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강사 설민석의 클레오파트라 강의가 논란을 일으켰다. 19일 방송된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편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이 제기됐다.
 
방송 제작진에게 자문을 제공한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은 20일 페이스북 글에서 "걱정했던 대로 사실관계가 틀린 내용이 차곡차곡 쌓여가네요"라며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것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언급하기가 힘들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역사적 사실과 풍문을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역사 이야기를 할 때 관심을 끌기에 분명히 좋은 전략이지만, 하고자 하는 것이 그냥 '구라 풀기'가 아니라 '역사 이야기'라면 그 두 가지를 분명하게 구분해서 '이것은 사실이고 이것은 풍문이다'라는 것을 분명하게 언급해줘야겠죠"라고 말했다. 그는 "제가 자문한 내용은 잘 반영이 안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보지 마세요"라는 말로 끝맺었다.
 
논란이 불거지자 제작진은 21일 밤 게시판을 통해 "방대한 고대사의 자료를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일부 오류가 있었던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며 "더욱 세심한 자료 수집과 편집 과정 등을 통해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도록 더욱 주의하겠습니다"라고 사과했다.

사실과 다른 배경지식들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한 장면.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한 장면. ⓒ tvN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편 방송은 주인공과 주변 남성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뤘다. 주로 언급된 것은 카이사르, 프톨레마이오스 13세, 안토니우스 등이다. 그래서 중점적으로 설명된 것은 카이사르나 안토니우스 등과 관련된 고대 로마 이야기다.
 
곽민수 소장이 주로 비판한 부분은 방송 중에 제시된 배경 지식들이다.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제시됐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이렇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알렉산드로스가 세웠다는 말이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프톨레마이오스 2세 때 세워졌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클레오파트라 같은 이름이 무슨 성이나 칭호라며 '단군'이라는 칭호와 비교한다든가 하는 것들은 정말 황당한 수준이었고, 그에 비하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를 이집트에서 로마로 돌아가서 말했다고 한 거 정도는 그냥 애교 수준. 정확히는 파르나케스 2세가 이끌던 폰토스 왕국군을 젤라 전투에서 제압한 뒤 로마로 귀국해서 거행한 개선식에서 한 말이죠. 이 외에도 틀린 내용은 정말로 많지만, 많은 숫자만큼 일이 많아질 텐데, 그렇게 일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생략합니다."
 
인류가 만들어낸 위대한 지식 창고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관한 언급은 방송이 12분을 경과하는 대목에서 나왔다. 설민석 강사는 가수 존박을 바라보며 "존박씨, 혹시 알렉산더대왕에 대해 들어본 적 있습니까?"라고 질문한 뒤 이렇게 자답했다.
 
"이 사람은 세계 곳곳 식민지의 핫스팟에 자기의 이름을 딴 도시를 세워. 그래서 알렉산더대왕이 이집트에 만든 게 뭐냐면...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이라는 거대한 도서관을 만드는데, 여기에 책이 몇 권 있었냐. 70만 권이 있었대요."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를 꺾은 뒤에 그 지배하의 이집트를 점령하고 알렉산드리아 건설을 명령했다. 그런 뒤에 이집트를 떠났다. 이때가 기원전 331년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세워진 것은 훨씬 나중이다. 이집트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305~30년)가 개창된 이후의 일이었다. 이 도서관을 세우고 기반을 잡은 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니라 프톨레마이오스(프톨레미) 1세 및 2세였다. 손주영·송경근 교수가 쓴 <이집트 역사 다이제스트 100>에 이런 대목이 있다.
 
"기원전 220년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건립한 지 이미 60년이 되어 있었다. 프톨레미 1세에 의해 세워진 이 도서관은 프톨레미 2세 때는 새로 건립된 박물관의 기능 중에서 도서관이라는 한 부분만 담당하게 되었지만, 학문적인 중요도나 유명세에서 박물관을 훨씬 능가했다."
 
이처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알렉산드로스가 이집트를 침공한 지 훨씬 뒤의 일이다. 그는 이 도서관과는 무관했다. 그런 도서관이 알렉산드로스의 업적으로 잘못 설명됐던 것이다.

'클레오파트라' 보통명사 논란

또 설민석 강사는 방송 도중에 클레오파트라를 인명이 아닌 칭호로 언급했다. 이 언급은 특별 게스트의 발언에 화답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나온 듯하다.
 
특별 게스트인 이집트 출신의 서울대 국문과 석사 새미 라샤드의 언급이 출발점이 됐다. 방송이 약 6분 정도 경과하고 클레오파트라가 본격적으로 언급되자, 라샤드는 우리가 아는 클레오파트라를 가리켜 "이집트 클레오파트라들 중에 제일 유명하죠"라며 "클레오파트라 7세거든요. 제일 유명해요"라고 말했다. 이 부분이 강사와 게스트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클레오파트라'들'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라샤드는 한국인이 아닌 이집트인이다. 그가 선택한 부정확한 한국어 어휘가 방송 중에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우리가 아는 클레오파트라는 "클레오파트라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이름 혹은 명칭이라고 하지 않고 '타이틀'이라고 소개했던 것이다.
 
설민석 강사는 라샤드의 말을 즉흥적으로 이어받아 "단군 할아버지, 단군 할아버지 하니까 이름이 단군인 줄 아는데, 1대 단군, 2대 단군, 3대 단군 해서 1500년 이상 가요. 그거하고 비슷한 거죠"라며 이야기를 정리했다.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한 장면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한 장면 ⓒ tvN

 
설민석 강사는 클레오파트라가 인명이 아니라 직책이었으며 단군 칭호 비슷한 개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설명에 따르면, 단군에 상응하는 고대 이집트어가 클레오파트라였다는 말이 된다. 곽민수 소장이 "클레오파트라 같은 이름이 무슨 성이나 칭호라며 '단군'이라는 칭호와 비교한다든가 하는 것들은 정말 황당한 수준"이라고 비판한 것은 이 때문이다.
 
군주와 왕족은 신성한 존재로 간주됐기 때문에 아무 이름이나 사용할 수 없었다. 이들이 쓸 수 있는 이름은 관습상 일정 범위로 제한돼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몇십 년, 몇백 년 흐르다 보면 동일한 이름을 사용하는 군주들이 생기기 쉬웠다.
 
후손이 위대한 조상의 영광을 차용해 왕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그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동명이인 군주의 등장은 비일비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에 동명이인들을 구별할 목적으로 편의상 붙인 것이 1세·2세·3세 같은 표현들이다.
 
이런 경우, 2세는 1세의 자녀인 경우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1688년 영국 명예혁명으로 쫓겨난 군주이자 조선 숙종과 동시대 인물인 스튜어트왕조의 제임스 2세는 제임스 1세의 아들이 아니었다. 제임스 1세는 그의 할아버지였다. 그가 제임스 2세로 불린 것은 제임스 1세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제임스라는 이름을 사용한 두 번째 군주였기 때문이다.
 
이것과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군주가 죽은 뒤에 붙이는 태조·태종 같은 묘호(사당 명칭)도 사용 범위가 한정돼 있었다. 묘호에 쓸 수 있는 글자가 관습상 한정돼 있다 보니, 같은 묘호를 받는 군주들이 수두룩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고려 태조', '조선 태조', '명나라 태조' 하는 식으로, 묘호 앞에 왕조 명칭을 붙이지 않으면 동일 묘호의 군주들을 구별할 수 없게 됐다.
 
너무도 당연한 언급이 되겠지만, 제임스가 영국 군주의 칭호가 아니라 그냥 인명이듯이, 클레오파트라 역시 직책명이 아니라 인명이었다. 그의 직책은 클레오파트라 편 방송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 파라오였다. 한글 성경 출애굽기에서 모세의 이집트 탈출과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바로'가 파라오의 한국 번역어다.
 
그래서 단군 칭호에 상응하는 것은 클레오파트라가 아니라 파라오다. 그런데도 이 방송에서는 클레오파트라가 단군 칭호의 대응물로 잘못 해설됐다.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편 방송의 주인공은 클레오파트라다. 주인공의 기본적인 인적 사항과 관련해 상식을 벗어나는 발언이 방송 중에 나왔다. 클레오파트라가 보통명사였나 하는 오해를 순간적으로 낳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상식에서 너무 크게 벗어나는 발언이 나왔다면, 피디와 작가들이 내용을 확인하는 게 마땅했다.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클레오파트라가 칭호가 아니라 인명임을 알 수 있으므로, 이것은 편집 과정에서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었다.
 
그런데도 확인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제작진이 시청자의 흥미를 끄는 데만 치중한 결과였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상식 밖의 오류가 편집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방송되다 보니 "그냥 보지 마세요"라는 비판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방송의 훨씬 더 큰 오류는 배경 지식들보다도 방송 구성에 있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편은 클레오파트라를 매개로 이집트 역사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대중이 잘 아는 고대 로마 역사가 주로 다뤄졌다.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브루투스 같은 인물들이 주로 거론됐다. 그래서 클레오파트라를 매개로 고대 이집트 역사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제공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편은 배경지식뿐 아니라 전체 구성에서도 문제점을 드러낸 방송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클레오파트라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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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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