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고등학교 실내야구연습장에서 야구부 선수들이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강릉고등학교 실내야구연습장에서 야구부 선수들이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 박장식

 
지난 3년간 이 학교의 고교야구는 '마법'이라는 말이 통할 정도의 성적을 보였다. 전국대회에서 다른 학교에게 밀리고 치이던 신세였지만 2019년부터 도드라진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청룡기와 대통령배에서 두 차례의 준우승을 거두고, 다음 해인 2020년부터는 전국대회에서 우승이라는 금자탑까지 쌓았다. 

프로야구 구단은 물론, 변변한 야구장도 많지 않아 한동안 '야구 변방'이라 불렸던 강원도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거둔 강릉고등학교 야구팀 이야기다. 지난 2020년 대통령배 우승에 이어 올해 황금사자기에서 고교야구 첫 우승기까지 휘날린 강릉고등학교는 '야구 변방'에서 새로운 야구 명문으로 떠올랐다.

강릉고등학교가 고교야구에서 새로운 신화를 쓰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야구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강릉고의 이면에는 어떤 힘이 있는걸까. 지난 7월 강릉고등학교를 찾아 한창 훈련에 열중하는 선수들, 그리고 최재호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황금사자기 우승? 그래도 계속 훈련해야죠"
 
강릉고등학교 한켠에 위치한 실내 야구연습장. 선수들은 진중한 얼굴로 배팅 훈련, 투구 훈련, 그리고 수비 훈련까지 다양한 훈련을 이어가고 있었다.

선수들은 황금사자기 우승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었단다. 주말리그, 그리고 지금 열리는 대통령배, 9월 열릴 봉황대기 등 여러 대회를 준비하느라 내내 훈련에 매진하는 중이라고. 연습장에서 만난 이창열 코치는 "훈련량이 다른 학교보다 많다"면서 "기본기에 신중을 기울이는 것이 강릉고의 강점"이라며 웃었다.

실내연습장 덕분에 날씨에 신경쓰지 않고 훈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강릉고 선수들의 연습량도 크게 늘었다. 올해 초에는 LG 트윈스의 2군 스프링캠프도 이곳에서 열렸을 정도였다. 이창열 코치도 "비 올때나 추울 때도 이 곳에서 훈련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니, 좋은 성적도 자연스레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창열 코치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끌려가듯이 훈련을 하지만, 점점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훈련에 동화가 되어 먼저 열심히 하곤 한다"면서 "자기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 황금사자기 때 좋은 성적 내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강릉고등학교 실내연습장에서 훈련을 이어가는 김예준 선수.

강릉고등학교 실내연습장에서 훈련을 이어가는 김예준 선수. ⓒ 박장식

 
현장에서 훈련을 이어가던 선수들 중에 2학년 김예준 선수도 힘차게 배트를 돌리고 있었다. 지난 황금사자기에서 4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강릉고의 우승에 기여했던 내야수다. 원래 인천에서 살았던 김예준 선수는 중학교 때 처음 최재호 감독에게 강릉고로 오라는 제안을 받고 고민했단다.

김예준 선수는 "감독님께서 대단하셨던 것을 알고 오게 되었다"며 입을 열었다. 김 예준 선수는 "형들이 2년 연속으로 우승을 했으니까, 나도 더 열심히 해서 계속 우승을 하고 싶다"며 웃었다.  

한켠에서는 김세민 선수도 연습을 이어나가고 있다. 강릉고에서 가장 뜨거운 활약을 펼치는 내야수 김세민 선수는 "수비는 안정감 있게, 방망이는 강하게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며 "코치님께서 하나하나 신경써주셔서 집중하게 된다"고 감사를 전했다. 

김세민 선수의 아버지는 김철기 강릉영동대 야구부 감독. 그런 아버지로부터 배우는 점은 없을까. 김세민 선수는 "아버지께서 남들보다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주시곤 한다"면서 웃었다. 김세민 선수의 올해 남은 목표는 "끝까지 해 보는 것"이라며 "잘 할 수 있는 부분 갈고 닦으면서, 좋은 추억도 더 쌓고 싶다"고 말했다. 

5년째 선수들과 한 집 사는 최재호 감독
 
 감독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강릉고등학교 최재호 감독.

감독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강릉고등학교 최재호 감독. ⓒ 박장식

 
학생 선수들이 잠을 청하는 야구부 숙소 1층에는 최재호 감독의 감독실이 있다. 최 감독은 이곳에서 5년째 학생들과 같이 일도 하고 잠도 잔다. 

덕수고등학교, 그리고 신일고등학교의 감독으로서 전국대회 7번의 우승을 거둔 '우승청부사'로도 유명한 최재호 감독. 그런 최 감독이 5년 전 강릉으로 오자마자 했던 일은 전국 팔도에서 고교 진학을 하려는 학생들을 강릉으로 스카우트 해 오는 일이었다. 5년째가 되어가는 지금도 전국에서 온 야구부원으로 북적인다.

그렇기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선수들이 이 곳으로 오거나, 야구 실력이 좋지 않지만 가능성이 엿보이는 학생 선수들이 강릉고를 찾곤 한다. 어쩌면 강릉고 야구부의 성공은 마법같은 일이 아닌, 중학 시절 다른 선수들에 가려졌던 마이너 학생 선수들이 일으킨 반란과도 같은 셈이다. 

최재호 감독에게 5년째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이유를 물으니 "선수들과 같이 있는 것이 좋다"는 다소 단순한 답변이 돌아왔다. 

최 감독은 선수 앞에서 잘 한다는 칭찬을 아끼는 스타일이다. 취재진들 앞에서도 선수에 대한 칭찬 대신 "평소 못하는데 오늘 잘 던진 것"이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우승을 한 뒤에도 선수들에게 칭찬 대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다소 무뚝뚝해 보이지만 선수들은 그런 최 감독에게 믿음을 보낸다. 

최 감독은 "학생들이 많은 회비를 내는 대신 동문들이 지원해주는 돈으로 야구부가 운영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면서 "코로나19도 있고,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도 있는데 동문회에서 노력을 해주셔서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최 감독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국에서 선수들이 모이는 기조를 유지하되, 회비 없이도 선수들이 야구를 할 수 있는 팀을 만드는 것. 최재호 감독은 "우승을 하고, 좋은 성적을 냈을 때 십시일반 모아주는 돈이 훨씬 기쁘다"며 웃었다.
 
 올해 황금사자기에서도 우승을 이뤄내며 명실상부 '강팀'이 되었던 강릉고등학교.

올해 황금사자기에서도 우승을 이뤄내며 명실상부 '강팀'이 되었던 강릉고등학교. ⓒ 박장식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가져가니만큼 부담은 없을까. 최재호 감독은 "도리어 복잡하다. 우승을 한 번 하는 것은 좋은데 다음에 또 우승을 해야 하니 말이다"라며 "이제는 당당히 우승권에 있는 팀인 데다, 전국대회를 안 할 수도 없으니 챔피언 자리를 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겹경사도 있었다. 지난해까지 강릉고의 에이스 노릇을 했던 김진욱 선수가 지난 도쿄 올림픽 대표팀에 승선했던 것. 최재호 감독은 "요즘도 진욱이한테 안부 연락이 온다"면서 "성인이 되니까 머리가 커서 그런지 고교 때처럼 조언을 강하게 하면 삐지곤 한다"며 웃었다. 

벌써 5년이 된 타지 생활이 힘들지는 않을까. 최재호 감독은 "오히려 집에도 오래간만에 가야 좋다"며 "아내가 몸이 아프지만, 아들과 딸들이 잘하고 있어서 내가 이렇게 야구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이어 "대신 서울에서 대회할 때에는 가족들과 최대한 함께 하려 애쓴다"며 가족에 대한 사랑도 드러냈다. 

"강릉, 이참에 '야구의 도시'로 거듭났으면"
  
 강릉고등학교 웨이트 트레이닝장에서 야구부 선수들이 몸을 만들고 있다.

강릉고등학교 웨이트 트레이닝장에서 야구부 선수들이 몸을 만들고 있다. ⓒ 박장식

 
최재호 감독의 가장 큰 꿈은 강릉이 야구의 도시로 거듭나는 것이다. 최재호 감독은 강릉고등학교는 물론, 강릉영동대라는 대학야구 최강 팀이 한 곳에 있으니 야구의 도시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후배들을 위해 실업 야구팀도 부활하면 좋겠다"는 소망도 드러냈다.  

"강릉이 강원 야구의 중심이 되었으면 해요. 사실 원래 강릉은 '축구의 도시'였잖아요. 그런데 강릉고의 선전이 2019년부터 3년이나 이어지니 지역 분들이 야구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시는 것 같아요."

정말 그랬다. 강릉고는 프로축구 팀인 강원FC가 있고, '농일전'이라 불리는 강릉제일고와 강릉중앙고의 정기 축구 대회가 열리는 도시다. 그러던 강릉이 최근 강릉고 야구부의 선전으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강릉 곳곳에 야구부를 응원하는 현수막이 붙고, 시 주최의 응원전도 펼쳐진다. 

최 감독은 "전국대회 결승전을 마치고 강릉에 돌아오면 시내 곳곳에 플래카드가 붙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시민분들께 고맙다"면서 "물론 여기에 번듯한 야구장이 없는 것은 흠이다. 강릉에서 야구가 정말 잘 활성화될 수 있게 야구장 하나 지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제 최 감독의 목표는 대통령배를 향해 있다. 최재호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대통령배 전년도 디펜딩 챔피언이다. 호락호락 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라면서 "특히 지명이 남지 않은 3학년 선수들이 마지막 기회를 잘 만들었으면 좋겠다, 황금사자기 우승은 잊고 이제 명가 이미지를 지켜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최재호 감독은 배웅을 하러 가기 전 잠시 들를 곳이 있다며 웨이트장을 안내했다. 선수들이 트레이닝을 위해 찾는 이곳에는 앞서 훈련을 이어가던 선수들이 삼삼오오 모여 체력을 키우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최 감독은 "동문들의 지원 덕분에 만들 수 있었던 곳이 여기와 실내 연습장"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선수들이 훈련을 이어가는 속에서 최 감독은 "재미가 없으면 여기서 야구를 못 했을 것"이라면서 "여기서 좋은 성적을 낼 때마다 감회가 새롭고 보람도 있다, 그리고 장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많이 남아서 재밌다"며 웃었다. 

선수들과 감독, 그리고 코칭스태프의 모습이 있기에 풀 수 있었던 '한'이었다. 현재에 안주하는 대신 현재 진행되는 대통령배, 그리고 봉황대기에서도 강릉고의 신화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아직도 꿈을 갖고 있는 강릉고 구성원들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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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고등학교 고교야구 야구 학생 스포츠 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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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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