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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100세 시대 장수만세'를 구가하려던 21세기 지금 그 노년기가 반드시 축복만은 아님을 코로나19 사태가 끔찍하고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바로 열악한 양로시설 및 요양시설 환경 때문이다. 급격하게 진행된 산업화로 대가족 시대가 붕괴되고 핵가족 시대가 도래하면서 노인들의 노후를 더 이상 가족이 부양할 수 없게 되고, 그것을 기존의 노인시설들이 떠맡게 되었다.

하지만 공적 노인부양체계가 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평균수명의 연장 등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노인들, 특히 80세가 넘어 치매를 비롯한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후기고령 노인들이 급증해 대거 밀려들어 온전히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집단시설 특성인 관리에만 급급할 따름이다. 우리가 그렸던 '100세 시대 품위 있는 노후생활'은 말 그대로 꿈으로 그칠 지경이다.

심지어 지난해 봄 코로나19 1차 감염 시기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환자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의료 시스템 탓에 이탈리아에서는 '기저질환을 가진 노인 환자들은 병원 감옥에 가둬두고 젊은이만 치료했다'는 의료진의 믿기지 않을 증언이 나올 만큼 노인 환자들을 방치해 전 세계를 경악시켰다. 그로인해 당시 이탈리아에서 코로나로 인한 노인들의 사망률은 무려 70%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2월 22일 경북 청도 대남병원에서 일반병원에 입원해있는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앰블런스 차량에 태우고 있다.
 지난해 2월 22일 경북 청도 대남병원에서 일반병원에 입원해있는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앰블런스 차량에 태우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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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불평등, 노인들에게 더욱 가혹한 팬데믹 현상

재난은 불평등하다지만, 특히 팬데믹은 요양시설에 머무는 노인들에게 가장 가혹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한국을 비롯해 세계 20여 개국에서의 코로나19 관련 사망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12월 중순까지 이들 나라의 사망자 64만 명 중 23만 명 곧 3분의 1 이상이 요양시설 거주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노인의학국제학술지 JAMDA는 장기요양시설 거주자의 코로나19 사망률이 일반 노년층보다 20배 이상 높았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난 11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 간(1월 3일~9일) 사망자가 총 158명이 발생했는데, 추정 감염경로가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과 같은 시설 및 병원 노출 사례가 59.5%(94명)로 가장 많았다. 제3차 대유행이 잦아들고 있지만, 노인요양시설 등 감염 취약시설의 코로나19 유행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하는 간호사 카린 허스터의 "요양시설은 세균 배양접시나 다름없다"는 언급에서도 드러나듯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밀폐된 곳에서 집단 거주하는 노인요양시설이 감염 취약시설일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4월 9일 <가톨릭평화방송(cpbc)TV> '가톨릭뉴스'에 출연한 필자가 코로나19 시대에 고통받는 장애인들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해 4월 9일 <가톨릭평화방송(cpbc)TV> "가톨릭뉴스"에 출연한 필자가 코로나19 시대에 고통받는 장애인들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정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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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시설은 집단사망 낳는 감염 취약시설

그것은 노인들만의 비극이 아니었다. 국제장기돌봄정책네트워크(International Long Term Care Policy Network)가 지난 해 6월, 26개국을 대상으로 시행한 '코로나19와 장애인권모니터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사망자 가운데 장애인거주시설, 노인요양시설, 정신병원 등 집단시설 거주 사망자가 약 4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곧 집단시설 자체가 감염 취약시설이라는 말이다.

이런 결과는 선진국 후진국 구별이 없었는데, 벨기에 50%(4851명), 캐나다 85%(6236명) 등에서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코로나19 사망자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적었던 뉴질랜드와 슬로베니아에서도 사망자 대부분이 집단시설에서 발생한 것으로 조사되었다(뉴질랜드 72%, 슬로베니아 81%).

우리나라의 경우도 최초의 희생자는 청도 대남병원 정신병동에 수용되어 있던 정신장애인들이었다. 집단시설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하면 그 시설 전체를 폐쇄시켜 일종의 '버려진 섬'처럼 만드는 이른바 '코호트 격리' 조치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런 조치가 감염이 시설 밖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를 낳을지는 모르지만, 사회와 차단해 외부 확산을 막으려는 '격리'로 인해 정작 내부에 수용된 거주인들 사이에서는 교차 감염 사태를 더욱 확산시키는 역효과를 낳아 집단시설 내 사망자를 대거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환자와 의료진이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해 코호트 격리가 시행된 서울 구로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의료진이 입원환자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환자와 의료진이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해 코호트 격리가 시행된 서울 구로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의료진이 입원환자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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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시설 중심으로 치닫는 노인복지 근본적인 고민 필요

이러고저러고 간에 인류사회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평균수명 연장으로 노년층 인구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코로나19 사태 곧 팬데믹 현상은 초고령사회를 축복으로 맞이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인류가 고민하도록 만들고 있다.

'100세 시대 장수만세'를 구가하는 이 시대, 노년기에 장기 거주해야 할 곳인 노인시설이 이토록 비인간적이고 시설 관리 측면에서도 열악해 품위 있는 노후생활을 만끽할만한 환경이 못 된다면, 우리의 장수시대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스런 것 아니겠는가. 특히 '걸어서 들어간 요양병원 죽어서 나온다'고 영리 우선 돌봄사업의 상업화 그 문제점은 간간이 나오는 고발뉴스를 통해 익히 알고 있지 않는가.

내가 장애인 탈시설운동을 펼치면서 꽃동네 창립자 오웅진 신부를 향해 '장애인 복지시설을 노인복지시설로 전용하라'고 권고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리스도교가 지녀온 복지 마인드로 초고령사회에서 노인들이 어떻게 하면 품위 있는 노후생활을 보내고 죽음을 존엄하게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인지 그 해결책을 찾아내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어쩌면 인류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코로나19 사태 극복 이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를 위해선 장애인복지와 마찬가지로 집단시설 중심으로 치닫고 있는 노인복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부터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지금이야말로 어느 때보다 노인복지에 대한 국가책임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적 연대책임의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태그:#코로나19, #노인요양시설, #장애인, #노인복지, #집단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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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정권교체동행위원회 장애인복지특별위원장,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맹 수석부회장,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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