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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라고 할 때, 비트랜스젠더들이 흔히 떠올리는 서사가 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잘못된 몸'에 갇혀 있다고 생각해 왔으며, 여성 혹은 남성의 옷과 머리 스타일을 따라해 봤다는 경험담 같은 것들 말이다. 비트랜스젠더들이 가장 쉽게 상상하고, 흔하게 접하며, 별다른 거부감 없이 납득하는 '전형적인' 서사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수백 명의 사람에게 수백 가지의 경험과 이야기가 있듯,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꼭 이와 같은 배경을 가지고, 단일한 경로를 거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성별 위화감 때문에 고통을 받아 의료적 트랜지션을 절실하게 원하는 트랜스젠더가 있는가 하면, 크로스드레싱을 계기로 성별 이분법에 대한 의문을 품고 난 후에야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로 자신을 정체화한 이들도 있다. 

당연한 소리지만, 트랜스젠더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데는 정답이 없다. 한 사람의 역사는 미로와 같다. 모두가 인과관계가 명확한 인생을 살고 있는 건 아니다. 때문에 수많은 역접과 모순으로 점철된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판단을 내려놓고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

'당신은 정말 여자인가' 따져 묻기 전에
 
다크룸 - 영원한 이방인, 내 아버지의 닫힌 문 앞에서, 수전 팔루디(지은이), 손희정(옮긴이).
 다크룸 - 영원한 이방인, 내 아버지의 닫힌 문 앞에서, 수전 팔루디(지은이), 손희정(옮긴이).
ⓒ arte(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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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룸>의 저자 수전 팔루디가 어느 날 갑자기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난 자신의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택한 방법도 바로 '듣기'였다. 어머니와 이혼 후 30년간 연락이 끊겼던 아버지는 어느 날 딸 수전에게 메일을 보내 자신이 '여성'이 됐으며, 이제 '스테파니 팔루디'라는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선언한다. 쐐기를 박듯, 한껏 '드레스 업' 한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함께 첨부한다. 

하지만 아무리 글과 사진으로 그녀의 변화를 설명한들, 수전은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의 아버지가 76세의 나이에 성전환 수술을 한 사실을 갑작스레 '통보'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전의 아버지, 스테파니 팔루디는 과거 가정폭력을 저질렀고 그 때문에 이혼 당한 인물이다. 

수전 팔루디가 기억하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폭력적인 가부장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 불쑥, 소위 '요조숙녀'의 문법을 따르는 듯한 모습으로 수전 앞에 나타난 것이다. 수전은 이처럼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인 '스테파니 팔루디'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10여 년 동안 자신이 사는 미국과 아버지가 살고 있는 헝가리를 오가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수전은 스테파니가 유년 시절을 보낸 헝가리 곳곳을 함께 찾아다니고, 과거 사진과 자료를 뒤지고, 친척과 지인을 만나면서 그녀의 과거에 대해 묻는다. 하지만 수전의 관심사는 '스테파니가 그동안 얼마나 여성적이었는가' 혹은 '얼마나 여성이 되길 갈망했는가'가 아니었다. 그 대신, 수전은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정체성은 어떻게 구성되는가'라는 방향으로 서서히 질문의 초점을 돌린다. 

그녀는 이 과정을 통해 세계전쟁 당시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집과 가족을 잃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스테파니의 어린 시절을 길어올린다. 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 기독교도로 보이려 노력하고, 지독하게 정상가족 모델에 집착했던 스테파니의 과거를 들춰낸다.

이러한 서사는 스테파니 팔루디라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명확한 답이라기보다, 흩뿌려진 퍼즐 조각에 가깝다. 이를 이어붙이는 동안 수전 팔루디는 '페미니스트'로서의 혼란을 가감없이 드러내지만, 끝내 '페미니스트로서의 윤리'를 저버리지 않으며 길을 찾아나간다.
 
... 유대인 남성으로서 기독교-유럽에서 언제나 '비남성'이어야 했던 이슈트반 팔루디는 1950년대 미국으로 건너와서는 '미국의 정상성'을 전시하는, 잡지에서 갓 튀어나온 '미국의 가장-기독교도-스티븐'이 되고자 고군분투했다. 무엇보다 그는 "여자들이 인정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노력이 끝끝내 좌절됐을 때, 스티븐은 가정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폭군이 된다. 그건 아버지의 내면적 본성이 표면을 뚫고 나온 것이었을까, 아니면 당시로서는 '훼손된 남성성'을 다시 세우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일까. 남성성의 신화에 복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여성성의 신화에 복무하기로 한 걸까. 아버지의 남자 됨은 무슨 의미였고, 이제 아버지의 여성 됨은 무슨 의미일까. 팔루디는 간단한 답을 찾을 수 없는 혼란 속에서도 "나는 남자였던 적이 없었고, 나는 진짜 여자다"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진술을 쉽게 기각해 버리지 않는다.
- <다크룸> 633p, '팔루디 연작과 진부한 정상성의 교란자들'(옮긴이의 글), 손희정

수전 팔루디는 <다크룸>을 통해 "트랜스젠더 여성들에게 '고정된 여성성 서사'를 강요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특이한 스펙터클로 소비해 버리는 사회에 저항하면서 (...) 스테파니 팔루디라는 트랜스 여성은 하늘에서 뚝 떨어져 '여성의 공간을 침범하는 괴물'이 아닌, 자신의 시간을 살면서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 온 맥락 있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p. 634, 옮긴이의 글). 그러면서 스테파니 팔루디에게 '정체성'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였을지, 독자들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함께 살아갑시다, 그의 말을 다시 곱씹으며
 
김기홍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왼쪽), 임푸른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오른쪽)
 김기홍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왼쪽), 임푸른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오른쪽)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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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크룸>을 집어든 건 2020년 4월이었다.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Nonbinary transgender) 당사자로 20대 총선에 출사표를 낸 김기홍 당시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그리고 임푸른 당시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를 인터뷰한 뒤였다.

개인의 역사는 늘 복잡하기 마련이지만, 두 사람이 거쳐온 길 중엔 내게 조금 생경한 부분들이 있는 게 사실이었다. 이 책을 통해 두 사람에 대해, 그리고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에 대해 내가 미처 몰랐던 부분들을 알아가고 싶었다. ([관련 기사] "성소수자가 불필요? 광고 감사히 받고 국회로 가겠습니다")

그들의 인터뷰를 정리한 기사의 말미에, 나는 "평범하지만, 진보적인 꿈을 꾸는 이들 덕분에 한국사회는 '혐오가 아니라 우리의 아름다운 연대가 승리'하는 광경을 조금이나마 일찍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썼다.

두 사람은 소수정당 소속이었고, 비례 순번도 좋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비례용 위성정당의 난립으로 표가 분산돼 정의당이나 녹색당은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이들이 국회에 입성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하더라도, 존재의 가시화 자체가 한국 사회에 큰 진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소망을 담아 저 문장을 썼다. 

하지만 김기홍 후보는 총선을 끝내 완주하지 못했다. 과거 자신이 올렸던 SNS 글을 둘러싸고 논란이 불거진 뒤, 스스로 사퇴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부족했고, 옳지 않은 걸 접하고 배워왔다"면서도 "하지만 페미니즘을 접하고부터 계속 공부하며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고 있다. 제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서 공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다짐대로, 김 후보는 무작정 숨거나 활동을 접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복기하고 반성하면서, 동시에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공동조직위원장이자 제주 녹색당 당원으로 사회 문제에 대한 자신만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런 그가 24일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녹색당은 추모의 글에서 "(그는) 완벽하진 않은 이였지만 완벽하게 살아남아 질책도 응원도 달게 받고자" 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꼭 들어가고 싶었던, 그래서 바꿔내고 싶었던 한국 정치판은 아직도 성소수자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18일 단일화 협상을 위한 첫 TV 토론에서, 금태섭 무소속 서울시장 후보는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에게 "퀴어퍼레이드에 나갈 생각 있으십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안 예비후보는 "차별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신의 인권뿐만 아니라 타인의 인권들도 굉장히 소중한 것 아니겠습니까. 표현할 권리 있고 그렇지만 거부할 수 있는 그런 권리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된다"라고 말했다.

만약 김기홍 퀴어활동가가 그와 같은 자리에서 마이크를 쥐고 말할 수 있었다면, 어떤 이야길 했을까. 지난번 인터뷰에서처럼,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그냥 존재하는 사람이고, 그저 살아가는 건데 왜 존재에 대한 합의를 해야 하는 거죠? 논쟁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퀴어 이슈부터 웹 접근성, 교육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 문제를 늘 열정적으로 파고 들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만큼이나 변화의 의지가 컸던 그가 좀 더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가졌다면 어땠을까. <다크룸>의 수전 팔루디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 사회가 김기홍씨를 "하늘에서 뚝 떨어져 '여성의 공간을 침범하는 괴물'이 아닌, 자신의 시간을 살면서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 온 맥락있는 존재"로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나는 김기홍씨를 잘 모른다. 인터뷰를 하는 두세 시간 동안 그를 대면했을 뿐이다. 다만, 모든 일에 적극적인 것만 같았던 이미지와 달리 수줍음을 많이 타던 모습, 직접 제주에서 챙겨온 한라봉을 건네주던 손길, 꼭 그 한라봉처럼 화사한 색의 가디건을 입고 미소 짓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세상의 문제를 논할 때, 그리고 자신이 국회에 들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설명할 때 유독 단단해지던 목소리도 기억한다. 더더욱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가 품었던 크나큰 가능성을 분명히 기억한다. 

차별과 편견과 혐오가 없는 세상에서, 그가 편안히 쉬기를 진심으로 빈다. 그가 남겨둔 말들을 곱씹고 '나의 친구들을 지켜내고 싶다'던, 그가 못다 이룬 꿈을 이어가는 건 이제 우리들의 몫이다. 
 
숙명여대 법학과 합격자 A님, 변희수 하사님 함께 살아갑시다. 살아내지 않고 그냥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작년에 두 친구를 떠나보냈고, 또 다른 여러 친구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중 한 친구가 "성소수자랑 장애인 취업 못 하지 않게" 노력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저는 그 소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그 소원을 들어주고 제 다른 친구들도 지키려면 많은 분이 일상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두 분도 지키고 싶습니다. (김기홍 후보가 변희수 하사와 숙명여대 합격생 A에게 보냈던 연대 편지 중에서, <경향신문>, 2020년 2월 6일)

다크룸 - 영원한 이방인, 내 아버지의 닫힌 문 앞에서

수전 팔루디 (지은이), 손희정 (옮긴이), arte(아르테)(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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