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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 9월 3일 집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집권 자민당 총재인 그는 오는 29일로 예정된 총재 선거에 입후보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그는 이달 말 총재 임기 만료에 맞춰 취임 1년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국회 다수당 총재가 총리직을 맡는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 9월 3일 집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집권 자민당 총재인 그는 오는 29일로 예정된 총재 선거에 입후보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그는 이달 말 총재 임기 만료에 맞춰 취임 1년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국회 다수당 총재가 총리직을 맡는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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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새 총리를 뽑는 자민당의 총재 선거가 임박했다. 오는 29일 치러질 선거의 승자는 내달 4일 국회에서 총리로 공식 지명된다. 이는 스가 요시히데 정권이 곧 막을 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9월 출범 후 딱 1년 만이다.

내각의 '2인자' 관방장관으로서 아베 신조 총리를 보필하던 스가는 코로나19 확산과 각종 비리 스캔들로 휘청이던 아베가 건강상의 이유를 내세워 사임하자 후임으로 선출됐다. 자신은 소속 파벌이 없는 자수성가 정치인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아베 내각에서 궂은일을 도맡았던 스가를 구원투수로 적당하게 여긴 자민당 내 주요 파벌들의 지원 덕분에 총리직에 오를 수 있었다.

어쨌든 스가 내각의 출발은 좋았다. 지금도 팩스와 도장에 의존한 일본의 구식 행정을 디지털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휴대폰 요금의 거품을 터뜨리겠다며 통신사들을 압박해 요금 인하를 단행했다. 또한 2050년까지 '온실가스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등 실무적이면서 개혁 성향의 정책을 추진하며 60%가 넘는 지지율로 고공 행진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스가의 발목을 잡았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외출 자제를 당부하면서도, 내수 경제를 살리겠다며 자신이 관방장관 시절 만들었던 여행 장려 정책을 총리가 되어서도 추진했다. 앞뒤가 안 맞는 대응이라는 비판이 들끓었고, 델타 변이까지 겹치며 신규 확진자가 치솟았다.

그 와중에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근거 없는 낙관론을 내세워 도쿄올림픽 개최를 강행했다. 결국 일본은 코로나19 긴급사태 속에서 올림픽을 치렀고, 하루 신규 확진자는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일본 국민은 긴급사태 확대·연장 기자회견을 거듭하며 방역에 협조해달라는 스가의 호소에 피로감을 느끼며 귀를 닫았다. 
 
"스가가 총리에 취임한 작년 가을은 코로나19의 제2파를 넘긴 뒤였다. 전문가들의 조언대로 겨울에 닥칠 제3파에 대비해 의료 및 검사 체계를 확실히 정비해야 했지만, 경제 활동에 더 중점을 두고 여행 장려 정책을 고집하고 도쿄올림픽을 강행했다. 무엇보다 강제력에 의존하지 않고 코로나19에 대응하려면 국민의 자발적인 협력과 이해가 필수적인데, 총리와 국민 간의 신뢰 관계가 성립하지 않았다. 스가는 전문가들의 과학적인 조언을 외면했고, 현장에서 대응을 담당하는 지자체와의 소통도 원활하지 않았다." - <아사히신문>

"스가의 퇴진은 독선과 낙관이 부른 말로였다. 국회 답변과 기자회견에서는 질문에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고 미리 준비해온 원고를 단조롭게 읽기만 했다. 예를 들어 기자가 '백신 접종은 언제부터 시작하느냐'라고 물었는데 '백신 접종을 통해 감염 확산을 막겠다'라고 답하는 식이었다. 큰 위기일수록 지도자는 국민을 설득하고 협력을 호소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스가는 국민과 진지하게 소통하려고 하지 않았다. " - <마이니치신문>

기는 20%대로 추락했고, 여야 대결 구도로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자민당은 참패를 거듭했다. 폭발적이었던 정권 초반의 지지율도 모두 까먹었다. 일본 정계에서 '위험 수준'으로 여특히 지난 8월 22일 스가의 지역구에서, 그것도 자신의 최측근을 후보로 내세웠던 요코하마 시장 선거의 패배로 치명상을 입었다. 

자민당 내부에서는 스가 체제로는 총선을 치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빠르게 퍼졌다. 스가는 개각과 자민당 간부 인사, 중의원 해산 등으로 반대 세력을 제거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총리직을 연임하려고 임기 말에 무리수를 둔다는 역풍을 맞았다. 

아베 계승하랬더니... 보수파도 등 돌려 

스가는 사임하기 직전까지도 중의원 해산을 시도하고, 당내 인사를 강행하며 반전을 모색했다. 하지만 자신을 총리직에 앉혀준 자민당 보수파로부터 버림을 당하면서 끝내 설 자리를 잃었다.

자민당의 근간이기도 한 보수파가 스가를 총리에 앉힌 이유는 아베 노선을 계승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가는 휴대폰 요금 인하나 행정 디지털화 등의 개혁 정책과 도쿄올림픽에 힘을 쏟았다. 현직 총리 신분으로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고, 자위대 명기를 위한 개헌에 매진해달라는 보수파의 기대와 완전히 어긋난 행보였다. 일본의 정치 평론가 겸 작가 후루야 쓰네히라는 <뉴스위크 일본판> 칼럼에서 자민당 보수파가 스가에게 등 돌린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스가 정권이 실패한 원인은 취임할 때 아베 노선을 계승하겠다고 말해놓고,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과 중국에 대결적으로 맞서고, 좌파 언론과 싸우고, 개헌에 열정을 보여달라는 자민당 보수파의 기대를 잘못 읽었다. 

특히 개헌 문제가 결정타였다. 그는 지난 4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여러 차례 개헌을 시도했지만,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라며 사실상 개헌을 포기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개헌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보수파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개헌이 어렵더라도, 그것을 솔직히 말하는 건 금기다. 총리 시절 '어떻게 해서라도 다음 총선에서는 개헌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겠다'라고 말했던 아베와 비교되는 이유다. " - <보수파에 버림받은 스가 정권 1년>

또한 스가는 2013년 12월 두 번째로 총리에 취임한 아베가 한국과 중국, 심지어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한 것과 달리 지난 1년간 총리로서 한 번도 참배하지 않고 공물 봉납으로 대신했다.

결국 보수파의 지지를 잃은 스가는 이대로 총선을 치렀다가는 자신의 정치 생명이 완전히 끝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꼈고, 자민당 총재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총리직을 내놓았다. 스가를 버린 보수파는 그동안 현직 각료 신분으로 꾸준히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고, 총리가 되어서도 계속 참배하겠다고 선언한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을 차기 총재로 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야권의 승리가 어려운 이유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자민당 총재 선거 불출마 선언을 보도하는 NHK 갈무리.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자민당 총재 선거 불출마 선언을 보도하는 NHK 갈무리.
ⓒ 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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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자민당이 거센 풍파에 휘말렸지만, 일본에서 정권 교체가 일어날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하다. <아사히신문>의 9월 13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지지율은 오히려 전달보다 떨어져 5%에 그쳤다. 37%를 기록한 자민당의 7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숫자다.

그동안 일본 야권은 여러 군소 정당으로 분산된 탓에 자민당으로 뭉친 거대한 보수의 산을 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적극적인 후보 단일화를 통해 재·보궐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럼에도 정권 교체가 어려운 이유는 뭘까. 일본의 야당 정치를 오랫동안 연구한 요시다 토오로 도시샤대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 야권은 자민당 정권을 비판만 해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 유권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경기 부양, 고용 대책 등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정책을 내놓지 않고 그저 선거를 위한  후보 단일화만 해왔다. 

또한 2009년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 체제로 최초의 정권 교체를 이뤄냈으나 집권 능력이 떨어져 내부 붕괴로 사라진 과거 민주당 정권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아직도 벗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민당 같은 보수 정당은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의 말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진보 정당은 평등주의·개인주의적 문화 때문에 하향식 통제가 되지 않아 규모가 커지면 운영이 어렵다."

그렇다고 일본 야권이 자민당보다 대국민 메시지 발신에 더 능한 것도 아니다. 아날로그 기반이던 자민당은 시대의 변화를 포착, 메시지 발신 능력이 뛰어난 인물을 중용하기 시작했다. 이번 총재 선거의 유력한 후보인 고노 다로 행정개혁 담당상이 전형적인 예다. 고노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중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반면에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아직도 기자회견에만 의존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 야권 관계자는 "자민당과 입헌민주당의 차이는 홈페이지만 봐도 알 수 있다. 자민당은 도표나 그림을 통해 정책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지만, 입헌민주당은 여전히 텍스트만 나열하고 있다"라고 비교했다. 이어 "소셜미디어 활용 능력에도 차이가 역력하다. 고노의 트위터 팔로워는 239만 명인데, 에다노의 팔로워는 17만 명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스가 정권이 민심을 잃고 퇴장하는 데도 야권이 그 자리를 대신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 사회가 지난 9년간 이어진 아베-스가 정권하에서 온갖 비리와 차별, 혐오, 역사수정주의에 물든 데에는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야권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들 자신도 인정하고 있다. 

관심은 오히려 자민당 내부의 변화에 쏠리고 있다.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58%가 '차기 총리는 아베-스가 노선을 계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답했지만, 총리가 되려면 일단 당원표를 얻어야 하는 자민당 총재 후보들은 여전히 보수파가 장악하고 있는 당내 분위기를 외면할 수는 없다. 민심과 당심의 갈림길에 선 자민당이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주목된다. 

태그:#스가 요시히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자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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