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이 올림픽 디펜딩챔피언의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오게 됐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야구대표팀은 한국은 7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도미니카공화국에 6대 10으로 완패했다.

2008 베이징 대회 이후 13년만에 야구가 정식종목으로 부활한 도쿄대회에서 대회 2연패에 도전했던 한국은 일본과의 준결승 녹아웃 스테이지부터 내리 3연패를 당하며 대회 전적 3승 4패, 참가 6개국중 4위로 '노메달'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다. 반면 베이징 대회에서 한국에 패배하며 노메달에 그쳤던 라이벌 일본은 개최국의 홈어드밴티지를 등에 업고 결승전에서 미국을 격파하며 전승으로 올림픽 첫 금메달을 달성하며, 13년만에 완전히 뒤바뀐 양국의 운명이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연이은 논란들  

벌써 이번 대회의 부진에 대하여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일단 가장 중요한 본질은 지금 이 정도가 바로 한국야구의 진짜 실력이자 위상이었다는 현실이다. 한국야구는 디펜딩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안고 이번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목표로 하기는 했지만, 냉정히 말해 우승을 노릴만한 전력과는 거리가 있었다.

6개국만이 본선에 참가했던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멕시코를 제외한 모든 팀들과 한 번 이상 상대했지만 이스라엘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보다 전력이 떨어진다고 할만한 국가는 없었다. 홈팀 일본과 종주국 미국은 물론이고 도미니카 공화국 역시 전직 메이저리거들이 대거 포진한 만만치않은 팀이었다. 한국은 비록 올림픽에서 메이저리거들을 비롯한 최상의 전력을 갖추지못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차피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였고, 같은 조건이었다면 선수층에서 전력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2008 베이징 대회는 여러모로 기적같은 우승이었다. 금메달도 금메달이지만 그것도 전승 우승을 차지한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당시 한국야구가 물론 잘하기도 했지만 엄밀히 말해 실력 외적인 요소도 상당히 작용했다는 것을 부인할수 없다. 한국은 미국전 끝내기승, 중국전 승부치기승, 일본전 역전승, 쿠바전 결승 병살플레이 등 숱한 위기를 극복하고 대부분의 경기에서 1~2점차 신승을 거뒀다. 당시 김경문 감독의 모험적인 용병술이 국제무대에서는 유독 신기할만큼 잘 맞아떨어졌고, 선수들은 끈끈한 팀워크와 동기부여(병역혜택 등)를 바탕으로 기대 이상의 활약을 선보였다.

훗날에서야 증명된 이야기지만 당시 야구대표팀은 한국야구사에 남을 역대급 황금세대였다. 당시는 KBO리그의 중흥기였고 김광현-류현진-이대호-김현수-오승환 등 훗날 해외무대까지 진출하며 레전드급 선수들로 성장한 80년대생 선수들이 동시대에 대거 등장하는 행운이 따랐다, 이승엽-정대현같이 고비에서 강한 해결사들도 베테랑으로 건재했다. 당시 대표팀에 참가했던 대부분의 선수들이 각 팀을 대표하는 에이스이자 KBO리그에서 한 획을 그은 선수들로 자리잡았다. 6~7이닝을 책임질 에이스, 찬스에 강한 4번타자, 한 점을 지킬 수 있는 불펜과 수비력 등 강팀의 공식을 모두 갖추고 있는 팀이었다.

2021년의 야구대표팀은 13년전보다 훨씬 약해졌다. 대표팀의 전력은 곧 KBO리그의 현 주소와 일치한다. 한국야구는 류현진-김광현-양현종-오승환의 다음 세대를 이어갈만한 특급 에이스와 마무리를 발굴하지 못했다.

타선도 타고투저 흐름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과대평가되었지만 이승엽이나 이대호만큼 국제대회와 찬스에 강한 거포형 타자의 맥이 끊겼다. 2021년 야구대표팀에서 가장 꾸준하게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가 베이징멤버였던 주장 김현수(30타수 12안타 타율 .400 3홈런 7타점)였다는 것은 한국야구의 세대교체 문제를 돌아보게 만든다. 자국리그에서 화려한 인기와 스타대우에 길들여진 나약한 선수들은 과거와 같이 지더라도 악착같은 근성과 끈끈한 팀워크도 보여주지 못했다.

대회 준비과정과 리더십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한국야구는 2008 베이징대회의 영광재현을 기대하며 김경문 감독에게 다시 대표팀 지휘봉을 맡겼다. 하지만 김경문호 2기는 감독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부각됐다. 선수의 객관적 활약상보다 감독의 주관적 선호도와 감에 의존하는 용병술은 베이징에서는 이승엽의 부활같은 '믿음의 야구'로 성공했지만, 도쿄에서는 '고집과 독선의 야구'로 변질됐다.

야구대표팀은 이번 올림픽에서 해외파가 빠졌음을 감안해도 최상의 전력을 구축하지 못했고, 경기 운영 플랜에서도 실패했다. 김경문 감독은 최정-정은원-강재민-박효준같이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선수들을 끝내 외면했고 오승환-김진욱-오지환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선수들을 선발하여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김 감독의 이런 마이웨이는 올림픽 대회에서도 계속되며 부진한 양의지와 오승환-강백호-이정후 등을 끝까지 고집했고, 선발자원인 원태인-최원준 등의 불펜 기용도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전문 구원투수를 3명밖에 뽑지않은 탓에 거의 매경기 마운드에 올라야했던 조상우는 혹사 논란에 시달리며 갈수록 구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막판 3연패 모두 중반까지 대등한 승부를 이어가다가 6~8회 불펜싸움에서 무너졌고, 타선은 거포와 클러치히터의 부재로 빈공에 허덕였다.

그리고 이런 팀운영의 문제점은 김경문 감독이 KBO리그에서 프로 감독을 맡을때도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되었던 약점들이었다. 대회 전까지 공공연하게 금메달이 목표라고 밝혔던 김 감독이 미국전 패배로 결승진출이 좌절되자마자 "금메달 못 딴 게 아쉽지않다"는 발언을 했던 것도 의도와 달리 오히려 대표팀을 바라보는 여론만 더 악화시키는 자충수로 이어졌다.

리더십의 문제인가

공교롭게도 김경문 감독의 전임자인 김인식, 선동열 감독도 대표팀에서 시작은 화려했지만 마무리가 좋지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대표팀 전임 감독을 맡았던 시점에 프로에서는 냉정히 말해 사실상 전성기가 지난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과거의 화려한 명성과 경험, 당장 맡고있는 팀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대표팀 감독으로 추대됐지만 정작 이후에도 현대 야구의 흐름이나 달라진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하고 '옛날 리더십'을 반복하다가 무너졌다는게 데자뷰처럼 일치한다.

세 감독 모두 국제대회를 앞두고 선수선발에서부터 각종 논란이 끊이지않았고, 그 대처과정에서도 부적절한 언행으로 많은 구설수를 초래했으며 국제대회에서는 현장을 오래 떠나있었던 탓인지 경기감각의 부재로 투수교체 타이밍이나 경기운영에서 수많은 판단미스를 저지르며 자멸하는 패턴도 흡사했다. 대표팀 감독직이 어쩌다가 한국야구의 레전드 지도자들의 최후를 상징하는 무덤이 된 모양새가 씁쓸하다.

또한 대표팀을 둘러싼 한국야구의 분위기와 환경도 13년전과는 판이했다. 베이징 대회 당시 한국야구는 비록 언더독에 가까운 도전자의 입장이었지만, KBO리그의 뜨거운 인기를 바탕으로 국민들의 기대감과 성원이 뒷받침되어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앞두고 KBO리그에서 벌어진 프로선수들의 방역수칙 위반과 술파티 논란, 초유의 리그 중단 사태 등으로 야구계의 도덕적 해이를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은 어느때보다 싸늘한 분위기였다. 경기에서 부진하거나 실수라도 나오면 팬들의 비판은 더욱 매서워졌다. 선수들은 가뜩이나 부담이 크고 위축된 분위기에서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도쿄올림픽은 한국야구사에 있어서 분명 실패한 대회이자 처참한 흑역사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대표팀이나 감독만의 실패가 아니라, 오랫동안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한국야구계 전체의 실패였다. 그리고 때로는 뼈아픈 실패가 완전한 리셋을 위한 동기부여와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실패가 단지 실패로 그치지 않으려면 그저 주눅들고 낙담해있는 것보다 실패에서 교훈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영화 <배트맨 비긴즈>에서 낙담한 브루스 웨인에게 부친과 집사 알프레도는 "우리는 왜 추락할까요? 다시 올라오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지(why do we fall? because we can learn to pick ourselves up)"이라고 위로한다.

2008 베이징올림픽 전승 우승의 신화가 이뤄지기 불과 2년전, 한국야구는 2006년 아시안게임에서 대만과 일본 실업선수들 위주로 꾸려진 대표팀에 연패하며 동메달에 그치는 '도하 참사'를 겪은바 있다. 그 당시에도 대표선수들은 '무능하다. 투지 없다. 배가 불렀다'같은 비난을 들어야했다. 하지만 당시 대표선수들 중 상당 수가 바로 2년뒤 베이징 대회에서 우승멤버로 활약했다는 사실은 많이 언급되지 않는다.

이번 올림픽은 실패로 끝났지만 대표선수들은 앞으로도 한국야구를 계속해서 이끌어나가야할 존재들이다. 김현수-조상우처럼 끝까지 베테랑의 품격을 보여준 선수도 있었고, 이의리, 고영표, 김혜성 등 큰 무대에서 주눅들지않고 꿋꿋이 제몫을 다한 젊은 선수들도 많았다. 노메달이라는 아쉬운 결과에 가려졌지만 모든 선수들의 헌신과 투지까지 덩달아 폄하당해서는 안된다. 올림픽에서 졌다고 죄인도 아니고, 모든 프로선수들이 다 스타의식과 도덕적 해이에 찌들어있는 것처럼 매도할 필요는 없다.

라이벌 일본도 베이징 노메달의 실패를 거울삼아 절치부심한 끝에 13년만에 한을 풀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한다. 차라리 이번 기회를 통하여 한국야구가 초심을 되찾고 다시 시작할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면, 이번 올림픽에서의 실패도 그저 헛된 시간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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