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2 16:43최종 업데이트 20.12.2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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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수업>(인터뷰·글 마르쿠스 베른센, 기획·편역 오연호)을 읽은 독자들이 '행복한 배움',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독후감 대회 최우수상 수상작입니다. [편집자말]
딸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때까지 시골과 다름없는 경기도에서 친구들과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놀았던 딸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서울로 이사왔다. 그리고 첫 시험을 봤다. 그리고 전교 1등을 했다. 이때부터 딸의 삶은 시들기 시작했다.


공부 1등인 친구, 바른 모범생, 부모가 자랑스러워하는 딸. 주위의 기대감과 타인들이 자신에 대해 규정한 정체성에 맞추기 위해서 딸은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한 말씀도 놓치면 안 되었고, 교과서와 참고서에 나온 아주 작은 글 하나라도 다 외워야 했다.

남들처럼 공부하면 1등을 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학교생활을 한 결과 여덟 번의 시험에서 다섯 번 전교 1등을 했다. 그리고 딸은 중3으로 진학하지 않겠다고 했다. 2학년 겨울방학 때 한 달 간 여행을 하면서 진학에 대한 결정을 하기로 했다. 결국 진학하지 않았다.

그 후 딸은 대안학교, 대학로 연극판, 프랑스유학, 그림책학교 등을 거치며 방황했다. 아니,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나섰다. 그러는 동안 학교 밖 청소년으로 딱한 시선도 많이 받고,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소속이 없어 질문 세례도 많이 받았다.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 대해 불안감과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학교가 아닌 학교 밖, 제도권이 아닌 제도권 밖, 어른들의 지지와 안내가 아닌 혼자의 힘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나서야 했으니까. 결국 그림책 작가라는 자신의 길을 찾았고 오늘도 행복하게 그림을 배우며 그리고 있다.
 

딸의 목소리 앞에서 어른이자 교사이자 부모인 나는 답을 찾아야 했다. ⓒ Pixabay

 
나의 이야기이다.

나는 27년 차 되는 공립교사이다. 중고등학교에 근무해왔고 최선을 다하며 교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딸의 자퇴를 겪으면서 학교에 대해, 교사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딸이 학교에서 정상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을 왜 학교를 나와서 밖에서 거쳐야 했을까? 나는 학교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왜 학교 안에서는 자기를 찾고 자신의 길을 모색할 수 없는 걸까?

그렇게 성찰한 결과 우리 학교는 결국 모든 것이 성적과 대학진학, 두 가지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았다. 수행평가가 아니면 모둠활동도, 협력학습도 하지 않는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지 않으면 동아리활동도, 체험활동도 하지 않는다.

진학에 유리한 평가만이 학교의 이유가, 학교교육의 본질이 되어버렸다. ICT를 활용하고, 융합교육을 하고, 전인적인 인간을 기르기 위한 각종 교육과정이 도입되고, 자유학년제를 시행하는데도 왜 우리 학교교육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느낌일까? 그 속에 있는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책 이야기이다.

<삶을 위한 수업>을 딸과 나, 둘 다 읽게 되었다. 우리는 읽고 있는 책들을 집안 여기저기 놔두기 때문이다. 딸은 자기가 덴마크에서 이런 교육을 받았다면 안정적이고 여유 있게 자신의 길을 모색하고 지금에 이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삶을 위한 수업' 책 표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오연호 (편역) ⓒ 오마이북

 
자신이 경험한 학교는 공부와 성적이 다였고, 그것으로 가치가 매겨졌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압박이 흐르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을 향한 노력이 이유도, 질문도, 의미도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책에 소개된 덴마크 학교교육은 자신이 원했던 것들이 들어 있다고 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게 하고 시험이 아니라 내 삶을 위한 교육. 자신이 왜 학교에 다녀야 하고, 왜 그 과목들을 배워야 하고, 왜 친구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교육.

자신을 학생으로만 보지 않고 한 인간으로 대하는 교사. 암기가 아니라 기량과 태도를 배워가는 교육. 평가보다는 표현을 중요하게 여기는 학교 문화. 내가 내 삶의 주인임을, 학교의 주인임을 느끼게 하고 체험하게 해주는 자존감 교육. 내가 선택하고 그 선택에 내가 책임지는 것이 삶임을 가르쳐주는 교육.

배려와 협력, 공동체의식, 시민의식을 작은 사회인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교육.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해주는 시스템 등등.

딸은 자신이 학교 밖에서 방황하며 몇 년간 찾고 배운 것들을 덴마크 학교에서는 이미 가르쳐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청소년 시기에 당연히 국가가, 학교가, 어른들이 제공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 인간이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살기 위한 교육이 학교에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국가를 향한, 학교를 향한, 교사를 향한 딸의 절절한 목소리였다.

딸의 목소리 앞에서 어른이자 교사이자 부모인 나는 답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학생들의 삶을 위한 수업,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배우는 수업을 하고자 수업 내용을 구성했고, 그 내용을 담기 위한 수업 방법을 실행했다. 동료 교사들과 학습공동체를 꾸려 함께 고민하고 모색했다. 그러나 결국 한계를 느껴야 했다.

지금 나는 대안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적인 해답일 뿐, 우리나라 학교교육을 한 개인 개인의 삶을 위한 교육으로 바꾸려면 우리 모두의 집단지성과 실천이 답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여러 학교의 교사들과 교사모임을 하며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다.

교사노조 등을 통하여 정책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학부모 및 지역주민들과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소통하며, 무엇보다도 현장의 교사들과 함께 학교교육을 연구하고 실천해 나가고 있다. 거대한 벽 앞에서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야 한다. 또 다른 내 딸들이 학교 안에서 좌절하고 학교 밖에서 헤매게 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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