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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라면 누구나 법안을 제안할 수 있도록 도입한 국회 '국민동의청원'. 실제로 해보니 문턱은 높고 또 좁았습니다. 국민동의청원이 그 이름값을 할 수 있도록 시민단체들이 제도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고 개선 방안을 제안합니다.[편집자말]
 여의도 국회의사당.
 여의도 국회의사당.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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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일,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 촉구에 관한 국민동의청원이 올라왔다. 평등한 세상을 바라는 한 시민이 연 청원이었다. 당시는 6월 29일 차별금지법안 발의, 30일 국가인권위원회의 평등법 제정 의견표명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나오던 시기였다. 따라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국회가 한층 더 적극적으로 차별금지법 추진에 나설 수 있도록 위 청원에 힘을 실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하여 청원이 마무리되는 8월 1일까지 "시민이 나섰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국민동의청원" 캠페인이 진행됐다.
 
자꾸만 길어져만 간 안내글
 
캠페인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SNS 등을 통해 청원 링크를 전달하고 참여를 독려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시작과 동시에 여러 문제가 터져 나왔다. 일단 청원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휴대폰 인증 또는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 회원가입을 위해서도 역시 휴대폰 인증을 해야 하니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은 참여를 못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아이러니한 것은 막상 휴대폰을 통해 청원링크에 접속하고 참여를 진행하려면 팝업창이 뜨지 않거나 링크가 안 넘어가는 문제들이 발생한 것이다. 특히 아이폰의 경우 기본 브라우저인 사파리 어플리케이션에서 팝업 설정을 해제해야만 인증이 가능하여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몇 차례 시도하다 포기하는 일들이 속출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SNS의 종류에 따라 링크 접속 자체가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가령 페이스북에서 공유된 링크를 휴대폰으로 바로 연결할 경우 역시 본인인증이 제대로 되지 않아 추가적인 절차를 거쳐야 했다. 메신저로 많이 쓰이는 텔레그램에서 접속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가장 확실하게 발견한 방법은 PC로 하거나 카카오톡으로 링크를 공유받아 접속하는 것이었다. 카카오톡이 이른바 '국민 메신저'라고 국회가 특권적 지위라도 부여한 것일까? 이처럼 복잡한 인증 절차로 인해,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캠페인은 점차 청원의 필요성과 참여의 의의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청원 참여 방법을 쉽게 하는 것에 더 초점을 두어야 했다. 동영상과 카드뉴스를 통해 어떻게 접속해야 하는지를 상세히 안내하고, 휴대폰은 오류가 많으니 PC로 접속하라고 호소하는 일은 결코 국민동의청원제도 도입 당시 상정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국민동의청원 캠페인 안내글
 포괄적 차별금지법 국민동의청원 캠페인 안내글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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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세상을 위한 청원이건만
 
위와 같이 휴대폰 인증을 통해서만 참여가 가능하고 그마저도 여러 오류를 감안해야 하는 과정은 단지 번거로움을 더하는 것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위해 이루어진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 촉구 청원이건만, 청원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본질적인 문제였다.
 
먼저 휴대폰 인증을 사실상 필수로 요구하는 것은 휴대폰 미소지자의 참여를 가로막는다. 또한 한국통신사 휴대폰을 갖지 않은 재외국민 역시 참여가 사실상 어렵다. 10만 명을 모으면 되는 청원에서 약 270만 명의 재외국민이 휴대폰 인증 때문에 청원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앞서 본 바와 같은 복잡한 인증절차는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디지털 소외계층에게도 장벽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디지털 소외계층이 바로 구조적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실시한 <2019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PC와 모바일 기기 이용 능력을 수치로 평가한 '디지털 정보 역량 수준'의 경우 일반 국민을 100으로 했을 때 고령층(51.6), 농어민(63.6), 장애인(67.8), 저소득층(86.5) 모두 낮은 역량 수준을 보였다. 연령이 높다고, 농촌지역에 거주한다고, 장애가 있다고, 소득이 낮다고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평등한 세상을 바라고자 국회에 의견을 전달하는 것에도 역시 차별을 받는 것이다.
 
한편 인증절차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존재한다. 인증을 위해 참여자는 청원인 확인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성별 정보, 휴대전화번호를 수집당해야 한다. 이러한 정보 수집은 개인정보의 과도한 침해일 뿐만 아니라, 이분법적 성별 구조 속에서 차별받는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등으로 하여금 원치 않게 법적 성별을 등록하게 함으로써 차별을 심화시킨다. 이러한 성별정보 수집과 관련하여 호주의 정부 가이드라인은 "성별정보를 수집하는 모든 부서와 기구는 그 부서의 기능이나 활동에 필요하거나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 아닌 성별정보는 수집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연 성별정보가 청원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정보인지, 국회사무처는 다시 한 번 생각하길 바란다.
 
요컨대 국민동의청원은 참여가 가능한 자격부터 인증절차, 정보수집까지 곳곳에서 우리 사회의 차별적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고 또 심화시키고 있다. 평등한 세상을 바라는 열망을 담아 시작한 "시민이 나섰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국민동의청원" 캠페인에서 또 다시 차별의 현실을 마주하는 일은 청원 달성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평등을 향한 2만5123명의 응답
 
포괄적 차별금지법 국민동의청원은 결국 2만5123명이 참여하여 청원 성립 조건인 30일내 10만 명 달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청원불성립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장벽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평등한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의 열망이 청원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나타난 것이었고, 이후 8월 17일부터 29일까지 전국순회 평등버스를 운행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모을 수 있었다.
 
 차별금지법제정촉구 전국순회 평등버스
 차별금지법제정촉구 전국순회 평등버스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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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청원의 결과를 보며 국민동의청원이 과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26조 청원권을 정말로 보장하는가에 대해 질문은 던져보고자 한다. 청원을 통해서라도 국가에 의견을 전하고자 하는 사람은 다수결 원리에 따라 자신을 대의받기 어려운 사회적 소수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국민동의청원은 접근성에서의 차별, 지나치게 엄격한 성립요건으로 이러한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전달하는 제도로서 작동하고 있지 못한다는 점에서, 제도의 개선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추구하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은 단지 법을 제정하는 것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제도 곳곳에 있어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렇기에 모두가 평등하게 모이고 말할 수 있도록 국민동의청원 제도의 개선이 조속히 이루어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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