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방송된 KBS2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28일 방송된 KBS2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 KBS2

 
반려견 한 마리와 살아가는 일도 만만치 않은데 다견 가정의 어려움은 얼마나 클까. 지난 28일 방송된 KBS2 <개는 훌륭하다>에는 무려 6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는 보호자 부부가 출연했다. 그동안의 시청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다견 가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단연코 '(반려견들 사이의) 싸움'이었다. 애정, 먹이, 자리 등 그들이 싸울 이유는 다양했다. 

특히 보호자의 (제한된) 애정을 차지하기 위한 반려견들끼리의 경쟁은 심각한 싸움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간혹 보호자가 (알게 모르게) 편애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핵심은 보호자가 얼마나 균형된 애정을 적절히 주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처럼 다견 가정이라는 말만 들었을 때 익히 그려지는 상황들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범위를 벗어나지 않을 거라고 (섣불리) 생각했다. 

하지만 보호자의 집을 둘러보니 보호자가 반려견들에게 얼마나 세심한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우선, 가림막이 설치된 대문을 열면 잔디 마당과 이중으로 된 안전문이 있었고, 집 안과 밖을 이어주는 견문(犬門)도 마련돼 있었다. 또 월담을 막기 위해 높은 담벼락과 가림벽까지 갖추고 있었다. 강형욱 훈련사도 "신경을 정말 많이 썼"다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코커스패니얼 껌딱지(수컷, 4살) 
코커스패니얼 껌둥이(수컷, 3살 반 추정)
진돗개 믹스 껌종희(암컷, 4살 추정)
비글 껌까비(수컷, 3살 추정)
진돗개 호구 껌소리(암컷, 2살 추정)
웰시코기/진돗개 믹스 껌도담(수컷, 2살 추정)

 
 28일 방송된 KBS2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28일 방송된 KBS2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 KBS2

 
아내 보호자는 껌딱지를 먼저 데려온 후 유기견 보호소에서 나머지 반려견들을 차례로 데려왔다고 설명했다. 나이를 추정할 수밖에 없는 건 그 때문이었다. 보호자는 껌딱지의 '껌'을 성으로 삼아 '껌가(家)'를 꾸렸다. '반려견 맞춤 하우스'에서 살고 있는 껌 패밀리는 전체적으로 순한 편이었다. 그동안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다. 그런데 최근 미스터리한 사건이 발생했다. 

불과 한 달 전이었다. 외출 후 귀가한 보호자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도담이를 발견했다. 까비는 TV 밑 큐션에서 앉아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싸움이 벌어진 것일까. 보호자는 CCTV를 통해 사건의 진위를 파악했다. 영상에는 둥이, 소리, 도담이 한가롭게 놀고 있었다. 그런데 까비가 다가오자 분위기가 싸늘해졌고, 곧이어 까비와 도담의 싸움이 시작됐다. 

그런데 옆에 있던 소리가 합세해서 도담이를 공격하는 게 아닌가. 둥이는 싸움을 지켜보며 안절부절못했고, 뒤늦게 달려온 종희는 당황해서 멀뚱히 지켜보기만 했다. 충격적인 건 싸움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것이다. 10분이 지나도 까비와 도담의 싸움은 그칠 줄을 몰랐다. 강형욱도 아주 길게 싸우는 거라며 충격에 휩싸였다. 아내 보호자도 이런 적이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혹시 도담이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아내 보호자는 도담이가 두 번의 파양 경험이 있지만, 다른 반려동물과도 잘 지냈었다고 들었다고 했다. 또 먼저 온 다섯 마리의 반려견들과 익숙해질 수 있도록 오랜 적응 시간을 주며 배려했다고 설명했다. 보호자의 세심한 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호자가 가장 의아한 건 소리의 태도였다. 평소에 순했던 소리가 왜 도담이의 엉덩이를 공격했던 걸까.
 
 28일 방송된 KBS2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28일 방송된 KBS2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 KBS2

 
한편, 종희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목줄을 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종희는 목줄을 매려고 하면 무서워 몸서리를 쳤다. 아주 강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대변까지 볼 정도였다. 또 3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보호자의 손길을 피하고 있어 스킨십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 남편 보호자는 목욕은 연례 행사나 다름 없다며 1년에 2번 정도밖에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겨우 목줄을 맨다고 해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아 산책을 할 수 없었다. 종희는 왜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는 걸까. 강형욱은 종희가 야생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가령, 모견이 컨테이너 밑이나 야산 등지에서 새끼를 낳았다면 사람의 기척만 느껴도 벌벌 떨었을 테고, 새끼 때부터 그 모습을 보고 자라게 되면 '겁'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 파악을 위해 이경규와 장도연이 먼저 투입됐지만, 껌 패밀리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 반려견들만 두고 보호자들은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럼에도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경규는 지금까지 본 다견 가정 중에서 가장 행복한 집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강형욱도 영상만으로는 문제를 모르겠다고 했다. 여전히 싸움의 이유는 오리무중이었다. 

"서열이 잡히지 않은 모습은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에요."

껌 패밀리를 직접 만난 강형욱은 반려견들이 서열화 되어 있지 않다고 칭찬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보호자들은 비서열화를 중시하며 키워 왔다고 대답했다. 우선, 목줄을 거부하는 종희부터 훈련을 시도했는데, 강형욱은 거부하는 정도가 아주 심각하지 않다면서 보호자가 꾸준히 훈련만 시키면 핸들링이 쉽게 될 수 있을 거라며 의욕을 북돋아주었다. 

훈련의 핵심은 적응할 시간을 주며 기다리는 것이었다. 종희가 움직이면 가만히 뒤를 따르기만 하면 됐다. 보호자들은 그동안 앞에서 종희를 끌기만 했다며 자신들의 방식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다행히 종희가 식욕이 많아 간식을 통한 훈련은 훨씬 수월하게 진행됐다. 종희는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3년간 실패했던 목줄과 스킨십이 강형욱의 도움으로 드디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도담이와 까비의 싸움, 그 원인을 찾아야 할 차례였다. 강형욱은 다견가정의 경우 반려견들 사이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반려견들의 앉는 자리와 앉는 순서를 파악하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각 반려견의 캐릭터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종희는 사람에 관심이 전혀 없었고, 도담이는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었다. 까비는 이 구역의 왕인 듯 보였다. 

한편, 보호자가 딱지를 쓰다듬자 다른 반려견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강형욱은 딱지가 이 집에서 '감정 휴지통'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다견 가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캐릭터인데, 그대로 방치하면 희생이 따르게 된다고 경고했다. 반면, 소리는 관계를 도와주는 역할이라기보다 상황을 확대하는 스타일이었다. 가령, 싸움이 벌어지는 상황을 부추기는 쪽이었다. 
 
 28일 방송된 KBS2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28일 방송된 KBS2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 KBS2

 
여기까지 설명한 후 강형욱은 CCTV 영상을 분석했다. 애초에 까비는 대문 근처에 앉아 있었는데, 강형욱은 보호자와 마지막으로 헤어진 장소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봤다. 코로나 19로 재택 근무가 늘어나면서 반려견들의 분리불안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계속 같이 있다가 떨어지는 게 싫었던 것이다. 보호자도 유독 저 날 까비가 난리를 쳐서 출근하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처음엔 별다른 긴장감이 없었다. 그러다 도담이와 까비가 얼굴이 마주쳤고, 까비의 꼬리가 서서히 느려졌다. 불쾌하다며 경고한 것이다. 분위기를 파악한 도담이 자리를 피하려는 순간, 눈치 없는 둥이가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리고 싸움이 촉발됐다. 강형욱은 의도하지 않은 둥이의 끼어들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진 것이라 추론했다. 소리는 캐릭터답게 옆에서 싸움을 거들었다. 

소리만 없었으면 금세 잦아들었을 싸움이었다. 강형욱은 훈련사의 관점에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다만, 여러 가지 현상들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싸움으로 발전한 것이다. 특정한 문제가 있다기보다 단지 그날의 기운이 안 좋았던 탓이었다. 나머지 세 마리의 반려견이 싸움에 합류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문제가 있는 집단이라고 할 수 없었다. 

강형욱은 켄넬 훈련을 제안했다. 켄넬이 자기 공간이라는 것을 인지하면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껴 공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강형욱은 켄넬 안으로 간식을 던져 놓아 껌 패밀리가 자연스럽게 들어가도록 유도했다. 처음에는 버텼던 소리도 어느새 켄넬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켄넬에 적응한 후에는 밥도 각자의 켄넬 안에서 먹도록 해 자기만의 공간이라는 걸 인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스터리한 사건의 전말은 '운수가 좋지 않은 날'이었다.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일어나지 않으면 좋을 일이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켄넬 훈련을 통해 반려견들이 자신만의 공간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보호자가 각 반려견들의 캐릭터를 파악해 갈등을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었다. 이미 훌륭한 보호자들은 앞으로 더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개는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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