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파더> 관련 이미지.

영화 <더 파더> 관련 이미지. ⓒ 판시네마

 
평온한 표정으로 잠에서 깨고 우아하게 음악을 틀며 아침을 맞이하려는 이 노인. 표정이 왠지 거북하다. 딸과 단둘이 산다고 믿었건만 웬 낯선 남자가 자신 앞에 앉아서 태연하게 신문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의 질문에 남자는 망설임 없이 딸의 남편이라 답한다. 노인의 표정은 더욱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영화 <더 파더>는 주인공 안소니(안소니 홉킨스)가 평생 일궈온 삶의 터전인 한 아파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80을 넘은 노인이자 두 딸을 둔 아버지로서 여생을 나름 불만 없이 보내고 있는 안소니는 어느 날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과 믿고 있던 가족이 자신의 기억과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사고로 죽었다는 둘째 딸을 자꾸 찾고, 첫째 딸 얼굴은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달라져 있다. 노인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일련의 사건을 제시하며 관객 또한 노인의 시점으로 현상을 바라보도록 한다.

영화는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했다. 극작가이자 <더 파더>로 영화 감독 데뷔를 알린 플로리안 젤러는 무대 공연과 차이를 두기 위해 오랜 아파트 공간 곳곳을 독립적으로 배치해서 관객에게 혼란을 주려 했다. 명쾌한 정보 없이 매일 달라지는 기억에 괴로워하는 안소니에게 보다 심리적으로 이입하도록 한 것이다.

본격 심리극을 표방했던 연극처럼, 영화 또한 노인의 각종 심리 변화를 끈질기게 쫓는다. 노인은 자신이 평생 번 돈으로 마련한 집이 알고 보니 딸의 집이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기도 하고, 웬 낯선 남자의 등장에 낯설어하기도 한다. 종국엔 뭐가 맞는 기억인지 몰라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영화 <더 파더> 관련 이미지.

영화 <더 파더> 관련 이미지. ⓒ 판시네마

  
 영화 <더 파더> 관련 이미지.

영화 <더 파더> 관련 이미지. ⓒ 판시네마

 
감정의 고저와 변화 폭을 스크린으로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선 배우의 역량이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명배우 반열에 올라 있는 안소니 홉킨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노인 안소니 역할을 맡아 적재적소에 필요한 감정 연기를 선보인다. 첫째 딸로 등장하는 올리비아 콜맨은 그런 안소니의 에너지를 제법 훌륭하게 받아내며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멀리서 보면 노환으로 병약해져 가는 한 인간의 환상 내지는 착각일 텐데 <더 파더>는 기묘하면서도 때론 섬뜩한 분위기로 관객을 매 장면 휘어잡는다. 분명 노인의 기억 왜곡이 맞는 것 같지만 끝까지 영문 모르게 벌어지는 상황에서 관심을 떼기 어렵다. 관객 입장에선 노인이 측은하게 보이기도 할 테고, 첫째 딸 앞에서 내내 둘째 딸 얘기만 하는 노인의 모습이 미워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캐릭터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의 가능성을 <더 파더>는 영리하게 열어놓았다. 서사 구조를 탄탄하게 이어 붙여 관객의 목덜미를 잡고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순간마다 제한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최소한의 추리를 할 수 있게 여건을 조성한다. 그렇기에 어떤 관객은 첫째 딸의 열등감을 더 깊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제법 간단한 설정과 아이디어로 채워진 <더 파더>는 우선 명배우들의 연기 호흡만 즐겨도 충분히 제 가치를 다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영리함 덕인지 이 작품은 2021년 아카데미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등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있다.

한줄평: 구관이 명관임을 증명하다
평점: ★★★☆(3.5/5)

 
영화 <더 파더> 관련 정보

감독: 플로리안 젤러
출연: 안소니 홉킨스, 올리비아 콜맨, 마크 게티스, 올리비아 윌리암스 등
수입 및 배급: 판씨네마
러닝타임: 97분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1년 4월 7일
 





 
더 파더 안소니 홉킨스 영국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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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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