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5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권인숙 의원, 정의당 장혜영 의원 등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5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권인숙 의원, 정의당 장혜영 의원 등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언론도 지난 14년간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입법 시도가 번번이 무산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부 보수 기독교계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허위·왜곡된 주장을 퍼트렸지만 대다수 언론은 이를 검증하기는커녕 방관하거나 오히려 확산시켰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 기간(5월 24일~6월 14일)을 전후한 최근 한 달 간 주요 언론의 차별금지법(평등법) 관련 보도를 분석한 결과, 일부 보수 기독교계 언론이 차별금지법 비판과 허위·왜곡 정보 확산을 주도했고, 보수 언론과 방송 등 주류 언론은 이를 방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계와 시민단체에선 보수 언론의 이같은 방관적 보도 태도 역시 노골적이진 않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을 방해하려는 일종의 우회 전술로 보는 시각도 있다.

기독교계 언론이 '차별금지법 반대' 주도

<오마이뉴스>는 지난 5월 22일부터 6월 22일까지 뉴스 스크랩 서비스 '스크랩마스터'에 등록된 6개 일간지(조선, 동아, 중앙, 한겨레, 경향, 한국)와 2개 경제지(매일경제, 한국경제), 지상파방송 3사(KBS MBC SBS)·종합편성채널 4개·보도전문채널 2개 등 17개 매체와 기독교계 신문·방송 15개 매체(국민일보, 기독일보, 기독신문, 크리스천투데이, CTS 등) 등 32개 매체 보도를 분석했다.

전체 586건 가운데 기독교계 매체 보도량은 259건(44.2%)으로 절반에 못 미쳤지만, <기독일보>(59건)와 <크리스천투데이>(44건) 두 매체가 상위 1, 2위를 차지했다. 대부분 성적 지향을 문제 삼는 보도였다.
 
차별금지법(평등법) 관련 언론 보도량 비교. 2021년 5월 22일부터 6월 22일까지 뉴스 스크랩 서비스 ‘스크랩마스터’에 등록된 6개 일간지(조선, 동아, 중앙, 한겨레, 경향, 한국)와 2개 경제지(매일경제, 한국경제), 지상파방송 3사(KBS MBC SBS)·종합편성채널 4개·보도전문채널 2개 등 17개 매체와 기독교계 신문-방송 15개 매체(국민일보, 기독일보, 기독신문, 크리스천투데이, CTS 등) 등 32개 매체 보도량 비교.
 차별금지법(평등법) 관련 언론 보도량 비교. 2021년 5월 22일부터 6월 22일까지 뉴스 스크랩 서비스 ‘스크랩마스터’에 등록된 6개 일간지(조선, 동아, 중앙, 한겨레, 경향, 한국)와 2개 경제지(매일경제, 한국경제), 지상파방송 3사(KBS MBC SBS)·종합편성채널 4개·보도전문채널 2개 등 17개 매체와 기독교계 신문-방송 15개 매체(국민일보, 기독일보, 기독신문, 크리스천투데이, CTS 등) 등 32개 매체 보도량 비교.
ⓒ 김시연

관련사진보기

 
기독교 매체들은 '평등법 제정 반대' 청원 10만 명 달성 등 각종 기독교계의 반대 여론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설이나 칼럼 등을 통해 민주당의 평등법 발의를 비판하고 성소수자를 윤리적으로 비난했다.

<기독일보>는 6월 4일 '[사설] '젠더 이데올로기' 양의 탈을 쓴 늑대'에서 "차별금지법과 평등법이 제정되면 다음 수순은 동성애 동성혼의 합법화로 간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의 근간인 윤리와 가치관이 무너지고, 사회의 기초인 가정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게 불 보듯 뻔하다"고 주장했다. 6월 12일에도 "차별금지법, 동성애 정상화 강제하는 법" 제목의 기사에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목회자의 유튜브 강연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중계했다.

또한 기독교 매체들은 외부 기고자 칼럼을 적극 이용했다. <크리스천투데이>는 6월 21일 '[이명진 칼럼] 젠더권력의 꿀을 빨며 독(毒)을 주입하려는 자들'을, <국민일보>는 5월 25일 '[칼럼] 동성애자의 낙원을 만들려고 하는 차별금지법'('동성애는 유전이 아니다' 시리즈)과 '자연법칙을 거부하고 욕망만 채우려는 인간, 경계선을 넘고 있다'('차별금지법·평등법 실체를 말한다')와 같은 연속 칼럼을 내보냈다.

경향·JTBC는 반대 주장 팩트체크... 한경은 '기업 옥죄기' 논리

<경향신문>(43건), <한겨레신문>(33건) 등 진보 언론 보도량도 보수 언론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았는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사설이나 칼럼, 교회 발 왜곡 정보를 팩트체크한 기사도 있었다.

<한겨레>는 6월 15일 사설 ''10만 입법 청원' 차별금지법, 국회는 응답해야'에 이어 17일에도 '이준석 "차별금지 입법 시기상조", 실망스럽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또 6월 15일에는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달라졌을 세 가지 사건' 기획 보도로 변희수 전 하사 강제전역 사건,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사건, 스쿨미투 사건 등을 다뤘다.

<경향>은 '[시선] 두려움 없이 차별금지법을!'(오수경), '[박래군의 인권과 삶] 봉하마을에서 차별 없는 세상을 생각하다',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모두의 존엄을 위한 차별금지법' 등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외부 기고 칼럼을 꾸준히 실었다. 6월 15일엔 '입법청원 10만명 넘어선 차별금지법, 더 늦출 이유 없다'는 제목으로 사설도 올렸다. 6월 21일엔 '차별금지법 제정되면 '목사 동성애 반대 설교' 형사처벌?'이라는 팩트체크성 기사도 내보냈다.

JTBC도 6월 8일 '[팩트체크] 없던 성소수자 더 생긴다?…'차별금지법' 가짜뉴스'와 6월 22일 '[팩트체크] 차별금지법, 국민 77%가 반대?…조사방식 보니' 등 2차례에 걸쳐 차별금지법 반대쪽 주장을 검증했다.

반면 보수 언론이나 지상파, 종편, 보도전문채널 등 주류 언론은 평등법에 대해 직접적인 의견을 내기보다는 법안 발의 관련 여야 입장이나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등 유력 정치인 발언 등 정치권 움직임, 찬성과 반대 단체 입장을 단순 전달하는 데 치중했다.

다만 <한국경제>(39건)는 대기업 이해가 걸린 고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차별금지법을 적극 비판하기도 했다. <한경>은 6월 22일자 신문 1면에 '차별금지법, 또 다른 '기업 옥죄기' 되나'를 비롯해 '대졸·박사 연봉 차이두면 불법?…기업 현장 '대혼란' 온다', '가해자로 지목되면…차별 안했다고 입증 못할 땐 손해배상 책임' 등 주로 기업 관점에서 평등법 문제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6월 23일엔 '너무 나간 차별금지법, 차별과 차이도 구분 못하나'라는 제목의 사설도 내보냈다.
 
<한국경제신문>은 6월 22일자 신문 1면에 ‘차별금지법, 또 다른 '기업 옥죄기' 되나’를 비롯해 차별금지법 비판 보도를 내보냈다.
 <한국경제신문>은 6월 22일자 신문 1면에 ‘차별금지법, 또 다른 "기업 옥죄기" 되나’를 비롯해 차별금지법 비판 보도를 내보냈다.
ⓒ 한국경제신문

관련사진보기

 
보수 언론, 노골적 차별 보도 대신 '반대단체 광고'로 우회

일부 보수 기독교계 언론의 '사실 왜곡', 진보 언론의 적극적인 '팩트체크', 보수 언론의 '수수방관'이라는 엇갈린 보도 양상은 연구 논문이나 시민단체 모니터 결과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김종우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은 지난 3월 비판사회학회 학술지 <경제와 사회>에 실린 논문 '한국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담론 지형과 이중화된 인권'에서 차별금지법 관련 보도에 나타난 언론의 정파성을 분석했다.

지난 2000년 1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20년간 11개 주요 일간지에 실린 차별금지법 관련 보도 5372건을 주제별로 분석했더니, <한겨레> <경향> 등 진보 성향 언론은 차별금지법 관련 가짜뉴스나 혐오표현 문제를 다루는 보도가 많았던 반면, 기독교계 매체인 <국민일보>와 보수 성향 언론은 개신교 우파의 제정 반대 주장과 성소수자 혐오 표현을 담은 보도가 많았다.

김종우 연구원은 23일 <오마이뉴스> 서면 인터뷰에서 "개신교 우파는 성적 지향에 대한 개방적 태도가 종교적 가치의 근본을 훼손하는 가치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그 결과 차별금지법과 같은 정책을 정치적 타협과 공론의 문제가 아닌 절대적 가치와 신념의 문제로 접근하는 양상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그는 "개신교 우파 계열 언론사를 제외하면 차별금지법에 대해 '직접적', '명시적'인 적대 담론을 형성하거나 노골적인 방식으로 차별적 보도를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면서도 "오히려 대다수 보수 언론에서는 '우회하기'나 '외연 확장하기' 같은 우회적인 방식으로 담론을 형성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회하기'란 차별금지법 관련 이슈를 뉴스 기사로 다루는 대신 신문지면 광고나 외부 기고자 지면 등을 활용하는 방식이고, '외연 확장하기'는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쟁점이 정치적 보수주의와 친화적인 이슈임을 제기하는 방식이다.
 
2020년 7월 3일자 조선일보를 비롯한 주요 신문 지면에 실린 차별금지법 반대 단체 전면 광고
 2020년 7월 3일자 조선일보를 비롯한 주요 신문 지면에 실린 차별금지법 반대 단체 전면 광고
ⓒ 조선일보

관련사진보기

 
2020년 5월 28일자 조선일보를 비롯한 주요 신문 지면에 실린 차별금지법 반대 단체의 전면 광고
 2020년 5월 28일자 조선일보를 비롯한 주요 신문 지면에 실린 차별금지법 반대 단체의 전면 광고
ⓒ 조선일보

관련사진보기

 
김 연구원은 "개신교 우파 보도를 보면 성적 지향은 물론 무슬림, 난민, 젠더, 반공주의 등 정치적 보수주의 관련 쟁점 전반을 함께 다루는 경향이 나타난다"면서 "대다수 보수 언론은 성적 지향보다는 이런 정치적 보수주의와 친화적인 이슈를 통해 차별금지법 문제를 성적 지향이 아닌 다른 각도에서 비판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같은 방식이 보수 언론 관점에서는 "대중적으로 더 설득력 있는 접근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침묵 속에 확산되는  허위·왜곡정보

이처럼 보수 언론이 개신교 우파의 '노골적 차별'에 눈 감는 사이, 차별금지법을 왜곡하는 허위정보는 더 힘을 얻고 있다.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에서 지난해 12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평등법 관련 미디어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면, 그동안 차별금지법 관련 왜곡 정보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보수 언론을 통해 확산됐음을 알 수 있다. 뭉클은 평등권 관련 언론 보도를 12개 분야로 나눠 팩트체크와 프레임체크를 진행하고, 언론 보도와 책, SNS 등에 실린 평등권 관련 해외 사례 40여 건도 일일이 검증했다.

평등법이 제정되면 동성애를 비판하는 설교를 해도 처벌된다든가, 소아성애와 수간이 합법화된다든가 하는 거짓 왜곡 정보들도 언론 보도를 통해 확대 재생산됐다.

'평등법이 제정되면 군인 간 동성 성행위를 허용하게 된다'거나, '미국의 성중립 화장실 설치 이후, 트렌스젠더에 의한 성범죄가 발생했다'는 외국 사례도 모두 거짓 정보였다. '미국 보스턴에는 동성애 비판했다고 30년간 일한 병원에서 해고된 의사가 있다'거나 '미국 텍사스주에서는 동성 결혼 반대 발언으로 인해 방송에서 해고된 스포츠 방송 해설자가 있다'는 언론 보도도 차별금지법과 관련 없는 내용임에도 일부 사실과 거짓을 섞는 방식으로 교묘히 왜곡한 사례다.

김언경 뭉클 소장은 23일 <오마이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일부 보수 기독교계 언론을 제외하면 보수 성향 매체들도 노골적으로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보도는 하지 않는다"면서도 "기독교 매체에서 시작된 허위조작 정보가 블로그나 SNS를 통해 확산되는데도, 기존 언론에서 제대로 팩트체크하지 않고 무관심한 것 자체가 언론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방해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김 소장은 <한경>의 '기업 옥죄기' 보도에 주목했다. 그는 "지난해 장혜영 정의당 의원 법안 발의 때는 보수 언론이 가만있다가 최근 민주당이 평등법을 발의하고 국회에서 본격 논의되려고 하니 반대 여론전을 시작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면서 "'대졸·박사 연봉 차이두면 불법?'이라는 보도처럼, 작은 기득권이라도 있는 사람들의 심리를 건드려 차별금지법 제정 주장에 균열을 내려는 보도들이 앞으로 많이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금부터 언론도 수박 겉핥기식 보도만 할 게 아니라 교회에서 걱정하는 문제가 사실인지 짚어보고, 국민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게 만드는 공론장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종우 연구원도 "신문, 방송 등 전통적 미디어의 의제 설정 기능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어, 언론의 공적 책무를 요청할 필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면서 "언론의 정파성은 현대 대중매체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의제 설정과 보도 과정에서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더 민감하게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태그:#차별금지법, #평등법, #보수언론
댓글1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