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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B부장에게 찍힌 일 있나요?" 그 후 45개월> 제하의 제보취재 기사 화면 갈무리
 지난 2월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B부장에게 찍힌 일 있나요?" 그 후 45개월> 제하의 제보취재 기사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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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깡통 연구실이었죠. 매년 장비 구입을 요청했지만... 전 장비 욕심장이로 낙인찍혔어요." (농촌진흥청 박관영 연구관. 가명)

"지금 제게 남은 건 공무원 조직에 대한 증오입니다." (농촌진흥청 김선미 연구사. 가명)


위의 인용문은 지난 2월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B부장에게 찍힌 일 있나요?" 그 후 45개월> 제목의 제보취재 기사에서 등장하는 두 인물의 증언이다.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 시작된 농진청 '갑질 논란'은 그 뒤,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원회에까지 올라갔다. 최근 박관영 연구관은 소청심사위가 내린 2건의 결정을 오마이뉴스에 알려왔다. ([이전 기사] "B부장에게 찍힌 일 있나요?" 그 후 45개월 http://omn.kr/1rxyj)

결론부터 말하면 이 두 사람을 대상으로 한 농진청의 끈질긴 시도는 모두 불발됐다. 소청심사위는 김선미 연구사에 대한 농진청의 '불문경고' 징계조치를 철회했다. 박관영 연구관 역시 '불문경고'라는 경징계를 없던 일로 되돌렸다. 우선 이 사건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두 인사와 관련된 지리한 '농진청 갑질 논란'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박 연구관은 2015년, 20여명이 근무하는 연구실 책임자로 선임됐지만 실험실엔 기초 장비조차 없었다고 했다. 농진청은 "장비를 사달라"는 요청을 대부분 들어주지 않았다. 김 연구사도 2017년 1월부터 이 연구실에 근무했다. 결국 이들은 소위 '깡통 연구실'에서 업체 등으로부터 무상 대여 받은 장비로 국가 연구사업을 수행했다. 

하지만 농진청은 두 명을 상대로 '기관 감사', '김영란법 위반 고발', '과태료 청구소송'을 했다. 두 연구자는 임시로 무상 임대하는 '데모장비'는 "기관 내의 관행"이었고, "신고 규정도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농진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래업체로부터 시험 장비를 무상으로 대여 받아 금품 등을 수수한 혐의로 두 연구자를 형사고발했다. 

이 건에 대해 검찰은 2019년 8월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했다. 농진청은 두 연구자를 상대로 법원에 부당 이득에 대한 과태료 청구 소송을 벌였지만 이 역시도 기각당했다.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 두 연구자 '불문경고' 취소

그럼에도 농진청은 멈추지 않았다. 국가공무원법상 징계사유인 청렴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면서 두 연구자에 대해 중징계 처분을 요구했다. '회계 질서 문란' 혐의도 포함됐다. 결국, 김선미 연구사는 '불문 경고'라는 경징계를 받았고, 박관영 연구관에 대해서는 인사혁신처 징계위원회에 중징계 사안으로 회부했다. 

여기까지가 오마이뉴스의 지난 보도에서 정리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지난 3월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는 김 연구사의 불문 경고 처분 취소 신청을 받아들여 징계를 철회했다. 인사혁신처는 지난 4월 박 연구관에 대해서 '불문 경고' 처분을 했지만,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는 박 연구관의 취소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이 징계도 취소했다.
수원지방법원은 2020년 10월, 두 연구자와 데모장비를 빌려준 업체들에 대한 농진청의 과태료 청구 소송을 기각했다. 당시 법원의 결정문 발췌
 수원지방법원은 2020년 10월, 두 연구자와 데모장비를 빌려준 업체들에 대한 농진청의 과태료 청구 소송을 기각했다. 당시 법원의 결정문 발췌
ⓒ 수원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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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로써 4~5년에 걸친 농진청 갑질 논란은 종결됐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농진청은 두 연구자를 상대로 자체감사, 검찰 고발, 법정 소송을 벌이며 징계까지 하려고 했지만, 모두 불발된 셈이다. 

우선 소청심사위는 박 연구관 결정문에서 "시험장비를 무단으로 반입하여 사용하고, 무단으로 반출한 것으로 관련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해당 장비가 없어 업무수행에 어려움을 겪었던 사정은 있어 보이나, 최소한 '대여 장비'의 형태로 물품을 들여오는 것이 문제가 없는지에 관해 담당 공무원에게 문의하는 등 본건 데모물품 사용에 필요한 보고절차를 거쳤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소청심사위는 "비위의 정도에 비해 균형을 잃은 과분한 처분(불문경고)으로 판단된다"면서 '공평을 잃은 징계 처분'에 대한 근거도 제시했다. 2018년 자체 감사 결과 드러난 다른 건에 대해서는 경고 처분하거나 별도 조사도 하지 않았는데, 두 연구자에 대해서는 감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개인 장비 반입 및 예산 유용에 관한 조사와 감사 결과가 비례 및 평등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농진청 징계, 균형을 잃은 처사"
 
농진청에서 '갑질'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박관영 연구관(가명)
 농진청에서 "갑질"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박관영 연구관(가명)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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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심사위는 다음과 같이 밝히면서 불문경고 처분을 취소했다.
 
연구업무 수행을 위한 기본 장비의 사용이 어려워 무상대여 장비를 사용하기에까지 이른 점, 해당 장비를 직원들이 사용하여 소청인이 개인적인 이익을 취득했다기 보기 어려운 점, 데모 장비를 무상 대여한 것이 청탁금지법 위반에 있어 무혐의로 처분된 점, 소청인이 2018년도 감사실시 이후 검찰 수사, 법원 재판, 징계까지 받으면서 오랜 고초를 겪어온 점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살펴볼 때 이 사건 징계처분이 합리적인 사유 없이 같은 정도의 비행에 대하여 공평을 잃었거나 비위의 정도에 비해 균형을 잃은 과중한 처분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

사실 이번 결정은 지난해 10월 수원지방법원이 두 연구자에 대한 농진청의 과태료 청구 소송을 기각하면서 밝힌 결정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① 기본 장비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점, ② 업체에서 장비를 무상으로 대여해준 점, ③ 대여 장비를 독점한 것이 아니라 다른 직원들과 함께 사용했다는 점, ④ 업체들로부터 어떠한 청탁을 받았다고 볼 만한 정황은 전혀 없는 점, ⑤ 대여 장비는 회사들이 무상으로 대여하고 있던 장비이거나 중고장비로서 그 가치가 큰 것으로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상대여에 불과하고 이를 독점적으로 사용한 것도 아니므로 대여 장비로부터 취득한 이익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는 점.

노조 "공개사과 하라" vs. 농진청 "공식 입장 없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농진청 지부는 지난 9월 1일 발표한 논평을 통해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2017년 모 부장의 부임 이후 직장 갑질, 형사고발, 과태료 소송, 중징계 과정에서 피말리는 고통을 겪었고, 현재 피해자 2명 모두 과도한 스트레스로 심혈관 질환 등이 생겨 병원치료를 받고 있으며 자긍심은 형편없이 낮아졌고, 조직에 대한 믿음은 원망으로 변해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농진청을 성토했다. 

지부는 이어 "죄가 있다고 괴롭혀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고 '아니면 말고식'으로 마무리한다면 조직에 대한 구성원들의 믿음은 더욱 추락할 것"이라면서 "농진청장은 공개사과와 더불어 피해 복구 및 재발방지 조치를 실시하라"고 주장했다. 

박영관 연구관도 "악질적인 직장내 괴롭힘과 갑질 사건으로 인해 애꿎은 피해자들의 인생은 망가졌고 본연의 연구업무수행에서 배제됐으며, 직위해제, 인사조치, 포상배제, 승진배제, 근평최하위등급부여 등 막대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아 업무적·경제적 손실이 막심하고 명예가 실추됐다"면서 "농촌진흥청과 가해자들에게 공개사과를 요청했지만 아직도 아무런 답이 없다"고 말했다.
 
농진청에서 '갑질 피해'를 받았다는 오세관 연구관(현 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농진청에서 "갑질 피해"를 받았다는 오세관 연구관(현 국립식량과학원 작물육종과).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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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오마이뉴스>가 가명으로 표기했던 박 연구관의 실명은 '오세관'이다. 그는 "2015년부터 농진청 조직에서 고초를 당하면서도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이런 사실조차 알리지 못했다"면서 실명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번에 농진청이 사과하지 않고,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 복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갑질 사태가 재발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저 개인의 명예만이 아니라 제가 사랑하는 조직, 후배들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농진청 성제훈 대변인은 7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 사안에 대한 공식 입장은 없다"고 밝혔다. 
 

태그:#농촌진흥청, #갑질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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