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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전 국민의 공분을 산 이른바 '도가니' 사건이 영화를 통해 알려진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일들이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해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회에 걸쳐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어떤 일들이 발생했는지 왜 인권침해가 반복되고 있는지 문제점을 짚고 대안을 찾아봤습니다. [편집자말]
 
신아재활원 인권침해 해결 및 긴급탈시설 이행 촉구 농성선포 기자회견
 신아재활원 인권침해 해결 및 긴급탈시설 이행 촉구 농성선포 기자회견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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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 장애인(거주인)에 대한 인권 침해 (제압복, 귀잡아당김, 끈으로 묶는 행위, 폭행) : 시설장 교체
2015년 3월 - 비지정후원금· 법인전입금(후원금)으로 시설에서 수당신설(증액) 지급 : 개선명령
2016년 11월 - 시설운영회 미운영  : 개선명령
2017년 12월 - 장애인(거주인)에 대한 인권침해 (정신과약물 부적절 관리·처방 없는 임의 투약, 시건(잠금)장치가 설치된 방에 장애인(거주인) 감금) : 시설장 교체
2020년 5월 - 장애인(거주인)에 상습적인 폭행·폭언 등 인권침해 : 시설폐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경기도 가평군에 위치한 중증장애인거주시설인 '루디아의 집'이 인권침해, 보조금 횡령 등으로 처음 문제가 된 건 2014년이었다. 당시 가해자들은 벌금 300만 원 선고받고, 루디아의 집은 1차 행정처분(시설장 교체)을 받았다.

시설장이 바뀌어도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1차 행정처분을 받은 지 3년만인 2017년, 이번에는 장애인을 감금하고 이들에게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루디아의 집 종사자인 가해자들은 약식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고 시설은 2차 행정처분을 받았다.

이후 루디아의 집은 지난해(2020년) 5월, 폐쇄 명령을 받았다. 시설에서 첫 인권침해가 발생한 지 6년, 두 번째 인권침해가 발생한지 3년만이었다. 당시 루디아의 집 특별조사단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에서 활동한 조아라 활동가는 "처음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시설이 폐쇄 됐어야 한다"면서 "지자체의 강력한 조치가 있었다면, 적어도 장애인들이 수년간 맞고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 때려도... 3번의 기회 주어진 시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5개 단체가 지난 9일 서대문 경찰청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침해 특별수사본부'를 만들라고 요구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5개 단체가 지난 9일 서대문 경찰청 앞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침해 특별수사본부"를 만들라고 요구했다.
ⓒ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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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혜강행복한집' 역시 총 3차례의 행정처분을 받는 동안 인권침해가 재발했다. 시설의 행정처분 권한을 가진 광역지자체가 '낮은수준의 처분'으로 장애인 인권침해를 외면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혜강행복한집은 2018년 장애인 폭행 사건·비리가 폭로된 후 2019년 2월 1차 행정처분(개선명령)을 받았다. 이후 검찰 조사에서 혜강행복한집의 원장이 장애인을 폭행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고, 같은해 (2019년) 시설은 '시설장 교체'라는 2차 행정처분을 받았다. 

3차 행정처분인 시설장교체는 지난해(2020년) 혜강행복한집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가 장애인 두 명을 폭행한 사실이 알려진 후에야 이뤄졌다. 이마저도 시설폐쇄가 아닌 시설장교체라 혜강행복한집은 운영을 계속할 수 있었다. 

장애인거주시설의 행정처분은 보통 장애인복지법 제62조(시설의 개선, 사업의 정지 폐쇄 등)와 사회복지사업법 제40조에 따라 이뤄진다. 두 법 모두 장애인복지(거주)시설이 일정 수준의 환경·조건을 갖추지 못할 경우 장애인복지실시기관(광역지자체)이 '시설의 개선, 사업의 정지, 시설의 장의 교체를 명하거나 해당 시설의 폐쇄를 명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문제는 광역지자체의 의지에 따라 행정처분의 수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제44조의6(별표5의5)은 7가지의 위반행위를 언급하며 '이에 따라 ▲개선명령 ▲시설장교체 ▲시설폐쇄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시설 이용자에 대한 부당한 체벌, 폭행, 학대 등 인권침해가 발생한 경우'도 여기에 속한다. 시행규칙은 1차·2차·3차 행정처분을 분류해놨지만 이는 권고사항일 뿐, 지자체는 마음만 먹으면 1차에서 가장 높은 처분 수준인 '시설폐쇄' 조치를 내릴 수 있다.

김남희 서울대 로스쿨 임상교수(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시행규칙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광역지자체가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1차 행정처분에서 시설 폐쇄를 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지난해(2020년) 경기 평택의 미신고 장애인 시설인 '평강타운'에서 한 활동지원사가 발달장애인을 떄려 숨지게 한 사건 후 유족을 대신해 2월 시설장, 정부, 평택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김 변호사는 "소송을 준비하며 다른 시설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례를 많이 찾아봤다"면서 "대부분의 지자체가 문제가 된 장애인거주시설에 낮은 수준의 행정처분을 내렸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설폐쇄를 명령한 몇몇 지자체의 경우 시설장으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면서 "시설장들은 지자체가 재량권을 남용해서 (시설장의) 영업권을 침해했다고 소송하는데, 지자체로서는 많이 부담스러울 거다. (지자체의) 행정처분 수위가 낮은 데에는 이런 상황도 영향을 미칠 것"라고 부연했다.

"시설에 있으면 계속 맞는다"
 
왼쪽부터 장경태 의원, 장혜영 의원, 최혜영 의원이 탈시설지원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경태 의원, 장혜영 의원, 최혜영 의원이 탈시설지원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최혜영 의원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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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막을 수 있는 해법은 무엇일까.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행정처분을 내리는 게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 TF에 참여한 염형국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장애인거주시설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 폐쇄적인 환경에 놓인 시설이 인권침해의 근본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장애인들은 보통 외곽에 위치한 시설에서 고립된 채 시설장, 직원 등 위계관계가 명확한 사람들과 함께 산다"면서 "시설장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데, 폭력을 당한 장애인은 이런 사실을 말할 데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시설에 있는 대부분의 장애인도 본인이 원해서 시설에 들어간 게 아니다"라며 "장애인이 사람답게 살려면,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 안착해 살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75개 시설의 거주장애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생활인 실태조사'를 보면, 장애인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입소한 비율은 14.3(214명)%에 그쳤다. '스스로 입소를 결정했다'고 응답한 이들의 14.4%(95명)은 '가족들이 나를 돌볼 수 있는 여력이 없다'라고 응답했다. 장애인들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시설을 택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국회 역시 '탈시설'에 주목했다. 2020년 12월 10일 국회의원 68명이 탈시설지원법을 공동 발의했다. 이 법안은 시설에 거주하는 모든 장애인이 10년 내에 탈시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발의에 참여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 관계자는 "모든 시설이 문을 닫는 게 장애인의 인권을 지키는데 유일한 해법"이라며 "장애인 자립주택 등 지자체가 나서서 장애인들이 시설 바깥에서 안전하게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혼자 사는 지금이 너무 좋아요. 아무도 나를 안 때리고 괴롭히지 않아요. 잠도 내가 졸릴 때 잘 수 있고, 밥도 내가 먹고 싶을 때, 배탈 안나는 걸로 먹을 수 있어요. 밖에 나가서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어요. 거기(벧엘의 집)는 싫어요. 지금이 좋아요."

벧엘의 집에서 10여년 폭행과 괴롭힘, 성적 추행을 당한 박아무개(51)씨는 탈시설 후 전주에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다. "혼자서 처음 살아본다"는 그가 <오마이뉴스>와 네 차례 통화하며 처음으로 웃으며 한 말은 '탈시설' 이었다. 

태그:#장애인, #시설, #탈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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