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을 연출한 김성호 감독.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을 연출한 김성호 감독. ⓒ 넷플릭스

 
시작은 김새별 작가의 에세이집이었다. 유품정리사의 이야기를 다룬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모티브로 윤지련 작가와 김성호 감독이 의기투합했고, 그 결과물이 넷플릭스 드라마로 탄생해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산업재해, 고독사, 데이트 폭력 등 우리 사회 구석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는 비극과 그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 드라마는 특유의 화법으로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그 특유의 화법은 김성호 감독의 의도였다. "실제 에세이를 봤을 땐 사실을 적은 거라 감정 기복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는데 드라마로 만들게 되면서부턴 담담하게 전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는 말처럼, 그는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에 진정성과 담담한 자세를 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드라마가 넷플릭스에 공개된 직후 온라인 인터뷰 형식으로 김성호 감독을 만나 얘길 더 들어봤다.

감독의 고민들

대도시와 고독사 문제. 김성호 감독은 윤재련 작가와 함께 이 부분에 집중했다. "단절된 채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현대사회 대도시의 분위기를 담으려 했다"며 김성호 감독은 "이미 작가님께서 오랜 기간 준비해 오셨고, 넷플릭스 또한 창작의 자유를 열어주셔서 한계를 느끼지 않고 마음껏 연출할 수 있었다"고 운을 뗐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고독사라고 생각했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돌아가시는 분들 이야기를 접하면서 제가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프리 프러덕션 단계 때 관련 자료나 뉴스를 많이 찾아봤다. 쪽방촌, 고시원 등에서 벌어진 이야기, 사진도 많았고 기획 기사들도 많았다. 다만 단순히 그걸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분들이 처한 사회적 문제를 전달하고 싶었다.

다만 그게 주장이나 자극적 외침이 되지 않길 원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주변을 좀 더 돌아보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자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파로 가는 것을 경계하며 담담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각종 사회 문제가 등장하지만 누군가 잘못했고, 특정 누군가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긴 원치 않았다. 사회 문제이고 구조의 문제잖나. 이걸 개인의 잘못으로 돌릴 수는 없겠더라."


최근 블랙 히어로, 즉 악을 악으로 갚는 캐릭터가 중심인 드라마가 연이어 등장하는 흐름이다. <무브 투 헤븐>은 그와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같은 사회문제라도 담백하고 진정성 있게 전하고자 하는 게 감독의 목표였던 것이다. 김성호 감독은 "물론 공분을 들게 하는 연출로 유혹이 있을 순 있고, 코로나19 유행이 길어지면서 대중 또한 강렬한 복수극에 환호하는 경향은 있는 것 같다"면서도 "우리 드라마는 잠시나마 주위를 돌아보고, 우리가 지나쳤던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안아줄 수 있는 이야기였으면 했다"고 답했다. 
 
'무브 투 헤븐' 가족사진처럼 홍승희, 탕준상, 이제훈 배우와 김성호 감독이 12일 오전 비대면으로 열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무브 투 헤븐>은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유품정리사와 그의 후견인이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마지막 이사를 도우며 그들이 미처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남은 이들에게 대신 전달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 '무브 투 헤븐' 가족사진처럼 홍승희, 탕준상, 이제훈 배우와 김성호 감독이 12일 오전 비대면으로 열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무브 투 헤븐>은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유품정리사와 그의 후견인이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마지막 이사를 도우며 그들이 미처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남은 이들에게 대신 전달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 넷플릭스

 
배우들 조합 또한 감독입장에선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극 중 주인공 중 하나인 그루(탕준상)가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유품정리사고 전직 복서이자 도박꾼 상구(이제훈)가 합류하면서 일종의 시너지가 중요했는데 신인 배우와 경험 있는 배우들과의 합이 좋았다고 감독은 강조했다.

"제훈씨야 현장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고, 탕준상, 그리고 홍승희(극중 그루의 오랜 친구 나무 역) 배우는 신인이라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했다. 제훈씨가 그런 부분을 많이 맞춰줬다. 상구의 위치를 잘 잡아줘서 연출자로선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정도였다. 다른 두 배우 또한 주눅들거나 눈치 보지 않고 캐릭터에 심취해서 에너지를 많이 보여줬다.

특히 제훈씨는 상구의 머리 스타일, 의상 등을 직접 준비해서 만들어왔다. 그만큼 애정이 컸지. 준상씨 또한 리허설을 여러 번 하면서 아스퍼거증후군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아스퍼거증후군의 사례가 있는데 그루의 개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변화를 찾으려고 하더라."


"큰딸, 펑펑 울면서 드라마 모니터"

사회적 약자들의 죽음, 그리고 유품 정리사라는 소재 자체가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김성호 감독 또한 그 지점을 깊게 생각하고 있었다. 감독 스스로도 연출하면서 죽음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졌다고 한다. 익숙하지만 익숙해질 수 없는 것. 김성호 감독은 <무브 투 헤븐>을 연출하며 겪은 자신의 변화를 고백했다.

"친하고 가까운 사람이 돌아가시면 죽음이 더욱 크게 다가오기도 하는데 대부분 우리가 보는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는 죽음은 몸으로 느낄 순 없잖나. 이 드라마를 하면서 생각보다 죽음이 가까이에 있고, 생활 일부라고 느끼게 됐다. 유품 얘길 하다 보니 평소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더라. 평소에 알고 지내는 사람들, 친구, 가족에게 더 관심 갖고 눈빛을 건네고, 이야기하는 게 중요할 것 같더라.

제가 딸이 둘인데 큰딸이 드라마 편집본을 보면서 대성통곡을 했다. 아이에게 진심이 전달됐다면 장르가 무엇이든 그건 큰 문제가 안 되겠구나 싶었다. 또 영화가 아닌 넷플릭스라서 부모님께도 보실 수 있게 연결해드렸는데 너무 좋다고 연락이 와서 뿌듯했다. 전 세계에서 여러 리뷰가 올라오고 있다. 드라마를 보고 옆에 있는 엄마를 꼭 안아줬다는 리뷰도 기억에 남는다."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 넷플릭스

 
공포 영화 <거울 속으로> 이후 그는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까지 극단의 장르를 오가며 보폭을 넓혀오고 있다. 영화감독의 드라마 연출이라 그런지 긴 호흡 안에서도 장르성과 캐릭터성에 고민을 크게 한 흔적이 느껴진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굿바이>가 떠오르기도 한다. 김성호 감독은 "이 드라마를 하면서 참고한 작품은 없지만, <굿바이> <스틸라이프> 등 평소 좋아하는 작품들이 있는데 진심을 전달하는 측면에서 아마 알게 모르게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 말했다.

"사실 장르는 가리지 않는다. 데뷔작이 공포 영환데 판타지에 가깝다. 흥미롭고 신선하다고 생각하면 하는 것 같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또한 가슴 따뜻한 한국형 가족 이야기가 당시엔 없어서 했던 거다. 기존 걸 재생산하는 아류보단 뭔가 더 신선한 걸 할 수 있다면 도전하고 싶다. 그 신선함 안에서 진정성을 담는 것에 욕심이 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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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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