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21 06:28최종 업데이트 21.10.2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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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환경연대 회원들이 2017년 9월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앞에서 생리대 모든 유해성분 규명과 역학조사를 촉구하며, 검은 옷을 입고 바닥에 누워 비폭력 저항을 표현하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8월 3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성부정출혈(하혈)을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란 글이 올라왔고, 마감날(9월 30일)까지 총 4만 6982명의 시민이 동의했다. 국민청원 답변 기준인 20만 명을 넘기진 못했지만, 적지 않은 숫자였다. 이와 관련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지난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백신 후 월경장애 감시체계를 통해 현황을 파악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월경 장애는 백신 이상반응의 주요 분류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 신고 시스템에도 발열, 통증, 부기 등의 항목은 있지만 '월경 장애' 혹은 '하혈' 등의 증상은 없었다. 그래서 월경 장애를 신고하고 싶은 사람은 '기타' 항목에 별도로 기재해야 한다. 


9월 27일, 질병청은 백신 접종 후 월경 장애 발생 건수가 총 712건이라 답변했다. 이러한 수치는 월경 장애가 이상반응 신고 시스템의 보기에 들어가 있지 않기에 과소 추정되었을 확률이 높다. 더군다나 '기타' 항목을 선택한 채 자신이 경험한 부작용을 써서 제출하면 일괄적으로 "위의 증상은 경증으로, 보건소 보고는 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 메시지가 뜨는 문제도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월경 장애를 백신 접종 이상반응으로 기입한 여성들이 본인의 증상을 '경증'이라 믿게 만들고, 병원 방문을 꺼리게 만든다. 1차 백신 접종 후 월경 장애를 신고하기 위해 이상반응 신고 시스템을 이용해본 여성들은 2차 접종 후 같은 부작용을 겪어도 자신의 증상을 기입하지 않게 될 확률도 높다. 어차피 보건소에 보고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신 접종 후 월경 장애 감시 체계 구축은 환영할 만한 일이며, 중요한 일이다. 이상반응 신고 시스템에 '월경 장애' 보기가 있으면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증상을 신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케이스가 쌓인다는 것은 월경 장애와 백신의 연관관계를 밝혀내는 시작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백신 접종 후 월경 장애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아했던 다양한 문제를 보여주기도 했다.

월경 장애, 남 일이 아니었다
 

월경 장애를 백신 이상반응의 보기 중 하나로 추가할 것을 요구하는 국민청원 ⓒ 청와대 국민청원

 
나는 1차 백신 접종 후 어떠한 이상반응도 경험하지 않았다. 그 흔하다는 근육통과 미열조차 없었다. 지인들은 백신을 맞은 후 생리를 다시 시작하거나 진행되던 생리가 갑작스럽게 끊어지는 등 월경 장애를 경험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애초에 난 코로나 백신 이상반응을 크게 걱정한 사람도 아니었고, 그보다는 빨리 백신을 접종 받아 코로나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거기에 1차 접종 후 이상반응도 없었으니 2차 백신 접종을 늦출 이유 따위 없었다.

1차 백신 접종 후 3주 만인 지난 6일, 잔여백신 예약을 통해 2차 백신을 맞았다. 1차 접종 때처럼 당일과 그 다음날에 어떠한 이상반응도 없었다. 열이 나지도 않았고, 주사 맞은 곳 이외의 신체에 근육통도 없었다. 피곤하지도 않았다. 문제는 백신 접종 후 이틀이 지난 10월 8일에 일어났다. 하혈이 시작된 것이다.

8일 점심쯤, 잠깐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났는데 방석에 피가 묻어 있었다. 마지막 생리가 끝난 지 2주가 채 되지 않은 날이었다. 배란기 때 가끔 일어나는 부정출혈과는 양상이 달랐다. 한두 방울 정도의 피가 속옷에 묻은 게 아니라 바지와 방석에 묻을 만큼 다량의 피와 핏덩어리가 배출된 것이다. 28년 평생 살며 처음 겪는 일이었다.

하혈은 진행되다가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되었다가 또 멈추었다. 몇 시간 혹은 거의 하루동안 속옷에 피가 묻어 있지 않다가도 갑자기 피가 나와서 속옷과 바지를 적시기도 했다. 8일부터 시작된 하혈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7일부터는 생리를 하는 것처럼 계속 피가 나왔기 때문에 아직도 하혈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생리가 그 사이 시작되어 버린 것인지 아예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아직까지 백신 이상반응 신고 서비스에 '월경장애' 보기가 없었기에 보기 '기타'에 하혈을 한다는 말을 적어 넣었다.

"위의 증상은 경증으로, 보건소 보고는 되지 않습니다"라는 자동 메시지를 보고나서는 몇 가지 고민이 들었다. 병원에 가는 것이 좋을까? 내가 엄살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과연 병원에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러다가 다른 고민도 들었다. 병원비는 얼마나 들까? 월경 장애와 백신의 연관 관계가 밝혀지지 않아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없을 텐데 비용을 부담할 수 있을까? 내 경험이 의사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터넷에 검색해 보고 주변의 이야기도 여러 번 들어봤지만 월경 장애를 겪는 사람 중 실제 병원을 방문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왠지 내가 너무 예민하게 이 문제를 받아들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적어도 일주일은 하혈을 해야 '병원에 갈 만한 환자'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기다렸다. 일주일 동안 하혈이 지속된 다음에는 곧 하혈이 끝날 것 같아서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미루다보니 하혈을 한 지 12일이 되는 오늘(19일)도 병원에 가지 못했다. 누군가는 미련하다고 욕을 할지도 모르겠다.

"연관성이 발견되지 않았다"라는 말
 

월경 장애를 백신 이상반응 신고 '기타'란에 작성하여 신고한 경우 뜨는 안내 문구 ⓒ 신민주

 
'백신 접종과 월경 장애는 연관성이 발견되지 않았다'란 표현은 백신 접종과 월경 장애 사이 어떠한 관련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연구가 부족해서 관련성이 밝혀지지 않았다"라는 뜻으로 독해되어야 한다. 실제로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는 지난 9월, 코로나 백신이 월경에 끼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5개 연구기관에 향후 1년 간 약 20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즉, 백신과 월경 장애에 대한 연구는 막 시작한 단계로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아직까지 이 표현을 전자의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성이 월경 장애와 백신에 대해 말을 꺼내는 순간 생떼를 쓰고 있다고 비난하거나, 백신 무용론을 외치고 있다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월경 이상 증상을 제보받고 연구비를 지원한 미국과는 다소 비교되도록 말이다.

사실 여성의 경험을 없는 것으로 취급하거나 축소시키기 위한 시도들은 매우 오랜시간동안 반복되어 일어났던 문제다. 이른바 2017년에 발생한 '발암 생리대' 파동도 비슷하다. 2017년 8월 초, 일부 언론들이 생리대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이야기와 생리대 사용자가 부작용을 경험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놨다.

보도 후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러한 '의혹'을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생리대 부작용을 경험한 여성들의 증언을 모았고,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발암 생리대'가 안전하다고 판결한 정부에 생리대 제품의 성분 및 유해성 조사를 요구했다. 이들이 뽑은 문구는 "내 몸이 증거다, 나를 조사해라"였다. 여성의 몸과 건강 그리고 증언이 '증거'로 사용되지 않은 세상을 날카롭게 꼬집는 문구였다.

그 성과로 환경부는 2018년과 2020년 '1, 2차 생리대 건강영향조사'를 진행했고, 2020년 말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21년 10월 현재까지 조사 결과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이 문제의 해결을 요구한 여성환경연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고, 4년째 수억원의 손해 배상 소송에 시달려야 했다. "내 몸이 증거다"라는 말은 정부와 사회, 기업에 의해 또 다시 무시되었다.

그렇다면, '발암 생리대' 문제는 정부의 공식적인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모조리 거짓말로 치부되어야 할까. 안티페미들이 말하는 것처럼 페미들의 과도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소설인 것일까. 생리대 부작용을 경험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말들은 모두 없는 것으로 치부되어도 괜찮을까?

이번 백신과 월경 장애에 대한 일처럼, 나는 이 문제들을 모두 없는 것으로 여길 수 없다고 믿는다. 나는 나의 몸과 나와 함께 살아가는 여성들의 몸이 "증거"라는 사실을 믿는다. 여성 건강의 문제가 '해석할 수 없는 기묘한 현상'으로만 남게 된 것은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들이 집단 피해망상에 빠져 있는 탓이 아니라 충분한 연구와 지원, 여성의 건강이 사회적 문제임에 대한 인정이 부재한 탓에 가깝다.

백신과 월경 장애, 보건의료체계 젠더 편향 지적하는 말
 

지난 7월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민체육센터에 설치된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 이상반응 모니터링 구역에 시민들이 떠나며 붙여 놓은 '15분' '30분' 표시 스티커가 가득 붙어 있다. 백신 접종을 한 시민들은 이상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15분' 또는 '30분' 동안 대기한 뒤 이상반응이 없으면 떠나야 한다. ⓒ 권우성

 
2019년, 시민건강연구소에서는 시민건강실록을 펴내며 "보건의료체계의 젠더 편향"을 지적했다 시민건강연구소에는 "여성 대상자를 실험에 포함하지 않는 의학 연구, 여성의 건강 필요를 충분히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 건강보험 급여결정, 여성 환자가 호소하는 고통을 가벼이 여기며 환자의 말에 충분히 주의를 고려하지 않는 진료는 모두 보건의료체계에서 젠더 편향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 일부 의료진, 산부인과를 방문하는 여성에 대한 편견, 건강보험 미적용 등은 여성 환자들의 병원 방문을 기피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지난 5월 한 제약업체가 2040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43%가 월경 과다증을 경험하지만 약 70%는 질환으로 인지조차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보건 의료체계의 젠더 편향은 여성의 건강과 관련된 사안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여 여성들을 더 많이 아프게 만든다.

백신과 월경 장애에 대한 논의들의 끝에는 '백신 무용론'이 아닌 '보건의료체계의 젠더 편향'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존재해야 한다. 수많은 여성들이 백신과 월경 장애에 대한 연관성을 조사해 달라고 말하는 이유를 백신 무용론을 주장하기 위함이라 깎아내리는 것도 옳지 못하다. 여성들은 오히려 나의 몸과 나의 건강이 존중받기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국가 정책에 따라 여성의 몸이 통제될 수 있다는 일부 인식과 여성의 고통은 사소한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정책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백신과 월경 장애의 문제를 '의혹'으로 남겨놓을 것인지, 아니면 증명해 보일 것인지 정부가 결정하기를 바란다. 설령 백신과 월경 장애가 어떠한 관련이 없다는 결론이 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그러한 가능성이 여성의 메시지를 듣지 않아도 되고 '검증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이 느끼는 자신의 몸에 대한 언어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기나긴 싸움 끝에 성평등한 보건 의학을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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