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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16개월 된 정인이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양부모의 첫 재판을 앞둔 서울남부지법에 분노한 시민 70여 명이 오전부터 몰려들었다.
 생후 16개월 된 정인이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양부모의 첫 재판을 앞둔 서울남부지법에 분노한 시민 70여 명이 오전부터 몰려들었다.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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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기사 : [인터뷰 ②] "정인이 입양 결연 결정에 몇 가지 문제점 있어"

- 정인이를 입양 보낸 입양기관의 구조적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입양기관은 사실상 입양가정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오작동할 수밖에 없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 입양사후관리 역시 입양결연의 실패를 은폐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입양기관은 아동의 복리와 인권보호는 뒷전이고, 입양부모의 미성숙성은 외면하면서 입양결연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본질상 그렇다. 입양 그 자체를 많이 하는 것, 입양이 성과인 것, 입양 그 자체를 활성화하는 것이 목적인 사업이기 때문이다.

SKY의 미혼 청년 남녀가 원치 않은 임신을 해서 낳은 아이를 달라, 여자아이를 달라, 혈액형은 이런 아이를 달라, 건강한 아이를 달라, 음주나 흡연 경력이 있는 엄마의 아이는 안 받겠다 등등 입양예비부모들의 욕구 충족을 위해 거기에 맞는 아이를 골라 입양결연 하느라고 정신없는 기관이 입양기관들이다. 입양의 대원칙인 아동을 위해 가정을 찾아 주는 입양이 아닌, 가정의 욕구에 부응하는 입양이 일상으로 실천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곳이 입양기관이니, 정인이의 죽음과 같은 사고가 거의 해마다 날 수밖에 없다."

- 아동입양과 관련해 지난 70년간 정부는 거의 손을 놓고 전적으로 홀트와 같은 사설 민간 입양기관에 맡겼다. 이제라도 아동입양, 또는 아동양육과 관련해 국가의 어떤 적극적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판단하는지?
"아동의 분리와 인수와 보호를 전적으로 국가의 공적체계가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사실상 아동이 친부모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아동의 경험을 중심으로 보면 학대다. 분리 이후의 조치가 설사 아동의 복리와 인권에 부합하다고 해도 분리경험의 본질이 학대경험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면, 국가가 학대예방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일이 자명하듯이, 분리의 최소화에 국가가 적극 개입하는 제도의 설계가 필요하다.

영아심리학자들은 아동이 표현하지 못해서 그렇지 분리의 아픔과 슬픔을 알고 있다고 한다. 아동이 분리에서 경험하는 삶의 핵심내용이 학대일 수 있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를 막론하고 내가 만나본 입양인들은 자신의 분리에 대한 경험해석을 '어떻게 내 엄마는 나를 양육하기를 포기했을까. 왜 나와 엄마의 분리를 예방하기 위해 친족이나 국가는 도와주지 않았을까'라는 질문 안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지적 인식체계가 아니라 세포 안으로 스며든 분리라는 학대의 상처가 일상의 층위로 재현하고 불시에 현상하는 고통에 시달린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입양시스템 설계의 첫 단추인 아동의 분리가 사실상 사설입양기관을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 위기가정이 아동의 지속적 양육난관에 봉착해서 찾아가는 곳이 사설 입양기관이나 아동일시보호소다. 그런데 이 아동일시보호소조차도 대부분 이윤을 추구하는 사설입양기관이 운영하고 있다. 분리를 통해서 아동을 인수하고 보호하는 것을 통해서 입양사업의 이윤과 토대가 마련된다. 그러나 아동학대예방의 원칙이나 원가정보호의 원칙에 비추어서 이 분리를 최소화하여 아동의 복리와 인권을 보호하는 일과 이윤을 추구하는 사설입양기관의 입양사업의 본질은 서로 모순이 된다. 이해충돌이다. 더 많은 아이가 분리되고 더 많은 아이를 인수하고 보호해야 이윤이 남는 입양사업 자체를 전개할 수 있다.

그래서 국가는 아동의 분리가 아동학대적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인식과 유엔아동권리협약이 말하는 원가정 안에서의 아동이 성장할 권리와 원칙에 기초해서 아동분리에 관한 직무를 국가의 공적 직무 체계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야 한다. 아동양육을 포기해야 할 분리의 위기에 몰린 위기가정들에게 대한 심층적 양육 상담과 부모교육 및 경제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그 방향은 분리를 예방하고 최소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동의 분리와 인수와 보호, 국가의 공적체계가 담당하도록 해야"

- 분리의 위기에 놓인 친모와 아동에게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분리의 위기에 몰린 친모와 아동을 긴급 일시 보호할 보호시설을 국가가 제공하면서, 친모와 상담을 지속하고 숙고를 거듭하게 해서 양육과 분리에 대한 성숙한 결심의 과정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친모가 아동과 분리를 하더라도 트라우마를 최소화하는 지속적 상담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고 회복을 통해 아동과의 재결합의 길을 마련해줘야 한다.

아동을 분리해야 할 위기에 몰리는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경험에는 강간, 폭력, 아동의 부의 실종, 외면, 무책임, 사회적 비난, 가족에 의한 질책, 때에 따라서는 성매매산업에의 노출, 경제적 곤경, 고립출산 등 헤아릴 수 없는 궁박에 내어 몰린 경험이 얼룩져 있을 수 있다. 온몸으로 이 아픔을 신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여겨진다. 국가시스템은 이들에 대한 도덕적 단죄를 묻는 방식이 아니라, 다음 단계의 삶의 여정에서 어떻게 이 비극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더 건강한 시민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겠는가 하는 관점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 이윤을 추구하는 사설입양기관이 개입하는 것을 정부는 근원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입양숙려제 7일의 입법 정신도 7일의 기계적 적용이 아니라, 숙고된 성숙한 결정을 도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입양기관들이 그동안 보여 온 행태는 심지어 이 기계적 적용의 경계선을 넘어서 미처 7일이 되기도 전에 아동의 인수를 결정하는 일들이 없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분리 단계에서 아동의 편에서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 시스템이 없다. 양육에 곤경을 겪는 친모(부)와 입양기관의 사회복지사 사이에서, 아동은 원가족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을 권리를 그 누구로부터도 옹호 받지 못하고 있다. 엄밀하고 냉정하게 말하면, 이 시점에서 친모(부)와 입양기관은 사적주체다. 본질상 사사로운 개인이 사사로운 개인에 아동을 넘겨주는 일이나 다름없다.

아동이 분리될 위기에 처하면, 국가가 나서서 왜 그 아이가 친모(부)로 분리가 유일한 길이고 불가피한지, 왜 그것이 아동의 최선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아동의 생명과 안전에 위해가 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국가 나서서 분리 조치를 해야 한다. 빈곤이 이유인 경우에는 국가의 지원을 통해서 아동이 분리되지 않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아동학대의 위험이 있는 경우는 우선 일시 분리 조치 후, 친모(부)에 대한 충분한 상담과 교육과 지원을 통해 부모의 양육기능을 충분히 회복시킨 후, 아동을 다시 가정으로 복귀시킬 수 있어야 한다. 현행 입양시스템은 사실상 친모(부)는 양육 곤경을 해소하고 사설입양기관은 입양 가능 아동을 얻는 양자의 이익만이 실현되는 구조다. 아동보호체계의 근본적 원칙에 반하는 시스템을 성찰 없이 허용해온 국가의 죄가 크다."

- 사설입양기관들이 지난 70년 동안, 국가를 대신해서, 친모와 분리된 아동을 보호해 온 것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사실상 사설입양기관은 그 이익을 위해서 친모와 분리된 아동을 배타적이고 독점적으로 '보호'해온 것이다. 입양기관들이 운영하는 아동일시보호시설의 대표적인 사례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입양기관의 시설 내부에 설치된 영아실이다. 한 방에 40~50여 명의 아동을 두는데 종종 책상 높이의 아기바구니에 두고 보육사들이 배치되어 아동이 입양 보내어지기 전까지 돌보는 시스템이다.

종종 보육사들의 인력을 최소화하는 운영방식에 따라 자원봉사자들의 봉사에 의존하기도 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선의에 기초해서 자발적으로 봉사했지만, 결국 이 시스템은 입양기관들의 아동보호 비용절감효과에 공헌하는 일이기도 했다. 해외입양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일손이 모자라 영아들이 스스로 젖병을 물고 있도록 하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한국해외입양 분야의 석학이자 한국계 해외입양인인 스웨덴의 토비아스 휘비네트 박사는 입양기관이 직영하는 미혼모의 집과 함께 영아실을 일컬어 '아기농장'이라 일컬었다.

사설입양기관이 제공하는 또 다른 '보호'방식은 위탁모 양육이다. 현재 우리 정부가 운영하는 가정위탁제도와는 별도로, 입양기관들은 가정위탁 시스템을 장구한 세월 동안 운영해왔다. 입양기관들이 친모와 분리된 아동을 입양 보내어지기 전까지 위탁가정 시스템 안에서 보호하고 양육하는 이 방식은 바람직하긴 하지만, 개별 입양기관마다 고유하게 이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누구도 넘볼 수 없도록 장벽을 치고 있다.

이곳에서 보호받는 아동들에게 5개월 안에 적합한 국내입양 가정을 찾아 줄 수 없어서 아동을 해외입양 보낼 수밖에 없다는 입양기관들의 해외입양 선호를 타파하기 위해서, 정부는 더 적합한 가정을 찾아 주기 위해 입양기관들이 보호하고 있는 아동들의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들기까지 했지만 입양기관들의 저항에 부딪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사설입양기관들은 내 품에 들어온 아이들을 다른 기관에 혹은 다른 방식에 넘겨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게 돈이 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태그:#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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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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