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새해전야>를 연출한 홍지영 감독.

영화 <새해전야>를 연출한 홍지영 감독. ⓒ 에이스메이커

 
2013년 연말 개봉한 <결혼전야> 이후 7년 만에 또 다른 전야 시리즈가 나올 걸 누가 예상했을까. 사전적으론 특정 날이 오기 직전의 밤 또는 시기를 뜻하는 이 단어에선 설렘과 떨림, 두려움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거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전야'만큼 많은 사람이 공감할 단어가 또 있을까. 

홍지영 감독은 그 지점을 포착했고 7년 만에 속편을 내놨다. 이번엔 새해가 기준이 됐다. 연말연시 특유의 정서를 9명의 캐릭터에 나눠 담았고, 설 연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미 한번 해봤던 포맷이라 수월할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며 홍지영 감독은 제법 고생했던 연출 후기부터 털어놨다. 

얽히고설킨 관계들

배우 김강우-유인나, 유연석-이연희, 이동휘-천두링-염혜란, 유태오-최수영 등으로 이뤄진 각 커플은 서로 연애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오랜 연인으로 지내는 중이다. 서로 다른 관계 설정에 해당 캐릭터들이 새해를 앞둔 일주일간 다른 캐릭터들과 스치고 엮이면서 하나의 주제 의식으로 나아가는 게 <새해전야>의 기본 구성이다. 

"<결혼전야> 만들면서 막연하게나마 이런 식의 기획이 또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은 했다. 인생의 중요한 사건을 앞두고 약간의 셀렘과 두려움 등 복합적 감정이 드는 건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전야라는 이름은 유지하고 내용은 달리하면서 한번 가보자고 했지. 1편도 그랬듯 4커플이 등장하는 형태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전편에 출연한 배우 2명에 새로운 배우를 더하는 식으로 했는데 다음 작품에선 어떤 배우가 그 정서를 이어갈지 아직은 모르겠다.

특별히 연말연시를 소재로 한 이유는 우리가 보통 새해, 구정 직전에 열심히 계획을 세우잖나. 그리고 구정을 지나며 한 달을 살아 보며 그 계획이 잘 진행됐는지 생각해보기도 한다. 매년 그런 일의 반복인 것 같다. 여러 복합적 감정이 드는 연말 일주일을 영화로 담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러 배우가 각 에피소드를 대표하고 그만큼 분량이 짧은 여러 이야기가 겹치기에 감독 입장에선 분량을 적절히 배분하면서도 정서적 효과 또한 극대화해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홍지영 감독은 "시나리오는 일종의 가이드일 뿐이다. 해당 배우가 표현할 수 있는 정서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그만큼 자유도를 주거나 일상적 관계를 끌어내기도 한다"며 나름의 전략을 공개했다. 배우와 정서적 유대감을 만들며 최대한 편안하게 시나리오 안에서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게 열어주는 게 홍 감독의 방식이었다.
 
 영화 <새해전야> 관련 이미지.

영화 <새해전야> 관련 이미지. ⓒ 에이스메이커 무비웍스

 
방법적으론 자유로움에 기대고 있지만 전작에 이어 꾸준히 집중하는 주제 의식은 일관돼 보인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의 다양함, 삶의 여러 단면을 끌어 온다는 점에서 다양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결혼전야> 속 국제 커플이었던 마동석-구잘 투르수노바처럼, <새해전야>에도 이동휘-천두링 조합으로 국제커플 설정을 넣었고, 이혼을 경험한 커플, 장애인 커플 등을 설정해 그만큼 폭 넓은 관객층에게 호소할 요소를 담보했다.

"7년 전 국제커플을 바라보는 시각과 지금은 또 다르다. 그땐 소통의 문제가 중심이었다면 이젠 주변 가족 이야기까지 엮어보자는 차원이었다. 그래서 극 중 용찬(이동휘)의 누나 용미(염혜란)를 추가했지.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야기도 늘었는데 과부하가 걸리긴 하더라. <결혼전야> 경험이 있어서 균형 잡는 게 수월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각각의 개성이 잘 담기길 바랐다. 텍스트만으로 이해하기 힘든 감정을 배우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이미지적으로도 스키장, 아르헨티나, 경찰서, 재활훈련소 등 일상 공간이면서도 특색이 나타날 수 있는 곳을 표현하려 했다.

영화라는 게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안도 할 수 있다고 본다. <새해전야>엔 비정규직, 번아웃을 경험한 사람, 이혼 위기를 겪은 사람 등 다양한 상처를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공통적으로 외로운 사람들이다. 야오린(천두링)과 용미(염혜란)가 대화하는 장면에서도 결국 외로움에 대해 말하지 않나. 그 정서가 이 영화의 출발점일 수 있다. 우리 모두 외롭고 잘 해내고 있나 혼란스럽기도 한데 사실 잘되고 있다, 용기를 내자 이런 정서를 표현하고 싶었다."


새로운 얼굴의 발굴

전작에서 함께 한 김강우, 이연희 외에 홍지영 감독은 여러 배우를 캐스팅해 새로운 조합을 만들었다. "특히 유태오와 최수영 조합이 일종의 시험대였다"며 홍 감독은 섭외에 얽힌 일화 일부를 전했다.

"최수영이란 배우는 연기경력이 꽤 되는데 배우 이미지보단 역시 아이돌 이미지가 컸고 긴 호흡을 못 봐서 가늠하기 어려웠다. 근데 궁금하더라. 유태오란 배우는 민규동 감독이 추천했다. 3년 전부터 그 배우의 팬이 민 감독 개인 메일로 끊임없이 리포트를 보냈거든. <레토> 출연 전부터일 거다. 태오 배우의 출연엔 그 팬의 역할이 클 것이다(웃음). 독특한 매력이 있는 태오 배우가 한국말이 살짝 어눌해서 독일 교포 설정을 가져오기도 했다. 지금은 그 어눌함이 매력이 됐다. 일상을 나누며 그를 깊이 알게 됐다. 최수영, 유태오가 전혀 다른 매력인데 만나면 어떤 효과가 날지 궁금했다. 

사실 두 번째 만난 배우라도 6년 전과 같지 않다. 달라진 배우에 저도 적응해야 했고, 관객 역시 전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9명의 캐릭터를 설정에 잘 얹어놓으면 될 것 같았지만 역시 쉽지 않더라. 세 번째 전야 시리즈를 하면 좀 더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웃음)."


세 번째의 주제 또한 이미 정해진 상태다. <졸업전야>라는 제목으로 구상한 내용을 전하며 홍지영 감독은 "아마 이전 작품보다 세대와 주제 면에서 더 확장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영화 <새해전야>를 연출한 홍지영 감독.

영화 <새해전야>를 연출한 홍지영 감독. ⓒ 에이스메이커

 
영화 <키친>, 전야 시리즈, 그리고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등 원작 소설 각색과 창작 시나리오 집필을 오가는 홍지영 감독의 화두는 앞서 언급한 외로움, 그리고 행복이었다. 결혼 직후 겪었던 우울증, 그리고 행복을 갈망하는 본인의 내면을 깊이 탐구한 결과물이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의 원천이 아닐까 스스로도 되묻고 있었다.

"<키친>의 경우엔 삼각관계를 도덕적 잣대로만 봐야 하나, 그 관계 자체를 바라볼 수 없나 생각하며 만든 작품이다. <결혼전야>는 제가 결혼했던 그 해에 결혼식 자체를 특별한 이벤트로 기억하고 있진 않았는데 사회적으론 엄청난 의미가 실리는 걸 보고 영화로 표현한 것이고,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타임슬립이라는 소재가 영화적이라 생각해서 시도한 것이다.

<새해전야>까지 네 작품 모두 목적은 하나인 것 같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 코로나19 전엔 뻔한 화두라고 생각했는데 참 귀한 화두더라. 왜 우린 행복해야 하는지, 코로나19 시기를 관통하면서 좀 더 의미가 생기더라. 고만고만한 기획영화가 될까 걱정도 있는데 제 입장에선 완성된 영화를 보며 치유를 받는 게 있다." 
새해전야 홍지영 김강우 이연희 유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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