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04 20:00최종 업데이트 21.02.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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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를 앞둔 사람들이 받는 신체검사의 근거가 되는 국방부 훈령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은 트랜스젠더를 '성주체성 장애'로 규정해왔다. 성주체성 장애는 1980년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3판(DSM-Ⅲ)'에 등재된 용어로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 질병 분류 10판(ICD-10)' 등에도 사용된 바 있으나, 이러한 명칭이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질병으로 낙인찍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정신과 진단은 성별 불일치 탓에 겪는 스트레스를 진단하고 지원하려는 것인데, 용어 때문에 마치 정체성이 교정과 치료의 대상인 마냥 호도된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였다. 이러한 비판을 수용하여 미국정신의학회는 2013년 DSM-Ⅴ, WHO는 2018년 ICD-11부터 성주체성 장애를 '성별 위화감(Gender Dysphoria)' 또는 '성별 불일치(Gender Incongruence)'로 표기하고 있다.


지난 2월 1일 국방부는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을 개정해 성주체성 장애를 성별 불일치로 정정 표기했다. 통계청이 5년마다 고시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8차, 2020년 고시)가 여전히 성주체성 장애를 사용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이번 개정은 전향적인 조치다.

성별 불일치에 해당하는 사람에 대한 병역 판정의 세부 기준도 바뀌었다. 개정 전에는 관찰 필요, 경도, 고도로 장애의 수준을 나누어 놓고 관찰 필요는 재검, 경도는 4급 보충역, 고도는 면제로 판정했다.

개정 규칙은 '생활기록부, 정밀심리검사 결과 등의 자료와 정신의학적 평가 등으로 성별 불일치 상태가 확인된 사람'의 '사회적·신체적 변화로 인한 군 복무 적응 가능성'을 판단하게끔 하고, 관찰 필요는 재검, 증상 상 군 복무에 지장이 초래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면제로 판정한다.

국방부의 전향적인 조치, 그러나...

근본적으로 징병 신체검사 기준을 현행 '질병 및 심신장애' 중심에서 '군 복무 적합성'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숙제로 남아 있으나, 이처럼 트랜스젠더에 대한 의학적 판단을 국제 기준에 맞추려는 군 당국의 조치는 군대 내 소수자들에게는 긍정적인 신호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소수자를 대하는 군의 태도는 종잡을 수 없이 퇴행적이다. 국방부가 신체검사 규칙을 개정한 날 육군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변희수 하사 강제 전역은 인권침해'라며 복직을 권고한 데 대해 불수용의 뜻을 밝혔다. 육군은 납득할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전역 처분이 적법하다는 주장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의 복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공개한 인권위 결정문은 전역 처분의 위헌·위법성을 상세히 지적하고 있다.

우선 인권위는 사실관계를 바로잡았다. 조사 결과 ▲변 하사가 소속부대에 성정체성과 관련한 보고를 미리 했다는 점 ▲수술이 정상적인 국외여행 허가 절차에 따라 상부 보고 속에 이루어졌다는 점 ▲미리 보고된 일정에 따라 수술 후 복귀하여 국군수도병원 비뇨기과에 입원한 점을 사실로 인정했다. 일각에서 제기해온 '변 하사가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몰래 수술을 해 전역을 당한 것'이란 주장은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이어 인권위는 육군의 주장을 요목조목 반박했다. 그간 육군은 변 하사의 전역 사유를 크게 세 가지로 꼽아왔다.

첫째로 육군은 변 하사가 음경과 고환을 상실한 심신장애인이라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심신장애의 법적 개념부터 짚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르면 심신장애란 '신체적·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다.

통상 성확정수술은 트랜스젠더의 외부 성기와 성정체성을 일치시키는 의학적 조치다. 엄연한 의학적 수술의 결과를 맥락 없이 손상, 기능상실, 사회생활에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라 규정하는 것은 자의적인 판단이란 것이다.

또, 인권위는 설사 심신장애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임무수행이 가능한 상황이면 반드시 전역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사례를 통해 지적했다. 국방부 통계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개년간 군에서 전역심사대상인 심신장애 3급 이상으로 판정된 사례는 총 194건으로, 심사 결과 이 중 15.5%인 30건만 전역 처분되었고, 그마저도 모두 본인이 전역을 희망한 경우였다. 변 하사처럼 계속 복무를 희망하는데도 이에 반하여 억지로 전역을 시킨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둘째로 육군은 고의로 신체를 훼손하여 심신장애에 이르렀다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주장은 당초 전역심사 당시에는 제기되지 않았으나, 변 하사의 인사소청 과정에서 등장하게 된다. '군인사법 시행규칙' 제3조 제1항에 '위법행위나 고의로 심신장애를 초래한 경우'에는 반드시 전역시키게 되어 있다. 인사소청 당시 변 하사가 심신장애에 해당한다는 논리의 근거를 찾기 어려웠던 육군이 갑자기 변 하사가 고의로 심신장애인이 되기 위해 성기를 절단한 사람인 것처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병원에서 이루어진 정식 의료 조치인 수술 결과를 두고 고의 신체 훼손이라 보는 것은 잘못이라 지적했다.
 

성전환 수술 후 강제전역 조치 된 변희수 전 육군 하사(전차조종수)가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전역 처분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 제기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셋째로 육군은 변 하사의 심신 건강 상태가 전투력 상실 상태라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인권위는 육군이 이러한 주장만 할 뿐 제대로 된 소명은 전혀 하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세계 정신 보건 전문 기관들이 성별 불일치 상태를 정신 기능 장애로 보지 않고 있고, 여군들도 군 복무를 하는 상황에서 변 하사가 전투력을 상실했다고 보는 구체적인 이유를 육군이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육군은 남북대치 상황과 군의 특수성 고려, 국민적 공감대 등 전투력 상실과는 무관한 소명만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이스라엘의 경우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가 허용되고 있고, 성확정 수술, 호르몬 치료, 성확정 수술에 따른 성형수술 비용까지 모두 의료 보험으로 처리해주고 있다는 점을 제시하며 군의 특수성을 전가의 보도로 삼아온 육군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 외에도 인권위는 보직 조정, 영외 숙소 배정, 부대 배치 등의 애로점은 군이 인사 행정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전역의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남군으로 입대해 여군으로 복무하면 힘들게 입대한 여군들에게 역차별이 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남군과 여군을 분리 운용하지 않고 성별 구분 없이 보직에 적합한 인원을 보임하고 있는 군의 현행 정책에 비추어 선발 과정이 구분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현역 여군들에게 변 하사의 존재가 역차별을 일으킨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종합적으로 인권위는 국가가 군인의 직을 박탈하는 문제는 기본권인 직업의 자유 제한에 해당하며 헌법에 따라 그 제한은 구체적인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육군은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단지 법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변 하사를 강제 전역시켰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인권위는 육군이 변 하사의 행복추구권, 직업 수행의 자유,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고 법률 유보의 원칙(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과하는 사항은 반드시 국회의 의결을 거친 법률로써 규정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어겼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육군은 현행법상 아무 문제가 없다며 인권위 권고를 무시하기로 했다. 결정문을 읽어보기는 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트랜스젠더 군 복무 허용, 명확한 세계 표준

지난 1월 25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당시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2018년 미군 수뇌부는 의회에서 트랜스젠더 복무와 관련해 부대 결속 문제, 징계 문제, 사기 문제 등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증언한 바 있고, 전직 의무감들이 트랜스젠더 군인이 비-트랜스젠더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군에 적합하고, 이들을 군에서 제외할 의학적으로 타당한 이유가 없다고 말한 바도 있다.

이스라엘·이란·미국·영국·독일·호주·캐나다·오스트리아·벨기에·볼리비아·브라질·덴마크·에스토니아·핀란드·아일랜드·네덜란드·뉴질랜드·노르웨이·스페인·스웨덴·태국 등의 나라는 이미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고 있다. 세계의 표준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명확한 일이다.

한편으로는 트랜스젠더를 장애로 규정하지 않는 국제 표준을 따라가면서, 또 한편으로는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 군은 말 그대로 '아노미 상태'를 겪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수자의 존재를 상상조차 못 했던 군이 겪는 시행착오 단계인 것일까. 이 역시 변희수 하사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숱한 성소수자 장병들이 만들어온 균열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군이 우왕좌왕하는 동안에도 성소수자 장병들은 차별과 혐오의 총포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변 하사는 벌써 1년째 '부당 해고자'로 살아가고 있다. 시행착오와 변화의 노정으로 치부하기엔 소수자들이 감내하는 고통의 시간을 국가가 되돌려 책임질 방도가 없다. 한 번 사는 인생, 이들은 왜 이렇게 자기 삶을 실험하며 살아야 하는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트랜스젠더를 더 이상 장애로 보지 않기로 했다면,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역시 누가 시키지 않아도 허용할 수 있는 범주다. 우리나라에는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금지하는 법문이 없다. 인권위가 뭐라 하건 일단 외면부터 할 것이 아니라, 법원만 쳐다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군 스스로 전향적 태도를 고민해 볼 시점이다. 트랜스젠더는 불시에 대한민국 육군을 침공한 외계인이 아니다. 지금껏 함께 잘 지내 온 '전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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