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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변희수 하사가 2020년 1월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육군의 전역 결정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훌륭한 여군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던 당시의 사진
 변희수 하사가 2020년 1월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육군의 전역 결정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훌륭한 여군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던 당시의 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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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동성혼이 불법이야"
"수연이 보낸 링크를 클릭하니 한국 군대가 성전환한 군인의 복무를 거부했다는 기사가 뜨고 있었지요. 우리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한정현의 소설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에선 태어날 때 '여성' 성별로 지정되었으나, 스스로를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인 트랜스젠더 '메리'가 등장한다. 메리는 아빠 '존'의 재혼을 통해 엄마가 된 한국인 '선영'의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성장한다.

2020년, 그가 자신의 연인이자 한국인인 수연과 함께 한국에 가서 산다고 말했을 때, 아빠인 존은 화도 내지 않고 "(한국은) 동성혼이 불법이다"라는 말만 한다. 그럼에도 한국으로의 이주를 결심한 날, 메리는 수연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통해 육군이 한 트랜스젠더 군인을 강제전역 시켰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만약, 작품 속의 메리가 지금 한국에 와서 살고 있다면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살다보면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을 것이다. 엄마 선영이 그에게 "너는 너일 뿐이야. 누구의 딸도 아닌 너"라고 말했듯, 한국 사회도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줄 날이 오리라 기대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실상은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를 내몰고 지우는 사회적 장벽이 너무나 견고함을 느끼는 일의 연속이다. 한 달 동안 세 명의 트랜스젠더의 죽음이 알려졌다. 이은용 작가, 김기홍 퀴어활동가, 변희수 하사. 알려지지 않은 트랜스젠더들도 어디선가 '안전하게 살고 있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다른 몸, 다른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이렇게 소수자들이 죽어간다.

육군의 무시와 변 하사의 죽음 

특히 변희수 하사의 죽음은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다. 육군은 2020년 1월 22일 경기도 한 부대에서 근무하던 변 하사가 성별정정(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내리고, 강제 전역 조치를 했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행위 개연성'이 있다며 전날 전역심사를 3개월 연기하라고 한 권고를 무시한 결정이었다. 

변희수 하사는 전역 결정이 내려진 날 기자회견을 열고 "훌륭한 여군이 되어 나라를 지킬 기회를 달라"라고 호소하며 육군본부에 인사소청을 제기했으나, 같은해 7월 육군은 이마저도 기각했다. 결국 '전역 처분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을 시작해야만 했다.

12월에는 인권위가 변 하사의 전역 처분이 부당하다며, 육군참모총장에겐 전역 처분을 취소할 것, 국방부장관에게는 성전환 수술 장병을 배제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할 것을 권고했다. 그럼에도 육군은 "변 하사 전역은 적법한 행정절차를 거친 것"이라며 '권고 불수용' 입장을 밝혔다. 군인권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변 하사는 '논의해보겠다' 한 마디조차 하지 않는 육군의 이러한 태도를 매우 아쉬워했다고 한다. 

변 하사 죽음에도 육군은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육군 관계자가 언론 인터뷰에서 "민간인 사망 소식에 따로 군이 입장을 낼 것은 없다"고 말했다고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이처럼 변 하사의 성별 정정 수술 이후, 그에 대한 육군의 태도는 줄곧 '무시'였다. 변 하사는 충성을 다했던 조직에,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배신당했다.

바이든 정부를 보라
 
성전환 수술 후 강제전역 조치 된 변희수 전 육군 하사(전차조종수)가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전역 처분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 제기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성전환 수술 후 강제전역 조치 된 변희수 전 육군 하사(전차조종수)가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전역 처분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 제기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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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육군만이 아니었다. 변 하사의 소송대리인이었던 김보라미 변호사는 "정부에 책임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국방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논의해서라도 트랜스젠더의 군대 내 처우를 바꿀 수 있었다"라며 미국 바이든 정부와 너무나 다르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25일, 바이든 대통령은 '자격을 갖춘 모든 미국인이 군 복무로 국가에 봉사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는 트랜스젠더 군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명령이고, 국방부 장관과 국토안보부 장관은 본 명령을 이행하면서 진척사항을 60일 이내에 보고해야 한다.

"성 정체성에 근거하거나 성 정체성과 관련된 상황에 따른 비자발적인 분리, 전역 및 재입대 혹은 계속 복무 거부를 금지한다 (...) 간단히 말해서, 트랜스젠더 군인은 더는 성 정체성에 근거하거나 성 정체성에 근거한 전역이나 분리의 가능성에 처하지 않게 될 것이다. 또한 트랜스젠더 군인들은 성전환이 완료되고 국방 모병자격 신고체계상 성별이 변경된 후에 그들의 성에 따라 군에서 복무할 수 있으며, 트랜스젠더 군인들은 미군 어디에서나 허용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백악관 성명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공개 복무로 인한 문제는 없다'는 사실은 2016년 국방부의 요청으로 수행된 종합연구, 2018년 주요 군 간부들의 의회 증언, 전직 미국의무감 등의 발언 등을 통해 증명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바이든 정부는 '포용적 힘'과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내세우면서 '트랜스젠더 차별 금지'를 선언한 것이다.

김 변호사는 "정부가 성소수자 삶을 비관하게 만드는 야만적인 형태의 제도가 남아있다는데 책임을 져야 한다"라며 "이제부터라도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와 국방부가 모두 나몰라라 하고 있어서 너무나 실망이 크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청와대는 변 하사 죽음에 대한 어떤 입장 표명도 없었고, 국방부는 "안타까운 사망에 애도를 표한다"라고 밝혔으나, 그게 전부였다. 

차별금지법은 언제?

국회도 방관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변 하사에 대한 강제 전역 처분 당시 민주당과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은 아무런 논평조차 내지 않았다. 지난해 국방부 국정감사에서도 변 하사의 강제 전역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없었다. 국민을 대변한다는 국회가, 정작 변 하사의 용기는 대변해주지 못했다.

심지어 21대 총선 전에는 윤호중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이 비례연합정당 추진 계획을 밝히며 "성소수자 문제로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일으킬 정당과의 연합에는 어려움이 있다"라는 차별적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그가 지칭한 정당은 고 김기홍 활동가가 비례대표 후보로 있던 녹색당이었다.

또한 14년째 국회에서 '논의만' 되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 차별 철폐를 위해 제정되어야 할 '최소한'이다. 만약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변 하사의 강제 전역 조치가 '명백한 차별'로 규정되어,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국회는 침묵하고 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지난 6월 대표발의한 법안이 계류 중이고, 이상민 민주당 의원의 평등법 역시 발의가 안 되고 있다. 이 의원은 "지금까지 20여 명이 발의자로 모였고, 대부분 우리 당 의원이다"라면서도 발의 시기는 보궐선거가 끝난 이후가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보수 개신교계의 반발에, 민주당 내부에서 발의를 주저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박주민·이소영·장경태 등 민주당 의원들은 그에 대한 추모의 뜻을 밝히며, 미안해했다. 하지만 미안해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차별금지법은 민주당 정부가 추진했고, 한때는 민주당의 당론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174석의 압도적 힘을 가진 지금에 와선 외면하고 있다. 당장 민주당이 나서야 한다. '나중에'가 아닌 '지금 당장'.

추모, 그리고 낙관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강제 전역한 변희수 전 하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의당 대표실 앞에 변 전 하사의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다.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강제 전역한 변희수 전 하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의당 대표실 앞에 변 전 하사의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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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변 하사의 죽음을 통해 한국 사회의 참담한 실체를 목도하게 된다. 사회의 '정상' 규범에 속하지 않으면 모조리 배제하는 곳.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아무렇지 않게 공적인 행위로 할 수 있는 곳, 다양성과 포용 대신 낙인 혹은 지우기의 논리가 더 강한 곳... 그곳에 우리가 살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성별로 산다고 해서 직업을 빼앗길 이유는 없다. 변 하사가 성별 정정 수술 결정을 하자 부대원들은 그에게 지지와 격려를 보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성별 정정 수술을 위한 해외여행은 육군참모총장에게도 보고가 됐다. 그럼에도 그는 하루 아침에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민간인'이 되었다. 

BBC 보도에 따르면 전 세계에 약 9000여명의 트랜스젠더 군인이 있다. 한국은 한 명도 없다. 누가 한국을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라고 이야기 하나, 트랜스젠더에게는, 성소수자에게는 삶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죽음'을 각오하고 살아야 하는 나라인데 말이다. 

앞서 말한 소설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에서는 이야기 속 또 다른 이야기가 등장한다. 선영이 메리에게 전해주는 일제강점기의 퀴어 서사다. 간호사 안나와 '남장 여자'였던 연애소설가 경준(경아)은 동성 연인들의 자살 소식이 이어지던 당시 사회에서,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채 헤어진다. 

하지만 이후 안나는 결혼과 이혼을 거치고, 경준은 군 '위안부' 피해를 겪은 뒤에 재회하게 된다. 결국 그들은 "우리가 우리로 존재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미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배 위에서 "이름을 기억할 것" "낙관할 것"이라고 말하며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을 말한다.

절망에 빠진 성소수자들과, 그들과 연대하는 모든 시민들에게 어찌 '낙관'이라는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함께 살아야 한다. 살고 싶다. 그래서 어딘가의 경계 혹은 외국이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도 낙관을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가 변희수 하사의 삶이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용기가 소중했음을 증명하는 과정으로 나아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태그:#변희수 하사, #트랜스젠더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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