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자매>에서 미연 역을 맡은 배우 문소리.

영화 <세자매>에서 미연 역을 맡은 배우 문소리. ⓒ 리틀빅픽쳐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면서도 가부장적 문화에서 커 온 모든 아들 딸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제 영화를 보는 걸 전 힘들어하는 편인데 부산영화제에서 보고 눈물이 많이 나 부끄럽기도 했다."
 

영화 <세자매>에 대해 문소리는 일종의 사명감이 있어 보였다. 출연 배우로 그리고 공동제작자로 나선 이유도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였다. 극적 사건이나 충격적인 반전도 없는 이야기였음에도 무엇이 그를 이토록 움직이게 했을까.
 
영화는 결혼 후 각기 다른 삶을 살던 세 자매가 아버지 생일을 기점으로 한 데 모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암 선고를 받았음에도 매사에 자기 생각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참고 사는 희숙,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남편과 자녀 뒷바라지에 힘쓰는 미연, 작가 지망생이지만 동시에 거친 성격을 주체하지 못하는 미옥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처럼 <세자매>는 처음부터 끝까지 큰 언니 희숙(김선영), 둘째 미연(문소리), 셋째 미옥(장윤주)의 삶을 나눠 제시하며 이들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문소리의 내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아프다"고 문소리가 말했다. 육체적 아픔만이 아닌 정서적, 마음의 아픔이었다. 가정폭력을 겪으며 자라난 세 자매의 모습은 바로 지금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웃의 삶과 닮아 있다. 어쩌면 우리 자신의 일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사람의 과거가 어떻게 마음에 남고 그 사람의 삶에 영향일 미칠 수 있는지를 얘기하는 영화다. 흔치 않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제 안에 있는 여러 면 중 썩 좋아하지 않는 부분이 극 중 미연과 닮아 있었다. 허점이나 미숙한 점을 드러내지 않으려 아등바등하는 것도 비슷한 것 같고, 집요한 면도 비슷하다. 그런 점을 연기하면서 마주하기 싫었다."
 
일단 출연하기로 한 이후 문소리는 오히려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로 캐릭터에 몰입했다고 한다. 불자인 그가 캐릭터를 위해 몇 개월간 주변 교회를 다녔고, 여러 영상을 찾아봤다. 성가대 지휘자라는 설정으로 피아노 연습을 꾸준히 했다. 집요하면서도 신앙심 강한 미연의 모습이 그렇게 완성될 수 있었다.
 
"찬송가가 대부분 4부의 화음으로 구성돼 있더라.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인데 이 화음이 제게 큰 안정감을 주더라. 불자인데도 듣기 좋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웃음). 교회가 되게 다양한 분위기였다. 큰 교회도 가보고 동네 상가에 들어선 개척교회들도 갔다. 목사님 말씀이나 풍기는 분위기가 참 달랐다. 미연이가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정감을 그래서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가족에게 사랑을 못 받고 불안한 사람들이 그렇듯 말이다. 교회라는 곳이 일종의 해방구이고 삶을 꾸려가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출을 맡은 이승원 감독, 동료 배우와 끊임없이 얘기하고 조율하며 지금의 이야기의 입체감이 살아났다고 한다. 문소리는 "촬영에 들어가기 며칠 전까지도 마지막 장면을 찍는 장소를 고민하고 대사를 수정하고 그랬다"면서 "찍는 현장에서도 감독님이 굉장히 유연하셔서 배우에게 맞게 시나리오를 고치기도 했다. 서로 설득하고 동의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고 치열함을 전했다.

감독은 극 중 미연이 차고 있는 십자가 목걸이의 크기까지 정했고, 문소리는 직접 인터넷 사이트에서 미연이 입을 만한 옷을 사는 등 세밀함과 정밀한 준비의 연속이었다.
 
 영화 <세자매> 관련 이미지.

영화 <세자매> 관련 이미지. ⓒ 리틀빅픽쳐스

 
전전긍긍했던 이유
 
<세자매>에 참여한 배우로서 문소리가 베테랑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였다면, 제작자로선 말 그대로 열정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여배우는 오늘도>로 연출 및 제작 경험을 쌓은 그는 <세자매>의 공동 제작을 제안받은 이후 본인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역량을 충분히 발휘했다.
 
"정말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는 상태, 초고 하나만 달랑 있는 상태에서 시작했다. 제가 돌아다니며 비즈니스를 한 건 아니지만 투자 유치를 위해 편지도 쓰고 그랬다. 막상 촬영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전긍긍했던 것 같다. 섭외했던 장소들이 코로나19 여파로 캔슬되기도 하고, 특히 학교 같은 장소를 빌리기가 너무 어려웠다. 아파트 한 곳도 확정됐다가 주민분들 반대로 못하게 된 일도 있었다."
 
촬영 현장 걱정과 후반 작업 걱정까지. 이 정도면 가히 제작자 마인드라고 할 수 있다. 연기 외 영역에 진출하면서 문소리는 스스로의 확장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 질문을 해야만 했다.
 
"음... 그냥 계속 영화를 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일이 제 직장이고 부서 이동이 좀 있을 수 있잖나(웃음). 그 부서 이동이 어렵거나 고통스럽지 않고 여러 다른 부서의 일이 재밌는 것 같다. 그게 모두 영화 일이니 제겐 큰 변화로 느껴지진 않는다. 해외의 많은 여배우도 좋은 소설이나 책이 있으면 판권을 직접 사서 제작하는 일도 있다. 저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집에서 빨래를 개다가도 그런 생각을 한다(웃음).
 
영화에 대한 애정이 꽤 큰 것 같다. 특히 요즘 다들 극장에 많이 못 가시고, 안 가시잖나. 극장에 걸리는 영화들도 별로 없고. 이러다 정말 시네마가 사라지게 되나, 각자의 집에서만 봐야 하나 그런 생각하면 되게 슬퍼지기도 한다. 새삼 내가 영화를 많이 사랑한다는 걸 확인하는 중이다. 상영 직전 불이 꺼지는 찰나, 엔딩크래딧이 올라갈 때 뭔가 큰 기운이 감싸는 느낌이 들 때를 좋아한다. 이런 경험들이 우리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영화 <세자매>에서 미연 역을 맡은 배우 문소리.

영화 <세자매>에서 미연 역을 맡은 배우 문소리. ⓒ 리틀빅픽쳐스

 
<세자매>를 들고 어려운 시국에 개봉하는 문소리의 마음이 그만큼 특별했다. 또 여전히 한국 기획영화에선 찾기 어려운 여성주도 서사라는 점에서도 특별함이 있었다. 문소리는 "참 소중한 작품"이라며 <세자매>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냈다.
 
"여성 영화가 최근 많아지는 것 같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내가 죽던 날> 등이 여성 서사를 이어오고 있어서 관객으로서 참 좋다. 근데 여성 서사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영화는 아닐 수 있잖나. 제 취향이 아닐 수도 있고. 그런데 대체로 여성 서사가 (남성 서사보다) 다양한 주제의 다양한 서사를 말하고 있다는 생각은 든다. 제가 바라는 세상과 맞닿아 있다. <세자매>처럼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한 영화 안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것 같은데 제 영화라 소중한 것도 있겠지만, 관객으로서도 그간 보기 힘들었던 여성 캐릭터들의 향연을 즐기기에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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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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