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더머니9>의 한 장면

<쇼미더머니9>의 한 장면 ⓒ 엠넷

 
<쇼미더머니8>(2019)은 명백히 실패한 시즌이었다. '크루 전쟁'이라는 포맷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좀처럼 끌지 못 했다. '싱잉 랩(노래를 부르듯 하는 랩)'이 대중음악계의 트렌드지만, 힙합팬들이 보기에는 랩 실력 자체에 의구심이 드는 참가자도 많았다.  '쇄빙선'의 지조가 탈락했을 때처럼 모호한 심사 기준에 대한 논란도 많았다. 음원 미션과 본선 무대를 통틀어 단 한 곡의 히트곡도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가장 치명적이었다.

반면, 지난주 음원 미션 배틀을 진행한 <쇼미더머니9>은 명예 회복에 성공했다. 방탄소년단과 장범준, 블랙핑크 등 강력한 강자들이 포진한 상황이지만, '굴젓팀(프로듀서 그루비룸, 저스디스팀)'의 'vvs'는 실시간 음원 차트 1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 중심에 래퍼 머쉬베놈, 그리고 미란이가 있다.

지난 주 <쇼미더머니9> 방송분에서는 머쉬베놈 크루(머쉬베놈, 미란이, 오왼)와 쿤디판다 크루(쿤디판다, 키드킹, 먼치맨)가 프로듀서 그루비룸의 곡 'vvs'를 두고 경쟁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나 녹화를 남겨둔 상황에서 오왼의 대마 흡연 혐의가 보도되면서 자연스럽게 한 사람이 하차하게 되었다.

한 명이 빠지게 되었으니, 부랴부랴 벌스(verse)를 추가해야 했고, 무대의 구성도 바꿔야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냈다. 실제로 이 영상은 24일 현재 530만 건 정도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이것은 우승후보들인 릴보이, 원슈타인 등이 부른 'Freak'의 영상 조회수의 두 배 정도에 해당한다.
 
 
그 둘이 만든 역사
 

'멋이 벤 놈'을 자처하는 머쉬베놈은 이미 한국 힙합 팬들 사이에서 유명 인사다. 대전 출신인 그는 충청도 사투리를 그대로 자신의 랩 플로우에 활용한다. MC 메타나 사이먼 도미닉처럼 영남 사투리를 랩에 활용한 래퍼들은 있었지만, 충청도 사투리를 활용한 것은 머쉬베놈이 처음일 것이다. 머쉬베놈은 본토의 이미지를 끌어오지 않는다. 농촌과 시골의 이미지를 자신의 콘셉트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래퍼다. <타짜>의 '곽철용'으로 유명한 배우 김응수와 함께 작업한 노래 '버르장멋'을 부를 때는 한옥에서 랩을 했고,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트랙터를 등장시킨다.
 
그는 <쇼미더머니8>에서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팀 방출'에서 탈락했지만, 시즌 8의 우승자 펀치넬로를 꺾을만큼 개성 있고 재미 있는 랩을 들려주었다. 머쉬베놈이 단순히 재미있는 콘셉트만 갖췄다면 '화제 인물'에 그쳤겠지만, 그는 탄탄한 랩 기술을 겸비한 실력자다.

한편 올해 초 데뷔곡 '명탐정'을 발표한 미란이는 현재 이번 시즌의 유일한 여성 생존자다. 미란이는 2차 예선에서도 선택을 받지 못했고, 패자부활전을 통해 합격한 언더독(underdog)이었다.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 하는 참가자였기에, 시청자들이 그의 활약에 느끼는 쾌감은 더욱 크다.
 
"보여줘야겠어/내가 망할 거랬던 놈들에게도/
내가 잘될 거라 했던 너에게도 다 할게 최선/"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일렉 기타 사운드와 함께 곡이 시작된다. 'vvs'의 가사 주제 자체는 낯설지 않다. 'Started From The Bottom(밑바닥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 식의 서사는 힙합에서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자신을 무시했던 이들에게 '성공'으로 증명할 것이라 말하는 가사는 힙합에 많이 있었다. 그러나 머쉬베놈과 미란이의 생생한 묘사 때문에 이 노래는 뻔해지지 않는다.
 
 <쇼미더머니9>의 한 장면

<쇼미더머니9>의 한 장면 ⓒ 엠넷

 
머쉬베놈은 어머니의 삶을 '장애물을 넘는 동네 육상선수'라고 표현하고, 미란이는 어머니의 술병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머쉬베놈은 자신의 재치를 유지하면서도 진지한 감정을 전달하고, 미란이는 적절하게 활용된 싱잉 랩 스타일로 호소력을 높였다. 머쉬베놈은 자신의 앨범에 쓰려고 했던 가사 '성공과 실패 중 택1을 해라'를 미란이에게 양보했다. 카우보이 스타일의 착장을 한 채 연출한 것도 퍼포먼스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무대를 보고 있는 프로듀서들이 '영화 같은 무대'라고 표현한 것은 어색하지 않았다.
 
"하늘에 계신 할매 보고있습니까
조금 늦었습니다 저 뱀들을 물리치느라"(머쉬베놈)
 
"알바 째고 무대 위 가사 위 가난이 빛나지
밑바닥의 소녀 엄마의 술병이 날 만들어"(미란이)


방송 말미에는 프로듀서 저스디스와 쿤디판다, 먼치맨의 랩이 더해진 'VVS'가 완성되었고, 이 음원이 멜론 실시간 차트 1위에 올랐다. 머쉬베놈은 우승 후보로 우뚝 섰고, 미란이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을 마련했다. 영상 속의 머쉬베놈과 미란이는 밝은 표정으로 랩을 하고 있지만, 이들의 무대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말하는 시청자들의 댓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스타일과 메시지를 겸비한 '영화 같은 무대'를 완성했고, 대중이 화답했다. 쇼미더머니가 오랜만에 히트곡을 배출한 상황에서, 충청도 래퍼와 '밑바닥에서 온 소녀'의 지분은 매우 크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유쾌한 자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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