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회찬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과 함께 공동기획으로 12월 7일부터 31일까지 4주 동안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8편의 이야기 글('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을 선보인다.[편집자말]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사진은 2011년 11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할 당시 모습.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사진은 2011년 11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할 당시 모습.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게 뭘까? 아마도 말 잘하는 정치인? 다들 인정하듯 노회찬은 말 잘하는 정치인이 맞다. '언어의 연금술사' '어록 제조기' '촌철살인의 웃음을 주는 정치인' '유머의 정치인' '토론과 소통의 달인' 등 생전 그에게 붙은, 말과 관련한 별명들이다.

맞는 말이다. <한겨레>는 '언어유희왕'으로 호명하기도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즐겁게 놀며 장난함. 또는 그런 행위"라는 '유희'의 사전적 의미 안에 노회찬의 말을 가두는 것은 적절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노회찬마들연구소의 '마들명사초청특강'(2008, 우리시대의 난장이)에서 <난‧쏘‧공>(<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의 작가 조세희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변화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쓰는 말이 달라져야 합니다. 말은 생각이에요. 노회찬 전 의원을 두고 '스타가 나왔다'고 하는데 그건 바보의 언어예요. 노회찬 전 의원이 다른 언어를 사용했어요. 노회찬 전 의원은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언어를 쓰고 있었어요.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특별한 말들을 쓰고 있었어요. 뛰어난 언어였어요." 

"변화를 가능케 하는, 새로운 언어"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특별한 말들". 조세희 작가가 꿰뚫어본 것처럼 이것이 노회찬이 구사한 말의 정수가 아닐까 싶다. 
 
2008년 12월, 마들연구소에서 주최하는 특강의 강연자로 나선 조세희 작가.
 2008년 12월, 마들연구소에서 주최하는 특강의 강연자로 나선 조세희 작가.
ⓒ 노회찬재단

관련사진보기

 
바쁜 일정 취소하고 현장에 와 있던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는 노회찬마들연구소를 '지역명품특강의 산실'로 소개하면서, 이렇게 기사를 마무리한다('노회찬 형을 위해 한 가지는 해야겠네', 2008.12.12.).

"우리는 아직도 '낙원동'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아마도 조 작가는 노 대표가 그런 슬픈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김어준은 '회찬씨, 농담도 잘하셔'(<진보의 재탄생>, 꾸리에, 2010)에서 "어느날, 정치적 은유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풍자 화술의 달인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대한민국 정치판에 갑자기 등장했다.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사회주의 발상이라 공격하는 가공할 지적 수준의 포유류들이 주인 행세하는 이 땅에서 말이다"면서 노회찬과의 만남 후기를 이렇게 적는다.

"진보적 결의와 인문학적 소양의 그 절묘한 동거. 이미 어린 시절 정치적 출가를 한 그가, 사욕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그렇게 오랜 세월 지켜내면서도 동시에 경쾌하고 발랄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힘은 바로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던 유형의 진보 정치인이다."
 
노회찬 의원(오른쪽)과 방송인 김어준씨(왼쪽).
 노회찬 의원(오른쪽)과 방송인 김어준씨(왼쪽).
ⓒ 노회찬재단=이상엽작가

관련사진보기

 
노회찬의 말이 '어록'으로 묶여지며 핫하게 떠오르던 2004년 어느날. 정운영과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정운영, <우리 시대 진보의 파수꾼 노회찬>, 랜덤하우스중앙, 2004, 142쪽).

정운영 : "노회찬 어록이 생길 만큼 언어에 탁월한 감각을 가졌는데 선조의 유산입니까, 피나는 훈련의 결과입니까?"
노회찬 : "생활 속에서 저절로 습득된 결과입니다. 그리고 관찰력, 분석력, 상상력의 발전적 조합이기도 합니다. 말이란 생각을 하는 수단이고 동시에 그것을 전달하는 수단이지요. 전달 대상에 대한 관심, 전달 그 자체에 대한 의지가 높을 때 전달 수단도 발전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풍자 화술의 달인' 노회찬의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특별한' 말글은 이른바 '노회찬 어록'으로 모아졌다. '삼겹살 불판'으로 상징된 노회찬 어록의 탄생 과정에 대해 함께 추적해보도록 하자. 

어록의 탄생

"17대 총선 성공의 최대 공신은 단연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노회찬 사무총장이다. 16대 대선 때도 민노당의 선거대책을 총괄지휘했던 그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탄핵정국의 영향으로 당 지지도가 떨어지자 TV토론을 통해 이른바 '삼겹살 판갈이'론을 역설, 지지도를 다시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는 물론 미디어의 속성과 잘 맞아떨어진 측면도 없지 않지만 민노당 스스로 적극적인 TV토론 참여를 통해 '정책정당 이미지'를 알리려 했던 전략 때문에 가능했다."(김진수 기자, '민주노동당의 정파, 색깔 그리고 파워', <신동아>, 537호, 2004, 5월호).

정치인 노회찬의 이름 석 자가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4년 17대 총선 때부터였다. 그 시작은 민주노동당 중앙선대본부장, 사무총장으로 출연한 TV토론을 통해서였다. 

2004년 1월 9일 오후 7시 문화방송 본사 회의실. 노회찬은 '언론노조 중앙집행위 및 민주언론실천위 합동수련회'에서 '17대 총선과 노동조합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아쉬운 심경을 담아 비판한다.

"9시 뉴스에서 매일 10초씩 나오면 민주노동당은 10명 당선된다. 1년 내내 30초씩 나오면 30명 당선되고 120초 나오면 120명 당선된다. MBC 100분토론은 지난 6개월 간 한 번도 민주노동당의 출연을 허용하지 않았다."

일주일 후인 2004년 1월 15일 노회찬은 민주노동당 중앙선대본부장 자격으로 <MBC 100분토론>(사회 손석희)에 참석한다. 두 달쯤 뒤의 "삼겹살 불판" 발언에 가려져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사실 이날이야말로 '노회찬 어록' 탄생의 조짐을 보인 날이다. 
 
2004년 1월 MBC 100분토론에 출연한 노회찬.
 2004년 1월 MBC 100분토론에 출연한 노회찬.
ⓒ MBC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50년 동안 정치를 끌어온 분들, 지금 말이죠, 학교에서 학생들이 이 정도로 학생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면 유기정학 내지 무기정학입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국민들이 보기에는 유기정학 내지 무기정학감이에요. 그러면 이번 선거 다 안 나와야 합니다. 한 4년 동안 유기정학 당해야 돼요. 그런데 왜 자꾸 나오려고 그래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판갈이를 해야 된다, 이런 얘기입니다."

"3급수에다 2급수를 타면 그게 2급수가 됩니까. 조금 더 나은 3급수지? 국민들은 1급수를 원하고 있어요."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한 노회찬은 두 번의 KBS 심야토론에서 당시 거대 양당(한나라당,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정치사에 남을 촌철살인 비유를 날렸다. '노회찬의 어록'은 3월 20일 KBS 심야토론('급변하는 민심 어떻게 볼 것인가', 사회 정관용)을 계기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50년 묵은 불판을 갈아엎자'는 판갈이론이 답답한 국민들의 가슴을 뻥~ 뚫어 놓은 것이다. '노회찬 어록'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도 바로 이때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퇴장하십시오. 50년 동안 썩은 판을 이제 갈아야 합니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이제 왔습니다."   
[이창우의 한 컷 만화, 진보정당 STORY] 74. 2004년 4월 총선과 탄핵 반대 열풍.
 [이창우의 한 컷 만화, 진보정당 STORY] 74. 2004년 4월 총선과 탄핵 반대 열풍.
ⓒ 노회찬재단=이창우작가

관련사진보기

 
노회찬의 속풀이 유머코드 어록은 이어졌다.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과 민주당 김경재 의원이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탄핵했다고 주장하면서 방송이 편파적이라고 비난하고 나서자 노회찬은 이렇게 연속 펀치를 날린다.

"촛불 집회의 배후는 열린우리당이나 노사모가 아니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입니다."
"사과할 일을 가지고 탄핵을 하다니, 그렇게 하찮은 일을 가지고 탄핵을 하다니, 제정신입니까?"
"193명 의원들이 탄핵을 다 잘한 일이라고 주장하셨잖습니까? 편파방송 운운하는데, 그렇게 자랑스러운 탄핵가결 화면을 TV에서 자주 보여주면 오히려 한나라당, 민주당에 유리한 것 아닙니까?"
"한국의 야당은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죽인 것이 아니라 다 자살했습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님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퇴장하십시오. 이제 저희가 만들어 가겠습니다."


열린우리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열린우리당은 길을 걷다가 지갑을 주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갑을 주웠으면 경찰에 신고해야죠."

"지금 야당은 면허취소 상태입니다, 그중에는..."
 
2004년 3월 15일 여의도 민주노동당사에서 비례대표 투표결과 발표 기자회견이 열렸을 당시 모습.
 2004년 3월 15일 여의도 민주노동당사에서 비례대표 투표결과 발표 기자회견이 열렸을 당시 모습.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보름쯤 뒤인 2004년 4월 3일, 노회찬 어록을 탄생시킨 KBS '심야토론'에 다시 출연한 노회찬은 유시민(열린우리당 의원), 장광근(한나라당 의원), 정진석(자유민주연합) 의원 등과 함께 설전을 벌였다. 토론주제는 '17대 총선 국민의 선택을 묻는다'였다. 토론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노회찬의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란 말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사는 서민들에게 잔잔한 위로를 남긴다.

누리꾼들은 이날 토론을 앞두고 여러 인터넷 게시판에서 '오늘의 노회찬 어록은 뭐냐'며 큰 관심을 보였다. 네티즌의 기대에 부응하듯 노회찬은 톡톡 튀는 사이다 발언을 쏟아냈다. 간추린 4월 3일판 노회찬 어록은 이랬다. 

"50년 전에 잃어버린 지갑 찾으러 나왔습니다." : 장광근 의원이 "민주노동당이 아직 원내에 진출하지 못해 편하게 비판자의 입장에 서는 것"이라고 말하자 응수하며.

"왜 한나라당이 갑자기 노인복지를 거론하는가. 사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야기시킨 탄핵으로 우리 국민 평균 수명이 단축됐어요. 그거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제일 가난한 민주노동당이 제일 번지르르한 건물을 쓰고 있습니다." : 열린우리당의 폐공판장 당사, 한나라당의 천막당사를 비판하며.

"국민들은 사과 받느라고 바쁩니다." : "요즘 정치권에서 대표들이 저마다 국민들에게 사과하느라 바쁘다"고 지적하며.

"선거 때만 되면요, 갑자기 어디서 산천어, 열목어 다 나타납니다. 다 깨끗하다는 것이죠.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을 해봤지만은 깨끗하다는 산천어, 열목어 선택해봤자, 그 정당이 3급수, 4급수가 들어간 정당에다가 산천어, 열목어 넣어 버리면요, 곧 물고기가 죽습니다. 아니면 그 물고기가 돌연변이를 일으켜야 살아남는 거죠." : 원내 정당들의 선거철 이미지 변신 노력이 결실을 맺을지 의심스럽다며.

"조금 전에 장광근 의원께서 광풍이 불었다고 하셨는데, 미친 바람인거죠, 광풍이라는 게. 지금 민심을 미친 바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좀 곤란하지 않을까, 탄핵 때문에 분개했던 국민들이 한 번 더 분개할 일이 아닐까 하는 말씀을 한 번 더 드리고 싶구요." : 장광근 의원이 "탄핵 반대 여론은 광풍"이라는 표현을 쓰자 "국민여론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라고 비판하며. 

"지금 지난 4년간 무슨 일을 했느냐를 가지고 졸업시험을 치는데, 갑자기 4년 동안 공부 안한 학생이 팔씨름으로 시험을 대체하자, 그럼 됩니까, 그게?" : 총선이 탄핵에 대한 찬반 대결로 흐르는 것을 지적하며.

"차떼기 야당, 탄핵 야당, 냉전야당, 지역주의 야당, 이런 야당들은 이제 좀 물러서야 됩니다. 이제 역할이 거의 다 끝났거든요! 지금 야당은 면허정지도 아닌 면허취소 상태입니다. 그중에는 장롱 면허도 있습니다." : '야당교체론'을 주장하며.

"올림픽 가지고 말이죠, 중국 보고 금메달 너무 많이 가지고 가지 마라, 우리나라도 좀 달라고, 그런 게 있습니까? 역사는 냉정한 겁니다. 역사에서 퇴장하라고 하면, 퇴장해야 되는 겁니다." : 정책 차별화 없는 '거여견제론'은 무의미하고, 기존 야당은 역사적으로 소멸될 단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하며.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일꾼 뽑는 선거가 아닙니다. 공부하라고 서울 보냈더니 공부는 안 하고 시골 내려와서 농사짓겠다면서 농사조차도 제대로 안 짓는 그런 꼴입니다." : 정진석 자민련 의원의 "총선은 지역일꾼을 뽑는 마당"이라는 주장에 대해 국회의원이 지역구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며.

"불법대선자금 많이 받은 순으로 발언도 많이 하는 겁니까." : 발언 순서가 의석 순대로 정해진 것을 비꼬며.

"민주노동당은 2012년에 집권합니다. 그래서 기호가 12번입니다." : 비례대표 투표 기호 12번을 강조하며.

"한나라당이 1번이고, 민주당이 2번이고, 열린우리당이 3번입니다. 민주노동당은 12번입니다. 1번과 2번이 망친 나라를 12번이 살리겠습니다. 유권자 여러분,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 노동자·농민·서민 정당인 민주노동당에 표를 몰아달라며. 


'삼겹살 불판'... 노회찬 어록 탄생의 비화
 
KBS1 '염경철의 심야토론' 방송 갈무리(2018.7.28.)
 KBS1 "염경철의 심야토론" 방송 갈무리(2018.7.28.)
ⓒ KBS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추측컨대 "삼겹살 불판"으로 상징되는 2004년 3월 20일 KBS 심야토론의 발언이 없었다면 아마도 '노회찬 어록'은 탄생이 지체됐거나, 탄생했어도 어쩌면 빛을 발하지 못한 채 수그러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파장과 울림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날 KBS 심야토론에 민주노동당 패널이 노회찬이 아니라 원래 정해진 대로 출연했다면 어땠을까? 사실 민주노동당에서 원래 나가기로 한 사람은 노회찬이 아니었다. 당일 토론 4시간 전에 이뤄진 선수교체 결정이 <노회찬 어록>의 빛나는 탄생에 결정적 디딤돌이 된 것이다. 

노회찬이 당원게시판에 올린 3월 20일 <선대본 일기>('22시 KBS 심야토론 대기실에 갔다', <힘내라 진달래>, 사회평론, 2004, 242~244쪽) 내용을 토대로 심야토론 시작 전 상황을 시간대별로 한 번 살펴보자.


"(3월 20일) 오후 4시 30분, 오늘밤 타당 출연진이 바뀐 것이 확인되었다. 원래 이 토론은 한나라당, 열우당, 민주당 중진의원, 민주노동당, 참여연대 김기식으로 제안되었다. 19일 대변인은 이 토론의 주제와 중요성을 감안하여 선대본부장이 나가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다른 당 출연진을 보고 결정하자고 답하였다."

"19일 오후, 다른 당 출연진이 확정되었다. 한나라당은 공성진, 열우당은 김재홍, 민주당 최인호, 자민련 서준호 등이었다. 천영세 선대위원장과 의논하였다. 타당 출연진이 언론인, 교수, 법조인 등 비정치인 출신이므로 김석연 정책위원장 권한대행을 내보내기로 하였다." 


당초 방송사측은 토론자로 교수, 언론인, 법조인 등 비정치인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변호사이며 경제정책 전문가인 김석연은 적임자였다. 

"김석연 변호사는 개인 일정도 취소하고 오후부터 중앙당에 나와 토론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방송 몇 시간을 앞두고 타당 출연진들이 바뀐 것이다. 한나라당 김영선, 열우당 송영길, 민주당 김경재 의원."

"탄핵반대 100만 명 집회가 저녁에 있어서인지 모두 '싸움꾼'으로 변경되었다. 대변인, 정책실, 김석연 위원장 등과 긴급논의를 하고 선대위원장과도 논의하였다. 17시 다들 지금 시점에서 일대격돌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선대본부장이 나가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3월 20일은 탄핵반대 촛불집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시청자들은 '토론'보다 '난타전'을 원했다. 각 당은 서둘러 '싸움꾼'으로 토론자들을 교체했다. 탄핵은 민주노동당으로서는 가장 곤혹스러웠던 이슈. 민주노동당은 정면돌파를 해야 했고, 정책 제시도 물론 좋지만 무엇보다도 '정곡'을 찔러야 했다.

선수교체의 결과는 '예상 밖의' 대성공이었다. 선수교체 당시의 심정을 노회찬은 이렇게 밝혔다.


"타당 토론자가 바뀌면서 내가 나갈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개인일정도 취소하고 토론 준비에 매진하고 있는 김석연 부위원장에게 바꾸자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 천영세 선대위원장과 기획조정팀과 상의를 했다. (타당 선수들이 바뀌었다면) 내가 나가는 것이 맞다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 했다.

하지만 김석연 부위원장에게는 나더러 말하라고 하더라.(웃음) 김 부위원장에게 자초지정을 설명하자 흔쾌히 받아들여 주었다. 그때가 토론 4시간을 앞둔 상황이었다." (정용상,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이!: TV토론, 탄핵 수렁에 빠진 민주노동당을 건져내다', <매일노동뉴스> 2005.08.24.)


애초 출연 예정된 김석연 변호사는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회고한다(2020.10.21. 전화통화 내용).

"출연이 결정된 때부터 사실 심적 부담이 컸다. TV토론은 내가 나갈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타당 출연진이 중량이 있는 사람으로 나온다고 해서 부담이 더 커졌는데, 마침 선수교체 요청이 와서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것도 있었지만, 당을 위해서도 그게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노회찬 총장이 나가면 잘할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결과가 그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예기치 않은, 우연에 의한 선수교체가 총선 승리에 뜻밖의 큰 기여를 한 것이다."

기록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 ①-2]로 이어집니다(바로 읽기 클릭)

태그:#노회찬, #삼겹살불판, #노회찬재단, #노회찬어록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 하루 몸튼튼 마음튼튼 할 수 있기를...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