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천재감독 브라이언 싱어에 의해 부활한 <슈퍼맨 리턴즈>는 기대만큼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초라하게 사라졌다. 특히 슈퍼맨의 상징 고 크리스토퍼 리브와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였던 슈퍼맨 역의 브랜든 루스는 <슈퍼맨 리턴즈> 이후 슈퍼맨 캐릭터와 이미지에 갇혀 배우로 크게 뻗어나가지 못했다. 결국 루스는 <저스티스 리그>에 합류하지 못하고 드라마 <DC 레전드 오브 투모로우>에 출연했다(그나마 슈퍼맨 역도 아니었다). 

호주 출신의 배우 휴 잭맨 역시 <엑스맨> 시리즈의 울버린으로 익숙한 배우다. 울버린 캐릭터에 다른 배우를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휴 잭맨은 울버린을 상징하는 배우가 됐다. 하지만 휴 잭맨은 <엑스맨> 외에도 <프레스티지>, <리얼 스틸>, <레미제라블> 등 히트작들이 수두룩하다. 휴 잭맨은 2017년 <로건>을 끝으로 울버린 캐릭터를 내려 놓았지만 그것이 배우 휴 잭맨의 입지에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이렇듯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은 캐릭터에 몰입했던 만큼 그 캐릭터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다이하드> 시리즈의 존 맥클레인 형사라는 확실한 대표작과 캐릭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식스센스>라는 미스터리 공포물을 크게 히트시켰던 브루스 윌리스는 상당히 영리하게 활동을 이어가는 배우다(모두가 다 아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식스센스>는 세계적으로 6억700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렸고 국내에서도 서울에서만 80만 관객을 동원했다.

<식스센스>는 세계적으로 6억700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렸고 국내에서도 서울에서만 80만 관객을 동원했다. ⓒ 브에나비스타

 
아동 심리학자가 된 액션 전문 배우

미국에서는 아카데미 시상식 하루 전날 '최악의 영화'를 선정해 발표하는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이 열린다. 브루스 윌리스는 악명 높은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최악의 남우주연상 후보에 5번이나 올라 2번이나 수상의 영예(?)를 안은 배우다. 반면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후보에도 한 번 이름을 올린 적이 없다. 이는 브루스 윌리스가 철저히 대중지향적인 영화에만 출연하는 배우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브루스 윌리스라는 배우를 상징하는 영화와 캐릭터는 역시 <다이하드> 시리즈의 존 맥클레인 형사다.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은 낡은 민소매 티셔츠 등으로 대표되는, 동료 경찰에게조차 신뢰받지 못하면서도 혈혈단신으로 위험에 뛰어 들어 수많은 목숨을 구해내는 대표적인 서민 히어로다. <다이하드> 시리즈는 25년 동안 총 5편이 제작돼 세계적으로 14억33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출연했다 하면 흥행이 보장되는 시리즈의 대체불가 캐릭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브루스 윌리스는 부지런히 영화를 찍었다. 가족 코미디 <마이키 이야기>부터 액션물 <마지막 보이스카우트>, 범죄 드라마 <펄프 픽션>, 에로틱 스릴러 <컬러 오브 나이트>, SF액션 <제5원소>, 재난 영화 <아마겟돈>까지 손에 꼽기 힘들 만큼 장르도 다양했다. 하지만 브루스 윌리스에게 역대 최고의 흥행을 안겨준 작품은 바로 미스터리 호러 장르의 <식스센스>였다.

인도계 미국인 감독 M. 나이트 샤말란의 <식스센스>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기존의 거친 마초 이미지를 깨고 지적인 아동 심리학자 말콤 크로우를 연기했다. 브루스 윌리스와 천재 아역배우 할리 조엘 오스먼트가 발군의 연기호흡을 보여준 <식스센스>는 충격적인 반전을 선사하며 북미 2억9300만 달러, 세계적으로는 6억7200만 달러라는 흥행성적을 올렸다. 이는 <다이하드>와 <아마겟돈>을 능가하는 브루스 윌리스의 최고 흥행 기록이다.

1998년 <아마겟돈>과 1999년 <식스센스>를 통해 놀라운 티켓파워를 과시한 브루스 윌리스는 2000년대 이후엔 과거와 같은 흥행파워를 보여주진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언브레이커블>과 <호스티지>, <씬 시티>, <익스펜더블> 시리즈, <레드> 시리즈 등에서 노익장을 과시했다. 브루스 윌리스는 올해도 인류가 우주를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는 2524년을 배경으로 한 SF 액션 영화 <코스믹 씬>에 출연했다.

충격적인 반전 속에 숨은 소년의 성장과 가족애
 
 액션전문배우 브루스 윌리스는 <식스센스>에서 지적인 아동심리학자로 변신했다.

액션전문배우 브루스 윌리스는 <식스센스>에서 지적인 아동심리학자로 변신했다. ⓒ 브에나비스타

 
<식스센스>는 <유주얼 서스펙트>와 함께 충격적인 반전으로 유명한 영화다. 1999년 <식스센스> 개봉 당시에는 극장 앞에서 반전 내용을 외쳤던 '실존 스포일러'가 존재했다는 괴담이 있었을 정도. <식스센스> 이후 반전을 키워드로 하는 영화들은 하나같이 "<식스센스>를 능가하는 최고의 반전"이라는 카피 문구를 내세웠다(물론 그렇게 광고하는 영화 중에서 <식스센스>를 능가하는 반전을 가진 영화는 거의 없었다). 

<식스센스>를 만들기 전까지 무명에 가까웠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식스센스> 한 편으로 일약 천재 감독으로 떠올랐다(<식스센스>의 각본 역시 샤말란 감독이 직접 쓴 것이다). 하지만 <식스센스>의 대성공 이후 관객들의 관심은 오로지 반전에만 쏠렸고 이는 샤말란 감독에게 독으로 작용했다. 결국 샤말란 감독은 차기작인 <싸인>과 <빌리지> 등이 쏠쏠한 흥행성적을 올렸음에도 '반전이 약하다'는 혹평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식스센스>는 단순히 반전영화로만 치부하기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따라서 반전의 핵심을 알고 감상해도 색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콜(할리 조엘 오스먼트 분)은 귀신을 무서워 하다가 말콤(브루스 윌리스 분)의 도움으로 귀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콜이 소녀 귀신을 죽게 한 계모의 비밀을 밝혀내는 장면은 슬프면서도 묘한 통쾌함마저 느껴진다.

콜을 그저 유별난 아이 정도로만 생각하던 엄마(토니 콜렛 분)는 후반부 콜과의 차 안 대화를 통해 비로소 아들의 비밀을 알게 된다. 콜은 직접 듣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할머니와 엄마의 어릴 적 추억을 정확히 이야기하고 엄마는 그제서야 콜의 이야기를 믿을 수 있게 됐다. 부모와 자신 간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장면으로 사실 <식스센스>는 부모와 자식이 함께 보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는 영화다.

아쉽기만 한 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역변
 
 세기말 최고의 아역배우 할리 조엘 오스먼트는 할리우드의 '아역배우 징크스'를 넘지 못했다.

세기말 최고의 아역배우 할리 조엘 오스먼트는 할리우드의 '아역배우 징크스'를 넘지 못했다. ⓒ 브에나비스타

 
<식스센스>의 제작비는 4000만 달러였다. 물론 400억 원이 넘는 돈이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할리우드의 영화 시장 규모를 생각하면 4000만 달러의 제작비는 그리 많은 액수가 아니다(<어벤져스 : 엔드게임>의 제작비는 3억56000만 달러였다). 두 주연배우의 대화가 영화의 핵심이라 애초에 많은 제작비가 필요 없었지만 주연배우로 슈퍼스타 브루스 윌리스를 캐스팅했기 때문에 나머지 배역에는 무게감 있는 배우들을 쓸 수 없었다.

귀신을 보는 아들 콜의 정신질환을 의심하는 엄마 역의 토니 콜렛은 2002년 <어바웃어보이>에서 우울증에 걸린 니콜라스 홀트의 엄마를 연기했던 배우다. 말콤 박사의 아내 역으로 나오는 올리비아 윌리엄스는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에서 선생님으로 나온 바 있고 2011년에는 <유령작가>로 런던 비평가 협회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 목소리 연기 등 다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죽은 사람이 보여요(I See Dead People)"라는 희대의 명대사를 남긴 콜 역의 할리 조엘 오스먼트는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을 주름 잡았던 천재 아역배우다. 2001년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 A.I >에서 인공지능 로봇 데이빗을 연기해 새턴 어워즈에서 신인 배우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오스먼트는 2006년 마약소지 및 음주운전혐의로 체포되는 등 할리우드 아역 배우들의 '역변 징크스'를 피해가지 못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자신이 연출한 영화에 직접 출연하기로 유명하다. 인도에서 만들었던 초기작 <분노를 위한 기도>에서는 직접 주연을 맡기도 했고 <식스센스>를 비롯해 <언브레이커블>, <싸인>, <빌리지>, <라스트 에어벤더>, <23 아이덴티티>에서도 단역으로 출연했다. <식스센스>에서는 영화 중반부 콜의 엄마와 상담하는 정신과 의사로 잠깐 등장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식스센스 브루스 윌리스 M. 나이트 샤말란 할리 조엘 오스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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