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이고 현세적인 세계관
중국인들에게는 종교가 없다. 아니 종교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해석해서 자기들 멋대로 믿는다. 중국에는 불교, 도교, 유교가 분명 성행하고 있지만 중국인들 중에 새로운 종교를 창시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노자는 '도덕경(道德經)'을 썼을 뿐이고, 공자는 역사서인 '춘추(春秋)'를 썼을 뿐이다. 그들은 훗날 도교와 유교를 창시한 사람으로 추앙을 받기는 하지만 그들이 인간의 영혼, 사후 세계, 그리고 구원에 대하여 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처음에 중국이나 대만에 있는 절을 가본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절 안에는 불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자, 노자 심지어는 관우의 상까지 나란히 놓여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한 중국인의 대답은 걸작이다.
'부처님에게만 비는 것보다는 공자, 노자, 관우에게 빌면 더 좋지 않은가?'
이것이 중국인의 사고방식이다. 중국인들은 기독교나 이슬람이 말하는 유일신이나 내세를 믿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귀신을 믿기는 하지만 내세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이 기독교가 중국에서는 별로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그들은 내세니 영생 따위는 아예 믿지를 않는다.
중국인들은 고대로부터 땅에 밀착된 다분히 현실적이고 현세적인 삶을 살아왔다.
시경(詩經)에는 이러한 고대 중국인들의 종교관을 나타내는 말들이 잘 나타나 있다.
"하늘은 이 세상의 만물을 낳았다. 만물에는 하늘이 준 도리가 있다. 사람에게도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하늘이 하는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 하늘이 하는 일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지만 그 사이에 스스로 천명(天命)을 따라 행해진다."
이러한 말들은 하늘을 이야기하고, 자연의 이치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 하늘은 이 세상을 초월해 있는 다른 세계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하는 하늘이다. 그들이 말하는 천명이란 하늘은 반드시 어느 누구를 돕는다고 정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세계관을 가장 잘 표현한 이는 공자다.
유교적 세계관의 핵심
어느 날 공자의 제자 계로(季路)가 물었다.
"선생님, 귀신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 것인가요?"
공자가 대답했다.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귀신을 섬기기보다는 먼저 사람을 섬기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러자 계로가 다시 물었다.
"선생님 그러면 죽음은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죽음을 어찌 안다고 할 것이냐?"
이런 대화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공자는 일관되게 현실에서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에 천착했다.
이러한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유교가 한나라 무제에 의해서 국교로 지정된 이후, 2000여 년 동안 중국 대륙을 지배해 온 탓에 중국인들의 관심은 철저하게 현세적 삶을 추구해왔다.
유교의 이러한 현세 지향적 사상은 인간의 정신적, 도덕적 행위란 술수나, 행운이나, 신비적 주술이나 그 밖에 어떤 순전히 의타적인 권능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공자는 말한다.
"백성들은 자기가 해야 할 일에 힘써라! 귀신은 거리를 두고 경외하라."
공자는 괴이한 일이나, 상식에 맞지 않는 신기한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은 유교적 세계관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이, 생겨날 때에는 기운도 있고 넋도 있는 것이니 이 기운이란 것은 사람의 정신이 왕성하다는 징조이다. 그러나 사람은 나면 반드시 죽는 것이며 죽으면 몸뚱이는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게 마련인데 이것을 귀(鬼)라고 하며, 혼과 기운은 하늘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것을 신(神)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이 귀(鬼)와 신(神)을 합해서 제사 지내는 것은 효도의 지극함이며 자식을 가르치는 방법이 여기에서 비로소 생기게 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뼈와 살은 들판 위에 떨어져서 흙으로 변해 버리게 되고 혼과 기운은 위로 치솟아서 이것이 귀신이 나타나는 상징이 된다. 그러므로 성인께서는 물건의 정기(精氣)에 인해서 지극한 법을 만들고 이것을 귀신이라 이름 지어 백성에게 법이 되도록 한 것이다.
공자 신화는 없다
대부분의 종교는 깨달음을 얻은 창시자나 신의 계시를 받았던 위대한 예언자들을 신비화하는 신화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공자의 탄생과 관련된 신화는 없다. 중국에는 공자 이전에 씌어 진 유학의 사서오경(四書五經) 중 가장 오래 된 경에 해당되는 시경(詩經)이나 서경(書經)을 보아도 유학의 이념을 합리화하거나 기원을 신비화하려는 노력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시경에 채록된 시가들 속에는 평범한 남녀까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만이 있을 따름이다. 시경에는 그리스 시대 호머의 시들이나 구약시대 시편의 신화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서경의 첫머리에 나오는 고대 중국의 요(堯)임금이나 순(舜)임금의 이야기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정치적인 혹은 도덕적인 가르침을 주기 위한 이야기일 뿐이다.
이처럼 공자는 바로 모든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서 배움이 갖는 중요성을 일깨우는 일에만 몰두한 인물이었다. 공자는 요순(堯舜)시대 이래로 기나긴 세월 동안 인간의 작위적 활동을 통해 축적되어 온 중국의 문화적 전통을 배우고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에 일생의 대부분을 바쳤다.
중국의 현대 철학자 린 위탕(林語堂)은 '생활의 발견'이란 책에서 중국인의 생활 철학을 이렇게 설파했다.
"이 땅 위에 만들어진 극히 불완전한 천국에 만족한다는 생각에 그치고 마는 것, 나는 이 철학을 일반 중국인의 종교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비로소 현명하고 명랑한 중국인의 생활 철학이 생겨난다.
나는 그것을 중국의 모든 역사를 통하여 가장 큰 시인이며 가장 높은 조화에 도달한 인격자라고 생각되는 도연명의 생활에서 그 전형을 찾아보게 된다.
중국의 모든 철학자들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 오직 하나의 문제는 어떻게 인생을 즐길 것이며, 또 누가 가장 인생을 즐길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이른바 완전주의는 아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거나 알 수 없는 일을 굳이 알아내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때가 오면 속절없이 죽어야 하는 이 가련한 인생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평화롭게 일하고, 훌륭하게 참고 따르며 즐겁게 살려면 생활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을 문제로 삼는 것이다."
이 철학이 일반 중국인의 종교관이다. 이 땅 위에 만들어진 극히 불완전한 천국에 만족한다는 생각에 그치고 마는 데서 비로소 현명하고 명랑한 생활 철학이 생겨나는 것이다.
땅에서의 삶이 영원이다
물론 시나 서, 논어 등이 인간세계를 초월한 존재에 대해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들 존재는 상제(上帝)라든가 천(天)으로 불리며 선한 이들에게 상을 주고 악한 이들에게는 벌을 주는 인격적인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 상제나 천은 분명 인간의 평범한 일상세계 안에 존재한다고 하기는 어렵기에 기독교의 하나님처럼 우주를 창조하거나 우주의 절대적인 위치를 점하는 존재일 수 있다.
공자에 대한 일화 중에도 천이라든가 천명 등 절대적인 존재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와 그의 제자 안회(顔回)에 대한 일화 한토막이다. 안회는 공자가 가장 사랑하던 제자였다. 그런데 빈곤하게 살면서도 즐거움을 잃지 않던 그가 요절하자 공자는 애통함을 참지 못하여 "아, 하늘이 나를 망쳤구나, 하늘이 나를 망쳤구나"라고 하늘을 향해서 탄식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천명에 대해 지속적은 관심을 갖고 이를 심화시킨다거나 체계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국인은 불후(不朽)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 불후라는 말에는 중국인들의 영원에 대한 생각이 들어 있는데 그것은 서구인들의 영생관과는 아주 판이하게 다른 영생 관념이다.
조조(曹操)의 아들로서 위나라의 황제에 오른 조비(曹丕)는 이런 시를 지었다.
태어나 일곱 척의 육신 죽으면 그저 관하나의 흙이지만
위대한 일을 해서 이름을 남기면
그것이 영원히 살아남는 유일한 길
그것이 힘들면 훌륭한 책을 남기는 것이 그 다음이다
이처럼 중국인들이 영원히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불후이다. '불후의 명작'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춘추시대 때, 노나라의 손숙표란 사람이 진나라에 갔을 때 범선자(范宣子)란 사람이 물었다.
"불후, 즉 영생이란 무엇입니까?"
손숙표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범선자가 스스로 대답했다.
"우리 집안은 중국인들이 중국 대륙에서 살게 된 이후 지금까지 벼슬을 하며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영원히 썩지 않는 생명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손숙표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당신 집안의 부귀영화가 끊이지 않는 것이지 인간의 영생은 아니오. 내가 아는 바로는 인격과 덕망이 최고의 영생이오. 다음 영생은 훌륭한 공적을 세워 인간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것이고 다음은 좋은 책을 써서 인간 세상에 정신의 양식을 제공하는 것이오. 이 세 가지는 세월이 지나도 계속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영생이라고 하오."
이렇게 중국인들은 이 땅에서의 삶에서 영원을 찾았다. 그러한 현세 중심의 사상을 순자(荀子)는 이렇게 표현했다.
하늘과 땅이 있고 인간이 생긴 것이니 하늘과 땅은 생의 근본이 되고, 조상이 있고 자손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이니 조상은 우리들의 근본이 된다. 임금이나 스승이 있어 세상이 다스려지는 것이니 임금과 스승은 치(治)의 근본이 된다. 하늘과 땅을 섬기고 조상·군사를 받드는 것의 세 가지는 예(禮)의 근본이다.
오늘날 기독교를 빼고서는 서구문명을 이야기할 수 없듯이 동양문명은 유교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서구문명이 20세기를 지배했다면 21세기는 동양문명이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많은 학자들이 예견하고 있다.
특히 사반세기에 걸친 중국의 경제 발전에 힘입어 전통적 유교 국가인 한, 중, 일 삼국의 경제 규모가 유럽과 미국의 경제 규모를 능가하는 수준으로 확대됨에 따라 그러한 말들은 점차 정설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유교적 가치관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양적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