마나 이상하게 들렸었는지가 기억났다. (...) 이제 나는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그 모습이 우습기까지 하다고 생각했다.

'누가 역사를 쓰는가?' 나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배움의 발견> 491~492쪽)​


군밤이 등장한 계절, 노을이 선명한 요즘을 당신이 온전히 누리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 시간을 잉크 삼아 우리도 자기만의 역사를 잘 써 내려가 봅시다.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타라가 한 대학의 졸업 축사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짧지만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보고 싶어요(17분40초).
 

2021년 10월 26일
가을햇볕에 행복한 성애 드림   

* 혜미와 성애가 2주에 한 번씩 주고받으며, 격주 금요일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 긍정적인 피드백과 공유는 큰 힘이 됩니다. 편지를 즐겁게 읽으셨다면, 여기(링크)를 눌러 응원을 남겨주세요. 

덧붙이는 글 | <김혜미>
연재는 처음이라. 마포에 살고, 녹색 정치를 하며, 사회 정책에 관심있게 움직이는 사람. 셰어하우스에 살며 분리수거를 잘 하고싶은 페미니스트. 삶과 이상을 잇고-짓고 싶은 사회복지사. 날기싫은 비행기와 춤추고 싶은 멋쟁이 토마토를 간신히 연주할 수 있는 우쿨렐레 초보. 토마토 음식으로 해장하는 사람.

<유성애>
아픈 몸을 사는 사람, 편집노동자. 스스로 장애인-비장애인 경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 한 팔 두 다리가 부러졌던 경험이, 의도치 않게 여자로 태어나 살며 겪었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소외된 사람들 목소리에 마음이 더 기운다. 성평등한 국회, 성평등한 오늘을 꿈꾸는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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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자세히 보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A political reporter. I'm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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