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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차별금지법인가>를 쓴 이주민 미국 변호사
 <왜 차별금지법인가>를 쓴 이주민 미국 변호사
ⓒ 이주민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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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국민동의청원이 지난 15일 10만 명을 넘으면서 관련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자동 회부됐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 법안에 이어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당 의원 20여 명도 지난 16일 '평등에 관한 법률안(평등법)'을 발의했다. (관련기사 :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국민동의청원 10만 명 달성 http://omn.kr/1twzv)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지만, 낙관하기는 어렵다. 지난 2007년과 2013년, 2017년 세 차례 시도 모두 일부 보수 기독교계의 조직적 반발과 '사회적 합의'란 정치적 명분으로 좌절됐다.

때마침 미국 한 로펌에서 활동하는 미국 변호사가 쓴 책 한 권이 이 첨예한 '전선' 한복판에 떨어졌다. <왜 차별금지법인가>(스리체어스)라는 책에서 반대론자들의 잘못된 주장과 그에 따른 오해들을 조목조목 지적한 이주민 변호사가 그 주인공이다.

이렇다 할 국내 활동도 없었고, 인권변호사도 아닌 '평범한' 30대 변호사가 고국의 논쟁에 뛰어든 이유가 궁금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7일 오전 11시(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이 변호사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미국 변호사가 '차별금지법 논쟁'에 뛰어든 이유
  
- <왜 차별금지법인가>는 100쪽 남짓 짧은 분량이지만,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주요 쟁점들을 거의 빠짐없이 담고 있다. 어떤 계기로 이 책을 쓰게 됐나. 입법청원 달성도 예상했나.

"지금 같은 상황은 전혀 예상 못했다. 2020년 출판 제안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내가 남성이고 이성애자인 데다 차별 피해자들을 돕는 운동가도 아니어서 이런 책을 쓰기엔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도 차별금지법에 대한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보다는, 차별에 대한 문제 의식은 있지만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는 분들, 심지어 반대하는 분들이라도 법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할 수 있게 하려고 썼다. 나도 차별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 혜택 받은 사람으로서 한때는 차별금지법의 중요성을 몰랐기 때문에 이런 논조의 책을 쓰기에 더 좋은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 미국은 이미 1964년에 우리 차별금지법과 비슷한 민권법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조지 플로이드 사건 같은 흑인 인종 차별이나 아시아계 혐오 같은 차별 행위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답답한 것도 이런 부분 때문이다. 법제화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민권법도 1964년 만들어져 미국 흑인들의 학교, 식당, 버스 이용이나 투표권 등 제도적인 부분은 많이 해소됐지만, 법을 적용하는 건 결국 인간이다.

검사든 판사든 변호사든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편견이나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민권법이 없었던 지난 200여 년 동안 흑인은 열등한 사람으로 교육받고 자라온 사람들이 민권법이 생겼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 모두 법을 배우고 적용하고 (차별행위의) 문제점을 깨닫고 공부하면서 인식이 조금씩 바뀌는 것이다.

법의 선언적 효과는 인식이 바뀌는 시작일 뿐이다. 차별금지법이 기적적으로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성소수자나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그다음 날에도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차별금지법을 적용하고, 국민이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차별은 잘못됐구나', '(혐오차별 행위를) 조심해야겠다' 배우면서 편견이 개선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별금지법 찬성하는 적극적인 다수 조직해야"

- 2020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 국민인식조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찬성 여론이 88.5%로 거의 90%에 달했다. 보수 기독교계 반대가 심했다고는 해도, 이렇게 찬성 여론이 높은데도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이유가 뭐라고 보나.

"적극적인 소수와 소극적인 다수가 맞붙으면 정치에서는 결국 적극적인 소수가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인 소수가 입법 과정에 영향을 많이 미쳐 결국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킨다.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건 사실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차별은 나쁜 일이라고 공감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적극성이 없을 뿐이다. 이 분들을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는 정치 세력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이 책을 쓴 목표다." 

- '극단적 반대론자보다 다수인 온건주의자들의 침묵이 더 큰 장애물'이라는 마틴 루서 킹 목사 말을 인용한 대목이 인상 깊었다. 보수 기독교계 반발이 심한 지금 한국 상황도 비슷해 보인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소수의 인종 혐오적인 백인보다 다수의 온건하고 방관하는 백인들 때문에 더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인류 역사상 어떤 비극도 다수의 방관 없이 이루어진 사례는 거의 없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선의를 가진 동물이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에 대해 대다수의 적극적 동의를 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소수의 적극적인 차별이나 혐오 감정이 다수의 방관과 합쳐졌을 때 사회 전체를 옭아매는 제도적 차별이 나올 수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관계자들이 지난 5월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차별금지법 제정하자! 10만행동 국민동의청원 선포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관계자들이 지난 5월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차별금지법 제정하자! 10만행동 국민동의청원 선포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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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금지법 국민동의청원 10만 명 달성을 어떻게 평가하나. 드디어 다수의 목소리가 모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나.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세력 활성화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국회 입법청원 동의가 간단한 과정이 아니다. 본인 인증도 해야 해서 나처럼 외국에 거주하는 사람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굳이 그런 귀찮은 과정을 거쳐서까지 차별금지법을 요구할 만큼 적극적인 관심을 가진 사람이 최소 10만 명은 된다는 얘기다.

앞으로 법안 통과 여부를 가르는 건 그 10만 명 가운데, 한 단계 더 나아가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인지, 의원실에 전화하는 등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인지, 차별금지법 찬성 여부에 따라 선거에서 투표하는 정당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인지 몇 명인지에 달렸다.

이번에 잘 됐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민주당에서 지지하는 의원이 더 나왔어야 했다. 아직 당내에서는 소수다. 거대 양당 체제에서 성향상 이 문제에 좀 더 호의적이어야 할 거대 정당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법안 통과는) 어렵다.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이번에 통과되지 않더라도 굉장히 좋은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5가지 오해, 팩트체크

① 평등주의는 진보주의자 전유물? 

- 이준석 대표 당선으로 국민의힘도 차별금지법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기대했는데, 17일 인터뷰에서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앞으로 국민의힘의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준석 대표와 함께 학교(하버드대)에 다녔다. 내가 2년 후배인데, 정치적 의견은 다른 부분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까운 사이다. 이준석 대표와 보수 정치권에 계신 분들도 차별금지법을 찬성하지 못할 이유는 한 가지도 없다고 생각한다.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는 정부의 권한과 역할을 철저히 제한하고 개인이 가진 불가침의 기본권을 법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수주의가 지향하는 '작은 정부' 사상이다. 차별금지법은 단지 이런 불가침의 기본권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사람이나 집단이 존재하면, 그들이 약한 고리가 되어 모두의 기본권이 무너지고, 결국 보수주의가 가장 우려하는 '공권력의 폭주'로 이어질 수 있다.

차별금지법은 또 이준석 대표가 늘 강조하는 '공정한 경쟁'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비합리적인 차별로 인해 우리 사회의 소중한 인적 자원들이 경쟁에 참여조차 하지 못한다면 그 경쟁이 어떻게 공정할 수 있는가. 이준석 대표도 언젠가는 전향적인 입장을 가져 주리라 믿는다.

이번에 (이 대표가)'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라고 얘기하던데, 찬성·반대는 그렇다 치고 새 정치를 하시는 분이 기성세대가 사용하던 것과 똑같은 언어와 잘못된 논리로 반대하는 건 조금 아쉬웠다." (관련 기사: 이준석 "차별금지법 제정, 서두를 필요 없다" http://omn.kr/1tz3i)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1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4기 여성정치아카데미 입학식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1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4기 여성정치아카데미 입학식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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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차별 해소는 시간 문제? 

- 책에서 평등주의와 차별금지법에 대한 오해를 짚었는데, 방금 얘기한 것처럼 '평등주의는 진보주의자의 전유물'이라는 주장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더불어 '차별 문제는 가만 놔둬도 시대가 변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주장도 있다.

"법 제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법이 인식을 끌고 간다. 차별을 금지한다고 법에 명시하지 않으면, 차별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계속 쌓여간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차별적인 인식들이 세대를 넘어 재생산되고, 전 세대보다 더 심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요즘 젠더 갈등도 이런 렌즈로 볼 수 있다. 30~40대 남성보다 20대 남성이 페미니즘에 더 민감한 것처럼, (차별행위에 대한 인식 개선이) 직선으로 가는 게 아니라 얼마든지 역행할 수 있다. 인식의 역행을 방지하려면 법제정을 통해 법이 인식을 끌고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③ 설교만 해도 형사 처벌? 

- 차별금지법이 '혐오 표현'을 처벌하기 때문에 개인의 신앙이나 양심,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그 부분은 오해가 많다. 장혜영 의원 법안을 보면 차별금지법으로 형사 처벌이 가능한 경우는 딱 한 가지다. 직장에서 차별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관리자가 보복 조치를 했을 때만 형사 처벌할 수 있다. 목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기독교 교리를 설명해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비약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차별금지법이 포괄적이고 생활의 많은 부분을 규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그런 의견을 제기할 때는 법안을 먼저 읽어보고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반대하는 분들도 법안을 정확하게 읽고 문제를 제기하면 법이 개선되고 부작용이 최소화되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법안에 없는 내용을 가지고 안 된다고 하면 선의의 토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④ 차별금지법이 역차별 부른다? 

- 차별금지법을 만들면 역차별이 생긴다는 주장도 있다. 이준석 대표도 '여성할당제' 때문에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반론적으로 말하면 차별금지법은 포괄적이어서 모든 차별을 규제한다. 역차별도 차별금지법으로 금지되는 차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차별금지법이 할당제를 강제하는 법도 아니다. 다만 오랜 시간 사회적 차별로 특정 집단이 받은 피해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라면 할당제도 합법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고 돼 있다."

실제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 제3조 2항2호에는 "현존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하여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와 이를 내용으로 하는 법령의 제정·개정 및 정책의 수립 집행"을 금지되는 차별 범위에서 제외할 수 있게 했다."

⑤ 종교 활동은 예외 대상? 

- 이상민 의원은 애초 평등법안에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종교 전도 활동'에 대한 예외 조항을 포함하려다 논란이 되자, 최근 발의한 법안에선 결국 삭제했다. 종교 예외 조항의 문제점은 뭐라고 보나.

"저도 목회의 자유나 신앙의 자유는 분명히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별금지법은 그것을 규제하지 않는다. 결국 '종교 예외 주장'이 들어가면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기업이나 사립학교에서 종교를 이유로 한 차별적 채용이나 고용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제 개인적 의견은 아무리 종교 단체가 운영하는 기업이나 학교라고 해도 결국 세속적인 국가의 힘을 빌려서 만든 단체여서, 교리가 관련 없는 운영 부분에서는 국가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아무리 종교 기업이라도 탈세하면 안 된다. 소득신고와 함께 노동자들에게 정확한 임금을 제대로 지불해야 하듯이 차별적인 고용도 해선 안 된다."

이주민 변호사는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한국에서 공군 통역 장교로 군 복무를 마쳤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거쳐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로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 집단 감염 사건이 발생한 캘리포니아주 연방 교도소를 상대로 무료 변론 활동을 펼쳐 수용자 인권 개선 성과를 거뒀고, 로펌 동료들과 함께 미국 시민단체인 ACLU(미국민권연합)에서 주는 '인도주의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왜 차별금지법인가> 집필에 대해 "차별금지법이 전문가나 인권운동가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마치 부동산 문제나 북한 문제처럼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대중적인 이슈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쓴 책"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주민 변호사가 쓴 '왜 차별금지법인가' 책 표지
 이주민 변호사가 쓴 "왜 차별금지법인가" 책 표지
ⓒ 스리체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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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차별금지법인가 - 평등은 우리 모두에게 이롭다

이주민 (지은이), 스리체어스(2021)


태그:#차별금지법, #이주민변호사, #평등법, #이준석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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