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9 10:37최종 업데이트 21.05.2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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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사탕수수 밭. ⓒ 림수진

 
"도냐(Doña)~~"

우리 마을에서 내게 '도냐' 즉 '아주머니'라 부르는 이는 삐치가 유일하다. 나와 나이가 같은 갑장, 그리고 마을 사람 그 누구도 부르지 않는 그의 본명은 아마도 호세 곤살레스(가명).


그날도 늦은 밤 "도냐~~"를 부르며 삐치가 찾아왔다. 어디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온 것인지, 온 몸에 쇳가루 섞인 땀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다. 달이 휘영청 뜬 밤이었지만, 나는 그에게 점심밥 먹었냐고 물어봤다. 가끔 늦은 밤까지 점심도 먹지 못한 채 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그 시간 점심을 먹었냐고 묻는 내 말에, 아니나 다를까 삐치는 펭귄 한 마리와 거위 한 마리를 먹었다고 했다. 픽 웃음이 나왔다.

그의 점심은 '펭귄'과 '거위' 한 마리     

언제나 그런 식이다. 빠치는 아무리 몸이 힘들고 배가 고파도 농담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아니, 어찌 생각해 보면 진담이었다. 맞다. 삐치는 그 날 점심으로 겨우 펭귄 한 마리와 거위 한 마리를 먹었을 뿐이다. 이곳에서 팔리는 초코과자 이름이 하필 '펭귄'(Pinguino)이고 또 '거위'(Gansito)니,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이른 아침부터 밤이 늦도록 일 하면서 먹은 점심으로 그게 전부라면 턱없이 부족했다. "기왕이면 맘모스(메머드)도 한 마리 먹지 그랬소!"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이곳 멕시코엔 '맘모스'라는 이름의 초코과자도 있다).
  

멕시코 초코과자 3종셋트 ⓒ 아마존닷컴/림수진

 
이미 늦은 저녁이라 마을 가게 대부분은 문을 닫았을 터, 부랴부랴 점심에 남긴 음식을 모으고 데워 내줬다. 코카콜라 한 병이 빠질 리 없다. 삐치는 마당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그 곳에 자릴 잡고 앉았다. 의자를 내주고 그 위에 앉아 먹으라고 권했지만, 바지가 더럽다며 그대로 바닥에 앉은 채 밥을 먹었다. 멀찍이 떨어져 나도 앉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여느 때와 같이 그의 말 대부분은 농담 섞인 호기였다. 하루 종일 어느 집에 가서 마당 풀을 베어줬는데 그만 그 집 마당 풀이 어찌나 무성하던지 그 안에서 코끼리와 얼룩말과 기린을 봤다고 하는가 하면, 마침 그날 등짐으로 짊어지고 온 연장 가방 속 낫 한 자루가 못 보던 것이라 어디서 구했냐고 물으니 그 특유의 억양으로 '에스빠냐~'에서 구해왔다고 하는 등 그렇게 늦은 달밤에 점심을 먹으면서도 삐치는 여유롭게 낄낄거렸다. 그날 삐치는 하루 종일 풀을 베어주고 일당 150페소를 받았다고 했다(한화 약 7500원 정도).

마침 마을 사람들을 통해 들은 소문이 있기에, 슬쩍 돌려 요즘 어디서 먹고 자느냐고 물었다. 아랫마을 가겟집에 방 하나 얻어 산다고 했다. 어쩌자고 집을 나왔냐고 물었지만,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아들에게 쫓겨 집을 나왔다는 소문 또한 익히 듣던 터였다. 그간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결국 아들에게 밀려 집에서 나온 삐치의 상황을 이해하긴 쉽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늘 나사가 한두 개쯤 빠진 사람으로 여겨지는 삐치, 어지간한 아픔이나 슬픔도 눈물 대신 웃음으로 넘기는 사람이었다. 상황이 어떻든 그의 말은 늘 유쾌했다. 듣는 사람까지 덩달아 슬픔을 잊게 만들어주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결코 녹록지 않았음에도 팔랑팔랑 삶을 가볍게 만들어버리며 적당히 버무리고 위기를 넘기는 듯하니, 그 또한 재주라면 재주고 재산이라면 재산이었다.
 

차가 없는 삐치는 늘 하루 벌이 할 일에 대비해 그가 가진 모든 연장들을 이고 지고 다니다가 어디선가 일거리를 만나면 당장 필요 없는 짐들을 마을 아무 곳에나 'Keeping' 해놓곤 한다. 역시나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삐치는 낡은 가방 하나를 기워도 늘 덧대는 천의 배색과 디자인을 생각해 한 땀 한 땀 심혈을 기울인다. 무엇보다 삐치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별명을 사랑하여 모든 물건에 자랑스럽게 적어 놓으니 어디서라도 삐치의 짐은 표가 난다. 마침 그 곳을 지나던 누군가 삐치에게 고마움을 입었던지, 담배 한갑을 비닐 봉지에 담아 고맙다는 메모와 함께 삐치의 짐 사이에 Keeping해 놓았다. ⓒ 림수진

 
미국 개똥밭 누비다 멕시코 빵집 주인으로     

삐치는 젊은 시절 미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당시 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Tijuana)에 도착하여 그 곳에서 800달러를 주고 불법 이주 브로커를 고용했다. 미국에 있는 친척의 집까지 데려다 주는 조건이었지만 국경을 넘자마자 브로커가 사라지는 바람에 사막에 홀로 남겨져 몇 날 며칠 죽을 고비를 넘겼다. 다행히 국경 수비대에 잡히지 않고 어찌어찌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친척을 찾아갈 수 있었다. 1990년대 후반의 일이다.

그 곳에서 영어 한 마디도 못했지만 친척 형님을 따라다니면서 아무런 지장 없이 잔디 깎는 일을 했다. 어쩌다 우리 집 와서 풀을 벨 때마다 미국 사람들 집에서 잔디 깎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잊지 않았다. 그 와중에 빼먹지 않는 이야기는 마당 풀숲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엄청난 양의 개똥에 관한 것이었다. 미국 사람들 집 마당이 알고 보면 개똥밭이더라고, 잔디 깎는 기계가 닿는가 싶으면 그 족족 자신을 향해 튀어 올라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고. 차마 미국 사람들에 대한 욕은 하지 못하겠던지, 늘 우리 집 풀을 베면서도 미국 개들에 대한 욕을 한 바가지씩 쏟아냈다.

기왕에 들어갔으니 잘 살았으면 좋았을 것이나, 어쩌다 총기 사건에 엮이면서 이곳으로 다시 추방되었다. 그래도 미국 살던 집 침대 아래 숨겨둔 돈을 들고 나올 수 있어 그 돈으로 마을에 돌아와 빵집을 차릴 수 있었다. 어쩌면 젊은 시절 개똥 세례를 받아가며 잔디를 깎던 시절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듯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시나브로 신기루 사라지듯 빵집이 야금야금 사라져 버렸다. 6년 전 그가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 즈음이다. 이후 그의 인생에 호시절은 다시 오지 않았고 늘 반쯤 미친 듯 살아간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을 사람들이 삐치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라져 버린 빵집과 무관하지 않고 또한 그가 마약에 중독되어 살던 시절에 무관하지 않다.

미국에서 추방된 삐치가 빵집을 연 곳은 마을 공동묘지 벽에 기댄 허름한 가게였다. 그가 만들어 내는 빵은 조금 거칠긴 했지만 필요 이상으로 효모나 설탕을 쓰지 않아 제법 인기가 있었다. 게다가 저녁 무렵 빵이 남으면 여느 빵집처럼 싸게 팔아버리거나 짐승에게 먹이지 않고 커다란 함지에 담아 그가 직접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나눠줬다. 그 시절 마을 사람치고 삐치의 빵 한 봉지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기에 오늘 날 삐치 신세가 형편없이 구겨졌어도 여전히 왕년의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마약 중독, 스스로 치료센터를 찾다

게다가 그가 한때 마약에 취해 살았음에도 여느 중독자들과 달리 다시 제 삶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여 왔기에 마을 사람들 역시 그에 대한 호감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삐치는 마약에 중독되어 살던 시절 스스로 마약중독 치료센터를 찾아가 자신을 입원시킨 이력이 있다. 대부분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 그 누구도 스스로 치료센터를 찾아가기는커녕 가족들이 강제로 입원을 시킨다 해도 탈출을 감행하는데 삐치는 스스로 찾아 들어갔으니 마을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놀라움이었다.
 

메탐페타민 일종인 마약 '크리스탈'은 유리관 안에 소량의 가루를 넣고 열을 가열하여 연기를 흡입하는 형태다. 가격이 저렴하여 '가난한 자의 코카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가장 적은 돈으로 취할 수 있는 마약이기에 빈민층과 학생들을 상대로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 물론, 신체 장기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이들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유리관은 일반 가정에서 흔히 쓰이는 전구다. 일명 '전구 마약'이라 불리기도 한다. 유튜브에는 전구 속을 비우는 법부터 크리스탈이라 불리는 마약 가루를 넣고 연기를 내 흡입하는 안내들이 매우 자세히 나온다. 마을에 유난히 전구 도둑이 많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 NoroesteTV 뉴스 캡처

  
어찌 되었든 마약 중독 치료를 마치고 나오긴 했지만, 전 재산이었던 빵집이 사라졌으니 그간 삐치와 가족의 삶이 신산스러울 수밖에 없음은 분명하다. 삐치는 기술도 없이 막일을 쫓아다녔고 삐치의 아내는 마을 타코 집에서 또르띠쟈 굽는 일을 했다. 그래봤자 부부가 합쳐 하루에 300페소(한화 1만5천 원 정도) 벌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어느 날 지붕 기술자 후안을 따라 우리 집에 왔을 때 그날 하루만 두 번이나 사다리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삐치의 앞날에 내가 다 막막했던 적이 있다. 물론, 삐치는 높은 사다리에서 떨어지고도 부끄러움 때문인지 자존심 때문인지 아무렇지도 않다며 벌떡 일어나 기꺼이 온몸을 흔들어대며 천연스럽게 춤을 췄지만 말이다.

게다가 삐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취향인지라, 지붕을 때우다가도 우편함 구석 어디쯤 녹슨 곳이 눈에 띄면 지붕 일을 잠시 잊고 어디서든 페인트를 구해와 온갖 정성으로 칠하느라 정작 해야 할 일이 하세월 늘어지기도 했다. 어느 집에서 일을 해주고 페인트가 남는다 싶으면 마을 이곳저곳에 매우 디테일한 '삐치의 깔맞춤' 흔적을 만들어 놨다. 어느 날 나도 모르는 새 우리 집 밤색 대문의 자물쇠 고리가 은빛으로 빛나는가 하면 성탄절 즈음에는 우리 집 보일러가 초록과 빨강색으로 칠해져 있기도 했다.

자명하게 빵집을 잃고 난 이후로도 자명한 일들은 계속되었다. 갓 스물을 넘긴 그의 아들이 마약 카르텔 말단 조직원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곳 멕시코에서 가난한 젊은이들이 갈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기도 했다. 자신의 아들이 마약 카르텔의 조직원이 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있는 부모는 없을 터, 한때 마약에 중독이 되긴 했지만 삐치도 어쨌든 아버지였다. 그러자니 연일 갈등의 골이 깊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부추기는 조직원들을 등에 업은 젊은 아들과의 싸움에서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결국 옷 한 벌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집에서 쫓겨나온 것이다.

마약 카르텔 아들에게 집을 빼앗기고...

그간 삐치를 볼 때마다 어떻게 해서라도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냐고 물으면 그러마 하면서도 여전히 마을 구멍가게 작은 방에 살림도 없이 살아가던 중이었다. 하루하루 닥치는 대로 막일을 나갔으니 어찌 밥은 먹고 사는 듯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지칠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삐치네 집 이웃들이 전하는 말로는 그가 나온 집에 이제 스무 살을 갓 넘긴 아들이 왕처럼 군림하고 있다고 했고 삐치의 아내와 정신지체를 앓는 딸은 그 아래서 아무 소리 못하고 살고 있다고 했다. 더불어 마약 카르텔 조직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 집을 아지트 삼아 드나들고 있다고 하니 아무리 봐도 삐치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란 영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삐치도 상황은 알고 있을 터, 다시 집안 이야기가 나오자 펭귄과 거위를 점심으로 먹고 풀을 베다가 코끼리와 얼룩말과 기린을 봤다던 호기를 잃은 채 시무룩해졌다. 그가 직접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간 몇 번 다시 마약에 손을 대는 것 같다는 소문이 있었으니, 삐치의 우울이 걱정될 만했다. 한 번 취하는데 100페소(한화 5천원), 마약 중에서도 가장 하급 마약일 것이다. 신체 장기 이곳저곳에 손상이 없을 리 없다. 그나마 몇 개 있던 앞니도 최근 하나 남겨두고 빠져 버리지 않았던가. 그게 걱정이 되어 이래저래 열심히 머리를 굴려가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위로의 말들을 끄집어냈다. 그간 내가 살아오면서 들었던 모든 위로의 말들을 더하면서 괜찮다고, 결국은 다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삐치의 엄마 이야기가 나왔다. 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내 말에 자기 엄마도 살아생전에 늘 그 말을 했다고 했다. 그러더니 다 먹지 못하고 식어버린 밥을 깨작거리던 삐치가 울기 시작했다. 그간에 정신 사납다 싶을 만큼 늘 낄낄거리고 유쾌하던 삐치가 우는 모습은 처음 봤다. 아마도 혼자 살림도 없이 쫓겨나와 얻은 방에서야 숱하게 울었겠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어느 날 삐치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러게 왜 마약엔 손을 댔소?"라고. 그 때 돌아온 그의 답이 "엄마가 돌아가셔서"였다. 도무지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너무 슬픈 나머지 그냥 어디론가 없어져 버리고 싶었단다. 그래서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슬픔으로부터, 그리고 엄마가 없는 세상으로부터 숨기 위해서. 엄마를 잃고, 빵집마저 잃은 채 마약에서 겨우 헤어 나오긴 했지만, 다시 가족을 잃었으니 순간 잊고자 했던 슬픔의 대가치곤 지금의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누군가 위로의 말을 전한다 한들, 삐치의 아픈 현실이 펴지진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잘 알고 있고 삐치는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알 순 없지만, 어쩌면 수많은 멕시코인들의 삶일 수 있는 삐치의 슬픔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은, 괜찮다고 곧 괜찮아질 것이라는 주문 같은 말뿐이었다. 늦은 밤, 이제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삐치가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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