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쌈 - 운명을 훔치다>라는 MBN 사극의 제목은 보쌈 사건으로 인한 두 주인공의 운명 변화를 떠올리게 한다. 권력자 이이첨(이재용 분)의 며느리인 수경 옹주(권유리 분)와 이이첨 때문에 집안이 몰락한 보쌈군 바우(정일우 분)는 '바우의 수경 보쌈'이라는 사건을 통해 급격한 운명의 변화를 겪는다. 수경은 옹주 신분을 숨긴 채 도망자처럼 살게 된 반면, 가문이 역적으로 몰려 보쌈군 생활까지 했던 바우는 신분과 재산을 도로 찾게 됐다.
 
애초에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이 드라마는 또 다른 면에서도 무언가를 훔치고 있다. 광해군과 북인당(대북당)의 운명적 관계를 훔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광해군과 집권여당의 특별한 관계를 상당히 왜곡된 방법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속의 광해군(김태우 분)과 북인당 지도자 이이첨은 막장이나 다를 바 없는 군신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이첨은 광해군의 옹주인 수경이 보쌈을 당하자, 수경의 가짜 장례식을 치른 뒤 진짜로 수경을 죽이려고 자객들을 풀었다.
 
이런 사실을 눈치 챈 광해군은 겉으로는 웃음을 보이면서도 속으로는 이이첨을 궁지로 몰아넣을 방도를 찾는다. 광해군은 집권당 지도자인 이이첨을 함정에 빠트리고자 야당인 서인당의 김자점과도 은밀한 제휴를 불사하고 있다.
 
최근 방영분에서 광해군은 이이첨이 역적으로 몰아 파탄시킨 바우의 가문을 복권시킨 뒤, 당혹해 하는 이이첨의 뒷모습을 보면서 유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이첨이 광해군 정권을 지키고자 몰락시켰던 바우의 가문을, 광해군은 이이첨을 곤란케 할 목적으로 복권시킨 것이다. 드라마 속 광해군과 이이첨은 갈 데까지 가보자는 사람들처럼 막장과 공멸의 길로 치닫고 있다.
 
실제로 매우 끈끈했던 광해군과 북인당
 
 MBN 주말 사극 <보쌈 - 운명을 훔치다> 한 장면.

MBN 주말 사극 <보쌈 - 운명을 훔치다> 한 장면. ⓒ MBN

 
이 드라마만 놓고 보면, 광해군이 북인당과 대단한 갈등을 빚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적군뿐 아니라 아군에도 경쟁자가 있기 마련이지만, 광해군과 이이첨의 갈등이 지나치게 부각되다 보니 당시의 정치상황을 왜곡되게 전달할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광해군과 북인당의 관계는 실제로는 매우 끈끈했다. 1500년대가 160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양자는 거의 비슷한 운명의 궤적을 밟으면서 든든한 유대를 이어갔다.
 
서인과 동인의 양자 구도로 전개되던 당쟁은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이전에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 1589년 정여립 모반 사건(기축옥사)과 1591년 정철의 세자책봉(건저) 실패를 거치면서 동인당 내에서 북인과 남인이 분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각각 이산해와 우성전이라는 거두로 대표되는 두 분파가 북인과 남인으로 불리게 된 이유가 신정일 황토현문화연구소장의 <지워진 이름 정여립>에 이렇게 설명돼 있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우성전의 집이 남산 밑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남인이라 불렀고, 이산해의 집이 서울의 북악산 밑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북인이라 불렀다."
 
선조 임금이 서얼인 광해군을 좋아하지 않는 줄도 모르고 송강 정철이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했다가 유배를 떠난 사건을 계기로, 정권은 서인당에서 동인당으로 넘어갔다. 이때 동인당 내에서 주도권을 잡은 쪽은 남인들이다.
 
북인들은 정여립 모반 사건 때 남인보다 더한 탄압을 받았고, 서인당 거물 정철을 몰아낼 때도 주도권을 쥐지 못했다. 그랬던 그들의 목소리가 높아진 계기는 임진왜란 발발이었다.
 
임금이 볼 때는 경상우도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볼 때는 경상도 서부인 곳에 지역적 기반을 둔 북인당은 일본군의 침략에 맞서 활발한 의병 투쟁을 벌였다. 이것이 북인당의 입지를 넓혀주었다. 2011년에 <한국철학논집> 제32집에 실린 신병주 건국대 교수의 논문 '북인 학파의 연원과 사상, 그리고 현실인식'은 이렇게 설명한다.
 
"남인이 비교적 단일 학연으로 이황의 학통을 계승한 것에 비하여, 북인은 조식의 문인과 서경덕의 문인이 중심이 되었다. 따라서 남인에 비해 학연적인 결속력은 떨어지고 문인이 다기(多岐, 갈래가 여럿)하다는 평을 받는다. 사상적으로는 1589년 정여립의 역모 사건에 연루자가 가장 많을 정도로 정통 성리학과는 거리를 두었으며, 노장(노자·장자) 사상이나 양명학에 일부 경도되었다는 지적도 많다.
 
1589년의 기축옥사로 북인은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았으나, 1592년의 임진왜란은 북인의 재기를 가능하게 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다수 배출하면서 주전론의 입장을 견지한 북인은 전란 후 남인의 영수 유성룡을 주화오국(主和誤國, 적과 평화를 추구하다가 나라를 그르침)의 논리로 실각시키고 정치의 중심에 섰다."
 
광해군 역시 임진왜란을 계기로 처지가 바뀌었다. 광해군이 못마땅했던 선조는 급한 불을 끌 목적으로 그를 세자 자리에 앉혔다. 그런 뒤 전쟁 지휘 책임도 떠맡겼다. 이를 계기로 광해군은 백성과 조정의 신망을 얻으면서 차기 대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
 
살아서뿐 아니라 죽는 일까지 함께 하다
 
 MBN 주말 사극 <보쌈 - 운명을 훔치다> 한 장면.

MBN 주말 사극 <보쌈 - 운명을 훔치다> 한 장면. ⓒ MBN

 
광해군과 북인당은 여러 면에서 닮았다. 광해군은 후궁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약점이 있었고, 북인당은 소수세력이라는 약점이 있었다. 임진왜란을 발판으로 일어섰다는 점에서도 비슷했다. 활발한 의병 투쟁에 힘입어 주류 세력으로 올라서는 북인당의 모습은, 임진왜란 발발 때문에 세자가 되어 전쟁을 지휘하면서 차기 대권을 굳히게 된 광해군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전우는 아니지만 전란을 계기로 전우 같은 관계를 형성하게 된 광해군과 북인당은 그 뒤로도 끈끈하게 의리를 지켰다. 임진왜란 종전 8년 뒤인 1606년에 적장자 영창대군이 태어나 광해군의 입지가 불안해졌을 때도 북인당의 분파인 대북당은 소북당과 달리 광해군에 대한 의리를 굳건하게 지켰다.
 
1608년에 광해군이 선조를 이어 왕이 된 뒤에도 북인당은 결사적인 충성심을 표출했다. 광해군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들은 그게 누구일지라도 극력을 다해 배척했다. 광해군의 친형인 임해군과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것, 광해군의 새어머니인 인목대비가 패륜적인 폐위를 당한 것 등은 광해군이 최종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인당이 과도한 충성심에 매몰됐기 때문이기도 했다. 위의 신병주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북인은 남인이나 서인에 비해 소수세력으로 집권한 때문인지, 왕권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되는 요소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보복을 가했다. 임해군의 옥사, 영창대군의 증살(蒸殺), 폐모론에 이르기까지 북인이 권력을 주도하면서 경색 정국이 이어졌다."
 
광해군과 북인당의 밀착이 얼마나 끈끈했는가는, 1623년에 광해군이 쿠데타로 실각함과 동시에 북인당이 정치권에서 사라진 사실에서도 느낄 수 있다. 광해군 정권의 종말과 함께 북인당 정치의 종말도 함께 찾아왔던 것이다. 살아서뿐 아니라 죽는 일에까지 운명을 함께했던 것이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는 "임진왜란 때 곽재우·정인홍 같은 의병장을 대거 배출하면서 정권을 잡았던 북인은 서인들이 주도한 인조반정 이후 대거 사형당해 역사의 무대에서 강제로 퇴출되고 다시는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광해군과 북인당은 임진왜란을 통해 기반을 잡은 뒤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1608년에 국정 운영의 주역으로 함께 등장했다. 이들은 그 뒤 15년간 조선을 이끌다가 인조 쿠데타와 함께 정치 무대에서 함께 사라졌다.
 
이 정도로 운명적 관계를 유지했던 광해군과 북인당이 드라마 <보쌈 - 운명을 훔치다>에서는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관계처럼 묘사되고 있다. 이 드라마가 수경과 바우의 운명뿐 아니라 광해군과 북인당의 운명적 관계까지 훔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쌈 운명을 훔치다 광해군 북인당 대북당 이이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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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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