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스트 레터> 관련 이미지.

영화 <라스트 레터> 관련 이미지. ⓒ 미디어캐슬

 
꾹꾹 눌러쓴 손편지는 누구가의 마음을 건드리고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SNS와 모바일 메시지가 보편화 된 지금이지만 진심을 전하고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지게 하는 데는 아마 손편지 만한 게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이 슌지 감독만큼 편지라는 매체에 깊이 천착해 영화로까지 만들 수 있는 예술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1995년 완성돼 국내엔 1999년에 개봉한 <러브레터>는 영화팬들 사이에 지금도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 중 하나로 꼽히니 말이다. 첫사랑을 소재로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본 작품이 <러브레터>였다면, 오는 24일 개봉을 앞둔 <라스트 레터>는 좀 더 넓은 범주에서 편지가 지닌 힘을 담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언니 미사키를 뒤로하고 세상에 남은 동생 유리(마츠 타카코)는 언니의 고교 동창회에 참석해 부고를 알리려 하지만 뜻대로 못하고 잠시 언니 행세를 하게 된다. 이상함을 감지한 미사키의 옛 연인 쿄시로는 유리에게 다가오고, 과거에 그를 짝사랑했던 유리는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한 채 그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미사키인 양 편지를 통해 일상의 이것저것을 공유하는 유리는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로서 한 명의 딸을 키우는 엄마기도 하다. 언니가 세상에 남기고 간 딸 아유미(히로세 스즈)에 남다른 애틋함을 가진 유리는 자신의 딸 소요카(모리 나나)가 아유미와 가까이 지냄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방학 동안 딸이 아유미네 집에서 지낼 것을 허락한다.

주소를 적지 않은 유리의 편지에 답장하기 위해 쿄시로는 미사키의 옛주소를 찾아내고 그곳으로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엄마의 옛 남자친구임을 알아 챈 아유미 또한 엄마인 척하며 쿄시로에게 편지를 보내 세대를 관통한 편지의 엇갈림이 시작된다.

제목처럼 편지는 쿄시로와 유리, 그리고 아이들을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고인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품고 있는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 엇갈린 편지에서 시작되는 묘한 치유 효과에 주목한다. 처음엔 반 장난, 반 진심으로 당겨진 편지의 불씨가 어느새 현재와 과거, 그리고 2세대에 걸친 보이지 않는 연대감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 스스로 밝혔듯 <라스트 레터>는 <러브레터>를 정서적으로 잇는 속편과도 같은 영화기도 하다. 계획대로 흐르지 않는 인생의 한 자락에서 펜과 편지지를 통해 조금이나마 진심을 전하고, 상대방과 교감하려는 발신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 <라스트 레터> 관련 이미지.

영화 <라스트 레터> 관련 이미지. ⓒ 미디어캐슬

  
 영화 <라스트 레터> 관련 이미지.

영화 <라스트 레터> 관련 이미지. ⓒ 미디어캐슬

 
특히 사랑의 감정에 주목했던 전작과 달리 <라스트 레터>는 그보다 넓은 정서적 연대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고찰하는 모양새다. 미사키를 잊지 못해 그와의 연애를 한 권의 소설로 남긴 쿄시로는 이별 이후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못하는 작가다. 엄마를 잃은 슬픔으로 자신의 내면으로 천착해 들어가는 아유미, 그리고 또래의 학생을 짝사랑하는 소요카는 천진난만하지만 동시에 곧 성인이 되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유리 또한 덤덤해 보이지만 언니와 자신이 짝사랑 했던 한 사람에 대한 감정의 정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상황이다.

미완의 인간이 특정한 순간 서로 만나, 잠시나마 소통하고 삶의 일부를 나누는 건 기적과도 같다. <라스트 레터>는 그 순간을 편지를 매개로 영화라는 매체에 담아 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섬세한 포착이 여전히 살아 숨쉬는 것 같아 반갑다. 특히 영화 곳곳에 깔리는 서정적인 피아노곡과 함께 매미 소리, 자전거 벨 소리, 새소리 등 일상의 소음을 지우지 않고 오히려 생생하게 살려냈다는 점에서 일상성에 대한 감독의 대단한 집착을 느낄 수 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팬이라면 <러브레터>의 주인공 나카야마 미호와 토요카와 에츠시를 비롯해, < 4월 이야기 >의 마츠 타카코 등이 등장하는 것에 반가울 것이다. 또한 일본을 대표하는 신진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보는 맛을 더한다.

한줄평: 편지는 거들 뿐, 인간다움의 아름다운 면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평점: ★★★★(4/5)

 
영화 <라스트 레터> 관련 정보

영제: Last Letter 
원제: ラストレター 
원작: 이와이 슌지 <라스트 레터> 
각본 및 감독: 이와이 슌지 <러브레터><하나와 앨리스> 
출연: 마츠 타카코, 히로세 스즈, 안노 히데아키, 모리 나나, 토요카와 에츠시, 나카야마 미호, 카미키 류노스케, 후쿠야마 마사하 등
제작: 카와무라 겐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고백> 루 
러닝타임: 120분 
수입: ㈜미디어캐슬 
배급: ㈜스튜디오산타클로스 
국내개봉: 2021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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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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