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4 11:17최종 업데이트 20.12.2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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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수업>(인터뷰·글 마르쿠스 베른센, 기획·편역 오연호)을 읽은 독자들이 '행복한 배움',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독후감 대회 우수상 수상작입니다.[편집자말]

나는 그저 '시험을 위한 수업'을 했다. ⓒ pixabay

 
무척 부끄러운 글쓰기를 하려고 한다. 독후감이라고 쓰고 있지만 실상은 반성문이며 결국은 청사진이기를 바란다. 언젠가 쓰게 되리라 막연히 예감했지만, 책을 읽고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시험에 나온다.' 교육 경력 만 23년 동안 나의 모든 수업 시간에 빠짐없이 등장한 말일 것이다. 학생들에게 시험에 나온다는 말로 중요한 내용을 강조하고 또 약속을 지켜 출제하여 평가했다고 자부했는데, 난 '삶을 위한 수업'이 아닌 '시험을 위한 수업'을 한 것이 분명하다.


학생들의 삶에 나의 수업과 평가가 어떤 의미였는지 대답할 수 없다. 그저 '시험을 위한 수업'을 했고, '입시를 위한 교육'이 내 수업의 모든 것이었다. '현실 속의 학교'를 통해 학생들이 세상과 직업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현장 전문가와 연결하는 토마스 라스무센은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길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구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오로지 내신 등급, 수능 등급이 목표였고, 그래서 대학도 서울 주요 대학, 그리고 의대 진학에만 주요한 관심이 있었다.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을, 혹은 스스로의 능력을 잣대 삼아 관심 가질 수 없었을 수많은 아이들의 상처와 부담감이 눈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현실론자치고는 이상을 지나치게 도외시했고 너무나 일찍 포기한 패배주의자였다. 학교 교사에게 입시 전문가라고 칭하는 것을 명예라고 착각한 것이다. 현실에 눌려 실천을 못 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 빠져 실천을 안 한 것이다. 나의 선택적 그리고 자발적 의지였음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삶을 위한 수업>을 읽고 덴마크 교사 10명의 수업과 그들의 철학을 보면서 철학이 없는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닫는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오연호 작가의 전작인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와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다시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편리한 오독(誤讀)을 목격했으니 바로잡아야 했던 것이다.

몇 년 전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으며 그저 남의 나라 부러운 이야기라며 읽고 넘겼고, 작년에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고는 '이렇게 꿈틀거리는 실천을 우리나라에서 할 수 있다니!'라고 놀랐고, 이제 <삶을 위한 수업>을 읽으며 '좋은 걸 하지는 못해도 좋지 않은 걸 그렇게 용감하게 하지는 말았어야 했구나'라는 뼈아픈 반성을 했다. 이제야 부러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끄러운 나의 이야기로 온전히 읽었다. 

'삶을 위한 수업'은 교사를 위한 수업이기도 하다 
 

'삶을 위한 수업' 책 표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오연호 (편역) ⓒ 오마이북

 
나를 부끄럽게 만든 덴마크 선생님들의 인상적인 교육철학들을 솔직한 나의 속마음을 덧붙여 몇 가지 짚어보고 싶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시험이 좌우하게 되면, 교사는 물론이고 학생들에게도 제대로 된 학습 동기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삶을 위한 수업> 본문 56쪽)
→ '시험'이 강력한 수업 참여 동기라고 학생들을 유인했던 나


"우리가 배운 지식은 잊어버리기 쉽지만 우리가 배운 기량은 영원히 남습니다. '다른 사람과 어떻게 어울리고 행동할 것인가?' 이에 대한 경험과 기량은 우리 안에 고스란히 남는 거죠."(<삶을 위한 수업> 본문 107쪽)
→ 실체가 당장 보이지 않는 '역량'을 믿지 않고 '지식' 전달 수업에 집중했던 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과 자부심이죠. 스스로를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마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것만 있으면 나머지는 다 따라옵니다."(<삶을 위한 수업> 본문 160쪽)
→ 자존감이 높고 낮은 것은 학생의 타고난 성정이라며 교사가 키울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나


"진로상담은 힘든 분야다. '절묘한 균형'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생에게 적절한 안내를 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학생들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삶을 위한 수업> 본문 179쪽)
→ 학생들의 진로탐색에 직접적인 조언과 안내를 하고 뿌듯했던 위험한 나


"과정도 결과도 반드시 '좋은 경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주눅이 들고 누군가는 우쭐댄다면 그것은 '나쁜 경쟁'이다."(<삶을 위한 수업> 본문 201쪽)
→ 경쟁에서 낙오와 패배는 필연적이라고 냉정하게 생각했던 나

"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 아이들의 호기심이야말로 최고의 수업 자료입니다."(<삶을 위한 수업> 본문 218쪽)
→ 어차피 학생들은 호기심도 별로 없고 혹 표현하더라도 수업과 무관한 것이라고 속단했던 나

역시 삶은 예측 불가능하여 더욱 살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 분야에서 경력이 20년이 넘으면 '전문가'라고 칭할 만한데, 나와 같은 왜곡된 '직업인'도 많을 것이다. 철학의 부재 또는 부실이 근본 원인이다. 수많은 연수를 찾아 들으면서 참신하고 효율적인 방법론에만 매달렸지, 교육자로서의 근본적인 철학을 구하지 않았다.

교육 경력의 숫자에 기대지 않고 나의 교육철학 수립을 경력의 원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격하게 꿈틀거리는 마음이지만 아직 확연한 나만의 교육철학은 세우지 못했다. 꿈틀거리는 마음을 좇아 신중히 찾아 분명 세울 것이다.

다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는 분명해졌다. '현실'에 밀려 혹은 타협해야 했던 모든 생각들에 강한 자아비판을 하기로 했다. '삶을 위한 수업'은 학생들의 '삶'만이 아니라 교사인 나의 '삶'을 위한 수업이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나의 삶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시험'이 아닌 학생들의 '삶'을 가르치고, '삶'을 위한 수업을 고민하고 실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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