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동아기획편의 한 장면. 들국화와 김현식은 1980년대 동아기획을 빛낸 전설의 음악인들이었다. ⓒ SBS
조동진, 들국화(전인권, 최성원), 김현식+신촌블루스(한영애, 엄인호), 시인과 촌장(하덕규, 함춘호), 박학기, 김현철, 봄여름가을겨울, 푸른하늘, 장필순, 빛과소금, 이소라, 김장훈,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동아기획을 통해 음반을 발표하고 한국 대중음악사에 크건 작건 한 줄을 그려 넣은 음악인들이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운영되었던 동아기획은 레이블 개념이 희박했던 그 시절 우리 음악계에선 독보적 존재나 다름 없었다.
가요보단 팝을 즐겨 듣고 음반 판매 역시 마찬가지였던 1980년대, 외국 팝 음악에 견줘도 결코 부끄럼 없고 완성도 높은 양질의 작품을 쏟아냈던 동아기획의 이야기를 지난달 28일, SBS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이하 아카이브K)에서 당시 소속 가수들을 통해 들어봤다.
TV 출연 없이도 수십만장 판매... 음악인들의 '크루'
▲ SBS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동아기획편의 한 장면 ⓒ SBS
당시 동아기획을 이끌었던 인물은 '대장님'으로 불리웠던 김영 대표. 그 무렵 광화문에 위치한 '박지영 레코드'라는 매장을 운영하던 그는 TV에서의 인기 vs. 실제 음반 판매 추이가 전혀 다르게 움직이는 걸 목격하고 직접 음반 제작에 나섰다. 그때 동아기획으로 들어왔던 이들이 바로 들국화(전인권, 최성원), 김현식 등이었다.
동아기획 가수들은 1980년대 TV 음악 프로그램에선 거의 얼굴조차 보기 어려웠지만 라디오 공개방송이나 콘서트 현장에선 친근하게 만날 수 있는 이들이었다. 당시 MBC <별이 빛나는 밤에>, <이종환의 디스크쇼> 등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들은 어김없이 일주일에 한 차례 공개 방송을 편성하곤 했었다. 비록 TV로는 접할 수 없는 가수들이었지만 라디오에서만큼은 '슈퍼스타'같은 인기를 누렸고 그 여세를 몰아 체육관 공연 등 꽤 큰 규모의 콘서트로 팬들과의 만남을 이어갔다.
이 무렵 동아기획은 요즘 힙합 신의 크루와 비슷한, 시대를 앞서간 레이블이었다. 음악인들이 '이 친구 음악 괜찮더라'며 서로 추천해서 발탁하고 이를 통해 음반을 제작하는 조금은 파격적인 운영이었다. 그 결과 박학기, 김현철 등의 젊은 피가 속속 합류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레이블 콘서트 '우리 모두 여기에'를 매년 개최하면서 끈끈한 우애를 다진 것도 동아기획만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소속 음악인은 아니었지만 조동익(어떤날) 같은 인물이 동아기획 음반에 작곡, 편곡, 연주로 참여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큰 몫을 차지했다.
신뢰의 상징이 된 전무후무한 레이블
▲ SBS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동아기획편의 한 장면. 김현철과 김종진(봄여름가을겨울)은 동아기획이 배출한 스타 음악인 중 한명이다. ⓒ SBS
1980~1990년대에 '동아기획'이란 브랜드는 말 그대로 신뢰의 상징이었다. 들국화, 김현식 등 내로라하는 싱어송라이터, 그룹들이 죄다 이곳에서 음반을 발표했다. 요즘 말로 '믿고 듣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국내 굴지의 녹음실로 손꼽히는 서울스튜디오에서 거액 제작비를 투여해 만든 음반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해외 팝 음반에 결코 뒤쳐질 것 없는, 음악적으로 빼어난 완성도를 보여줬다.
1980년대 중반까지 국내 음반 판매량에선 팝 음반이 절대적 위치를 차지했지만 동아기획 가수들의 등장은 시장 흐름을 점차 바꿔놓기 시작했다. 누구도 엄두를 못내던 라이브 앨범 제작도 과감히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또 무려 3천만 원이라는 거액 계약금 내밀면서 가능성 있는 신예(김현철)을 영입하는 등, 무모할 정도의 투자를 감행했다. 이는 한국 대중음악의 전성기를 풍성하게 채워줄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이날 방송에선 김현철, 장필순, 빛과 소금, 유영석(푸른하늘), 박학기, 함춘호(시인과 촌장) 등 동아기획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그 시절 각자의 대표곡을 부르는 등 시청자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감동의 무대를 선사했다.
레이블의 종말, 누락된 거장들... 여전히 남는 아쉬움
▲ SBS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동아기획편의 한 장면 ⓒ SBS
이날 <아카이브K> '동아기획' 편은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와 멋진 공연을 통해 그 시절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자란 50대 전후 중·장년층 시청자들에게 향수를 가져다줬다.
반면 방송 편성시간의 한계 때문에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들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성기가 있다면 쇠락기도 있을 터.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동아기획이 왜 사라졌는지, 이번 방송에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1990년대에 많은 동아기획 소속 가수들은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빈 자리가 생겨났으면 새 얼굴들로 이를 메우는 게 당연했지만 동아기획은 그들을 대신할 만한 신예 발굴에 실패했다. 1990년대 중반 이소라, 김장훈 등이 인기를 얻긴 했지만 그 외의 후발주자들은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2000년대 이후 동아기획은 어느덧 음악 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존재로 남고 말았다.
또한 엄인호, 이정선을 중심으로 한영애 그리고 김현식이 가세했던 신촌블루스는 한국 블루스 음악의 선구자였지만 <아카이브K>에선 사진 한 장으로 소개하는 정도의 비중에 그쳤다. 또한 하덕규가 속했던 시인과 촌장이나 이소라 등 꽤 비중 있는 음악가들도 거의 다루지 않은 점은 이 방송의 약점으로 지적될 만하다.
그럼에도 이번 <아카이브K>는 TV 매체를 과감히 거부하고 오로지 음악 하나로만 승부를 걸었던 장인들의 집단인 동아기획의 가치를 수면 위로 꺼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방송이었다.
▲ SBS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동아기획편의 한 장면. 빛과 소금을 비롯한 전성기 소속 음악인들이 대거 출연해 관심을 모았다. ⓒ SBS
▶ 동아기획 발매 주요 음악인
( ) 정규 음반 발매연도 기준
들국화 (1985~1987)
전인권 (들국화) (1987~1988)
최성원 (들국화) (1988~1990)
김현식 (1986~1996. 사후 미발표곡 음반 포함)
조동진 (1985~1986, 1~3집 재녹음 발매)
시인과 촌장 (1986~1988)
봄여름가을겨울 (1988~2002)
푸른하늘 (1988~1994)
신촌블루스 (1989~1992)
엄인호(신촌블루스) (1989~1997)
한영애(신촌블루스) (1988)
박학기 (1989~1990, 1993)
김현철 (1989~1993, 2000~2002)
장필순 (1989~1990)
빛과 소금(1990~1991, 1994)
이소라 (1995~1998)
코나 (1993~2000)
그외 최구희, 주찬권 (이상 들국화, 솔로음반), 송홍섭 (김현식 프로듀서), 박승화 (유리상자 솔로 1집), 야샤(김현철, 조동익, 손진태, 함춘호 프로젝트) 피아노 (1994년 3인조 혼성그룹), 김형철 (신촌블루스), 정서용(신촌블루스), 한상원 (재즈 기타리스트), 씨유 (3인조 걸그룹)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