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20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로 서울 삼성 썬더스에 지명된 차민석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23일 오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20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로 서울 삼성 썬더스에 지명된 차민석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는 한때 신인 수급 과정에서 대학 졸업자 출신 선수들을 선호했다. 프로야구의 수준이 높지 않던 초창기에는 아마추어를 거쳐 성인야구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대학을 거친 선수들이 기량 성장-자기관리 등에서 프로에 와서도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부터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고교 졸업 후 빨리 데려와서 직접 키우는 게 훨씬 낫다는 인식이 정착됐다. 병역문제 등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프로 적응기까지 고려하면 대졸자들은 빨라도 20대 중후반에나 전성기에 돌입하게 된다는 것도 걸림돌이었다. 고졸 신인 위주의 지명 전략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유독 한국에서 두드러진 특징이 됐다. 고졸 신인 열풍은 21세기 이후로는 사실상 뒤집을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은 반면, 대학야구는 프로에 진출하지 못한 고졸 선수들의 대안 정도로 입지가 크게 위축됐다.

또다른 인기스포츠인 프로농구도 앞으로는 '조기 육성'으로 흐름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걸까. 23일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20 KBL 국내 신인 선수 드래프트에서는 이례적인 장면이 속출했다. 사상 최초의 '고졸 출신 1순위'가 탄생했고, 고졸 선수가 2명이나 지명된 것도 처음이었다.

1순위 지명권을 가진 서울 삼성 썬더스는 제물포고 졸업 예정인 차민석(19·200㎝)을 지명했다. 1997년 출범한 프로농구에서 신인드래프트는 1998년부터 열렸고 올해 이전까지는 모두 대졸 선수가 1순위 지명의 영예를 안았다. 또한 2라운드 4번, 전체 14순위로는 고양 오리온이 부산중앙고 졸업 예정인 가드 조석호(18·180㎝)를 선발했다.

야구나 축구같은 인기 스포츠들과 달리, 유독 농구만큼은 유망주 선수들이 고교 졸업 후 대학을 거치는 것이 정석적인 루트로 여겨져 왔다. 프로농구에 가장 많은 선수들을 공급하는 대학농구계의 영향력은 아직 한국농구 환경에서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농구계에서 최근 어린 선수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혹은 대학 재학중에 일찍 프로 진출을 선택하는 사례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최초의 고졸 선수는 2004년 전체 14순위로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에 지명된  이항범(이후 지명권 트레이드로 전주 KCC행)이다. 이후 2005년에는 교포 선수 한상웅이 무려 전체 4순위로 서울 SK의 지명을 받는 파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일부 선수들의 지명을 놓고 대학농구계에서 크게 반발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초기의 고졸 선수들은 프로무대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하고 대부분 조용히 사라졌다.

한동안 드래프트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던 고졸 선수들은 2015년 송교창(전주 KCC), 2018년 서명진(울산 현대모비스) 등이 각각 3순위라는 높은 순위로 지명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여기에 고졸은 아니지만 양홍석(부산 KT)이 불과 중앙대 1학년을 마치고 2순위로 프로에 진출하며 '얼리엔트리(프로 조기진출)'이라는 표현이 본격적으로 유행시켰다. 지난해에는 대학 3학년생인 김진영(서울 삼성)과 고졸 선수인 김형빈(SK)이 각각 3순위와 5순위라는 높은 순번으로 프로구단들의 지명을 받았다.

이중 송교창과 양홍석은 성인무대에서 프로 올스타급이자 국가대표급 선수로 성장하며 조기진출의 모범사례로 등극했다. 유현준(KCC, 2017년 3순위)도 한양대 2학년을 마치고 KCC의 주전 가드로 자리잡으며 그 가치를 빛내고 있다.

올해 신인드래프트에서 대졸자로 분류되지 않는 어린 선수들이 프로무대에 도전한 경우는 총 10명으로 역대 최다에 해당한다. 고졸 차민석이 당당하게 1순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하여, 고려대 3학년 이우석이 3순위(현대모비스), 한양대 이근휘가 8순위(KCC), 건국대 이용우는 9순위(DB)로 모두 1라운드에서 지명받았다. 2라운드에서도 부산중앙고 조석호와 한양대 오재현(SK), 중앙대 이준희(DB) 등이 프로 입단에 성공했다. 이날 지명받은 24명의 신인 선수 중 고졸 2명을 포함해 무려 7명이 얼리엔트리로 분류됐다. 

프로구단들이 최근 대졸자보다도 조기 진출 선수들에게 더 눈을 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졸 선수들은 프로에 입단하여 보통 1~2시즌을 마치고 병역의무를 해결해야한다. 전역 후에 프로무대에 다시 적응하고 자리를 잡기까지의 선수들은 소수인데, 그나마 전성기에 돌입할 만하면 벌써 20대 중후반이 되어있다.

여기에 프로와 대학간의 수준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원인이다. 프로 초창기에는 농구대잔치 시대의 영향력으로 서장훈-현주엽-신기성 같은 대학 특급 선수들은 프로에 와서 바로 적응기 없이 주전급 활약을 펼치는 게 가능했지만 오늘날에는 대학랭킹 1,2위를 다투는 선수들도 프로 1, 2년차에는 출전시간을 보장받는 것도 쉽지 않다. 김종규-이종현같이 아마추어 시절 특급 재능으로 주목받았던 선수들도 프로에 와서는 오히려 대학 4년간 기대치에 비하여 기량이 별로 늘지 않았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차라리 프로구단이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빨리 데려와서 나쁜 습관이나 약점을 고치고 체계적으로 육성시키는 것이 훨씬 낫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어린 선수들이기 때문에 빨리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이 적고, 장기적으로 시간을 들여 키우는 것이 가능하다. SK가 지난해 김형빈을 지명한 것이나, 올해 삼성이 차민석을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다. 즉시전력감이라기보다는 최소한 3~4년 뒤를 내다본 선택이다.

물론 조기진출이라고 해서 모두가 송교창이나 양홍석처럼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동나이 세대에 이미 수준이 다른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들조차도 프로무대에서 성장하는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인무대의 벽을 절감하고 조용히 사라진 선수들이 더 많다. 특히 올시즌은 예년에 비하여 경쟁력 있는 신인들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 각 구단들이 어린 선수들 위주로 실험적인 선택을 많이 내렸다는 것도 고려해야할 부분이다.

또한 각 팀들의 신인 수급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긴 부작용도 보완해야할 부분이다. SK는 올해 신인드래프트를 앞두고 트라이아웃 참가가 예정된 몇몇 어린 선수들을 데려와 자체적인 사전 트라이웃을 실시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며 경쟁 구단들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규정상 특별히 처벌할 근거는 없지만, 구단들이 자율적으로 합의된 사항을 위반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신인 수급은 부족한데 좋은 자원들을 확보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다보니 생기는 해프닝이다. KBL 차원에서 신인 스카우트 권리와 프로구단의 이해관계 사이에서 제도적인 규정 보완이 있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농구신인드래프트 차민석 송교창 양홍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