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JTBC 예능 프로그램 <싱어게인> TOP3에 오르면서 활발히 활동 중인 음악인 이승윤. <싱어게인> 출연 전, 어렵게 방구석 문을 열고 나온 그가 주로 활동했던 곳은 인디 음악 신(Indie Scene)이었다. 진정성 있는 노래를 지어 세상에 내놓았지만, 음원 수익은 작은 캐러멜을 살 수 있는 정도였다. 공연장은 직접 발로 뛰어 찾아다니며 요청해야 작은 무대에라도 설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언제든 다른 가수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꿋꿋이 자작곡을 부르면서도 커버곡을 요구받았던 음악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사활을 걸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공연을 했다. 지역문화진흥원의 청춘마이크 사업 등에 참여하여, 각 지역 문화행사와 기획 공연, 야외 버스킹 등을 통해 쉼 없이 노래했고, 팟캐스트 라디오에도 활발히 출연했다. 원하는 만큼의 악기와 시스템을 갖춘 라이브를 구현할 수 없는 환경에서 기타를 들고 솔로 활동을 하던 중 알라리깡숑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꾸준히 음악 활동을 했다. 
 
경연 우승자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싱어게인> 경연 중 큰 화제가 되었던 '치티치티뱅뱅' 무대 심사 중, 유희열 심사위원은 "여태 왜 안 됐는지는 잘 알겠어요"라고 했다. "안 됐다, 지금까지의 활동이 잘 안 풀렸다"라는 표현에 담긴 일방적 잣대에 마음 아프다. 어쨌든 방송 후 많은 음악 팬들이 이승윤의 여러 음원을 듣고 있고, 경연 무대뿐 아니라 그의 뚜렷한 세계관과 다양한 색채가 담긴 곡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여태 왜 안 됐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싱어게인> 출연 전까지 다수의 대중 앞에 노출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72호 음악인들이 각자 자기 색을 가지고 다양한 음악을 하고 있는데, 여전히 대중음악계는 대형 자본이 투입되는 방향에만 편중되어있다. 
  
이승윤은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곡 소개에 이렇게 적었다. '심지어 제 음악에도 약간의 좋은 부분이 있다면, 조명을 비추기만 해도 멋지게 빛날 수많은 72호 가수들이 화면 밖에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운이 좋은 제가 주단을 깔고 미리 여기 있겠습니다.' 평소 인터뷰 등에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뉘앙스를 최대한 적확한 언어로 잘 전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한쪽으로 단정 짓는 화법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 '확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인디신 안에서조차 마이너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분명한 목적성을 가지고 동료들에게 주단 무대를 헌정한 것이다.

그는 최종회 우승 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SNS를 통해 72호 음악인 동료들의 여러 음원을 대중에게 소개했다. 이후 최근의 활동 과정에서도 어디서든 언급할 기회만 생기면 동료들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의 기타에 붙은 수많은 스티커에는 동료들을 향한 연대와 응원의 의미가 담겨있다. 혼자만 잘 되기보다는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가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느껴진다.
  
 경쟁 구조의 경연 무대에서 동료들을 향한 헌정 무대를 꾸민 이승윤.

경쟁 구조의 경연 무대에서 동료들을 향한 헌정 무대를 꾸민 이승윤. ⓒ JTBC

 
그러나 한쪽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등장한 찐 무명 가수에게 열광하며 유튜브 클립 영상조회 수가 몇백만 단위로 폭발하는 와중에도, 다른 한쪽에서는 공연장들이 코로나 시국을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폐업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싱어게인>을 통해 이승윤에게 쏟아지는 큰 관심에 비해, 그가 주로 활동했던 인디신에 대한 관심은 아직 크게 폭발하지는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음악 시장에 다양한 색채와 감성이 부족하다 떠드는 대중들이, 경연 참가자들을 보며 충족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요즘의 음악이 예전 같은 감수성을 잃어버렸다 한탄할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닐까.
 
유희열 심사위원은 "자기 얘기를 담고자 하는 가수에게 정말 필요한 건 스타가 나오는 것이다. 한 명의 스타가 생태계를 만들고 신(Scene)을 만든다. 이 자리가 그러한 자리가 될지 모르겠지만, 승윤 씨가 그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승윤의 음악과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이 인디신 활성화의 중요한 계기나 새로운 방식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한 사람의 음악인에게 인디신 전체의 부흥이라는 큰 의무를 맡기는 것은 무리다. 이승윤 역시 인디신 필드에서 소수의 관객 앞에서 공연했던 음악인이며, 앞으로 계속 설 무대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한 사람의 싱어송라이터다. 그가 꾸준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무대를 지키고 생태계를 만드는 것은 이제 관객의 몫이 되었다.
 
인디신의 생태계를 만드는 방법  
 
큰 회사의 자본이 투입되지 않는 환경에서 공연하는 뮤지션 입장에서는, 고정 관객을 확보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공연 횟수와 질을 높여 입소문을 통해 관객을 늘려나가야 하는데, 대중의 입맛은 쉽게 변한다. 특히 경연 무대의 자극적인 순간들만 잠깐의 흥밋거리로 소비하고 곧 잊어버리는 다수의 대중을 공연장으로 이끄는 것은 더 어려운 문제다. 뮤지션을 위한 충분한 음향 시설을 갖춘 공연장들이 상시 대기 중인 것도 아니며, 각 뮤지션의 특성과 성향을 충분히 배려할 줄 아는 사운드 엔지니어가 항상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관객이 할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인에게 안정적이고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홍대 라이브클럽에서 여러 밴드가 차례로 공연을 하면 (인디신 관객들은 이를 '떼공연'이라 칭한다), 특정 팀을 보러 와 줄 관객이 최소 몇 명 이상 확보될지, 그리고 단독 공연에 와줄 수 있는 관객은 몇 명 정도일지의 수치를, 뮤지션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 데이터를 예상할 수 있어야, 이를 기반으로 공연을 준비하고 진행해나갈 수 있게 된다.
 
코로나 시대에 공연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관객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많다. 음악인 이승윤이 SNS에서 소개한 동료들의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SNS 계정을 팔로우하고, 공연 소식을 체크하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인디 공연장들은 온라인 소통 경로를 운영하고 있다. 온라인 공연을 관람하고, 공연장을 지키기 위해 자율기부 후원금을 보내는 일도 언제든 할 수 있다.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신청곡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관심을 두다 보면, 인디신의 동향과 흐름을 자연스럽게 읽게 된다. 음악인들은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는지, 최근 많은 음악인과 관객을 화나게 했던 '칠순 잔치' 발언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무대를 지키기 위해 어떤 움직임들이 이어지고 있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매년 홍대 인디신의 큰 축제로 열렸던 '경록절'은 올해에는 비대면 온라인 공연으로 송출되며 수많은 뮤지션이 참여했고, 지난 3월 8일부터 14일까지 열렸던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 온라인 공연 프로젝트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최근 정부는 공연업소에 대한 운영 재개를 허가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연 중단 강제집행이 있었고, 또 온라인 공연 영상 송출에는 매우 많은 리소스와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인디신이 어려운 행보를 계속 이어나가는 이유는, 음악인들과 공연장 관계자들에게 음악은 생계이자 직업이며, 관객들에게는 다양한 음악과 공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존과 예술은 분리할 수 없으며, 사람을 살게 하고 견디게 하는 것은 일상에서 느끼는 따뜻한 위로, 예술로부터 얻는 웃음과 낭만이다. 
 
음악인 이승윤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성을 지녔다. 우리는 '치티치티뱅뱅'의 편곡과 표현 방식이 특히 중·장년층의 마음에 불씨를 일으킨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승윤의 무대는 90년대 국내 음악 부흥기, 록 음악이 지금보다 훨씬 주목받던 시절을 경험한 중·장년층의 귀를 사로잡았다. 아티스트의 곧은 심지가 느껴지는 다양한 음악, 두고두고 꺼내 들을 가치가 있는 음악에 대한 향수와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무대에서의 태도 또한 록 스피릿 그 자체였다. 

그의 열성 팬이 된 많은 중·장년층 중에는 적극적 덕질 경험이 처음이라는 사람들이 많고, 인디 공연 문화도 처음 접한다는 반응들도 많이 보인다. 이제 이 화력을 72호 음악인들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인디신에서는 많은 온라인 공연들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온라인 공연으로 현장감이 느껴질지 우려할 수 있지만, 의외로 부담 없는 비대면 관람 형식은, 이런 문화를 낯설어하는 중·장년층에게는 어색함 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기존에 인디 공연을 익숙하게 즐기던 소수 마니아층의 전유물이 아닌, 여러 지역의 다양한 세대의 관객들이 진입장벽 없이 어우러져 즐길 수 있는 훌륭한 문화 콘텐츠인 것이다.
 
나만 아는 가수를 모두가 아는 가수로
 
이승윤이 속한 밴드 알라리깡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최근 이승윤이 인터뷰에서 한 말에 의하면, 알라리깡숑 멤버들은 다 싱어송라이터들이고, 각자의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인데, 솔로 활동으로 공연을 할 때 MR을 틀고 할 수 있는 공연 시스템이 작은 공연장에는 많지 않다 보니, 각자의 음악을 잘하기 위해서 모인 네 명이 서로의 음악을 위해 더 퀄리티와 규모를 키워서, 우리는 이런 음악도 한다고 보여주기 위해 결성한 밴드라고 한다. 조희원, 랑세, 지용희. 다들 음악 잘하는 사람들이니 이분들의 음악을 들어달라 당부했다.

멤버 조희원은 최근 SNS 라이브 방송에서, "어떻게든 저희 공연을 다 보게 해드리고 싶다"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현재 알라리깡숑 멤버들은 각자의 음악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음원 발매와 온라인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승윤의 활동 영역은 방송 쪽으로 옮겨졌지만, 인디 음악계와 이승윤과 알라리깡숑은 여전히 이어져 있고, 그가 앞으로 계속 설 무대를 지키려면, 관객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팬들에 의해 72호 음악인들이 더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게 된다면, 이승윤이 <싱어게인> TOP3 활동 이후 필드로 돌아갔을 때 계속 활발히 공연할 수 있고, 솔로활동 뿐 아니라 알라리깡숑 멤버로서 자유롭게 노래하는 그를 공연장에서 가까이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밴드 알라리깡숑. 왼쪽부터 조희원, 지용희, 이승윤, 랑세.

밴드 알라리깡숑. 왼쪽부터 조희원, 지용희, 이승윤, 랑세. ⓒ 알라리깡숑 인스타그램

 
음악인들이 꼭 오디션에 출연해서 커버곡으로 자신을 알리는 길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각자의 음악 자체로 주목받고, 음악 활동만을 전업으로 월세 걱정 없이 생계를 꾸려가는 것이 가능해지고,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인디신의 산업 구조가 만들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모든 음악인이 꼭 이름 알려진 큰 회사에 들어가거나 유명 작곡가와 함께 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음반 발매와 공연만으로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이제는 관객들이 만들어가야 한다. 음악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다. 음악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 어렵게 준비한 공연을 더 많은 이들이 감상해주는 것, 그리고 지금보다 많은 관심과 다양한 피드백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싱어게인>의 화려한 무대는 끝났지만, 대중음악의 다양성과 인디 음악계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과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승윤의 음악 세계는 한식과 양식, 일식과 중식이 잘 차려진 뷔페 밥상 같다. 그가 정성껏 차려놓은 애프터 밥상 앞에 앉아보자. 그가 자신 있게 소개하는 다른 음악인들도 조금씩 알아가보자. 취향과 감정의 변화에 따라 와닿는 음악들을 다양하게 들으며, 내 안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가는 선물 같은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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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오마이스타 창간 8주년 '내가 사랑한 캐릭터' 공모전에 재미로 참여했다가 얼결에 시민기자가 된 그냥 시민. 글이 지닌 공감과 연대의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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