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02 07:25최종 업데이트 21.06.02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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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이 5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청년에게 출마할 권리를, 2030 대통령선거 피선거권 보장 추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청년의 참여를 원천 배제하는 불공정한 대선 규정은 젊은 경쟁자를 배제하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졌습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가 지난 5월 30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40세 미만 대통령 출마불가' 헌법조항은 차별이자 불공정"이라고 주장하며 한 말이다.
 
강 대표는 "이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조항은 박정희가 만들었다"면서 "당시 박정희는 40대였고, 그가 바꾼 헌법은 30대 경쟁자들로 하여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톡톡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이날 "30대 기수론은 이미 국내에 60년대부터 존재했다"면서 "군사쿠데타 직후였던 1962년 박정희의 대항마로 부상하던 김영삼은 35세, 김대중은 38세의 청년이었다"고 거들었다. ([관련 기사] 정의당 "대선이 특정세대 전유물? 40세 연령 장벽 없애야" http://omn.kr/1tir6)
 
실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등 당시 30대였던 경쟁자들의 대선 출마를 막으려고 헌법을 바꿨다는 주장이 사실인지 검증했다. 
 
[사실검증] 박정희 때 헌법에 들어갔지만... 이승만 때 첫 출현
 
정의당은 이날 만 36세인 이준석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이 유력한 당 대표 후보이지만 대선에는 출마할 수 없다면서 개헌을 제안했고,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과 이동학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등 여야 일부 정치인들도 호응했다. 실제 대한민국 헌법 제67조 제4항은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고 규정해, 이 전 최고위원을 비롯한 20~30대 정치인들은 내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언제부터 이런 규정이 있었을까. 1948년 5월 10일 제정된 제헌 헌법에는 대통령 출마자 연령 제한 규정이 없었다. 다만 국회의원의 경우 헌법이 아닌 '국회의원선거법'에 피선거권 연령을 만 25세 이상으로 제한한 것이 현재까지 7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공직선거법).

대통령 피선거권 연령 제한 규정은 이승만 정부가 1952년 7월 '발췌 개헌'으로 정·부통령 선출 방식을 국회 간선에서 국민 직선제로 바꾸면서 제정한 '대통령·부통령선거법'(제2조 "국민으로서 만 3년 이상 국내에 주소를 가진 만 40세 이상의 자는 피선거권이 있다")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5.16 쿠데타 직후인 지난 1962년 12월 5차 개헌(제3공화국 헌법)으로 헌법에 포함됐다.
 
당시 대통령 피선거권 만 40세 제한 규정을 헌법에 포함시킨 의도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당시 박정희를 비롯한 쿠데타 세력은 기존 의원내각제 대신 미국과 같은 '강력한 대통령제'를 원했고, 제3공화국 헌법을 만든 헌법심의위원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박정희의 '30대 기수 견제설'이 등장한 건 이런 헌법 제정 배경과 1960년대 초반 정치권 상황이 맞물려 있다.  
 

1970년 9월 신민당 임시전당대회에서 7대 대선 후보로 지명된 김대중과 이를 축하하는 김영삼. ⓒ 김대중평화센터


정찬대 기자는 지난 2015년 11월 9일 인터넷신문 <커버리지>(현재 폐간)에 쓴 기사에서 박정희가 '40세 이상' 규정만 따로 헌법에 명문화해 개정을 어렵게 만든 이유가 1960년대 초 '30대 기수'였던 김영삼, 이철승, 김대중 등 청년 경쟁자들을 견제하려던 의도였다고 주장했다. ([관련기사] 대통령 피선거권은 왜 '40세 이상'일까?)

실제 1927년생인 김영삼(YS)은 1954년 최연소(만 26세) 국회의원 당선에 이어 1960년 재선한 뒤 원내 부총무와 대변인을 지낸 소장파 정치인이었다. 1924년생인 김대중(DJ)은 1961년 재보선에서 처음 국회의원이 됐지만, 1969년 YS의 '40대 기수론'에 힘입어 1971년 대선에 신민당 후보로 출마하면서 박정희의 강력한 라이벌로 떠올랐다.

1922년생으로 청년 소장파 리더였던 이철승도 당시 5.16 쿠데타 군부가 만든 '정치활동정화법'(아래 정정법)에 따라 정치 활동이 금지되는 등 견제를 받았다. 당시 30대였던 YS와 DJ는 40세 제한 규정 때문에 1963년 대선 출마가 막혀 있었다. 

"쿠데타 당시 YS와 DJ, 경쟁자 아냐" vs. "젊은 정치인 견제" 해석 분분
 

1975년 5월 21일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김영삼 신민당 총재을 접견하고 있다. ⓒ e-영상역사관


박정희가 김영삼, 김대중 등 '30대 경쟁자'를 견제하려고 대통령 피선거권 연령을 헌법으로 제한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학자마다 의견이 엇갈린다.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박정희가 1960대 중후반이나 70년대에 그런 법을 처음 만들었다면 정치 경쟁자 배제를 위해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1961년 쿠데타 당시만 해도 김대중이나 김영삼 같은 젊은 정치인을 (대선) 경쟁자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통령선거법 제정 때) 40세 제한 규정은 어느 정도 경력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로 들어갔을 것이고 당시 우리 사회의 '장유유서' 문화를 일부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면서 "제3공화국 헌법을 만든 법률가들이 헌법에도 (대통령 피선거권)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넣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구체적 기록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학자인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17대 국회의원)는 "당시 이철승은 소장파 대표 인물이어서 1961년 5.16쿠데타 세력이 이른바 정치정화법으로 묶었지만, 30대였던 김대중이나 김영삼은 박정희가 견제할 만한 중량급 정치인은 아니었다"면서 "1971년 4월 대선을 앞두고 '40대 기수론'이 나왔을 때도 야당 내에서 '구상유취론'('입에서 아직 젖비린내가 난다'는 뜻)이 나왔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사회과학부(정치학) 교수도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등 당시 30대 정치인들의 대선 입후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고 40세로 제한했다는 것은 그후의 상황에 집착한 회고적, 결과론적인 해석이 아닐까 한다"면서 "당시 소장파의 영향력이 그렇게 크지 않았고 그들이 부각된 것은 그 후의 일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가 지난 198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을 찾아 조찬 회동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반면 허완중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0대 기수 견제설이) 문서로는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 군사정부에서 말로 전한 지침이 있었을 수도 있다"면서 "당시 헌법 개정에 참여한 학자들이 굳이 외국 사례까지 찾아가며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는 피선거권 연령 제한 규정을 만든 것도 군사정부 지침 때문이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도 "박정희가 당시 피선거권 연령에 예민했고 윤보선, 장면 같은 점잖은 정치인보다 야당의 젊은 정치인과 재야 민주세력들을 견제했던 건 사실"이라면서 "당시 박정희가 민정이양을 약속하고 미국 등 선진국 법제도를 차용하려고 했지만 미국의 압력에 따른 전략적 인내 차원이었지 진정성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미국 헌법도 대통령 피선거권 자격을 35세 이상(제2조 제1항 "미합중국에서 태어난 미합중국 시민이 아니거나, 본 헌법을 제정할 당시 미합중국 시민이 아닌 자는 대통령으로 선임될 자격이 없다. 나이가 35세에 미만이거나 또는 선거 당시 14년 동안 미합중국에 거주하지 않았던 사람도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으로 제한했고, 독일 기본법(헌법)에도 연방 대통령 피선거권을 40세 이상(제54조 1항 "연방대통령은 연방회의에서 토론을 거치지 않고 선출한다. 연방의회 의원의 선거권을 갖는 만 40세에 달한 독일 국민은 피선거권을 갖는다")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허완중 교수는 "대통령 40세 제한은 물론 국회의원 25세 제한도 문제가 있다"면서 "자연인 중에 성년인 국민의 경우 기본권 행사 능력을 제한해선 안 되며, 피선거권 연령을 법률로 제한하는 건 국민이 후보자를 선택할 판단 능력이 없다고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35세 연령 제한도 법리적 문제가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정치를 못하게 하려는) 역사적인 이유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과거에는 나이든 사람들에게 '빅맨' 역할을 기대했지만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검증결과] YS·DJ 대선 배제는 결과론일 뿐... '박정희 의도'는 확인 불가

결과적으로 대통령 출마 연령을 40세 이상으로 제한한 헌법 규정 때문에 1960년대 당시 김영삼, 김대중 등 30대 정치인들이 대선에서 배제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선거법에 대통령 40세 미만 출마 제한 규정이 존재했고, 박정희와 쿠데타 세력이 이들 '30대 기수'를 견제할 목적으로 헌법을 바꿨다는 근거는 확인할 수 없다.
 

대통령 40세 제한, 박정희가 김영삼·김대중 출마 못하게 만들었다

검증 결과 이미지

  • 검증결과
    판정안함
  • 주장일
    2021.05.30
  • 출처
    정의당 기자회견출처링크
  • 근거자료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피선거권 연령 제한의 헌법적 검토(2019)자료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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