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을의 마티네> 관련 이미지.

영화 <가을의 마티네> 관련 이미지. ⓒ 영화사 찬란

 
두 번 정도 본 사이인 남녀가 순식간에 사랑에 빠졌다. 한 사람은 세계 정상급 클래식 기타리스트고 다른 사람은 프랑스 언론 매체 소속 기자다. 일로 만나 사랑으로 발전하는 이야기야 동서를 막론하고 있을 법한 일인데 여기에 어떤 거짓말이 작용했고, 더욱이 그 잠깐의 거짓말로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영화 <가을의 마티네>는 잔잔한 클래식 기타 선율처럼 점진적인 흐름을 타면서도 그 내면에 흐르는 폭풍같은 감정의 고저를 다룬 작품이다.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한창 이름을 날라는 약혼자가 있는 요코(이시다 유리코)는 취재차 도쿄에서 만난 마키노(후쿠야마 마사히루)에게 묘한 끌림을 느낀다. 그런 느낌은 마키노도 마찬가지. 오히려 마키노는 자신의 음악을 잠시 멈출 정도로 요코에게 직진하게 된다.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소설 <마티네의 끝에서>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잔잔하다. 멜로 장르에 흔히 있을 법한 격정적 감정의 부딪힘보다는 두 인물이 서로를 알아보고 감정의 동요를 느끼다가 모종의 선택을 하는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낮에 펼쳐지는 공연'을 뜻하는 단어인 마티네에서 알 수 있듯 흔히 벌어지는, 주목받는 인생이 아닌 어쩌면 특별할 수 있는 한 번의 기억을 형상화한 셈이다.

영화의 배경은 한창 테러 위협이 증가하는 프랑스 파리 한복판, 그리고 마키노와 유코의 삶의 터전이 되는 일본 도쿄 및 미국의 뉴욕이다. 서로 다른 상황과 맥락에서 살던 이들이 세 도시에서 접점을 맞이하며 운명적 끌림을 확인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제시된다. 결혼을 앞둔 유코는 테러 현장을 취재하다가 실제로 눈앞에서 동료 잃고 정신 공황에 빠진다. 그런 그를 마키노는 마음을 다해 위로하고, 더불어 자신의 마음을 강하게 고백한다. 

선택해야 할 순간 유코는 약혼을 파기하기로 하지만 운명의 장난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마키노를 성심껏 보좌하고 돕던 매니저 마사에(사쿠라이 유키)가 어떤 거짓말을 하게 되면서 두 사람이 엇갈리게 된 것이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남녀지만 이들은 아직 신뢰가 다져진 단단한 관계가 아니었기에 물 흐르듯 이들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된다.
 
 영화 <가을의 마티네> 관련 이미지.

영화 <가을의 마티네> 관련 이미지. ⓒ 영화사 찬란

  
 영화 <가을의 마티네> 관련 이미지.

영화 <가을의 마티네> 관련 이미지. ⓒ 영화사 찬란

 
이뤄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아쉬움, 혹은 거짓말 한 상대에 대한 회한 등 다양한 감정이 드러나 극적 사건이 벌어질 법 하지만 <가을의 마티네>는 마치 배경으로 흐르는 잔잔한 기타 선율처럼 두 인물의 다음 삶을 보여줄 뿐이다. 관객 입장에선 어긋난 길이 다시 고쳐지고 두 사람 관계가 전처럼 회복되길 기대하겠지만 인생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미래 뒤에 다시 과거가 돌아오지 않듯 말이다.

그래서 영화에 등장하는 몇 가지 대사가 인상 깊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전하며 과거의 추억을 얘기하는 유코에게 마키노는 "과거가 항상 미래에 영향을 주는 것 같지만 실은 미래 또한 과거에 영향을 주기도 하다"는 말을 전한다. 지금 하는 선택, 그리고 그 이후 겪게 될 일로 인해 과거의 나쁜 기억이 좋게 바뀌기도 하고 평범했던 기억이 특별해지기도 한다는 속뜻이다. 이 말로 유코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된다. 아마도 자신이 20년간 알아오고 결혼까지 약속한 약혼자를 등질 수 있던 것도 그런 마키노의 통찰 때문일 것이다. 그 통찰은 유코 뿐만이 아닌 마키노를 오래 지켜본 매니저 마사에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파혼을 택했다고 질타할 수만은 없다. 결국 인생에서 선택은 자기 몫이며 그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그 사람의 것이니 말이다. 엇갈린 운명의 끝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잔상으로 남을 법하다. 모처럼 마음을 조용히 울리는 좋은 멜로 영화를 만났다. 일본 스타 배우이자 이젠 국민 배우로 넓게 사랑받는 후쿠야마 마사히루의 연기, 그리고 그의 가수 경력의 장점이 빛나는 영화다. 


한줄평: 인스턴트 사랑과 멜로에 지쳤다면 꼭 봐야할 작품
평점: ★★★★(4/5)

 
영화 <가을의 마티네> 관련 정보

감독: 니시타니 히로시 출연 : 후쿠야마 마사하루, 이시다 유리코 
장르: 클래식 로맨스 
러닝타임: 123분 
수입 및 배급: 찬란 
공동제공: (주)버킷스튜디오 
관람등급: 12세이상관람가 
개봉: 2020년 12월 31일 
 

 
가을의 마티네 파리 테러 기타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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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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