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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119는 우분투비정규센터와 공동 기획으로 '내가 만난 진상고객-콜센터 상담사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하청·파견노동자로 고용이 불안하고 경력과 상관없이 여전히 최저임금 노동자이지만, 콜센터 상담사들은 늘 밝은 목소리로 고객을 만납니다. 기관과 기업을 대표해 최전선에서 최선을 다해 고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안내하고 문제와 요구를 해결하려 애씁니다. 그래서 때로는 기관과 기업의 방패막이로 온갖 감정노동을 수행해야 합니다. 잠시 헤드셋을 내려놓고 자동콜 시스템 부스 밖으로 나온 상담사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인터뷰와 기록은 2016년 <기록되지 않은 노동>을 발간해 비정규·비공식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알린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에서 맡았습니다. 인터뷰에는 직장갑질119 스태프가 함께했습니다. 이 기획과 기록은 사무금융 우분투 재단에서 지원받았습니다. [편집자말]
 
25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콜센터 노동자 노동건강실태 발표 및 해결방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2021.5.25
 25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콜센터 노동자 노동건강실태 발표 및 해결방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2021.5.25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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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어느 날의 상담 전화에서 고객에게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들었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인지하기 어려워 다시 물었다.

"고객님,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고객은 대답했다.

"너 이거 해결 안 되면 죽여버린다고."

상담사는 팀장에게 고객의 위협을 전달했고, 고객은 전화를 넘겨받은 팀장에게 대답했다.

"저는 그 상담사의 성격을 죽이겠다고 한 겁니다."

이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그 민원은 그냥 넘어갔다. 악성 민원 매뉴얼의 어느 부분에도 해당하지 않아서다. 콜센터 상담 과정에서 고객이 욕설을 하면 전화를 끊을 수 있게 되자 콜센터 노동자들은 진화한 진상 고객들에게 시달리고 있다. 이제 고객은 상담사에게 욕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콜센터 노동자가 매일 같이 경험하는 폭력과 감정노동은 여전하다. 이는 형식적인 매뉴얼의 일부 개정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전화번호를 안내하는 114 콜센터 노동자들의 인사 멘트는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사랑합니다, 고객님"이었다. 매뉴얼에 기재된 내용이었다. 당시 여성 노동자는 정보전달 업무 외에 고객을 '사랑'까지 해야 했다.

여성은 '사랑'이 전제된 관계(연인 관계도 그렇지만 가족 관계도 마찬가지다)에서도 감정노동을 강요받는다. 감정노동은 여성만이 전담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콜센터 노동자의 90% 이상은 여성이다. 상담사의 100%가 여성인 사업장도 비일비재하다. 여성을 주로 고용하는 곳이 콜센터이고, 따라서 여성이 접근하기 좋은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과 사회가 여성에게 어떤 성역할을 강요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변치 않는 노동의 형태와 변치 않는 차별

나는 2016년에 A를 만났고, 2021년에 김수희(가명)씨를 만났다. 당시 A는 40대였고, 김수희씨는 지금 20대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콜센터 여성 노동자라는 공통점만으로도 5년을 훌쩍 뛰어넘어 정확히 겹친다. 마치 한 사람의 이야기 같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현장은 변했지만 또 변하지 않았다. 노동의 성별화에 따른 차별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현장은 변할 수가 없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성역할이 극대화되는 노동은 남성에게는 '인생 막장(실제 한 콜센터 남성 노동자가 주변에서 들은 말이다)'으로 받아들여지고 여성에게는 견딜 수밖에 없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견딜 수밖에 없는 노동의 지점은 대개 '폭력'의 형태를 띠고, 회사와 관리자는 이를 노동의 일부로 간주한다.

김수희씨는 항공업계 콜센터 노동자다. 그는 하청업체 정규직이고, 그가 일하는 사업장은 상담사의 100%가 여성이다. 20대 중후반의 노동자가 제일 많고, 그다음으로 많은 연령대는 40대다. 40대는 결혼과 출산,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었다가 다시 일하는 여성이 대부분이다. 근속연수는 다들 1년에서 2년 이내로 짧고, 그는 2년째 인바운드 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다.

왜 콜센터 일을 시작했느냐는 말에 "돈이 필요해서"라고 답했다. 사회 초년생 여성이 제일 일을 찾기 쉬운 곳이 콜센터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40대의 경력단절 여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왜 여성만 뽑으려 하는지 회사에 물어봐야 해요."

'여기서는 여성을 잘 고용해준다'는 말은, '다른 곳에서는 여성을 잘 고용해주지 않는다'의 다른 말이다.

그는 인터뷰 시작부터 미안하다고 했다. 자신은 퇴근하고 나면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 잘 기억나지 않아 할 말이 많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저는 사실 모욕적인 전화를 받고서도 전화를 끊고 퇴근을 하면 기억을 잘 못 해요. 제가 살기 위해 그러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제가 기억하는 사람들은 정말 극심한 진상고객들인 거예요."

엄청난 스트레스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기억을 차단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내 친구 중 20대 초반, 3개월간 콜센터 일을 한 이가 있었다. 친구는 골방 같은 사무실에서 좁은 책상에 앉아 하루 종일 전화를 받고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그 시간을 견디려고 찰칵 전화를 끊을 때마다 내부의 문도 하나씩 함께 닫았다. 상대에게서 문을 닫은 것인지 나에게서 문을 닫은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친구는 그곳을 그만두었다. 차단은 폭력에서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제도가 전혀 없는 콜센터 노동자들이 살아남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어체계다.

매뉴얼에는 기재되지 않는 폭력

진상고객은 주말에 제일 많다. 항공업계는 주말이 피크이기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다른 이유도 있다고 했다.

"주말이 한가하잖아요."

이런 사람들은 분명치 않은 목적으로 전화하고, 전화를 끊지 않는다. 한가하다고 생각되는 날이나 시간대에 정기적으로 전화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매뉴얼에 있는 성희롱이나 욕설은 하지 않지만, 노동자는 그 이야기들을 성희롱이나 욕설로 느낀다.

"대놓고 성희롱을 하지는 않아요. 안내 멘트를 통해서 통화가 녹취되고 있다는 걸 알거든요. 그런데 듣고 보면 성희롱이에요. 그 사람은 마치 스토리가 있는 것처럼 상담을 시작하지만, 결국 들어보면 통화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인 거예요.

이를테면 특정한 날짜들의 비행기 스케줄을 다 불러달라고 한다거나, 전혀 운항하지 않는 노선에 왜 비행기가 없느냐고 항의를 해요. 그런데 장시간 이야기를 하다 보면은 중간중간 이상한 소리를 내요. 저는 헤드셋을 끼고 있기 때문에 그런 소리가 더 크고 선명하게 들리거든요. 그 사람들은 그저 여자와 통화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쾌감을 느끼기 위해 전화를 하는 것 같아요. 성적인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죠."


고객이 성희롱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표현을 하지 않는 이상 노동자는 전화를 끊을 수가 없다. 추가 문의 사항이 있는지를 계속 묻고, 고객이 질문한 내용이 내 분야가 아니어서 상담을 진행할 수 없다고 안내하는데도 상대는 전화를 끊지 않는다. 전화를 끊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수희씨는 명백하게 성희롱을 당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관리자는 근거가 없으면 해결해줄 수 없다고 답한다. 욕설도 마찬가지다.

"저를 향한 욕이 아니라 혼잣말을 하면서 저를 욕하는 경우는 제재할 수 없어요. 이를테면 통화하다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저를 모욕하는 말을 하는 거죠. 그런데 관리자는 그럴 경우에는 전화를 끊을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하는 거예요."

전화를 끊을 수가 없어, 그는 상담하는 내내 자신을 향한 욕설을 들어야 했다. 회사는 매뉴얼에 기재되지 않은 폭력을 중단할 권리를 노동자에게 주지 않는다.

시한폭탄 돌리기

매뉴얼상 전화를 끊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노동자는 전화를 쉽게 끊을 수 없다. 수희씨가 경고 조치를 하고 전화를 끊어도 대부분의 진상고객은 상담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엔 다른 노동자가 그 고객의 전화를 받게 된다.
 
경고 조치를 하고 전화를 끊어도 대부분의 진상고객은 상담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엔 다른 노동자가 그 고객의 전화를 받게 된다.
 경고 조치를 하고 전화를 끊어도 대부분의 진상고객은 상담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엔 다른 노동자가 그 고객의 전화를 받게 된다.
ⓒ @call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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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고객의 목표는 자신의 분을 푸는 것이기 때문에, 분이 풀릴 때까지 전화를 해요. 이틀 동안 전화한 사람도 있어요. 첫날 전화해서 문의한 것을 다음 날까지 이어서 계속 전화를 하는 거죠. 내가 마무리를 하지 않으면 랜덤(무작위)으로 다른 동료들에게 전화가 계속 꽂히게 돼요. 시한폭탄 돌리기를 하게 되는 거죠."

진상고객의 요청 사항을 해결하는 사이에도 전화는 계속 울린다. 다시 전화를 드리겠다고 안내해도 막무가내다. 분노에 찬 고객은 폭언으로 상담을 시작한다. 몇 명의 상담사가 고객 한 사람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 진상고객이 다른 상담사와 통화 연결이 될 때마다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콜이 발생한다. 그래서 진상고객 롱콜(상담이 길어지는 콜)이 끝나면, 인바운드콜을 누르고 대기 중인 노동자들은 두려움까지 느낀다고 했다. 상급자도 상담사가 롱콜을 받을 때는 곁에 오지 않는단다. 진상고객을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다.

"형식적인 매뉴얼은 있지만 회사는 진상고객의 상담을 거절하지는 못하게 해요. 결국은 노동자들에게 견디라고 하는 거예요. 달래든 사과를 하든 진상고객을 처리하는 것은 대부분 전화를 받은 상담사의 몫이 되는 거죠. 우리는 방패막이예요."

진상고객이 원하는 것

어느 날 수희씨는 매뉴얼에 없는 내용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는 전화를 받았다. 수희 씨는 매뉴얼대로 고객 응대를 진행했고, 그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담이 진행되지 않자 분노했다. "똑바로 안 하느냐"는 말과 함께 1월부터 12월까지 편성된 시간표를 모조리 불러줄 것을 요구했다. 수희씨가 시간표를 모두 불러주는 데에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심박수가 너무 높아져 차고 있던 디지털 손목시계에 경고등이 떴다. 그날 처음으로 전화를 끊고 바로 신경정신과를 예약했다.

"전화를 끊고 상급자에게 보고를 하러 가야 하는데, 일어나면 바로 쓰러질 것 같았어요. 이러다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그날 처음 했어요."

의사에게 또 그런 전화가 올까 봐 생기는 공포감을 상담했고, 심장박동 수가 높아지는 것을 방지하는 상비약을 처방받았다. 그러나 그 치료마저도 꾸준히 받지는 못했다. 비용을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해서다. 회사는 노동자가 겪는 폭력을 회피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모두 노동자에게 전가한다. 심지어 이런 통화 뒤 휴식 시간도 보장하지 않는다. 상급자들도 윗사람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진상고객 전화 후에 노동자들에게 휴식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상급자들에게도 없어요. 전화가 밀리면 그 책임을 상급자가 져야 하니까 '고생했다' 정도만 얘기하고 끝이에요."

그는 진상고객이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복종'이라고 단언했다. 심지어 상담 전, '욕설을 하면 전화를 끊을 수 있다'는 안내 멘트가 기분 나쁘다며 항의하는 고객도 많단다.

"내가 기분이 나쁜데, 욕을 못 하면 어디다 욕을 하느냐고 다짜고짜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아요. 상담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상담사에게 함부로 대하면서 자기 우월감을 확인하는 사람들이죠."
 
콜센터 노동자들은 고객이 아무리 성희롱을 해도 전화조차 마음대로 못 끊는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고객이 아무리 성희롱을 해도 전화조차 마음대로 못 끊는다.
ⓒ @call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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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회사는 고객에게 다 맞춰줄 것을 노동자에게 요구한다. 나는 '복종'의 내용을 노동자에게 구체적으로 강요했던 한 콜센터 하청업체를 안다. A가 다녔던 업체다. 그곳의 매뉴얼에 따르면 노동자는 고객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때마다 "감사합니다"라고 답해야 하고, 고객이 폭언을 퍼붓는 와중에도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혹은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라고 해야 한다. 그 업체는 이런 말들을 '쿠션어'라고 불렀다.

그 말을 어떻게 부르건 간에 이 모든 과정은 진상고객에게 받는 노동자들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함이 아니다. 폭력을 행사하는 고객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분노한 고객이 진정될 때까지 '쿠션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업체는 노동자의 평가 점수를 깎았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희씨를 비롯한 콜센터 노동자들은 여전히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고객의 폭력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최종적으로 고객들은 원하는 것을 다 얻어요. 자기가 진상짓을 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는 걸 그 사람들도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거예요."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에서 폭력은 형태만 달라질 뿐 지속된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코로나19와 고용불안

수희씨가 있는 사업장에는 아직 확진자가 없다. 그러나 다른 사업장에는 계속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불안은 높아지지만, 그 사업장의 노동자에게 어떤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지를 알 길이 없다. 수희씨가 일하는 곳에는 노조가 없어서 타 사업장 노동자들과 소통할 방법도 없다. 불안감만 높아질 뿐이다.

수희씨는 코로나19 재난 상황이 시작되자마자 무급휴가를 강요받았다. 회사 사정에 맞춰 한 달 급여가 거의 절반으로 반토막 났다. 코로나19에 대한 회사의 유일한 대비책은 무급휴직 강요였다. 이제는 마스크 가격이 낮아져 마스크를 하루 한 장씩 주지만, 처음엔 그마저도 제공하지 않았다. 수희씨는 자신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면 회사가 자신을 가차 없이 해고하겠다는 것을 직감하였기 때문에 홀로 감염의 위험과 싸워야 했다.

"마스크를 쓰고 일하다 보면 입이 너무 많이 건조해요. 그래도 감염 두려움이 크니까 꼭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하죠."

코로나19로 높아진 고용불안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느냐 묻자 그는 대답했다.

"회사는 저를 언제든 버릴 수 있다는 태도로 대하잖아요. 이제는 저도 언제든 여기를 떠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어요."

하청 여성 노동자들은 늘 회사의 해고 위협에 시달리지만, 한편으로 직장갑질과 회사가 견디도록 한 진상고객의 폭력에 노동자 스스로 대응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 역시도 '퇴사'뿐이었다.

사회가 콜센터 여성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

항공업계 콜센터에 전화하는 고객은 콜센터 노동자가 승무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수희씨는 사회가 승무원에게 덧씌우고 강요하는 여성성이 콜센터 노동자가 겪는 폭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진상고객의 70% 이상이 남성이라는 것도 그 생각을 뒷받침한다.

"승무원에 대한 왜곡된 여성상 있잖아요, 항상 친절하고 배려심 넘치고 무조건적으로 상대를 이해해야 하는. 그게 콜센터 노동자들에게도 요구되는 경향이 있어요."

그는 이 모든 것이 여성성을 강요하는 사회구조의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콜센터 일을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내게 콜센터 일을 하고 싶어서 들어오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해요. 아무리 일을 해도 급여가 오르지 않고, 늘 최저임금밖에 못 받으니까요."

폭력을 일상으로 감수할 만큼 급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다, 생활고와 고용불안으로 인생 계획을 세울 수가 없는 것이다.

"왜 콜센터 상담사의 대부분이 여성인지를, 왜 사장이나 원청에서 내려보내는 관리자들이 다 남성인지를 생각해봐야 해요. 사회구조적인 문제잖아요. 그런데 그런 힘든 일을 하는 것은 네 노력이 부족한 탓이고, 순전히 네 선택인데 그걸 왜 국가나 사회가 책임져야 해? 그렇게 물어보면 어떤 답을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수희씨는 자신이 겪는 이 과정들이 부당하고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고 했다.

"여성들이 나를 동등한 인간으로 봐달라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저는 그 말이 제일 하고 싶어요. 수화기 너머 전화를 받는 사람이 자신과 동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함부로 하지 않겠죠. 저는 콜센터 노동자들을 동등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고 봐줬으면 좋겠어요."

그와 나눈 두 시간여의 인터뷰가 너무 짧다는 생각을 했다. 여성들은 서로의 삶을 통해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 그와의 대화도 그러했다. 이 인터뷰가 끝나면 나와 그는 또 각자의 현장에서 투쟁하고 있겠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다시 나누지는 못할 것이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그는 엘지트윈타워 여성 청소노동자 투쟁에 돈을 보냈다고 내게 말했다. 그는 인터뷰 시작 전 내가 그 투쟁 현장에 함께하고 있다고 한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여성에게 부당하게 강요되는 이 폭력적 구조를 바꾸고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 만날 수 없을 것 같지만 어디서든 만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어디서든 다시 만나요. 우리 꼭 다시 만나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혜정은 기록노동자로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집행위원이다. 〈포이동 이야기-아무도 모르는 마을〉로 2012년 제20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했다. 공저한 책으로 <포이동 이야기>, <얼굴들>이 있다. <말과활>, <삶이 보이는 창>, <시민교육>,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다음카카오 스토리펀딩> 등에 노동과 삶에 관한 르포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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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에서 조직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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