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스포츠 마니아들은 1980년대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로 대표되는 LA 레이커스와 보스턴 셀틱스의 라이벌전을 기억하겠지만 국내에 NBA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그 시작이었다. 당시 NBA 최고의 슈퍼스타들로 구성된 미국 대표팀은 조별리그부터 결승까지 한 번도 작전타임을 부르지 않고 전 경기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며 여유 있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계기로 NBA가 농구팬들의 관심을 받자 1992-1993 시즌부터 국내 지상파 방송국에서도 NBA를 중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 시카고 불스와 피닉스 선즈가 맞붙은 1992-1993 시즌 NBA 파이널은 NBA 역사에서도 손에 꼽히는 역대급 명승부로 치러졌다. 특히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과 '악동' 찰스 바클리가 벌인 '동갑내기 라이벌전'은 농구팬들을 뜨겁게 만들기 충분했다.

당시 조던의 시카고 만큼 농구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팀이 바클리와 케빈 존슨, 댄 멀리 트리오가 이끌던 피닉스였다. 하지만 피닉스는 안타깝게도 1968년 창단 후 한 번도 파이널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팀이다. 심지어 바클리 시대였던 1993년 이후에는 파이널 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그런 피닉스가 크리스 폴과 데빈 부커, 디안드레 에이튼이 뭉친 이번 시즌 서부 컨퍼런스 2위로 전반기를 끝내며 팬들의 기대치를 올리고 있다.

키드-내시 보유하고도 가지 못한 파이널 무대
 
 공격 시도하는 디안드레 에이튼(왼쪽)

공격 시도하는 디안드레 에이튼(왼쪽) ⓒ AP/연합뉴스

 
피닉스는 바클리의 전성기였던 1992-1993 시즌 이후 무려 27년 동안 파이널 무대를 밟지 못했다. 하지만 피닉스가 소위 '바클리 시대' 이후 팀의 황금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피닉스는 바클리가 1996년 휴스턴 로키츠로 트레이드된 후에도 피닉스의 새로운 리더가 된 케빈 존슨을 중심으로 마이클 핀리와 웨슬리 퍼슨 등 젊은 선수들이 조화를 이루며 꾸준히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다. 

그리고 1996년 12월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훗날 전설이 되는 포인트가드 제이슨 키드(레이커스 코치)를 영입하면서 새로운 팀의 중심을 찾았다. 피닉스 이적 후 두 시즌 동안 이렇다 할 파트너가 없었던 키드는 1999년 올랜도 매직에서 샤킬 오닐과 좋은 콤비를 이뤘던 앤퍼니 하더웨이를 새 파트너로 맞았다. 하지만 올랜도 시절부터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살았던 하더웨이는 피닉스에서도 부상으로 제 몫을 해주지 못했다.

그렇게 피닉스의 새 시대 리더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키드는 2001년 뉴저지 네츠(현 브루클린 네츠)로 떠났고 피닉스는 3년이 지난 2004년 새로운 리더를 맞았다. 현역 18시즌 동안 '180클럽(필드골 50%+3점슛40%+자유투90%)'을 무려 4번이나 달성한 캐나다 역대 최고의 선수 스티브 내시(브루클린 감독)가 그 주인공이다. 1996년 피닉스에서 NBA 생활을 시작했던 내시는 댈러스를 거쳐 2004년 다시 피닉스로 복귀했다.

내시는 피닉스에서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션 매리언처럼 운동 능력이 뛰어난 포워드들과 함께 마이크 댄토니 감독(브루클린 코치)이 설계한 피닉스의 공격농구를 이끌었다. 실제로 내시는 피닉스에서 활약한 8시즌 동안 정규리그 MVP 2회와 어시스트왕 5회, 올스타 6회 선정 등의 화려한 성적으로 리그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활약했다. 하지만 피닉스는 내시가 활약하던 시절에도 세 번의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이 최고 성적이었다.

피닉스는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고 코비 브라이언트와 파우 가솔이 이끌던 레이커스에게 2승4패로 패한 후 무려 10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지 못했다. 이 기간 고란 드라기치(마이애미 히트) 등이 새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그렇게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만년 하위팀으로 전락하던 피닉스는 지난 시즌 희망을 발견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올랜도 버블에서 치른 잔여 8경기에서 전승을 거둔 것이다.

폴 합류 후 안정된 경기력으로 연전연승

지난 시즌에도 스페인 출신의 리키 루비오(미네소타 팀버울브스)라는 괜찮은 포인트가드를 보유하고 있던 피닉스는 과거의 케빈 존슨이나 스티브 내시처럼 팀을 이끌 리그 정상급 포인트가드를 원했다. 이에 피닉스는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의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어시스트왕 4회와 스틸왕 6회,올스타 11회 출전에 빛나는 크리스 폴을 영입했다. 여기에 다리오 사리치와 재계약하고 제이 크라우더를 영입하며 선수층을 두껍게 했다.

피닉스는 시즌 개막 후 첫 18경기에서 10승 8패를 기록했다. 10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던 시절 승률 5할을 넘겼던 시즌이 두 차례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1월까지의 성적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레이커스와 LA클리퍼스 같은 기존의 강호들에 이번 시즌 엄청난 기세로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유타 재즈가 가세한 서부 컨퍼런스에서 피닉스의 성적은 전혀 돋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피닉스는 2월부터 전혀 다른 팀으로 변모했다. 2월부터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 17경기에서 14승3패(승률 .824)를 기록한 피닉스는 시즌 .686의 승률(24승11패)로 유타에 이어 LA의 두 팀을 제치고 서부 컨퍼런스 단독 2위의 성적으로 전반기를 끝냈다. 새로 합류한 폴은 전반기 35경기 중 34경기에 출전해 16득점 4.7리바운드 8.8어시스트 3점슛 성공률39.1%를 기록하며 피닉스의 리더로 활약하고 있다. 

리그에서 과소평가된 대표적인 슈팅가드 중 한 명이었던 부커 역시 24.9득점 3.6리바운드 4.4어시스트 3점슛 성공률 36.2%로 피닉스의 에이스로 뛰어난 활약을 하고 있다. 여기에 골밑 사수능력이 뛰어난 젊은 빅맨 에이튼과 경험이 풍부하고 궂은 일에 능한 사리치,크라우더 역시 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주력 선수들의 출전시간을 적절히 분배하며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몬티 윌리엄스 감독의 능력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피닉스는 지난 10시즌 동안 플레이오프 무대를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단기전에서의 능력을 검증받지 못했다. 피닉스가 플레이오프에서 레이커스나 클리퍼스,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처럼 경험이 풍부한 팀을 만나면 힘을 쓰지 못할 거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2010년을 끝으로 지난 10년 동안 NBA의 비주류 팀으로 전락했던 피닉스의 태양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은 농구팬들을 설레게 하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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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피닉스 선즈 크리스 폴 데빈 부커 서부 컨퍼런스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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