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난세에 탄생한다. 손흥민이 '디펜딩 챔피언' 맨체스터 시티와 새 시즌 개막전부터 결승골을 작렬하며 또 한 번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간판스타 해리 케인의 공백을 메우며 1인자로 올라설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함과 동시에, 신임 사령탑 누누 산투 감독의 데뷔 1호골과 개막전 첫 승을 선물하며 팀의 핵심으로서 굳건한 입지를 과시했다.
손흥민은 16일 오전(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1~2022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1라운드 맨시티와 홈 개막전에서 후반 10분 왼발 중거리슛으로 결승골을 넣으며 1-0 승리를 이끌었다. 손흥민은 경기 MVP인 '킹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됐다.
손흥민은 그동안 맨시티전에서 유난히 강한 모습을 보였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주제 무리뉴 전 감독이 이끌던 시절에도 손흥민은 맨시티전에서 결정적인 득점포를 여러 차례 성공시키며 천적의 면모를 과시한바 있다. 이날 경기를 포함하여 맨시티전에서만 14경기에서 7골을 기록했다.
맨시티는 세계 최고의 명장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며 프리미어리그와 유럽을 대표하는 강팀으로 꼽힌다. 지난 시즌 리그컵 결승에서 고배를 안기며 토트넘의 유일한 우 승기회를 물거품으로 만든 팀도 맨시티였고, 더구나 최근에는 토트넘의 주포인 해리 케인과의 이적설까지 겹치며 미묘한 관계에 놓여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케인은 우승을 노릴수 있는 팀으로 가기위하여 토트넘에 이적을 요구하며 갈등을 빚고 있으며, 맨시티전에도 결장했다. 케인이 팀 합류까지 거부했던 이유가 이적이 유력한 맨시티와의 개막전 출장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소문까지 퍼지며 현지 여론은 악화된 상태였다.
많은 이들이 객관적인 전력에서 뒤진데다 케인마저 결장한 토트넘의 열세를 예측했다. 하지만 토트넘에는 케인이 없어도 손흥민이 건재했다. 케인을 대신하여 최전방에 배치된 손흥민은 루카스 모우라-스티븐 베르흐베인과 스리톱을 구축하여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역습으로 맨시티를 괴롭혔다.
후반 10분 역습 상황에서 베르흐바인이 오른쪽에서 패스를 내줬고 손흥민이 공을 잡고 오른쪽 측면에서 드리블 돌파에 이어 왼발로 감아찬 슈팅이 골문 구석을 갈랐다. 이로서 손흥민은 프리미어리그에서 '펩시티'를 상대로 제이미 바디(레스터시티·9골)다음으로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적문제로 갈등을 빚고있는 파트너 케인과 달리, 손흥민은 최근 토트넘과 2025년까지 4년 재계약에 성공하며 잔류를 선택했다. 최근 몇 년간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로 성장하며 여러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았음에도 손흥민은 팀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충성심을 드러냈다. 토트넘 구단과 팬들이 손흥민을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새 시즌을 앞두고 토트넘을 바라보는 전망은 그리 밝지않았다. 토트넘은 지난 시즌 7위에 그치며 주요 유럽클럽대항전(유럽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모두 놓쳤고 컵대회에서도 무관에 머물렀다. 영국 BBC는 이번 시즌 토트넘의 예상 순위를 6위로 전망했다. 핵심선수의 이탈, 미진한 전력보강, 새 감독의 리더십 등 불안요소가 너무 많았다.
맨시티전 승리와 손흥민의 결승골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만한 성과였다. 손흥민은 새 시즌의 새 출발을 알리는 개막전부터 결승골을 기록하며 토트넘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함과 동시에, 새로운 1인자로 올라설 자격이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크다.
손흥민은 지난 시즌까지 토트넘에서 6시즌 동안 280경기 출장 107골 64도움으로 출중한 활약을 펼쳤지만, 같은 팀내에 월드클래스 공격수이자 국가대표팀 주장이기도 한 '잉글랜드 성골' 케인이 있어서 1인자로 대우받지는 못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중 한 명인 네이마르도 바르셀로나에서는 리오넬 메시의 위상을 넘을수 없었던 것과 비슷했다. 손흥민이 파트너 케인과 유독 환상의 호흡을 보이면서 손흥민의 활약이 어느 정도는 케인 덕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손흥민은 케인의 존재 유무와 상관없이 좋은 활약을 선보인 경우가 많았다. 케인이 부상으로 장기결장하는 과정에서 손흥민의 맹활약으로 토트넘을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끌어오린 2018-19시즌이 대표적이다. 손흥민은 6년간 잔부상으로 자주 결장해야했던 케인을 대신하여 중앙 공격수로 나섰을 때도 수차례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다. 올시즌도 케인없이 맞이한 프리시즌 4경기에서 3골 4도움으로 맹활약하며 '케없손왕(케인 없으면 손흥민이 왕)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토트넘은 현재 케인의 이적을 허용할수없다는 방침이 확고하다. 설사 케인이 잔류한다고 할지라도 구단과 갈등이 깊어진 상황에서 최상의 기량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대신 토트넘은 이미 비시즌부터 손흥민의 전술의 중심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플랜을 구축한 상태다.
토트넘의 새로운 사령탑인 된 누누 감독은 맨시티전에서 손흥민을 최전방에 세우는 4-3-3 전술을 선보였다. 선수비 후역습이라는 기본적인 팀컬러는 지난 시즌과 유사하지만, 무리뉴 감독 시절의 수비축구와 차이점은, 공격수들의 과도한 수비가담을 줄이고 소수의 인원으로도 역습에서의 스피드와 창의성을 극대화했다는데 있다. 아직 본격적인 경기들을 더 치러봐야하겠지만 맨시티라는 대어를 낚은 개막전은 토트넘이 주력 선수들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만한 계기가 됐다.
어느덧 30대에 접어든 손흥민에게도 최전방 공격수로서의 변신은 선수생활 후반기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수 있다. 손흥민은 그동안에도 종종 스트라이커 역할을 맡아왔지만 주포지션은 측면 윙포워드였다. 공수에 걸쳐 활발한 활동량과 이타적인 성향을 지닌 손흥민의 특성을 달라 수비가담이나 플레이메이킹 등에서 과도한 부담을 짊어져야했던 경우도 많았다. 누누 감독의 전술과 케인의 부재라는 현재 토트넘의 상황속에서는 손흥민이 다양한 임무보다 '피니셔'로서의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 더 강조될 가능성이 높다.
케인없는 토트넘에서 손흥민이 골잡이로서, 1인자로서 팀의 리더로 자리잡는 모습을 보여주고, 저평가받던 토트넘의 반등을 이끌어낸다면 손흥민의 가치는 더 올라갈수 있다. 축구인생 2막에 돌입한 손흥민의 새로운 도전이 팬들을 설레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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