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월화드라마 <암행어사 : 조선비밀수사단>의 한 장면

KBS2 월화드라마 <암행어사 : 조선비밀수사단>의 한 장면 ⓒ KBS2

 
  KBS 2TV 월화드라마 <암행어사-조선비밀수사단>이 유쾌한 정의구현을 보여주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9일 방송된 최종회에서는 어사단이 부패한 관찰사 변학수(장원영 분)와 최종보스 김병근(손병호 분)의 음모를 저지하며 백성들을 구제하는 마지막 활약상이 그려졌다.

성이겸(김명수)이 이끄는 어사단은 김병근-변학수 일당에게 체포되어 도적과 결탁했다는 누명까지 쓰고 위기를 맞이하지만, 이들의 폭정에 지친 행수군관의 도움으로 옥에서 빠져나와 노비장의 사람들까지 구해낸다. 감영으로 향한 이겸은 도적과 결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동생 성이범의 목을 베야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 자들이 백성의 억울한 외침을 듣고도 정녕 그들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이냐"라는 단호한 연설로 대치하던 군졸들의 마음까지 되돌린다. 결국 어사단과 백성이 힘을 합쳐 김병근과 변학수를 추포하는데 성공하며 사건은 마무리된다.

이겸은 민란을 주동했던 이복동생 이범을 몰래 풀어주며 강순애(조수민)와 함께 떠나게 한다. 형제가 걸어온 길은 달랐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서로가 꿈꾸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해보자는 다짐을 남기며 훈훈한 감동을 줬다. 

모든 악행을 처단하고 한양으로 돌아온 이겸과 영신(홍다인/권나라)은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며 미래를 약속한다. 하지만 청혼을 앞둔 시점에 이겸을 호출한 임금은 어사를 사칭하여 백성들을 약탈하는 무리를 잡으라는 밀명을 내리고 그를 다시 암행어사로 파견한다. 혼자 암행을 떠나려는 이겸에게 남장을 한 다인과 노비 신분에서 해방된 춘삼(이이경)이 동행하며 재결성된 어사단의 활약을 암시하는 것으로 드라마 <암행어사>는 막을 내린다.

<암행어사>는 침체에 빠져있던 KBS 월화드라마의 오랜 징크스를 깬 작품이자, 퓨전사극의 매력을 살려낸 '의외의 성공작'으로 꼽힌다. 방영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홍보 부족, <펜트하우스>같은 막강한 경쟁자의 존재 등으로 인하여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새해 들어 입소문을 타고 꾸준한 상승세를 탔다.

9일 방송된 최종회는 시청률 조시가관 닐슨 코리아 전국기준 시청률 14%를 기록하며 지난 회차에서 기록한 자체 최고 시청률을 또 한 번 경신함으로써 유종의 미를 거뒀다. 톱스타급 배우들을 내세우거나 막대한 제작비를 들이고도 5% 이하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드라마들이 수두룩한 최근 방송가에서 <암행어사>의 성공은 큰 이변에 가깝다.

KBS 월화드라마는 최근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지 못하며 오랫동안 침체기였다. 또한 <암행어사>는 방영 초반만 해도 2020년 후반기 최고 인기작 <펜트하우스>와 방영 시간대가 겹쳐 고전했으나 이 드라마가 종영한 이후로는 특별한 경쟁작이 없었고 실제로 곧바로 시청률 면에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는 대진운이 따랐다.

<암행어사>의 인기 비결은 단순 명료한 권선징악적 메시지와 트렌디한 퓨전사극을 바탕으로 '한국형 히어로'를 구현했다는 데 있다. 조선시대에 실제했던 관직이기도 한 '암행어사(暗行御史)'는 말그대로 신분을 감추고 여러 지방을 순행하면서 부패하거나 백성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고을 수령이나 탐관오리들을 잡아내는 임부를 수행한 특별감찰관이다. 이 드라마 이전에도 암행어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이 많았다.
 
 KBS2 드라마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 한 장면.

KBS2 드라마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 한 장면. ⓒ KBS2

 
평소에는 신분을 숨기고 백성들의 곁에 머무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하며 악을 처단하고 백성들을 구원하는 암행어사 캐릭터는 '음지의 영웅' 이미지를 구현하기에 적합했다. 기성체제에 얽매이지 않는 젊고 매력적인 주인공들이 어사단 활동을 통하여 백성들의 어려움을 대신 해결해주고 낡은 체제와 기득권에 도전하며 성장해가는 과정은, 시청자들에게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해줬다. 

실제로 극중 인물을 연기하는 주연 배우들도 모두 2030세대로서 드라마가 진행되는 과정을 통하여 연기력이나 케미로서 조금씩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주인공 이겸 역을 맡은 김명수는 군입대 전 마지막 작품에서 유종의 미를 거뒀고, 권나라는 서브주연에서 단독 히로인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밖에 극중 최고 개그 캐릭터로서의 감초 연기가 돋보인 이이경, 대체로 가벼운 극 분위기에서 유일하게 끝까지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이범 역을 소화한 이태환, 막내임에도 주연급 배우 중에서는 안정된 발성과 차분하고 절제된 감정 연기가 돋보였던 조수민 등도 호평을 받았다.

실존했던 암행어사와 조선시대를 소재로 했지만 '퓨전 사극'의 장점을 살려서 배경이나 고증에는 크게 얽매이지 않았다. 사실상 가상 세계라고 해도 무방한 가벼운 '코믹 판타지 수사활극'에 가까웠던 구성 덕분에 시청자들도 부담 없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운이 따라준 시청률과는 별개로 <암행어사>는 퓨전 사극의 단점 역시 극명하게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제작비의 한계나 정통 사극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후반부로 갈수록 개연성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엉성한 극본과 불성실한 묘사로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어디까지나 수사극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임에도 극중 어사단이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은 십중팔구 우격다짐이나 우연적 요소에 기댄 경우가 다반사다. 극중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설정된 이겸은 정작 경솔한 행동을 남발하다가 악당들에게 거의 매번 역으로 생포되거나 죽을 위기에 처한다.
 
  KBS2 드라마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 한 장면.

KBS2 드라마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 한 장면. ⓒ KBS2

 
어사단이 두뇌를 써서 위기를 돌파하거나, 자력으로 사건을 해결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어사단 일행이 위기에 봉착하면 항상 왕실무예별감 최도관(신지훈)이나 동생 이범 등이 '니가 왜 거기서 나와?'할 만한 타이밍에 나와 구해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최종회에서도 꼼짝없이 죽을 위기에 놓여있던 어사단을 구해준 것은 갑자기 개과천선한 행수군관(정종우)의 변심 덕분이었다.

어사단의 활약상이 허술하다보니 덩달아 악당들의 카리스마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손병호나 최종원, 김명수같이 연기력이 검증된 베테랑 배우들을 캐스팅하고도 하나같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평면적인 캐릭터로만 묘사하는 등 이들의 역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심지어 '중간보스'격으로 극초반 최고의 살수로 어사단 일행을 위협하며 카리스마를 발산했던 서용(박주형)은, 회가 거듭갈수록 어리숙한 행동을 보이다가 급기야는 춘삼의 몽둥이질 한방에 무너지는 용두사미형 악당의 전형을 보여줬다.

<암행어사>의 성공을 비롯하여 후속작인 <달이 뜨는 강>과 현재 방송중인 <철인왕후> 등 '젊은 층에 어필하는 판타지형 퓨전 사극'이 당분간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 <암행어사>를 통하여 고증과 개연성을 무시하는 퓨전사극의 부작용 또한 분명함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암행어사 퓨전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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