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런온> 배우 최수영 인터뷰 이미지

ⓒ 사람엔터테인먼트

 
"지금같은 시대에 (서)단아같은 캐릭터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 최수영은 지난 4일 종영한 JTBC 드라마 <런온> 속 서단아 캐릭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극 중에서 재벌 2세로 태어났지만 여성이란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받는 서단아가 "주어진 것에 만족하기보다, 벽을 깨고 헤쳐나가는 주체적인 캐릭터"라서 좋았다고. 

또한 최수영은 "처음부터 완벽한 인물이 아니라, 결핍도 있고 성장이 필요한 인물이어서 시청자분들에게 더 공감받은 게 아닐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해피엔딩을 맞는 건 당연한 결과이지 않나. 사랑받기 어려울 것같은 사람이 사랑받고 성장해나간다는 점에서 좋은 캐릭터였고, 좋은 메시지였다고 생각한다"라며 서단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저는 서단아가 자기가 하고싶은 거 다 했으면 좋겠다. 욕심이 엄청 많은데 그게 밉지는 않다. 정당하고 정의롭게 욕심을 부리니까. 그동안 드라마에 이런 캐릭터가 있었나? 싶을 만큼 특별한 캐릭터같기도 하다. 시청자분들께도 '우리 단아 하고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라' 응원할 수 있는 인물로 남았으면 좋겠다."

지난 8일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통해 최수영을 만났다.

드라마 <런온>은 같은 한국말을 쓰면서도 소통이 어려운 시대, 서로 다른 세계에 살던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소통하고 관계 맺으며 사랑을 향해 달리는 이야기다. 최수영은 극 중에서 서명그룹 상속자 서단아 역을 맡아 똑똑한 젊은 리더의 모습을 소화했다. 그는 "서단아를 단순하게 틀에 박힌 재벌 2세처럼 연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나 늘 운동화를 신는 설정 등은 그런 최수영의 고민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었다.

"서단아가 요즘 젊은 세대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깨어 있는 젊은 리더들과 많이 만났고 상담도 했다. 최근에는 남들이 다 가는 대학교에 가서 누구나 다 할 법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자신만의 재능으로 일찍 성공한 친구들이 많지 않나. 서단아도 자신의 비상한 두뇌를 십분 발휘해서 그 자리에 올라간 리더처럼 보였으면 좋겠다 싶더라. 그런 이유 있는 자신감이 엿보였으면 했다. 서단아가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환경을 생각하는 점도 그래서 나온 결과다. 단아가 유학 시절 가장 집중했을 법한 게 뭘까 고민하다가, 환경 쪽을 생각했다. 언제든 부르면 달려갈 수 있게 운동화를 신고다니는 점도 그런 면에서 나온 것이다."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는 서단아 캐릭터가 전통적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 속 재벌 남자주인공과 비슷하다는 반응도 많았다. 극 중에는 "나 이런 거 처음 먹어봐", "나같은 사람을 문전박대 하다니" 등 '클리셰'같은 대사들도 자주 등장했다. 서단아 캐릭터를 두고 로맨스 공식을 살짝 비틀어 낸 신선한 시도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최수영은 남자 주인공이 할 법한 대사라는 점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드라마에서 보던 재벌 남자 주인공 대사같다는 반응을 알고 있었다. 대본을 읽었을 땐 딱히 남자들이 할 법한 대사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이 '또라이'같은 여자가 할 수 있는 얘기라고 느꼈다. 그래도 작가님은 성별 반전에서 오는 재미를 염두에 두고 쓰시지 않았을까? 우리 작가님은 늘 모든 신과 모든 캐릭터에 큰 그림을 갖고 계시더라. 잘 짜여진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어서 굉장히 짜릿했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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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그룹의 유일한 적통이자 재벌 2세인 서단아는 늘 대접받고 살아온 만큼 상대방을 쉽게 무시하거나 함부로 말하기도 한다. 서단아는 의도치 않게 자신이 추천한 사람 대신 통역 자리를 맡게 된 오미주(신세경 분)에게 "무릎 안 꿇냐?"고 묻기도 하고, 미대생 이영화(강태오 분)에게 그림을 부탁해놓고 '그림 자판기'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최수영은 "보편적인 시선에서 보면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는 대사가 많았다. 저도 (연기할 때) 고민이 많았다"면서도 "작가님과 대본을 믿었다"고 털어놨다.

"연기하는 저도 (단아가) 무례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냥 무례한 사람으로만 보일 수 있겠더라. 단아에겐 악의가 있는 게 아니다. 이 상황에 흥미를 갖고, 상대방에 대한 호감으로 하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한번도 자기한테 무릎을 꿇으라고 했던 사람이 없으니까, 그 말을 들었을 때 상대방이 어떤 기분일지 모르고 하는 말일 수도 있다. '네가 얼마나 통역하고 싶으면, 무릎까지 꿇을 수 있어?'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단아는 참 모르는 게 많다. 이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형성된 결핍에서 나오는 방어기제같은 장치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당당하게 연기하게 되더라. 결국에는 제가 얼마나 이 대본을 믿느냐였던 것같다. 단아의 결핍을 작가님께서 해결해주실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세게 느껴지는 대사는 거침 없이 세게 했다. 시청자분들이 오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좀 더 착하게 해볼까? 그렇게 연기했다면 서단아 특유의 느낌이 잘 안 보였을 것 같다. 후반부에 작가님이 다행히 단아의 결핍과 성장을 잘 풀어주셔서, 시청자분들도 응원해주셨던 것 같다."


극 중에서 서단아는 남들이 보기에는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에게도 말 못할 아픈 상처가 있다. 그는 서명그룹 유일한 적통이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후계 서열에서 연년생으로 태어난 후처의 아들에게 밀려났으며, 가진 것을 빼앗길까봐 늘 전전긍긍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 너무 이 악물고 살지 맙시다. 턱 아프잖아." 극 중에서 오미주는 "내 세계에서는 내가 약자"라며 속내를 털어놓는 서단아에게 이런 말로 툭 위로를 건넨다. 많은 드라마 팬들에게 명대사로 꼽혔던 이 장면은 최수영에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이었다고. 그는 촬영 당시 울컥 눈물이 날 뻔 했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줬다.

"오미주 캐릭터가 참 좋았던 게, 세상이 자기를 한없이 거절하는데도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간다. 자존감이 높은 친구이기도 하고. 저는 '우리 너무 이 악물고 살지 맙시다, 턱 아프잖아.' 그 신을 너무 좋아하는데, 연기할 때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제가 우는 신이 아니었는데, 마지막 대사를 할 때 눈물을 엄청 참았다. 두 여성이 사는 세계는 다르지만, 결국 겪은 건 같다. 미주도 미주의 세계에서 여자로 살면서 겪었던 감정, 서단아도 자기 세계에서 겪고 있는 우여곡절 그런 것들을 나누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단아보다 더 힘든 일을 겪었을 법한 미주가 그런 위로를 건넨다. 그 대사가 신세경이 내게 하는 말 같기도 해서 눈물이 났다."

2007년 데뷔 이후 오랜 기간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로서 활동해왔던 최수영은 이 악물고 살고 있었던 서단아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단다. 그는 "내게도 (단아처럼)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안하다. 어렸을 때부터 늘 무대를 준비하며 살아와서 그런 것 같다"면서도 이제는 스스로 고삐를 늦춰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던 시점이어서 울컥했다고 눈물의 이유를 설명했다.

"(늘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해도) 저에 대한 편견이나 짐작은 늘 있을 수밖에 없더라. 제 말로 인해 또다른 소통의 불화가 생기기도 하고. 그 과정들을 겪으면서 '결국은 뼛속까지 겸손해지는 수밖에 없구나', '여자 연예인으로 살려면 모두에게 좋은 말만 할 수 있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이제는 시대가 변해서 어떤 캐릭터도 고유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도 모두 응원하는 시대가 됐고. 이 악물고 살던 걸 느슨하게 고삐를 늦춰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찰나에 이 작품을 만났다. 그런 차에 신세경의 대사에 더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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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었던 연습생 시절부터 함께 해온 소녀시대 멤버들은 현재 그룹 활동보다는 각자 개인 활동에 집중하고 있지만 여전히 서로에게 가장 힘이 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최수영은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들이 큰 축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멤버들도 그렇다"며 "저와 같은 일을 겪고, 같은 시대를 살아온 친구들이 모나거나 모질게 변하지 않고 너무나 좋은 어른으로 성장했다. 그 모습들이 저한테 좋은 자극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동안 연기에 대한 자신의 열망이 외사랑처럼 느껴졌다는 그는 요즘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아 신이 난다고도 했다. 최수영은 여전히 고민 많은 배우였지만 "이겨낼 자신이 있다"고 환하게 웃었다.

"고민은 늘 따라온다. 작품을 할 때도 작품이 없을 때도 그렇다. 막연히 (새 작품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작품을 만들고 나면 '어떤 반응이 올까' 부담감도 따라오는 게 이 직업의 숙명인 것 같다. 다행히 저는 소녀시대 활동으로 인내심을 얻었다. 모든 것에 유연해질 수 있는 자세는 제가 여태까지 한 그룹 활동으로 얻은 가장 큰 자산인 것 같다. 그래서 힘들어도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나는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
최수영 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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