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드라마 <달이 뜨는 강>은 최근 '한자 고증 논란'에 휩싸이며 제작진이 공식 사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30일 방송한 14회에서는 고건(이지훈)이 해모용(최유화)가 보낸 서신을 읽는 장면에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클로즈업으로 드러난 한자가 중국 본토에서 사용하는 간체자라는 지적이 나왔다.

간체자는 중국에서 1950년대부터 복잡한 자국의 한자 점획을 간단하게 변형시켜 만들어 낸 수정문자로 당연히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달이 뜨는 강>에 등장하는 것은 시대 고증에 맞지 않는다. 제작진 측은 "해당 장면에서 고증의 실수가 있었다. 시청자들께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앞으로 VOD나 재방송 등에는 해당 장면을 삭제 편집하겠다고 약속했다.

하필 역사 고증 논란이라 더 아쉬운 것은, 이 작품이 다름아닌 바로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고대 동북아의 강국으로서 오랫동안 중국의 침략에서 맞서 싸우며 한민족의 자존심을 지켰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고구려의 역사에 대한 왜곡은 중국이 지금도 적극적으로 추진중인 '동북공정'의 핵심 타깃이기도 하다. 중국은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흡수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해왔고, 한민족의 역사인 고구려와 발해사도 자신들의 소유로 편입시키려고 하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달이 뜨는 강>은 중국의 노골적인 고구려 역사 왜곡에 문화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컨텐츠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한류드라마의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달이 뜨는 강>은 190개국에 판권이 팔릴만큼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으며, 드라마의 오스카 시상식으로 불리우는 '국제에미상'에도 출품할 예정이다. 한국 역사에 대하여 전세계적으로 알릴 기회가 될수 있는 고구려 사극 드라마에서 뜬금없는 중국식 간체자의 등장은 그래서 더 논란이 된다. 

사실 얼핏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던 장면이지만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엄격해진데는 최근 국내 사극에 불고있는 역사인식과 고증에 대한 경각심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SBS에서 방영되었던 <조선구마사>는 엑소시즘 퓨전사극을 표방했으나 방송 2회 만에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이며 폐지되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

<조선구마사>는 시놉시스와 첫 회차부터 조선 건국과 로마 교황청의 연관성, 실존인물인 태종 이방원이 무고한 백성들을 잔혹하게 살육하는 장면, 노골적인 중국풍 설정과 소품 등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며 도마에 올랐다. 시청자들은 역사적 상상력과 재해석으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며 강하게 분노했고, 성난 여론의 압박에 당황한 기업들도 제작지원과 광고 등을 줄줄이 손절했다. SBS는 결국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방송폐지라는 결단을 내렸다. 제작진과 작가, 출연배우들은 성난 여론의 질타에 잇달아 공개사과하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올해 초 종영한 tvN 드라마 <철인왕후> 역시 <조선구마사>의 역사왜곡 논란과 더불어 재조명받았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타임슬립물인 <철인왕후>는 방영 당시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을 "한낱 지라시"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국가 무형 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악을 희화화하는등 한국 전통문화유산을 비하하는 내용으로 비판을 받았다.

퓨전사극이니 역사적 상상력이라는 출구를 내세워 잘못된 역사관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 과연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이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몇 년간 제작비와 시청률 등의 문제로 정통사극 제작이 난항을 겪으며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좀더 가볍고 자유롭고 역사적 소재를 재해석한 작품들이 사극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퓨전이라고 해서 기본적인 고증이나 역사관 자체를 아예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시청자들의 요구라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물론 일각에서는 자칫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오늘날 시청자들의 역사적 지식 수준이나 드라마 완성도를 따지는 눈높이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제작진과 배우 등 업계 종사자들도 그에 걸맞은 최소한의 역사인식과 책임감을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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