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에서 3회 이상 우승을 기록한 구단은 울산현대모비스(7회), 전주KCC(5회), 원주DB(3회), 안양KGC(3회) 등 4팀이다. 이들은 국가대표급 기량을 갖춘 프랜차이즈 토종빅맨이 활약했거나 현재도 뛰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함던컨' 함지훈, '하킬' 하승진, '김가넷' 김주성, '라이언 킹' 오세근 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존재는 농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높이'에 큰 영향을 주었고 합이 잘 맞는 외국인 선수와 함께 팀 전성기를 이끄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가드 양동근과 함께 모비스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함지훈(36‧198cm)은 이제 홀로 팀의 베테랑 주춧돌 역할을 맡고 있다. 아마추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전체 1순위 수순을 밟은 김주성, 하승진, 오세근과 달리 함지훈은 2007 KBL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0순위로 모비스에 지명됐다.

빅맨 치고는 신장이 다소 작은 데다 탄력, 운동신경, 기동성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고 부상까지 겹치며 저평가됐다. 하지만 이후 프로 무대에서 남다른 활약을 펼치며 그를 지명하지 않은 타 팀들이 무릎을 치고 후회하게 만들었다. 국제무대에서는 약점을 노출하며 활약이 적었지만 KBL에서 만큼은 최고의 토종 빅맨 중 한 명이었다.

함지훈의 경쟁력은 포스트 인근에서 펼쳐 보이는 남다른 '센스'다. 유연하고 낮은 드리블과 부드러운 피벗 동작을 바탕으로 자신의 위치를 잡고 상대의 타이밍을 빼앗는 능력이 굉장히 빼어나다. 거기에 빅맨으로서는 아주 드물게 코트 전체를 내다보는 시야도 좋아 자신에게 수비가 몰린다 싶으면 여지없이 빈 공간의 동료에게 찬스를 열어준다. '가드의 센스를 갖춘 빅맨'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을 정도다.
 
 '하킬' 하승진과 '김가넷' 김주성은 전주KCC와 원주DB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스타다.

'하킬' 하승진과 '김가넷' 김주성은 전주KCC와 원주DB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스타다. ⓒ 전주KCC / 원주DB

 
김주성(은퇴‧205cm)은 특급 토종 빅맨이 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준 사례다. 그가 입단하기 전까지 DB는 강하기는 했으나 우승을 노리기에는 힘든 전력이었다. 때문에 항상 6강 혹은 4강에서 고배를 마시기 일쑤였는데 그의 입단 이후 DB는 늘 우승을 노릴 수 있는 팀으로 바뀌었다.

서장훈이 '슈팅형 센터'라면 김주성은 팀플레이를 우선에 둔 살림꾼형 빅맨이다. 때문에 그의 가치는 기록으로 드러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점 때문에 더더욱 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우승, 프랜차이즈 스타 등 또 다른 훈장을 목에 걸 수 있었다.

김주성의 최대 장점은 스피드였다. '런닝 빅맨'이라 불릴 정도로 기동력이 뛰어났는데 특히 205cm의 장신임에도 속공시 누구보다 먼저 달려나가 상대팀 입장에서 큰 부담이었다. 거기에 패싱 플레이에도 능해 어떤 유형의 외국인 선수와도 호흡이 잘 맞았다는 평가다.

하승진(은퇴‧221cm)은 기술적 완성도, 슈팅유무 등만 놓고 보면 김주성, 함지훈, 오세근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그럼에도 그는 드래프트 전부터 각팀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고 KCC에 지명받은 이후 소속팀의 2차 전성기를 이끌었다. KCC는 늘 하승진 위주로 팀을 짰고 한창때의 그는 좋은 팀 성적으로 이에 보답했다.

국내 최장신 센터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최고 무기는 사이즈였다. 221cm의 신장, 큰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와 높이는 골밑에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골밑 플레이를 즐기던 센터형 외국인 선수들까지도 정면 대결을 피하고 스피드를 살린 외곽슛으로 공격패턴을 바꿔버리게 만들 정도였다.
 
오세근과 외국인 선수 궁합이 곧 KGC의 성적
 
'KGC의 역사는 오세근이 있을 때와 없을 때로 구분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KGC에서 오세근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신인드래프트 1순위로 KGC에 들어온 이래 팀의 3번 우승에 모두 공헌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팀 던컨이 그랬듯 오세근의 입단이 팀의 역사와 운명을 바꿔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세근의 최고 무기는 '밸런스'다. 함지훈의 부드러운 움직임, 김주성의 스윙맨급 스피드, 하승진의 압도적 사이즈 등 하나하나 놓고 보면 앞서는 부분이 없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특별히 모자란 부분도 없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최근에는 부상, 나이 등으로 예전같이 엄청난 파워와 미칠듯한 활동량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나 대신 한층 노련해지고 원숙한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는 평가다.
 
 설린저(사진 왼쪽)와 오세근이 KCC 라건아를 더블팀으로 수비하고있다.

설린저(사진 왼쪽)와 오세근이 KCC 라건아를 더블팀으로 수비하고있다. ⓒ 전주KCC

 
'건강한 오세근은 플레이오프 보증수표다'는 풍문에서 알 수 있듯이 오세근의 플레이 안정성은 KBL 역사에서도 역대급으로 인정받는다. 특히 30대 접어들어서는 미들슛의 활용도가 몰라보게 늘어나고 좋아졌다.

미드레인지 점퍼, 스텝백 점퍼, 45도 뱅크샷은 물론 턴어라운드 페이드 어웨이까지, 포스트업에 패싱게임마저 잘하는 오세근이 성공률 높은 미들슛을 넣어주게 되면 상대 입장에서는 수비하기가 매우 까다로워진다.

오세근은 슛을 잘 쏘기는 하지만 무리해서 난사하며 개인기록을 올리는 스타일은 아니다. 착실한 스크린 등 팀 플레이를 우선시하는 선수인지라 오세근의 공격에만 신경을 쓰다가는 다른 선수들이 더불어 터지기 일쑤다. 오세근이 왜 KGC 공수의 알파와 오메가로 극찬받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밀 왓킨스, 레지 오코사, 로드 벤슨 등과 환상적인 '트윈타워'를 이뤘던 김주성 등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팀에 오세근같이 좋은 토종 빅맨이 있으면 호흡을 잘 맞출 수 있는 외국인선수의 선발이 굉장히 중요하다.

오세근은 자신과 함께 포스트에서 함께 활약해 줄 선수가 있을 때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 첫 번째 우승을 합작했던 크리스 다니엘스(1984년생‧206cm)와 두 번째 우승의 주역 데이비드 사이먼(1982년생‧203cm)이 대표적이다. 둘 다 건실한 포스트 플레이는 물론 정확한 내외곽 슈팅까지 갖춘 전천후 빅맨타입이었는데 이후에도 KGC팬들은 이러한 유형의 외국인 선수를 원하고 또 원했다.

우승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세근은 다니엘스, 사이먼같은 빅맨과 호흡이 잘 맞았는데 팀은 종종 포워드형 외인을 선택하는 악수를 뒀고 그럴 때마다 엇박자가 났다. 거기에 대한 팬들의 비난도 거셌다. 단 예외가 있다. 지난 시즌 우승의 일등공신 자레드 설린저(28·206cm)다.

설린저는 정통 빅맨과는 거리가 먼 테크니션 유형이지만 기량 자체에서 급이 달랐다. 한시즌도 채 뛰지 않았음에도 프로농구 역대 원탑 외국인선수로 불릴 만큼 완성도가 엄청난 선수다. 득점, 수비, 패싱게임 등 못 하는 게 없었다.

수비시에는 어지간한 빅맨이상으로 골밑을 잘 막아주고 공격할 때는 전 부분에 관여하며 팀을 이끌었다. 플레이 스타일을 떠나 논외로 평가해야 될 선수다.

설린저가 남아주는 것이 KGC입장에서는 최상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NBA 복귀와 중국프로농구(CBA) 재진출을 놓고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KGC로서는 금액 등에서 경쟁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KGC는 다음 시즌에도 '오세근의 파트너는 누구로 할까?'라는 해묵은 과제를 다시 풀어야 될 전망이다. 워낙 외국인선수를 잘 뽑는 KGC인만큼 팬들의 관심이 벌써부터 쏠리는 분위기다. KGC와 오세근이 새로운 외인과 함께 '설린저 없이도 우승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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