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서울 삼성과 전주 KCC의 경기. 전주 KCC 라건아가 드리블 중 공을 지키고 있다.

21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서울 삼성과 전주 KCC의 경기. 전주 KCC 라건아가 드리블 중 공을 지키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한민국농구협회가 오는 2월 열리는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 예선에 나설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12인 명단에는 허훈(부산 KT), 김낙현(인천 전자랜드), 변준형(안양 KGC), 안영준(서울 SK), 이관희(서울 삼성), 김시래(창원 LG), 여준석(용산고), 전준범(울산 현대모비스), 김종규(원주 DB), 이승현(고양 오리온), 강상재(상무), 라건아(전주 KCC)가 올랐다. 리그가 진행 중인 상황을 고려해 10개 구단에서 한 명씩만 차출하고 상무와 아마추어 고교 선수 한 명이 포함됐다.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한국 농구대표팀(FIBA 랭킹 30위)인 필리핀(31위), 인도네시아(88위), 태국(105위)과 함께 A조에 편성됐다 총 24개 나라가 6개 조로 나뉘어 경쟁하는 예선에서 조별 상위 2팀이 본선에 진출한다. 한국 대표팀은 지난해 11월 열린 아시아컵 예선에서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국내에서 열릴 예정이던 2경기를 취소한 바 있다. 국제농구연맹(FIBA)은 당시 대회에 불참한 국가에 2억 원의 제재금을 부과했다. 다만 제재금은 향후 FIBA 주관 대회에 참가하면 50%로 경감되는 조건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오는 8월 아시아컵 본선에는 2023년 세계 남자농구 월드컵에 출전 티켓도 걸려있다.

대표팀은 이래저래 이번 대회에는 반드시 출전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아시아컵 예선 잔여일정은 참가 팀이 외부와 격리된 공간에서 대회를 치르는 버블 방식으로 열리며, 2월 18일 필리핀전을 시작으로 19일 인도네시아, 20일 태국, 22일 필리핀과 다시 리턴매치까지 5일간 4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이 기다리고 있다.

당초 농구협회는 코로나19 문제로 인한 해외 입출국의 위험부담과 시즌이 한창 진행중인 프로구단들의 사정을 고려하여 프로 저연차와 대학리그, 상무 선수들 위주의 2진급 대표팀을 꾸리는 방안도 고려했으나, 결국 가능한 최정예멤버를 소집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팀당 1명 차출이라는 제한 때문에 라건아와 같은 소속팀인 이정현-송교창(이상 KCC), 허훈과 팀동료인 양홍석(KT) 등 충분히 대표팀에 뽑혀야할 만한 선수들이 아쉽게 제외되면서, 가장 최상의 멤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주어진 조건 하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팀을 구성했다.

성인 국가대표팀이 나서는 국제무대이고 FIBA가 주관하는 메이저대회인만큼 가능한 최상의 팀을 꾸려야한다는 원칙은 당연히 존중되어야한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대표선수들과 그 원소속팀인 프로구단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아야되는 상황은 못내 아쉽다.

아시아컵 예선을 마치고 돌아온 대표선수는 2주 동안 자가격리를 거쳐야 한다. 따로 운동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기간까지 고려하면 공백기는 더 길어질 수 있다. 정규시즌은 오는 4월까지 이어지는데 가뜩이나 프로농구 순위 경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프로구단들은 상당 기간 핵심 선수의 공백을 안은 채 시즌을 치러야하는 상황이 된다.

더구나 팀당 1명이라고 해도 선수의 비중은 구단마다 천차만별이다. 라건아가 외국인 선수 신분으로 뛰고있는 선두 KCC나 허훈의 KT, 김종규의 DB, 이승현의 오리온 등은 사실상 이들을 대체할 만한 선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의존도가 매우 높다.

가장 큰 문제는 대표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농구협회와 경기력향상위원회가 선수차출 문제를 놓고 프로구단들과 사전에 얼마나 신중한 협의를 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대표팀 차출 명단에 발표되자마자 강을준 오리온 감독이 공개적으로 아쉬움을 토로하는 등 프로구단들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협회와 프로구단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대표팀 운영은 농구협회의 권한이지만 각 선수들은 프로팀의 소중한 자산이다. FIBA의 막무가내 대회 참여 강요와 제재금 강탈로 사실상 '갑질'을 당했던 대한민국 농구협회가 정작 국내에서는 프로구단들을 상대로 똑같은 불통 행정을 반복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대표팀 차출을 둘러싼 논란은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농구의 빈약한 선수층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2월 아시아컵 예선에서 한국이 상대해야할 팀 중 필리핀 정도가 난적일뿐, 인도네시아나 태국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승수 쌓기 제물 이상의 의미가 없는 약체였고 FIBA랭킹에서도 한국과의 격차가 크다. 설사 필리핀에 밀린다고 해도 조2위까지 주어지는 아시아컵 본선행을 걱정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 프로구단과 팬들의 불만도, 굳이 인도네시아나 태국을 상대하는데 무리까지 해가며 최정예 멤버가 필요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하지만 김상식호는 지난해 2월에 열린 예선 1,2차전에서 정예멤버를 내세우고도 만만하게 봤던 약팀들에게 혼쭐이 난 바 있다. 인도네시아와의 1차전에서 109-76, 33점차로 대승했지만 전반까지의 경기내용은 박빙이었고, 심지어 태국전에서는 93-86, 불과 7점차로 간신히 신승해 한국농구의 현 주소에 대한 한숨을 자아내게 했다.

1990년대생이 주축이 된 농구대표팀은 현재 세대교체의 과도기에 있지만, 라건아 정도를 제외하면 아시아에서도 각 포지션에서 손꼽힐만큼 검증된 선수가 없고 주전과 벤치의 격차도 큰 편이다. 이제는 태국이나 인도네시아를 상대로도 그나마 최상의 멤버를 내놓지 않으면 불안하게 느껴질만큼 대표팀의 전력이 허약하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는 게 이번 선발의 숨은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농구협회는 전임 방열 회장 시절부터 주먹구구식 운영과 일방통행식 행정으로 많은 부작용을 겪어야했다. 17년 만에 기업인이 회장을 맡은 권혁운 신임 회장 체제에서도 시작부터 대표팀 차출을 둘러싼 잡음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당장의 국제대회 성적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농구협회와 프로구단, 선수들 모두가 피해받는 이들이 없도록 원할한 소통과 원칙을 바탕으로 문제를 조율해 나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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